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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인간에 대한 사랑, 생명에 대한 경외
- 강영환의 수필과 시를 중심으로 -
권대근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선생의 수필 <삶이란>을 읽으면, 곳곳에서 흘러넘치는 생명 사랑의 물결을 느낄 수 있다. 삶이 힘들어 생명을 버리는 사회적 타자에 대한 관심은 독자를 숙연하게까지 한다. 남다른 감수성과 인간애로 문학 장르를 넘나들며 사랑과 생명의 철학을 쏟아놓는 작품이 눈길을 끄는 건 당연하리라. “여보, 이 에메랄드가 모두 땅콩이라면 얼마나 좋겠소?” 이 말은 결코 돈과 권력만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인생은 오히려 땀 흘리며 살아가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기에, 평범하고 검소하며 자만하지 않고 죽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며 정직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정신 자세의 중요성을 말해 준다. 선생의 수필 <행복의 진리>의 뒷부분이다. 현진건의 「빈처」에 나오는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란 명구절을 연상시키는 남편의 메모는 지극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세월이 흘러도 빛을 발한다. 편지를 읽고 나서 떨리는 손으로 포장을 연 헬렌은 기적을 경험하였을 것이다. 땅콩으로 변한 에메랄드, 남편의 극진한 사랑이 덧씌워진 땅콩이 어찌 반짝이는 에메랄드만 못할까.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물질적인 만족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지만, 남편의 사랑에 바탕을 둔, 기지가 돋보이는 적절한 삽화를 글 속에 넣음으로써 읽는 재미와 가르침의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다.
선생은 1938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고, 부산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아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셨다. 1991년 한국교육신문사 주체 수필 공모에 당선하셨고, 1992년에는 체신부 주최 편지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으셨으며, [한국교단문학]에 시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하시다가 1993년 [문학공간]에서 수필로 등단하셨다. 1993년 부산문학상, 서포김만중문학상, 한국교단문학대상, 문예한국작가상, 부산수필문학상을 수상하셨다. 국제PEN클럽 회원,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학비평가협회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연제문화예술가협회 고문, 전 부산문협 부회장 및 부산시인협회 부회장, 교단문학 회장을 역임하셨다. 1964년 부산문화방송 출신 구성작가로 활동하셨고, 평화방송 문화해설가, 80년 명예퇴직을 하고 경동전문대학 교양학부에서 영문학 강의, 부산대학 평생교육원 출강, 부경대학 평생교육원 외래교수, 창신대학 학부 겸임교수를 역임하셨다. 부산수필문학협회 회장과 고문으로, 계간 문학지 [새시대문학] 발행인이셨다. 저서로는 시집 : 『도시의 새』,『타조의 꿈』,『삭막한 이 땅 위에 사랑의 빗물 내리고』,『새는 왜 날갯짓을 하는가』,『삶이 존재하는 땅』,『철새가 길을 떠나는 이유』,『삶속의 삶』 수필집 : 『사랑이 흐르는 강』,『사랑 할 수 있을까(공저)』평론집 : 『지역문학인의 탐구』, 시이론서 : 『알기 쉬운 현대시 이론과 실제』, 영문번역집(공저), 『The songs of poets in the Busan』등이 있다.
