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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레위기 말씀에 대한 교제 2부에 이어서 3부 말씀을 여러분들과 나누겠습니다.
이 레위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일곱가지 제물은 실체가 그리스도의 모양이고 그림이고상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제물 되신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 제물을 우리가 신약 성경을 통해서는
자세하게 인식하거나 깨닫거나 잘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 성경에 이렇게 계시의 말씀으로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자세하게 이 제물 되시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우리가 자세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먼저 레위기에 나타난 이 제물의 종류는 일곱 가지가 이렇게 나오는데요.
번제 그리고 속죄제와 속건제 그리고 소제 그리고 요제와 거제가 있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 간에 하나님의 백성들 간에 이스라엘 백성들 간에 교제 안에서의 공동 누림을 위한
화평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화목제가 이 제물들의 최종 목표입니다.
그럼 가장 먼저 번제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데요 이 번제를 통해서 어떤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을까요 번제는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도 없고 접촉할 수도 없고
만날 수도 교제를 나눌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번제라는 제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분을 기쁘고 즐겁고 아주 충만한 만족을드려야 우리는
하나님과의 누림과 교통이 이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제는 하나님의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을
위한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드시는데 하나님의
음식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양식
기뻐하시는 음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만족하심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 제물은 매일 매일 아침과 저녁 끊임없이 드려지는 것이 바로 번제라는 제물입니다.
번제에 관한 성경 말씀 레위기 1장1절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4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6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7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8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0 만일 그 예물이 가축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11 그가 제단 북쪽 여호와 앞에서 그것을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것의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12 그는 그것의 각을 뜨고 그것의 머리와 그것의 기름을 베어낼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다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에 벌여 놓을 것이며 13 그 내장과 그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4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드릴 것이요
15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다가 그것의 머리를 비틀어 끊고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피는 제단 곁에
흘릴 것이며 16 그것의 모이주머니와 속죄소 위 곧 그 더러운 것은 제거하여 제단 동쪽 재 버리는 곳에 던지고
17 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그리고 이어서 이 소제를 한번 볼까요
이 소제는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만족을 위한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번제는 전적으로 하나님만이 드시기 위한 것이라면 소제는 하나님과
함께 우리 하나님과 관계된 자들이 먹기 위한 것입니다.
구속함을 받은 자들 거듭난 자들 구원함을 받은 자들 바로 회개하여 주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고 먹은 자들을 위한 것이 바로 소제입니다.
소제는 사실은 하나님과 함께 우리가 먹기 위한 것이지만 실은 우리가 먹기 위한 것이 소제입니다.
우리가 소제를 먹는 행위는 하나님과 함께 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하나님이 함께 만족을
누리는 것입니다. 번제는 하나님만이 드시고 그리스도라는 그 번제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위해서
사신 그리스도를 보신 하나님께서 그 그리스도를 보시고 드시고 만족함을 누린다 라는 것이죠.
이 일곱가지 제사 중에서 번제가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가장 먼저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누림이 먼저 시작되어야 된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누림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족함을 소유했을 때 그다음에 하나님과 함께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가 소제라는 것을 누려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번제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제물이라면 소제의 일부는 하나님 그리고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소제의 대부분의 주요 부분은 인간의 만족을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리는 것이 배부름을 나타내는 것이고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소제를 통해서 인간이 기쁨과 만족을 하나님과 함께 누린다 라는 차원에서 그리스도 소제라는 이 그리스도라는 제물은 하나님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우리의 전적인 누림을 갖고 오게 하는 제물이다 라는 것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제에 관한 성경 말씀 레위기:2:1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2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가루 한 움큼과 기름과 그 모든 유향을 가져다가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3 화제물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출29:37
4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 5 철판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6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이는 소제니라
7 네가 냄비의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
8 너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로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가서
9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0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11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12 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지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제단에 올리지 말지며
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14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네 소제를 삼되
15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
16 제사장은 찧은 곡식과 기름을 모든 유향과 함께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그리고 세 번째가 화목제인데요. 이러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만족시켜주는 번제와 그리고 하나님을 위한
어떤 만족의 일부분과 주된 대부분의 부분이 우리 사람을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화평을 누리기 위한소제의
제물이 드려진 다음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교제와 교통 안에서의 함께
누리는 이런 일들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 화목제의 제물 되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누림을 위한 화평과 화해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시 말하자면 번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누림을 위한 그리스도 그러니까 먼저는 사람의 모습으로
성육신하셔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생애와 인생을 사시고 또 3년 반 동안의 공생애를 사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 삶 전체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돌아가심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위한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산삶의 모습이기 때문에 번제는 하나님의 누림을 위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소제는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도 일부 누리고 그리고 대부분 하나님 일부 누린 그것의 나머지
모두를 인간 곧 거듭난 자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자들의 누림을 위한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 화평이 되시고 화해가 되시고 교통이 되신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화목제는 번제와 소제라는 이 과정을 거쳐서 화목함을 누려야 된다 라는 면에서 바로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위한 누림이 되시기도 하시지만 번제 그리고 또 인간의 누림이 인간과 하나님과의 누림을 갖고
오기에는 화평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 간에 공동 누림이 되시는 것이 바로
화목제물 입니다.
