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80] 김강호의 “봄 사태”
2026.11.02 06:40
“생명의 언어로 시대의 어둠을 넘어”
봄 사태
김강호
눈이 먼 독재자의 정수리를 향해서
봄 군단 달려들어 초록 폭격 시작하자
깍지 낀 철권의 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겨우내 어둠 속에 갇혀 살던 민초들이
꽃 폭탄 움켜쥐고 거리로 뛰쳐나와
새봄을 되찾기 위해
터트리는 폭발음
나무들은 자유를 온몸으로 끌어올려
포연 자욱한 지상 파도로 풀어 놓는다
탱크도 막을 수 없는
질풍노도의 봄 사태
봄 사태 _ 김강호 시인
“생명의 언어로 시대의 어둠을 넘어”
나는 자연을 단순히 바라보는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은 인간의 삶과 분리된 풍경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과 인간의 의지를 함께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내가 시에서 계절과 꽃과 나무를 자주 불러오는 까닭은 자연의 표면적인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안에 잠재되어 있는 생명의 힘을 인간의 역사와 연결하고 싶기 때문이다. 「봄 사태」에서 봄은 계절이면서 사건이고, 자연의 순환이면서 역사의 변화이며, 침묵하던 생명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되찾는 하나의 거대한 각성이다. 내가 생각하는 시는 바로 이러한 서로 다른 세계의 경계를 허물어 하나의 의미로 융합하는 일이다.
한 낱말이 하나의 의미에 머무는 시보다 여러 의미가 겹쳐지면서 독자의 내면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시를 지향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도 ‘봄’과 ‘사태’를 결합하였다. ‘봄’은 계절을 뜻하지만 동시에 ‘보다’라는 의미의 봄을 환기한다. 눈먼 권력이 보지 못하는 것을 민중과 자연은 보고 있으며, 얼어붙었던 세계가 다시 깨어나는 순간을 함께 목격한다. ‘사태’ 역시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눈사태처럼 한순간에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역사적 변화를 함축한다. 이러한 중의성은 내가 지향하는 시적 언어의 한 방법이다. 나는 시어가 하나의 문을 닫는 말이 아니라 여러 개의 문을 동시에 열어 주는 말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시에서 자연은 자연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꽃은 꽃으로만 머물지 않으며, 봄은 봄 이상의 무엇이 된다.
「봄 사태」에서 내가 특히 의식적으로 사용한 것은 의인과 은유의 전복이다. ‘봄 군단’, ‘초록 폭격’, ‘꽃 폭탄’, ‘철권’, ‘탱크’와 같은 말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언어들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 충돌 속에서 시대를 드러내고자 했다. 폭격과 폭탄은 죽음의 언어지만, 그것을 초록과 꽃에 결합시키면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의 무기가 된다. 꽃은 가장 부드러운 존재이지만 이 시에서는 가장 강한 저항의 상징이 된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시의 중요한 역설이다. 시는 거대한 힘을 거대한 힘으로만 맞서는 것이 아니라, 가장 연약해 보이는 존재 속에 숨은 근원적인 힘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한 송이 꽃이 돌을 뚫고 피어나듯, 생명은 폭력보다 오래 지속되고 어둠보다 강하다. 나는 그러한 생명의 역설을 통해 시대를 바라보고 싶다.
또한 자연의 움직임과 인간의 움직임을 하나의 문법으로 연결하고자 했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봄은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땅속에서는 이미 새로운 생명이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역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억압의 시대에는 자유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자유를 향한 인간의 열망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겨우내 어둠 속에 갇혀 살던 민초들」은 땅속에서 봄을 준비하는 씨앗과 같은 존재이며, 그들이 거리로 나와 움켜쥔 ‘꽃 폭탄’은 오랜 침묵 끝에 터져 나오는 생명의 언어다. 여기에서 자연의 개화와 인간의 각성은 서로 다른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 된다. 내가 자연을 통해 인간을 말하고, 인간을 통해 자연을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시가 시대를 직접 설명하는 것보다 시적 상징을 통해 시대를 스스로 말하게 해야 한다고 믿는다. ‘독재자’와 ‘민주’라는 직접적인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주변에 초록과 꽃과 나무와 파도라는 생명의 이미지를 배치한 것은 이 때문이다. 마지막의 ‘탱크’와 ‘봄’의 대립 역시 물리적 폭력과 생명의 힘을 대비시키기 위한 것이다. 탱크는 길을 막을 수 있지만 봄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나무를 베어낼 수는 있지만 다시 돋아나는 생명까지 제거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 ‘봄 사태’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자유를 억압당할 때마다 다시 찾아오는 생명의 운동이며, 어둠이 깊어질수록 더욱 강하게 솟아오르는 인간 정신의 힘이다.
시가 세상을 바꾸는 직접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는 인간의 내면에서 꺼져 가는 불씨를 다시 발견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 줄의 시가 한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한 송이의 꽃이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오듯 작은 생명의 움직임들이 모여 시대의 풍경을 바꿀 수 있다. 내가 쓰는 시는 결국 죽음의 언어에 맞서는 생명의 언어, 억압의 언어에 맞서는 자유의 언어를 찾는 일이다. 「봄 사태」에서 봄은 그렇게 찾아오는 계절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나는 생명이다. 그리고 내가 믿는 시 역시 그러하다. 시란 어둠 속에서 이미 시작된 봄의 움직임을 발견하고, 그것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