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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5-6 (하나님의 벽보)
성경본문 : 다니엘 5: 5-6
5.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6. 이에 왕의 즐기던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듯하고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힌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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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변한규목사
지금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 하나님은 다니엘의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은 다니엘의 시험을 승리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의 시험도 승리케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 시간에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교훈을 찾아보고 본문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세 가지 말을 통해서 은혜를 사모하려고 합니다. 세 가지 말이 어떤 것입니까?
첫째, 그 때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5절).
여기 그 때가 언제입니까?
벨사살왕이 죄를 범하고 있던 바로 그 때입니다.
그 때 벨사살왕이 무슨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까?
본문에서 찾아봅니다. 그때에 벨사살왕이 방탕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1절에 보면 벨사살왕이 전 각료들과 왕족들과 귀족들, 1천명을 초청하여 향연을 베풀었습니다. 무희들은 요염한 춤을 추고 악사들은 흥겨운 노래들을 연주하면서 온갖 음탕한 일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때는 위기의 때입니다. 환난의 때입니다. 백성들이 어려움에 처해있는 때입니다. 그리고 죄악이 관영한 때입니다. 그러므로 벨사살은 니느웨왕처럼 금식을 선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방탕을 일삼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또 3절에 그 때에 성전 금 기명으로 술잔을 만들어 마시고 있었습니다. 성전의 금잔으로 술을 담아 마시고 있었습니다. 흥이 찰 무렵에 벨사살이 일어나 말했습니다. “여러분, 오늘밤은 성전의 금잔으로 술을 마시면서 즐기니 더 맛이 나지요.
유대인들이 믿는 신이 엉뚱한 신인 것을 보여주고, 그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보십시다.
축배!”하니 모두 다 잔을 들고 축배를 했습니다. 또 그때에 벨사살은 우상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4절).
우상이 무엇입니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 만든 신이 우상입니다.
살아있는 돼지에게 절을 해도 모를텐데 삶은 돼지머리에 절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그런데도 이러한 일이 관공서에서 비일비재합니다.
또 그 때에 벨사살은 하나님의 심판을 외면한 채 있었습니다.
“이것을 다 알고도”(22절), 벨사살은 그 아버지 느부갓네살왕이 범죄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느부갓네살왕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이 무엇입니까? 21절입니다. 인생 중에서 쫓겨나 들짐승처럼 됐다고 했습니다. 들나귀처럼 되었고 풀을 뜯는 소처럼 돼버렸다고 했습니다.
벨사살이 이것을 알고도 돌이킬 줄을 몰랐습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처참한 일입니다.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
우리 모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잠 29:1).
우리에게도 주신 말씀입니다.
노아시대에 인생들이 홍수심판이 눈앞에 있는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먹고 마시고 향락을 누리다가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인생들이 잠시 후면 쏟아질 심판의 유황불을 깨닫지 못하고 향락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벨사살은 몇 시간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함을 깨닫지 못하고 흥청거리는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인생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또 그 때에 어찌했습니까?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23절).
여기 하늘의 주재는 우주를 주재하시는 통치자 하나님을 뜻합니다. 그 때에 벨사살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교만을 부리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교만은 성도들이 가질 것 못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여기 그 때가 언제입니까?
30절에 보면 그 때를 그날 밤이라고 했습니다.
그날 밤에 벨사살이 죽고 말았습니다. 여기 그날 밤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왕에게도 그날 밤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헤롯 왕을 치실 때에 그날 밤에 충이 먹어 죽게 했습니다.
부자에게도 그날 밤은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어리석은 부자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자가 말하기를 “영혼아 먹고 마시고 평안히 즐기자”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려니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말씀했습니다. 그날 밤이 언제일는지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라고 예외는 없습니다. 그날 밤은 우리 모두에게도 반드시 찾아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이것을 알고 깨닫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손가락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5절).
