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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21-24
말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 김영주 목사
1.서론
요즘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 않습니다. 글 대신 그림이나 만화 같이 보여 지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한때 만화는 사양길에 있었으나 요즘은 만화가 뜨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만큼 ‘보는 것’에 익숙해진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전도하기 쉽지 않습니다. 설명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여주는 복음이 필요합니다.
보여주는 복음이란?
①변화된 삶
②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남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은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2. 능력의 차이
오늘 본문은 엘리야와 그의 제자 였던 엘리사에 대한 기록 중 하나입니다. 지난 주 엘리야가 죽은 아이를 살려내는 장면을 봤습니다. 후에 그의 제자였던 엘리사도 죽은 아이를 살려냈습니다. 똑 같이 죽은 아이를 살려냈는데 엘리야는 몇 배의 힘을 들여서 했고, 엘리사는 쉽게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능력의 차이입니다. 어떻게 그런 차이가 생겼는지 알아보기 원합니다.
1) 엘리야는 처음 자기가 머무는 집의 아이가 죽었을 때 매우 당황했을 것입니다.
왕상 17:20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이 장면에서 매우 당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 엄마에게서 죽은 아이를 받아 다락에 뉘우고 아이 위에 세 번 엎드리고 부르짖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죽은 아이가 살아난 이유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세 번이나 아이의 몸 위에 엎드렸지만 아무 사인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이렇게 부르짖으니까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아이의 혼이 돌아와 살아난 것입니다.
반면, 엘리사는 다릅니다. 그 집에 가보니 이미 아이는 죽었습니다. 죽은 지 제법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이는 엘리사의 침상에 뉘여 있었습니다. 엘리야 때는 죽은 아이를 데리고 바로 엄마가 엘리야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은 제법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때 엘리사는 좀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고, 소식을 듣고 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능력은 달랐습니다. 34절 보시죠.
(왕하4:34)“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죽은 아이 몸 위에 올라가 한번 엎드렸는데 벌써 반응이 있습니다. 아이의 차가워진 살이 차차 따뜻해졌습니다. 한번만으로도 반응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두 번째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자 이번에는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왕하 4:35)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엘리야는 어렵게 해서 아이를 살렸는데 엘리사는 가볍게 살렸습니다. 이 차이가 뭘까요? 능력의 차이입니다.
2)하나님의 나라는 말’지식’아니라‘ 력’입니다.
나타나고 보여 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좀 자세히 보기 원합니다.
(왕하4:33)“ 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엘리사는 원망하거나 당황,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냥 기도 했다고만 되어있습니다. 부르짖지 않고 그냥 기도한 것 같습니다. 소리 지른다고 기도 응답되는 것 아닙니다. 작게 기도해도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해야 응답됩니다. 엘리사가 그랬습니다. 그냥 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죽은 아기 위에 올라 입, 눈, 손 대고 엎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해졌습니다. 한번 다시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떴습니다. 이건 기도의 응답이긴 하지만 능력이 전달된 것입니다. 엘리사에게 있던 능력이 죽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되면서 아이가 재채기 하면서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이 엘리사의 능력입니다. 반면, 엘리야는 기도함으로, 기도의 응답으로 아이가 살아난 것입니다.
능력이란 이런 것입니다. 살리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 머물러 있으면 ‘나’ 때문에 여럿 살게 됩니다. 엘리사 안에 있는 생명의 능력이 죽은 사람에게 들어간 것입니다.
예)①해독(왕하4:38~41)38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39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 들포도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호박을 따서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그들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40이에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무리가 국을 먹다가 그들이 외쳐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죽음의 독이 있나이다 하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41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이르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독이 없어지니라“
②드림(왕하4:42~44)42“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그가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43그 사환이 이르되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44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았더라”
그러나, 반대로 나 때문에 여럿 힘들어 질 수도 있습니다. 나는 살린다고 열심히 했는데 사람들은 더욱 힘들어 집니다. 오히려 죽어갑니다.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죽어있으면 남 살릴 수 없습니다. 살리기는커녕 죽일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죽음의 기운이 남에게 전달되어 그 사람까지 죽이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우상 숭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많이 돌이켰습니다. 참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역하면서 고생 많이 했습니다. 반면, 엘리사는 엘리야보다 더 크고, 더 많은 사역을 했지만 더 쉽게 했습니다. 능력의 차이입니다. 늘 기도하고 매일 기도해도 응답 못 누리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많이 기도하지 않는데도 아주 효과적인 응답을 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3. 차이의 원인
1) 결단력입니다.
-왕상19:19-21절 보시면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 엘리사를 부를 때 처음에는 잠시 고민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할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r 한 마디 합니다.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왕상19:20)
이 한 마디 듣고는 확실하게 결단했습니다. 다시 뒤돌아 볼 생각도 안하고, 미련 없이 다 정리했습니다. 열 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 갈던 엘리사, 그는 부자였을 것입니다. 12쌍의 소가 끄는 가운데 농기구로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정한 뒤, 소를 잡고, 소 고기들은 백성들에게 다 주어 먹게 하고, 소의 기구들은 불사르고, 바로 엘리야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두 마음 품지 않았습니다. 주의 길 가다가 잘 안되면 다시 돌아와 농사지어야지 하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정리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습니다. 결단력의 차이가 능력의 차이입니다. 두 마음 품는 사람이 능력 있는 것 못 봤습니다. 이런 사람은 고민만 많이 하지 능력 없습니다. 주의 일 하면서도 딴 생각하고, 주님의 길 가면서도 다른 길 있으면 그 길 가려 합니다. 이래갖고는 큰 일 못합니다.
2) 끈기입니다.
