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송령을 보는 법
석송령은 내성천의 지류인 선관천변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에 있는 600년 된 반송 소나무의 이름이다. 이 나무는 마을의 동신목인데 가지를 넓고 멀리 펴 300평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더구나 1927년 이수목씨가 2,000평의 토지를 유산으로 물려주면서 재산세를 내고 선행을 베푸는 나무로 유명해졌다. 지금은 예천군 금남리의 황목근과 더불어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꿈꾸게 하는 증표가 되고 있다.
석송령을 몇 차례 보면서 내 마음엔 차례로 몇 겹의 무명이 덮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마음을 더듬게 하였다.
우선 나무의 외양을 보자. 나무는 자체가 천향리 마을을 둘러싼 낮은 산과 닮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또하나의 작은 산처럼 보인다. 예전 초가집 시절의 낮고 둥근 지붕을 생각해보면 산과 지붕과 나무가 형성한 조화로운 곡선은 참으로 자연스러워 무심하면서도 유심하게 이어져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낮고 편안할까? 때문에 그걸 바라보는 사람 마음도 푸근해진다. 나무의 키가 10미터라지만 멀리서보면 낮고 넓게 퍼져있어서 높게 보이지 않는다. 나무는 오히려 대지를 푸근히 감싸안고 있다. 그래서 나무를 보면 그 아래 300평의 그늘이 결코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간간히 햇살이 내리는 그늘 안엔 가지를 지탱하기 위해 여러 개의 돌기둥들이 세워졌는데, 오랜 시간에 걸쳐 차례로 세워져 거친 놈 부드럽게 다듬어진 놈 등 다양하다. 그리고 약간은 흉물스럽게도 볼 수 있는 쇠기둥들까지 여럿 세워져 가지 하나 놓치거나 부러뜨리지 않게 지키겠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자연 그대로라면 이미 땅에 가지가 닿거나 부러졌을 것을 오직 사람들의 극진한 마음으로 저렇게 받들었던 것이다. 그 댓가가 바로 300평의 그늘인 것이다.
그 넓고 깊은 그늘을 보면 술래잡기 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장기 두는 할아버지, 콩 고르는 할머니가 보이는 것 같다.
나무에 얽힌오랜 사연을 들으면 더 그윽해진다. 600년 전 풍기에 큰 물이 졌을 때 아마도 산사태가 났던 모양이다. 나무는 바위산을 얕게 덮은 표토에 뿌리를 내린 어린 나무였을 것이다. 산이 무너지면서 물에 휩쓸려 내려오다 바로 천향리 냇가에 걸렸던 모양이다. 지나가는 선비가 나무를 가엾게 여겨 물가에 심었는데, 그 마음이 전해져 마을 사람들이 600년 동안 이 나무를 귀하게 보호하여 신령한 나무가 되게 하였던 것이다. 어찌보면 이 나무는 평범한 수천의 나무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자연도태될 운명의 가진 묘목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나무을 겹겹히 두른 뜻을 생각하면 마음을 건네고 시간을 건너는 법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낮고 넓게 뻗는 가지는 그렇게 해서 선의를 가득 담은 그늘을 드리우게 되었다. 선비와 마을 사람들과 유산을 물려준 노인의 마음이 초가집 같고 푸근한 산모양의 나무에 그득 담겨 조화로운 마을의 지킴이 나무가 된 것이다. 석송령은 또한 우리가 꿈꾸는 마을 공동체의 이상을 참으로 잘 구현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누구나 평등한 대동세상일 것이다.
나는 부디 우리가 이 나무를 깊고 오래 바라보며 나무에게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어디 석송령 뿐이겠는가? 냇물도 바위도 나무도 풀도 모두 따스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유심하고 아름다운 한 영혼이고 천국이며 스승일 것이다.
나무와 내성천에게서 우리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건네고, 시간을 어떻게 건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