이 화목제를 우리가 이루기 위해서는 성취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가져와야 되느냐 하면 속죄의 제물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내용은 레위기 4장1~35절의 말씀 인데요 분량이 많기 때문에 시간 관계상 읽지는 못하고
여러분들께서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속죄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육신 하셔서 태어나시고 삶을 사신 것과 십자가에 달리셔서 구속을 위한 속죄제를 드린 것과는
차이가 있다 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바람과 갈망과 의도는 함께 누리자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누려서도 안 되고 또 하나님이 제외되고 우리 인간만이 누려도 안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도 만족함과 누림이 있어야 되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인간도 함께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만족함이 있는 누림이 있게 하시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의도입니다.
이 전적인 하나님과 인간과의 온전한 누림이 있게 하기 위해서는 속죄제물이 필요 하다는 것입니다.
이 속죄제물이 왜 필요하냐면 인간의 첫 사람이었던 첫 조상이었던 아담의 본성 안에 곧 아담의 그
옆구리에서 태어난 우리 인간 모두 인류 모두는 본성 안에 죄라는 것이 하나님을 반역하고자 했던
사단의 뱀의 말에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뱀의 인격에 동화돼 버렸습니다.
반역의 정신을 가진 사탄과 그 마음과 정신면에서 하나를 이루고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본성 안에는 근본적인 죄가 있습니다. 우리의 근본적인 이 본성 안에 죄가 있기 때문에
그 행위로부터 나온 삶을 통해서 행위를 통해서 나오는 행위의 모든 것들이 허물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인간의 본성의 죄를 제거해 주기 위해서 필요한 제물이 바로 속죄제라는 그리스도라는 제물입니다.
속죄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근본적인 죄를 삭제시켜주고 제거시켜주고 덮어주는 속죄뿐만 아니라 완전히 제거시켜줘서 완전히 사라져버리게 하는 것이 바로 속죄제물 되신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속죄제에 관한 성경 말씀 레위기:4: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3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찌니 4곧 그 수송아지를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5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6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 장 앞에 일곱번 뿌릴 것이며 7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8또 그 속죄 제물 된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취할찌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9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하되 10화목제 희생의 소에게서 취함 같이 할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번제단 위에 불사를 것이며 11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그 머리와 다리와 내장과 12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사를찌니라 13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14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찌니 그것을 회막 앞으로 끌어다가 15회중의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16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17그 제사장이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18또 그 피로 회막 안 여호와 앞에 있는 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는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19그 기름은 다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르되 20그 송아지를 속죄제의 수송아지에게 한것 같이 할찌며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얻으리라 21그는 그 수송아지를 진밖으로 가져다가 첫번 수송아지를 사름 같이 사를찌니 이는 회중의 속죄제니라 22만일 족장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23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수염소를 예물로 가져다가
24그 수염소의 머리에 안수하고 여호와 앞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잡을찌니 이는 속죄제라
25제사장은 그 속죄 희생의 피를 손가락에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는 번제단 밑에 쏟고
26그 모든 기름은 화목제 희생의 기름 같이 단 위에 불사를찌니 이같이 제사장이 그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27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28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29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 3 0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 31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희생의 기름을 취한것 같이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32그가 만일 어린 양을 속죄 제물로 가져오려거든 흠 없는 암컷을 끌어다가 33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잡아 속죄제를 삼을 것이요 34제사장은 그 속죄제 희생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는 전부를 단 밑에 쏟고 35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어린 양의 기름을 취한것 같이 취하여
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 불사를지니 이같이 제사장이 그의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속건제는 무엇입니까 근본적인 우리 인간의 본성 안에 죄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통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는 거 이 먹는 거 손 대는 거 발걸음 행하는 거 마음속에 생각하는 거 모두 마음속의 생각으로부터
표출되는 이 행위들이 허물이 있습니다. 이 허물들이 하나님에 의하여 정죄 받았습니다.