(왕하2:2,4,6)엘리야가 승천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여러 군데로 보내십니다. 그때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여기 머물러 있으라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로 보내신다 말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한순간도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어디든 따라갑니다. 벧엘, 여리고, 요단으로 따라다닙니다. 스승 엘리야가 어디 가든지 떠나지 않겠다. 하는 끈기, 하나님께서 내게도 엘리야같은 영감과 능력을 주실 때까지 어디든지 따라가고, 지구 끝이라도 같이 간다. 이런 끈기가 능력을 가져온 것입니다.
예)기도도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볼 때까지 해야 합니다. 귀신도 한번 쫓기 시작하면 끝을 보기까지 해야 합니다.
3) 사모함입니다.
(왕하2:9)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어떻게 보면 참 무모한 요청입니다. 자기 선생님보다 두 배나 더 영감 있고, 능력 있길 원했습니다. 그만큼 사모함이 큰 것입니다. 사모함이 커야 일도 크게 합니다. 사람이 그릇이 작으면 겨우 그 정도 일 밖에 못합니다. 그릇을 키워야 일도 크게 합니다. 그릇을 키우는 것은 사모함입니다. 사모함이 있어야 스케일도 커집니다. 큰일을 사모하십시오. 스스로 작게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크시니 큰일을 기대하고 기도하고 사모하십시오. 사모함이 크면 헌신도 크고, 모험도 큽니다.
4) 도전입니다.
(왕하2:11~15)엘리야가 승천할 때 엘리사가 그 장면을 봤습니다. 그리고 떨어진 엘리야의 겉옷을 주웠습니다. 그 옷을 가지고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하면서 요단강을 치기합니다. 그러자 강물이 갈라서고, 그 사이로 건너게 됩니다.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미쳤다 할 것입니다. 죽은 사람 옷을 가지고 뭐라고 소리치며 요단강을 치는 사람?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도전했습니다. 도전했기에 능력을 경험한 것입니다. 해봐야 합니다. 신앙은 실제지 이론이 아닙니다. 경험해보고, 부딪쳐봐야 합니다. 엘리사는 도전했습니다. 그랬더니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5) 기질의 차이입니다.
엘리야는 비교 열등감 우울질의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이 잡아 죽인다고 통보하자 국경 넘어 남 유다의 브엘세바까지 도망가서 광야 로뎀나무 아래서 죽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모든 것을 자포자기 하고,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버렸습니다. 엘리야는 문제가 생기면 열등감이 가끔 나오고, 우울해집니다. 낙담에 잘 빠집니다. 반면에 엘리사는 이런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고난이나, 어려움, 장애물을 보면 더 담대하고, 오히려 문제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더 확신 있게 믿음을 증거 했고, 하나님을 드러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기질적으로 우울하거나, 비교의식에 빠지거나 남들 말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성향들이 더 큰 능력을 가로막습니다.
4. 말이 아니라 능력
(고전4:19)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교만한 자는 말을 잘 합니다. 그러나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말 잘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 아니라, 능력 있는 사람을 만듭니다.
(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아닙니다. 천국도 상상속의 산물이 아닙니다. 이 땅에 살면서 천국의 평안, 기쁨, 즐거움을 맛봐야 합니다. 하늘의 능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천국을 설명할 수 없어도 천국의 능력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알게 됩니다. 말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하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당시 바울 주변에서 바울 일행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여러 가지 말을 해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 말에 신경쓰다보니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내가 가면 말을 알아볼 것 아니라 능력을 알아보겠다.
그동안 바울은 사명 감당키 위해 많은 것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쭉 갔습니다. 비바람 불어도, 한파가 몰아쳐도, 사람들이 뭐라 해도, 어떤 고난을 당해도 꾸준히 주의 길을 갔습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포기하는 것은 능력이 아닙니다. 그건 패배자들이 하는 것이지, 능력 있는 자들이 하는 것 아닙니다. 포기하면 쉽습니다. 포기하면 편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어떤 일을 당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 이것이 능력입니다. 고린도전서를 통해 바울이 말하는 능력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1)고난 견디는 능력
2) 부르심을 포기하지 않는 능력
3) 장애물 뚫고 나가는 능력
4) 변하지 않는 사람들 바꿔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는 능력입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다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도우심과 능력이 없었다면 이런 일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행1:8에서 말하는 성령의 능력 안에는 나의 시선,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 세상 끝날까지 복음 가지고 나가는 능력, 증인 되는 능력, 고난,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고 나가는 능력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돌파’의 능력입니다.
5. 엘리야에게서 볼 수 있는 능력
엘리야는 ‘돌파’의 능력을 가졌습니다.
1)밀가루와 기름을 통해 가난/기근을 돌파했습니다.
2)죽은 아이를 살려서 사망의 권세를 돌파했습니다.
3)우상 숭배의 장애물을 돌파했습니다.
4)불신앙을 돌파했습니다.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가 가져다 주는 떡과 고기를 통해 하나님은 엘리야를 먹이시고 보호하셨습니다.
5)죽지 않고 하늘로 승천함으로 죽음의 권세를 돌파했습니다.
6. 지금 이 시대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건강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능력사역이 성경적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을 빙자한 신비주의인 경우가 많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1) 성경에 근거가 있습니다.
2) 영혼구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아니면 신비주의입니다.
3)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 확장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4)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냅니다.
5) 신비주의가 아니라 기도와 순종을 통해서 얻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능력을 얻을 수 있을까요?
1) 결단력, 단호한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2) 사람들의 의견이 아닌 하나님만 바라보고 묻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깊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끈질기고 지속적이고 강력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눅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4) 받고야 말겠다는 사모함과 끈기가 필요합니다. almighty God!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능력 중 최고는 인내의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