에세이문예지 인터뷰 기사를 중심으로 선생이 살아온 길을 추적해 본다. 유년과 청소년기에는 백일장, 글쓰기 대회에 교사의 추천으로 등 떠밀려 참가하여 상을 타기도 했다. 고등학교와 대학시절엔 숱한 문학책을 구입하여 밤이 늦도록 읽었다. 인생에서 이때에 문학에 대한 열정과 기초적 소양을 제일 많이 쌓았다. 그 시절에 구입한 ‘현대문학 창간호’ 등 귀중한 서적이 서재에 누렇게 빛이 바랜 채 손을 흔들고 있을 정도다. 대학을 졸업하고 육군 소위 시절 경인선 기차간에서 우연히 만난 세종대학 동양미술과 학생인 베아뜨리체(필명)와 열애에 빠진 것이 또한 선생의 문학을 성장시킨 동기가 되었다. 봄이 되면 군부대에 미술작품을 가져왔고, 겨울이 되면 혹독한 추위를 마다하고 전방의 눈밭을 건너 始作이나 전방의 手記를 들고 서울의 소격동 붉은 벽돌집을 찾았다. 제대를 한 후에도 두 분의 사랑은 계속되어 선생이 보낸 戀書와 그녀가 보내어 온 화선지의 그림이 책 두 권 될 정도로 크기가 불어났다. 편지를 쓸 때는 밤을 세웠다. 몇 번이나 고치고 또 고쳐야 하였기 때문이다. 그때 선생의 문학적 수업과 습작이 사랑의 힘으로 점점 성숙되어 간 듯하다. 그러나 그녀는 입버릇처럼 말하던 修女가 되어 선생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베아뜨리체는 떠났지만 그녀의 사랑은 선생의 문학을 한 단계 올려놓아 주었던 진정성이 담겨있는 거룩한 동기가 되었다.
평자는 『한국현대수필비평론』에 「강영환의 수필세계/참다운 삶의 좌표, 그 사랑학」이란 글을 발표한 바 있다. 그 글에서 선생의 수필들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사랑학’이었다. 수필이 인생체험의 고백적 문학이라는 점에서 볼 때 ‘사랑’이 선생의 삶에서 가지는 의미는 남다를 것 같다. 선생이 생각하는 ‘사랑’에 대해, 또 그가 수필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사랑’에 대한 설명을 들어 보자. “사랑은 세상의 모든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희망을 함께하는, 보이지 않는 거룩한 진정성이 담겨 있습니다. 때문에 지구촌의 모든 생명의 영혼을 부활하게 합니다. 어느 날 꽃밭에서 흑장미가 저녁놀에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는 무심코 내 손수건으로 잎을 닦아주며 그 생명력에 감탄을 하였는데, 바로 그 옆에 있던 백합이 시들고 있음을 보았지요. 그 순간 나는 사랑이 무언가를 깨달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손수건을 꺼내 ‘하얀 백합화야, 너는 천사처럼 순결하구나.’ 하면서 그 잎을 정성껏 닦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너무도 청순한 모습으로 나를 쳐다보며 그윽한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이지 않는 위대한 힘이지요.” 사랑하는 이로 인해 자신의 문학수업을 한 단계 올렸다는 선생의 말씀으로 보아 얼마나 열정적으로 편지를 쓰고 진심을 다해 사랑하였는지 느낄 수 있었다. 흑장미와 백합 같은 작은 존재에게서도 사랑을 볼 수 있는 선생의 심안이 부럽다. 어쩌면 여성적이기도 한 예민한 감수성 탓에 그는 문인이 되었을 법도 하다.
선생의 수필 속에는 영시나 영미소설에 관한 인용이나 예시가 많이 나와 독특한 매력을 불러온다. 선생은 영문학을 전공해서 그러리라. 선생의 문학적인 근저에 영향을 미친 영미 작가는 안델센과 톨스토이다. 안델센은 1805년 덴마크의 퓨네섬의 작은 어촌인 오덴세에서 구두 고치는 아버지와 남의 집에서 빨래를 해주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얼마나 가난했던지 안델센이 태어났을 때 아기 침대를 살 수가 없어서 어느 부잣집 장례식에서 쓰다버린 평상을 주어다가 대신 쓸 정도였다. 두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 하다가 1818년 빈민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어머니는 재혼을 하게 된다. 그 후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탐독하면서 코펜하겐의 한 극장에 겨우 심부름꾼으로 취직한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간 쓰라린 삶의 경험과 독학으로 이루어 낸 작품세계를 통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는 작품 「인어공주」등을 발표하게 된다.
