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떨어뜨리려 나왔다”…이정희 수준 참 어이없었다 [박근혜 회고록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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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0일 나는 일산킨텍스에서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당의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5년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는 피말리는 박빙의 승부였지만 이번엔 아주 큰 표 차이로 후보로 선출됐다. 하지만 5년 전과 반대로 이번엔 본선 결과를 전혀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국민 대통합’을 제일 먼저 강조했다. 나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큰 길에 모든 분이 기꺼이 동참하실 수 있도록 대화합을 위해 앞장서겠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아끼는 분들이라면 누구와도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나의 진심이었다.
다음날 나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이승만ㆍ박정희ㆍ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 뒤 그날 오후에 김해 봉하마을로 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내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간 건 처음이었다. 국민 대통합의 의지를 보여주려는 행보였다.
2012년 8월 21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방문해 참배 하고 있다. 당시 방문은 사전에 예고하지 않았던 일정이라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중앙포토
특히 봉하마을 방문은 사전에 예고하지 않았던 일정이라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9년 5월에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봉하마을에 간 적이 있었으나 당시엔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반대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번엔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권양숙 여사도 따뜻이 맞아주셨다. 나는 권 여사에게 “열심히 잘해서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고, 권 여사도 “대선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건강을 잘 챙기시라”고 덕담을 했다.
또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역사적 화해를 이룩하는 것도 나의 중요한 과제였다. 그와 관련해 나는 2012년 3월 TV토론회에서 “산업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본 분들께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가져왔다. 그분들께 사과드리고, 나라를 위해 손 잡을 일이 있다면 언제든 함께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가 평소에 늘 가슴에 담고 있던 생각이었다.
내가 재계 로비 받은 듯 비난…김종인, 어처구니없었다 [박근혜 회고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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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때 최대 화두였던 경제민주화는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에 참여했던 김종인 전 의원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김 전 의원은 1987년 개헌 때 헌법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든 분이다. 김 전 의원은 과거 17대 국회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 비례대표였는데 당시 나와 가까운 사람을 통해 나를 한번 만나고 싶다는 요청을 해와 만난 적이 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인연이 있다. 나는 당 비대위를 꾸릴 때 김 전 의원이 꼭 우리 당에 필요한 분이라고 판단, 도와달라고 요청해 승낙을 받았다. 실제로 김 전 의원은 새누리당의 정강·정책을 새로 고칠 때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많은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이미 세상에 다 알려져 있듯이 나와 김 전 의원의 관계는 아름답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분은 자기 주관이 너무나 확고해 자신과 다른 의견은 좀처럼 수용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김 전 의원은 비대위가 가동되자마자 당 강령에서 ‘보수’란 표현을 빼자는 주장을 펴 당 내 인사들과 마찰을 빚었다.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이재오 의원 공천 방침에 항의한다며 갑자기 비대위원을 그만두겠다고 해 나를 당황하게 한 적도 있다.
김종인 끌어안고 싶었지만…동의 힘든 주장 고수했다
2012년 10월 29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중소기업 타운홀미팅 및 정책간담회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가 김종인 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중앙포토
나는 기존의 주변 인사들과 김 전 의원 사이에 불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찌 됐든 내가 꼭 필요한 분이라고 생각해 모셔왔던 만큼 어떻게든 끝까지 김 전 의원을 잘 끌어안고 싶었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은 나로서도 동의하기 힘든 주장을 계속 고수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재벌의 순환 출자 이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