여기 손가락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손가락이 사람의 손가락처럼 나타난 것입니다. 여기 손가락은 심판의 손가락입니다. 그날 밤 잔치석상에 어인일로 손가락이 나타났습니까? 벨사살의 엄청난 범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판의 나팔을 부시려고 손가락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때에 손가락이 무엇을 했습니까? 벨사살의 경우 심판의 벽보를 써서 부쳤습니다. 그때 이 손가락 앞에서 오금이 떨렸습니다. 죽음을 독촉한 손가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다니엘의 경우는 다릅니다.
다니엘은 손가락 때문에 명예를 얻을 수 있었고 나라의 높은 자리에 앉을 수도 있었습니다.
단 10:10에 보면 하나님의 손가락이 은총의 손으로 나타나 주시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손으로 지치고 피곤해진 다니엘을 어루만져주셨습니다.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 37:24).
성도들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넘어지지를 아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손으로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
하나님께서 나의 등 뒤에서 나 같은 것을 돌보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2004년 한해를 살 때 사랑하는 장로님들, 권사님들, 집사님들, 그리고 유치원 어린이들을 비롯하여 모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께서 손으로 어루만져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9) 했습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신 5:15) 외쳤습니다.
다니엘의 경우 하나님의 손은 어떤 손입니까? 어루만져주시는 손입니다.
지금도 피곤해 지친 우리 모두를 어루만지십니다.
들의 풀 한포기도 잘 가꾸면 잘 자라고 애완동물도 사랑의 손으로 어루만져주면 순해집니다. 하나님의 손길로 어루만짐을 받는 성도야 말로 믿음이 성숙해집니다. 성품이 온순해집니다.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지 않습니다. 몸으로 행실로 주여 주여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손으로 어루만져 주실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열병이 떠났고 귀신이 물러갔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고 문둥병자가 깨끗함 받았습니다.
슬픈 자가 위로 받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질병으로 고생할 수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낙망날 때도 있습니다. 양식이 모자라서 눈에 눈물날 때가 있습니다. 남편을 잃고, 아내를 잃고, 자식을 잃어서 절망할 만큼 괴롭고 답답하고 기가 막힐 적도 있습니다. 어려운 시험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처럼 불같은 시험을 당할지라도 겁낼 것 없습니다.
♬ 불같은 시험 많으나 겁내지 맙시다 구주의 권능 크시니 이기고 남겠네 ♬
믿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어떠해야 합니까?
도우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오 하나님이여, 하나님의 손으로 어루만져 주시옵소어’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단 5:25).
하나님께서 그의 손가락으로 쓰신 하나님의 벽보입니다. 그런데 누구도 이 글자를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도 이 글자를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에 벨사살이 어찌 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얼굴빛이 흙빛으로 변했습니다. 넓적다리가 녹는 듯했습니다. 무릎이 서로 닿을 만큼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벨사살은 번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견딜 수 없는 답답함을 억제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곧장 술객들, 술사들, 점장이들을 불러들이고 박사들까지 동원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벽에 쓰여진 글자를 읽고 해석하라”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에게는 자색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어주고 나라에 높은 자리에 앉게 하리라”
그러나 속수무책입니다. 그때에 추천된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루살렘에서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이 누구입니까? 기도의 사람입니다. 기도의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십니다. 영안을 뜨게 하십니다. 알지 못하는 비밀을 알게 하십니다. 다니엘은 연약해졌을 때에 더욱 기도했고 시험을 당했을 때에 더욱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날마다 하나님 곁으로 가까이 갑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가보십시오.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영감을 주십니다.
축복도 주십니다.
이적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채우리라” 하셨고 예수님께서도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하셨습니다.
누구도 읽을 수 없고 누구도 해석할 수 없는 하나님의 벽보를 누가 읽었습니까? 누가 해석했습니까?
다니엘입니다.
그것이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입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메네는 세어본다, 데겔은 저울로 달아본다, 우바르신은 나눈다, 망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벨사살을 세어보고 또 달아보고 또 달아봐도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다니엘은 다시 해석합니다.