반면 톨스토이(1828-1920)는 처음부터 명문귀족의 백작가에서 4남으로 태어났는데, 이는 안델센의 생애와 너무도 대조적이다. 그는 카잔대학에서 동양어학과에 입학했으나 진급시험에 낙제한 후 법과로 옮긴다. 그 후 대하소설 <전쟁과 평화>에서부터 만년의 톨스토이가 창작의 정열을 쏟아낸 역작 <부활>은 사상 종교 예술 등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만든 예술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정신적인 기원은 톨스토이가 <참회록>을 쓴 1878년-18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젊은 시절 사교계에서 보낸 방종한 생활, 즉 술과 여자와 도박에 빠져 인생을 낭비했던 지난 날의 방탕한 생활을 통렬하게 반성하고, 그가 새롭게 찾은 진리, 즉 자기를 희생하여 남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삶의 지표로 살아가게 된다. 백작의 직위를 버리고 인지세를 헌납하고 드디어 톨스토이는 1910년 가출 길에 올랐는데, 이 가출이야말로 그 생애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그는 순례여행 도중 병으로 쓰러져 82세로 세상을 떠난다. 안델센은 지극히도 가난한 집안의 출신으로 세상을 동심으로 빛나게 했으며, 톨스토이는 부유한 귀족 출신으로 후일 귀족 신분과 명예와 돈을 사회에 헌납하면서 농노해방과 휴머니즘으로 세상을 밝게 하였다.
삶이란 무엇이며 인생은 뭣 때문에 살아가는지의 질문은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로서 톨스토이는 82년의 긴 세월 동안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 고민해 왔다. 그는 인생을 대단히 시각적인 이미지로 묘사했다. 한 사람이 들판에서 들소에게 쫓기다가 우물 하나를 발견하고 그 안으로 뛰어 들게 된다. 다행히 우물 중간에 나무가 걸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은 자기가 걸터앉은 나무 끝에 꿀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톨스토이는 인생이란 바로 이러한 각박한 현실 속에 절망을 딛고 삶을 극복하는 것이 인생, 즉 삶이란 것이 아닌가 하고 절망을 딛고 삶을 극복하는 것이 인생, 즉 삶이란 것이 아닌가 하고 자문자답 한다. 삶이 어떠한 위기에 처한다 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짐 삶의 의미에 충실 한다면 니체가 부르짖었던 <피의 원리>를 이해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숭고한 정신은 삶에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참은 참을 부르고 성실은 성실에 응답한다. 남을 움직이려거든 먼저 나부터 움직이어야 하고 남을 감격 시키려 거든 내가 먼저 감격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근본적인 정신이 아니겠느냐? 피는 피에 호응하고 성실은 성실에 감동한다. 내 혼이 울면 네 혼도 울고 내가 진실하게 살면 그대로 감동한다. 오늘날 너무도 삶의 가치 및 생명의 존엄성을 경시하는 풍조가 많다. 그것은 사색의 포기요, 정신적 파산선고나 다름없다.