이 하나님에 의하여 죄들과 허물들이 정죄받은 것은 인간의 본성 안에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의 죄를 제거시켜주기 위한 제물이 바로 속죄제의 제물이신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들과 허물들 근본적인 본성 안에 있는 죄로부터 산출되고 표출되었던 이 죄들과 허물들을
제거시켜주고 사라져버리게 하고 없애주게 하는 것이 바로 속건제라는 것입니다.
속죄제와 속건제는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죄를 제거시켜주는 것과 죄들과 허물들을 제거시켜준다 라는 면에서 엄연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심은 인간의 본성 안에 가지고 있는 죄뿐만 아니라
그 죄로부터 발생되고 죄로부터 행하여진 표출되어진 이 죄들과 허물들 때문에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속죄의 제물이 되셨고 그리고 죄들과 허물들을 위해서 속건제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 속죄제와 속건제가 그래서 화해한다는 의미에서 화제라 이렇게 일컫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를 쏟는 그러한 행위로 말미암아 속죄 제물이 되시고
속건 제물이 되셨는데 속죄 제물은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 안에 있는 죄 그리고 속건제는 그 죄로부터 발생된
죄들과 허물들 이것을 제거시켜 주시고 구속시켜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과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게 참 중요합니다.
이 속죄 제물이 되어 주시고 속건 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평화롭게
되어서 평안과 안식과 기쁨을 하나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통해서 누릴 수가 있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 레위기의 말씀을 이렇게 묵상하면서 깨닫고 참 많은 죄들이 근본적인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그 죄로 말미암아 산출되어지는 우리 행위 안에 있는 죄들과 허물들이 사라져버린 것을 친히 제가
체험하고 경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제물되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깨닫는 일이 얼마나 얼마나 이러한 면에서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들도 이 속죄 제물과 속건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여서 그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마시고
먹는 일이 얼마나 절실하고 중요한지를 매일매일 깨닫는 삶을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어떤 삶을 사셨습니까? 그리스도는 번제로서 하나님의 심판의 불에 의해서
타오르는번제물이 되셨는데 번제물로서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 절대적이셨습니다.
삶 자체가 하나님만을 위하고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에 의한 삶을 사셨기 때문에 절대적이신 그 삶이
십자가라는 것을 통해서 보여지고 표현되게 된 것입니다.
만약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 그게 절대적으로 신뢰하거나 의지하거나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십자가에 달려서 고통과 죽음을 경험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 앞에 절대적이셨기 때문에 절대적이라는 이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절대적이셨기 때문에 번제의 제물이 되실수 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그 삶의 마지막 결정체를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절대적이 되지 아니하셨다면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이루시고 성취하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 속죄의 제물이 되시고 속건제의 제물이 되실 자격을 갖추신 첫 번째 이유가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믿음 절대적인 사랑 절대적인 경외함을 가졌기 때문에 번제로서의 제물의 모습을 지녔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 속죄의 제물이 되시고 속건 제물이 되시는 자격을 비로소 갖추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는 속죄 제물이 되시고 속건 제물 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삶을 사신
둘째 아담 두 번째 사람이신 두 번째 사람으로 오신 둘째 아담이십니다.
첫째 아담을 볼까요 첫 번째 사람 아담은 하나님 앞에 절대적이었습니까 ?아니면 절대적이 아니었습니까?
