영화 ‘워터 디바이너 (Water Diviner)’
박석천(글무늬 문학사랑회 회원)
베트남과 한국에서 사계절을 모두 겪고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와 처음 맞는 토요일이다.
며칠 전부터 이번 토요일에는 영화를 보기로 약속을 해놓았기에 주말 오전에 하는 친구들과의 우치(Wuchi) 운동과 그간 못 다한 이야기를 급히 마쳤다.
서둘러 마운틴 파노라마의 6킬로미터를 한 시간에 안에 주파, 바로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내가 영화를 골랐는데 고국에서 머물 때 몇 주 전 방한했던 세계적인 영화배우 러셀 크로우 (Russell Crowe)의 인터뷰 기사를 우연히 보고 결정을 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주연하고 감독 한 영화 ‘워터 디바이너 (Water Diviner)’를 홍보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었다.
영화의 배경이 된 1차 세계대전의 갈리폴리(Gallipoli) 전투는 그동안 호주와 뉴질랜드의 시각에서만 이야기 되었고 ANZAC(호주와 뉴질랜드의 연합군)의 사상자 숫자만 부각되었을 뿐 정작 상대방인 터키의 군인들의 엄청나게 많은 전사와 또 터키의 시각에서의 이 전투는 논의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터키의 입장에서도 전투를 바라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런 면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가 감독한 전쟁 영화인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Letters from Iwo Jima)’ 가 떠올랐다.
그 영화야말로 이오지마 전투에 참가한 미군의 잣대가 아닌 일본 군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전쟁과 그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쟁을 논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가진 이념과 출생지에 따라 평가를 하게 마련인데 이런 행위들이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지 또한 당연히 한쪽으로만 치우치기 쉬운 편협한 시각의 함정을 작품이 제시해 주면서 전쟁의 쓰라린 고통을 함께 대변해 주기도 한다.
갈리폴리 전투에서 세 아들을 모두 잃은 주인공 러셀 크로우는 날마다 비통함으로 보내던 아내마저 자살을 하자 아들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호주에서 낯선 땅 터키로 향한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척박한 호주의 땅에서 순전히 육감으로 땅속 물길을 찾아내던 농부인 러셀 크로우는 또한 아버지로서 유골들만 묻혀있는 전쟁터에서도 자신의 핏줄이 어디쯤에 묻혀 있는지를 육감으로 찾아낸다.
전자의 육감은 평생 농부로서 얻은 경험과 땅을 대하는 겸손함에서 나온 것이라면 후자의 육감은 아들들의 뼈를 찾기 위한 간절한 소망과 오직 아버지만이 가질 수 있는 하늘이 내려준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갈리폴리 전투가 끝난 후 양국 전사자들의 유골을 찾는 작업이 진행되는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유골이 뼈 그 자체지만 자식을 잃은 아버지에게 그것은 뼈 그 이상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주인공은 미아가 된 아이를 찾는 것처럼 아들들을 찾아 터키에 왔다고 했지 유골을 수거하기 위해 왔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러셀 크로우뿐만이 아니라 아들들의 유골을 보고 울부짖는 터키의 어머니들의 아픔 또한 화면 그득하다.
낮선 터키 땅, 어딘가에 분명히 묻혀있을 세 아들들의 유골이나 유품을 찾아 호주 땅에 누워있는 아내 곁에 같이 묻어 주려는 아버지의 집념 그리고 그 절박함이 화면에서 읽힐 때 감동을 받지 않을 관객은 없을 것이다.
이런 감동적인 연기는 배우가 살이 찌면 연기를 못 할 것이라는 편견을 과감하게 깨고 있다. ‘글래디에이터 (Gladiator)’의 영화로 인해 러셀 크로우에게는 강한 남성미의 이미지가 따라 다니지만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도 이제 나이가 드니 이곳저곳 안 아픈 곳이 없다면서 노년의 진솔한 면도 보여주었다.
실제 영화에서도 호주의 전형적인 농부로 나오는 러셀 크로우는 젊을 때의 멋진 남성미와는 거리가 멀게 나온다.
터키 목욕탕에서 터키 군인들과 같이 나오는 장면에서 그의 살찐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배우 최민식도 살이 찌고 배가 나왔지만 프랑스 감독과 같이 만든 영화 ‘루시 (Lucy)’에서 마약 조직의 보스에 걸 맞는 연기를 잘 소화했을 뿐만 아니라 뚱뚱한 몸으로 한국 영화사에 큰 획을 긋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의 권위와 인간미를 십분 발휘했다.
식스팩의 몸매가 주류를 이루는 요즈음이라지만 그만큼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수준과 눈높이도 높아진 것 같다.
장구한 한국의 역사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전쟁을 천여 번이나 겪었다.
한반도 뿐 만이 아니라 세계사 역시 그러하지만 우리의 이런 아픈 역사를 아는 러셀 크로우는 인터뷰를 통해 전쟁을 소재로 하는 이 영화가 한국인들에게도 전쟁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언급 한 바 있다.
또한 그는 베트남 내전을 피해 난민으로 호주에 와서 작가, 배우 그리고 코메디언으로 성공한 베트남 출신 안도 (Anh Do)의 자서전에 대해서도 소개를 하였다.
역시 책은 영화인들에게도 다음 작품에 대해 영감을 주는 모양이다.
이 자서전을 이미 읽은 나는 베트남을 극적으로 탈출하고 호주에 정착을 하는 안도의 아버지, 그가 식구와 친척들의 호구책을 마련하는 흥미진진한 과정, 안도가 교육을 받고 이곳 호주에서 입지적인 인물이 되는 과정 그리고 자라면서 문화가 다를 수밖에 없는 아버지와 겪는 갈등 등이 영화로서 만들어질 다양한 소재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러셀 크로우의 차기 감독 영화 작품으로 안도의 이야기를 기대해 보면서 나는 혼탁한 뿌연 메콩강을 생활터전으로 삼아 자급자족하면서 살아가는 베트남 사람들의 삶과 풍경들이 벌써 그리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