- <삶이란> -
위의 인용 예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선생은 수필을 쓰면서, 톨스토이가 살면서 체득한 인생의 진리를 그대로 받아드려 자신의 세계관으로 인생관으로 삼는다. 톨스토이가 우물에 빠진 한 젊은이의 낙천적인 모습에서 인생이 무엇인지 깨달은 바와 같이, 선생도 이 <삶이란> 수필 속에서 각박한 현실 속에 절망을 딛고 극복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설파한다. 결국 선생은 이런 삶의 원리를 생명 경시 풍조의 현실에 빗대어 생명의 존엄성, 생명의 가치 창출로 이어지게 한다. 톨스토이는 안델센과 신분은 서로가 대조적이지만 글의 바탕에 공통적으로 스며있는 사랑은 문학가였던 선생에게 커다란 귀범이 되었던 것이다. 문학이란 시대와 사회의 구체적인 표출이어야 하고 그런 사회 속에서 인간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은 고대에도 있었지만 근대에 이르러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문학은 인생의 표현이요, 사회의 거울이라고 하는 것도 작품이 보여주는 내용이 작가의 주관으로 들어온 경험의 여과된 재현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수필가가 다루는 세계는 다양하다. 그러나 인간을 소재로 하는 수필만큼 강한 힘을 발휘하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톨스토이의 체험도, 한 이름 모를 청년도 인간이다. ‘인간’은 그 자체가 부분이지만 종합된 하나의 ‘세계’이며 ‘시대’이고 ‘사회사’이자 ‘인간사’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암울한 시대를 맞이하여 실직함을 비관하여 생명을 너무도 경시하는 경향이 많다. 척박한 시대의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거나 심지어 자식까지 죽여, 동반 자살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얼마나 고통스럽기에 죽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그것은 그 고통을 경험하지 아니하면 그 아픔을 모른다. 그러나 살아야 한다. 그리고 주어진 단 한 번의 생명이 모두 소진되어, 하얀 뼈 가루로 흩어지는 그 순간까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 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실존이다. 인간은 운명에 대하서 세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하나는 운명에 존중하는 자세이고 도 하나는 운명에 도전하려는 자세이며 또 하나는 운명을 사랑하는 자세이다. 니이체는 운명을 사랑하는 것은 운명애運命愛라 하여 자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
- <삶이란> -
수필은 현실과 언제나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수필이 체험적 이야기이건 아니건 간에 수필과 현실은 상호 밀착되면서 수필적 화자를 자기 속에 밀어 넣는다. 수필은 언제나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새로운 질서를 창조한다. 인간답게 사는 길을 연다. 그것은 인간의 존재론적 해명이면서 새로운 삶과 역사 진전의 지평을 가시화시켜 인간과 삶과 역사를 상승시킴으로써 새로운 현실을 전개함을 말한다. 그것은 문학이 사회나 역사성의 수용에 의한 전파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죽음이나 사랑의 문제를 화소로 수필을 풀어내고 있는 강영환은 일차적으로 문학의 사회적 성격을 잘 인식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 수필에 나타난 것처럼 이렇게 우리도 죽음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죽음을 인생의 한 과정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한 번은 죽게 마련이며 대부분의 사람은 노인이 되어 병들고 노쇠하게 되어 죽음에 이른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고 한다. 그러나 혼자 가는 죽음의 유형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천수를 누리고 가는 자연사가 있는가 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인 돌연사나 사고사도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도 있다. 이상과 같은 죽음의 현상들이 빈번히 목도되는 이때, 우리 수필가들이 죽음에 대한 강박 관념을 버리고 삶에 대한 비극적인 감각을 반성적 성찰로 극복하고 삶의 의지를 불태우자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 하겠다. “죽을 힘으로 더욱 살아야 하며 실아서 이 세상에 빛살을 던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고달픈 삶을 사랑하며 자신의 초상화를 매일매일 완성하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보잘 것 없는 무명의 풀잎도 그 목숨 다 할 때까지 갈라진 시멘트 틈바구니 사이에서 모질게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라고 생명의 의지를 강조하였지만 정작 선생은 불현듯 날라던 죽음의 사신에 끌려 가버렸던 것이다.