만약에 아담이 하나님 앞에 절대적이었다면 뱀으로 변신한 그 사탄의 사상과 말과 정신과 그 미혹된 말에 절대
유혹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절대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담은 그만 사단의 미혹된 말에 기울어져서 사단의 인격과
함께 동화되는 사단의 정신을 받아들여 하나님 앞에 반역하는 마음 배역하는 마음 그리고 그러한 마음의 성향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 사단의 뱀의 말을 듣고 자기 임의로 살려 하는 이러한 스스로 살려
하는 하나님만이 스스로 사실 수 있으신 분이신데 인간이 하나님 없이 살려 하는 이러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은 하나님 앞에 인간의 첫 사람 아담은 절대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만약에 아담이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이 절대적인 믿음을
가졌다면 절대 뱀으로 변장한 마귀가 아무리 유혹하고 미혹하고 꾀이는 일이 있을지라도 절대 이끌림
당하거나 인도받아 그에 편승해서 하나가 되는 삶을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달리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그러한 절대적인 신뢰와 절대적인 순종과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는 그러한 경외함이 없었기 때문에 미혹
당하고 그만 넘어져서 실족하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첫 사람 아담이 실패하였기 때문에 둘째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존중하고 하나님만을 믿고 사랑하고 경외하고
따르고 신뢰하고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삶을 사셨기 때문에 삶 전체가 그러한 삶을 사셨기 때문에
결코 미혹되지 않으신 삶을 사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둘째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사시기를 지금 우리를 향해서 열망하고
소망하고 간절히 간구하고 계십니다. 바로 이 절대적인 분으로 삶을 사신 예수님은 완전했고 온전했으며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절대적인 삶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본성의 죄를 처리하는 속죄제가
되실 수 있는 제물의 자격을 갖추시고 그리함으로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하나님만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권위만을 인정한 삶을
사시기 때문에 우리 본성 안에 있는 아담의 본성 인류 아담의 옆구리에서 생산되어진 우리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이 부정한 죄를 처리하고 제거하고 사라지게 하는 속죄제와 속건제 제물이 되실 자격을 충분히 갖추시고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본성 안에 있는 죄를 제거시켜주는 속죄제 그리고 그 본성으로 말미암아 선출되어진 죄들과 허물들을 제거시켜줄 속건제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서 달려 피를 흘리시고 돌아가셔서 피의 효력을 가져오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성은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에게 속죄제가 되는 자격 속건제가
되는 자격을 충분히 갖추시고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서 그 피의 효력을 가져오게 하는 결과물인 피를 통해서
우리에게 제물 속죄제로서의 제물 속건제로서의 제물인 근본적인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죄를 제거함 받고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인간의 본성의 죄로 인하여 산출되어진 죄들과 허물들의 모든 것들을 다 삭제시켜주고
없애주실 수 있는 구속의 그리스도가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구속이란 바로 그러한 의미입니다.
우리 본성 안에 있는 죄 그리고 본성 안에 있는 죄로 말미암아 발생되어진 죄들과 허물들
그것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드신 분 구속해 주신 분 그냥 덮어주신 속죄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속죄라는 의미에서 덮어줌이 필요했지만 가죽옷이 그렇습니다.
지성소 안에 있는 속죄소의 덮개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해서 흘리신 그 피의 효력은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죄뿐만 아니라 죄로 인하여 발생되어진 여러 수많은 죄들과 수많은 허물들을
다 제거시켜주셨다는 면에서 속죄제물과 속건제물이 되실 수가 있으신 것입니다.
십자가라는 바로 그러한 의미를 가지고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온전한 누림을 가져오기 위해서 우리가 소제의 제물을 이렇게 드리는데 소제 제물 또한
그리스도이십입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가 인성 안에서 성육신하셔서 인자로서 삶을 사시고 인성 안에서 뭔가 불완전하고
많은 허물들과 많은 죄들과 많은 결점들과 단점들 그릇행함 이러한 일들이 있었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게도 속건제물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성육신하시고 인자로서의 삶을 사신 인생과 생애의 속에서 인성 안에서
완전한 삶 완전한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삶을 살았기 때문에 결코 결점도 그릇 행함도 범죄함도 어떤 단점들
허물들이 절대 있을 수 있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자신에게는 그러한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이 절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신 자체가 속죄 제물이 되시고 속건 제물이 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 외에는 그 누구도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실 수 있는 자격 속건제를 드릴 수 있는 제물의
자격을 갖춘 자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첫사람 아담도 실패했고요 인간 모두는 그 본성 안에 있는 죄와
그리고 죄들과 허물들로 인하여 모두 실패한 자들이 그러나 성육신하셔서 사람으로 오신 인자되신 그리스도만은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신뢰와 절대적인 사랑과 절대적인 경외함과 절대적인 권위를 순종하는 의존하고 의지하는 면에서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우리의 속죄제가 되실 자격과 속건제가 되실 자격을 갖추시고 십자가에서 그 제물의 형태로 돌아가셨다라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삶을 33년 반 동안의 전 생애를 통해서 사신 그리스도에게는 그 어떤 결점도 없으십니다. 그 어떤 조그마한 실수도 없으셨습니다. 여인의 몸인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성령님을 통해서 성령님에 의하여 잉태되셨기 때문에 그 본성 자체가 거룩한 본성을 지니신분입니다. 신성을 지니게 됐다는 거죠.