27절, 저울에 달아보니 당신은 부족합니다. 더 이상 왕의 자리에 앉아 있어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고 해석을 했고 28절, 당신의 나라를 둘로 나누어 메대와 바사에게 주리니 망하게 될 것이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벨사살의 결국이 어찌됐습니까? 다니엘이 해석한 내용 그대로입니다. 30절,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 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31절,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거북이처럼 서서히 오는 것 아닙니다. 한 순간에 갑자기 오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잠 6:15절, “악인에게는 그 재앙이 갑자기 임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여, 깨닫는 일을 더디 하지 마십시다. 회개할 때를 미루지 마십시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비유를 보십시오. 미루지 아니했습니다. 동네친지들을 찾아다니면서 ‘나 돼지우리를 떠나게 되었소’ 인사를 나눈 적이 없습니다. 탕자는 곧장 돼지우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곧장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문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 거룩한 것을 더럽히지 말라입니다.
벨사살은 거룩한 하나님의 큰 그릇을 술잔으로 쓰다가 그날 밤에 죽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거룩한 것들이 있습니다.
주일은 거룩한 날입니다. 행여라도 이날을 세속저인 날로 사용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손에 성경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입니다. 경계의 말씀은 경계의 말씀으로, 당부의 말씀은 당부의 말씀으로 듣고 배우고 받고 그래서 그대로 지켜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찬송이 있습니다.
찬송은 거룩한 하늘나라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노래방에서 가서 찬송을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러니 성도들은 성전을 사모해야 하고 모이는 일에 열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배우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성전을 더럽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입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입을 주실 때에 아름답게, 참되게 쓰라고 주셨습니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약 3:10).
사랑하는 성도여, 행여라도 내입으로 거짓말하지 마십시다. 내 입으로 미워하지 마십시다. 내 입으로 음탕한 말을 하지 마십시다. 자주자주 내 입으로 ‘예수를 믿으시오.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 예수 믿고 우리 함께 천국 가십시다.’ 이렇게 입을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23절).
벨사살의 이야기입니다. 벨사살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기가 차지했습니다. 결국 그날 밤에 죽고 말았습니다. 23절은 다니엘의 말입니다.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이시라 했습니다.
누가 나의 호흡을 주장하십니까?
누가 나의 모든 길을 작정하십니까?
나의 부모가 아닙니다.
나의 선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모든 길을 작정하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호흡을 멎게 하시면 나는 오늘 밤이라도 끝장입니다.
그래서 벨사살은 그날 밤에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본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우리 모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셋째, 저울에 달아서 부족 되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신 교훈입니다. 누구의 앞에도 하나님의 저울은 있습니다. 내 인생을 달기 위한 저울이요, 역사를 달고, 우리의 생사회복을 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인생들아, 이 저울대에 올라서라. 내가 달아보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언어를 달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실을 달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도 달으시고 우리의 믿음도 달으십니다.
몇 ㎏나 되는가? 우리의 믿음생활을 달으십니다.
우리의 봉사를 달으십니다.
우리의 열정을 달으십니다.
네 믿음이 무엇이냐?
달아보면 압니다. 세어보면 압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모든 신앙, 인격을 달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모르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의 은밀한 모든 것까지 아십니다. 양인가, 염소인가를 아시고 알맹인가, 쭉정인가를 아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인가, 악하고 게으른 종인가를 압니다.
들에 핀 백합화인가, 회칠한 무덤인가를 아십니다.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잠 24:12),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계 3:15)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벨사살을 향해 메네 메데 데겔 우바르신 하셨습니다. 이제 벨사살에게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안개요, 비 없는 구름이요, 열매 없는 가을나무입니다. 터진 웅덩이요, 담을 수 없는 찢어진 전대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물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구멍 뚫린 자루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를 담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하나니은 벨사살을 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피곤하고 답답하고 괴롭고 짜증나고 눈물나고 한숨짓는 어려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벽에 나타난 손가락을 기억하면서 삽시다. 메네 메데 데겔 우바르신을 기억하면서 살아가십시다. 인생의 생사화복을 저울질하시는 하나님의 벽보를 기억하면서 사십시다.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에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이 지녔던 기도, 쉬지 마십시다. 다니엘이 지녔던 믿음, 간직하면서 한 해를 살아갈 때에 승리하는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