여름날, 그토록 싱그러웠던 잎들이/ 무거운 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흩날리는 자유의 과라가 되어/ 온 절간에 낙엽으로 뒹굴고 있다/ 老 스님은 낙엽을 줍기도 하고/ 쓸기도 하며 부지런히 몸짓을 /재촉하고 있다
끝도 없이 낙엽을 줍는 스님에게/ 지나가는 보살이 물어본다/ 스님, 언제 이 숱한 낙엽을/ 모두 주우시렵니까?/ 스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낙엽은 줍는 만큼 없어지는 게지요
절간에 하염없이 낙엽이 /떨어지고 있다
- 시 <한 잎의 낙엽을 줍는 마음> -
위의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인간과 인생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생명의 유한성에 대한 접근을 바탕으로 해서 삶의 가치를 투시하는 작가의 인식이 각覺의 경지에 도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쓸어도 쓸어도 쌓이는 낙엽을 끊임없이 쓸고 줍고 있는 스님의 모습을 통해서 작가는 사랑 속에 놓여 있는 수많은 가치 중에서도 한 생명의, 또 하나의 생명에 대한 깨끗한 사모의 가치를 음미하고 있는 것이다. 대자연의 순리를 쫓아 천명을 다하는 삶이 또 다른 생명에의 기여로 나타날 때, 참다운 삶이라 할 수 있다는 작가의 시각은 생명의 존재론적 건전성을 삶을 목표로 두고 있음이다. 이 시는 ‘모든 생명이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되어 영겁으로 이어져가기 때문에 죽음은 그것으로 종말이 아니고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창출된다.’는 작가의 우주관이랄까 생명관이랄까 이런 생명철학을 나타낸다. 사물의 탄생과 죽음과 거듭 탄생되는 이 끝없는 작업은 영원히 관조되고 관찰되어야 할 과제라는 인식의 바탕에 스님의 빗질이 놓여 있고, 거기에는 작가의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시는 강영환의 정신세계를 파악하는 결정적 단서로 작용한다.
인간에게는 현재적 삶 그 이상의 역할이 부여되어 있음으로 해서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이이 시는 말하고 있다. 강영환의 작품세계는 주제 지향성이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뉜다. 하나는 생명을 사랑하는 정신이요, 다른 하나는 참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수필과 시는 ‘생명’과 ‘사랑’을 재료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하나같이 인간을 사랑하는 정신과 인간성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인간을 둘러싼 사회를 그리면서, 작가나 독자를 구원하는 문학의 본질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당연한 결과다. 선생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 얻은 감동을 구체적 형상으로 제시하여 자기 발전의 초석으로 삼았다. 그래서 작은 감동을 준다. 삶의 바다에 낚시 바늘 같은 물음표를 던져 인생의 지혜를 얻어내려 하지 않고 어찌 고도로 세련된 지적 통찰의 작품을 써서 큰 감동을 줄 수 있겠는가.
다소 사건의 구체성보다는 관념적으로 흐르는 경향은 수필을 해독하는 데 힘든 시간의 고통을 안겨 주지 않지만, 문학성을 약화시킬 여지가 있다. 이는 지적되어야 할 단점이고 앞으로도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선생은 누구보다도 순수한 정신을 가지고 그에 상응할 만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다. 문학을 진선미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한, 그의 수필은 언제까지나 독자의 사랑과 관심을 끌 것이다. 생은 자기 표현이다. 산다는 것은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수필가는 각각 자기의 개성적인 언어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자기를 표현한다. 뜨겁게 사는 사람은 뜨겁게 표현하는 것이요, 아름답게 사는 사람은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요, 진실하게 사는 사람은 진실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좋은 수필은 평범한 소재일지라도, 그것을 보는 눈과 가슴이 인간적일 때, 가치를 지닌다. 선생은 결국 생명의 문제, 인간정신의 탐구가 문학의 주제로 될 때, 가장 큰 감동을 불러들일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붓 가는 대로 써서는 안 되는 것이 문학으로서의 수필이다. 문학이란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모습을 문학적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러려면 삶 속의 지식이 아니라 체험이 표현되어져야 한다.
문학은 자신도 정화해야 하고 시대도 정화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야 하는 길을 비추는 등불이어야 하고, 동시에 현대인이 살아가는 사회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이기도 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선생의 수필이 생명의 가치를 통해 인간을 구원하는 글이라면, 시는 숨겨진 진실을 캐내어 인생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길잡이가 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들의 작품들은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잊고 있었던 생의 가치에 대한 응시를 통해 ‘참의 가교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중요한 작가의 사명인 것이다. 선생의 서거에 다시 한번 문학 외적으로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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