성육신하신 사람이신 예수님이 성령님으로 잉태됨으로 말미암아 태어나심도 성령님에 의해서 태어나시고
요단강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실때 비둘기처럼 성령님이 임하신 것이 그것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대 순결 그 자체입니다.
성결과 순결 그 자체이기 때문에 범죄함도 그런 실수함이나 어떤 허물들을 드러내는 일도 그릇 행하는 일도
잘못된 말이나 행위들을 하신 것도 없으시며 생각조차도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으신
무죄하신 분입니다.
그 예수님이 그렇게 절대적인 삶을 사신 이유로 말미암아 완전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심으로
우리의 본성 안에 있는 아담으로 인하여 발생되어진 그 본성 안에 있는 죄를 없애시고 구속하실 수가 있으셨고
그리고 그 본성 안에 있는 죄로 말미암아 산출되어진 죄들과 허물들을 없애주는 속건제의 제물 되실 자격을
온전히 완전히 가지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번제는 바로 하나님만을 위해서 절대적인 삶을 사신 그리스도를 제물로서 나타내는 것이
번제인데 이 번제는 하나님을 위해서 절대적인 삶을 사신 그리스도가 완전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완전성으로 인하여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죄를 없애줄 수 있게 된 것이 선제적으로 번제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번제가 없이 속죄제가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속죄제는 하나님만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유일하시게 사신 유일한 그런 면에서 정말 유니크하고 탁월하고
오직 하나이시고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에 유일한 독생자라고 우리가 이렇게 칭할 수가 있습니다.
번제는 바로 속죄제를 위한 것이고 속죄제는 속건제를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 제물이 연결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소제 하나님의 일정 부분은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서 그리고 대부분은 인간의 만족을 위해서
함께 공동으로 누리는 이 건이 소제는 사실은 인간의 죄들과 허물들을 제거시켜주는 속건제를 위한 것입니다.
번제가 속죄제를 위한 것이라면 소제는 속건제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절대적인 삶을 사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속죄제의 제물이 될 수 있으셨고 그리고
그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와 화평의 떡을 나누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속건제물의 자격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모든 제물들이 서로 이렇게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께서 번제로서의 이런 절대적인 삶을 사시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본성의 죄뿐만 아니라
죄들과 허물들도 속죄할 수 있는 구속할 수 있는 자격이나 이런 능력이 그리스도께서는 있으실 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사랑 절대적인 경외함 절대적인 신앙 절대적인 의존함
절대적인 그분의 권위에 순종하는 이런 모든 삶의 전체가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서
드러내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본성 안에 있는 본성의 그 죄 자체를 처리하는 속죄의 제물이 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구나 라고 하는 세상 죄라는 것은 두 가지 죄를 말하고
있는데 하나는 속죄제 본성 안에 있는 죄 근본적인 죄입니다.
그리고 근본적인 죄로 말미암아 발생되어진 죄들과 허물들인 속건제 속건제는 죄들과 허물들을 제거시켜주는 것이죠. 그러나 속죄제는 인간 본성의 죄를 처리해 주는 제물입니다.
그 두 가지 보라 세상 죄 그 세상 죄에서 죄라는 것은 두 가지를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성 안에 있는 인간의 근본적인 죄 그리고 근본적인 본성 안에 있는 죄로 말미암아 발생되어진 죄들과
허물들 그 두 가지를 제거시키시고 처리시켜 주시기 위하여 속죄의 제물이 되시고 제물은 하나의 형태로
드러나지만 그 제물 속에는 이와 같은 여러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속죄의 제물이 되어 주신 분입니다. 할렐루야 !
우리의 본성의 죄를 처리해 주셨습니다. 구속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우리의 본성 안에 죄를
처리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 안에 있는 근본적인 죄들과 허물들을 처리해 주고 제거해 주는
구속의 일을 또한 해주셨습니다. 속건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그 성육신하셔서 인자로서의 삶을 사시는 가운데서 그 인생의 삶과 생애가
무언가 결핍되고 무언가 미비되고 무언가 부족하고 무언가 불안전하였더라면 그분은 결코 우리의 본성의
죄를 처리해 주는 속죄제물이 결코 되실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본성의 죄로 말미암아 발생되어진 죄들과 우리의 허물들을 없이 할 수 있는 속건제물이 절대
될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우리의 본성의 죄와 본성의 죄로 말미암아 발생되어진 죄들과 허물들을 처리해 주고
없이해주고 속죄해 주고 구속해 주실 수 있는 그 자격 요건을 가지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인성 안에서 완전하였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삶을 사셨기 때문에 속죄 제물이
되실 수가 있으셨고 우리 본성의 죄를 처리하는 속죄제물이 되실 수가 있으셨고 그리고 죄들과 허물들을
처리해 주는 속건제물이 되어 주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십자가 달리신 그리스도의 그 피를 보면서 내 피를 받아 마셔라 라는 것은 그 십자가에 달리신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서 절대적으로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신뢰한
완전한 삶을 사신 그리스도를 충분히 인식하고 깨닫고 믿음으로 영접하고 반응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 속죄제물과 속건제물이 우리의 것이 될 수 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하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얼마나 놀랍고 비밀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 모든 것 번제로 시작되어서 속죄제가 되어 주시고 속건제물이 되어 주셔서 화해와 화평함을 이루기 위한
이 모든 제물들이 모두 합하여진 그 결과물이 바로 화목제의 제물 되시는 그리스도라는 얘기입니다.
화목제는 이러한 제물들이 모두 합해진 것의 결과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번제가 되어 주시고 화제가 되어 주시고 속죄 제물이 되어 주시고 속건 제물이 되어 주신
이 네 가지의 제물들을 통해서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 이러한 절대적인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에 화해를 이루셨습니다.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평안을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흘리시고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 가로막혀져 있는 이러한 높은 죄악의 담을 허무시고 화평을 이루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화평을
가져오게 하시고 평안을 가져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그리스도께서는 제일 먼저 얘들아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라고
이 화평 이 속죄제물이 되시고 속건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이와 같은 삶을
사심으로 말미암아 화제를 이루어서 화목 제물이 되어 주신 이 부활의 그리스도가 선물한 이 평화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마음껏 충분히 만족하게 누리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와 같은 화평을 주신 화목제로서의 그리스도를 마음껏 누리셔야 됩니다.
기쁨으로 정말 누려야 됩니다. 하나님은 기쁨에 평안과 화평을 가지고 온 그리스도를 바로 하나님께서
누리시고 하나님께서 누리신 만족함을 갖고 오게 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음식이신 이 그리스도를 우리가
함께 누리기를 원하는 겁니다. 우리가 삶을 통해서 체험한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은
그래서 만족함을 가지고 우리를 대하시는 것입니다.
화목제가 되어 주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해와 평화를 갖고 오게 하는 일 누림을 갖고 오게
한 것은그리스도의 크나 큰 은혜입니다. 정말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여러분들이 지금 번제,화제, 속죄제 ,속건제 모두 화목제를
이루기 위한 네 가지 제물의 총체적인 결과적인 것은 화목제를 가지고 오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화를 가져오게 하신다라는 이 말씀을 다른 관점에서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이 번제의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과연 체험을 하고 살고 있느냐
속죄제와 죄의 근본적인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죄를 처리해 주는 속죄제와 죄들과 허물들을 없애주는
속건 제물 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과 체험이 삶을 통해서 우리가 접촉하고 있느냐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특별히 이 번제의 근본적인 의미를 모르고 근본적인 본질의 체험이 없게 되면 이 속죄제와 속건제가
우리에게 그렇게 커다란 이 죄들을 근본적인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죄를 처리해 주고 그 근본적인 본성의
죄로 말미암아 발생되어진 죄들과 허물들을 제거시켜주고 처리해 주는 그런 속건제에 대한 중요성을 우리가
인식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것을 좀 교제를 통해서 자세하게 조금은 깊게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그와 같은 번제물이
되시고 속죄제물이 되시고 속건제물이 되시고 화제물이 되시고 화목제물이 되시는 것을 이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렇게 매일 묵상을 하고 같이 교제를 나누고 말씀을 통해서 함께 이렇게 깨우침을 받는 일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5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5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전체로 번제제(번제물)과 속죄제(속죄물)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8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제(번제물)과 속죄제(속제물)
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10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와 예물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모든 제사들과 예물들을 모두 합하여서 총체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였다는 말씀에 있어서 제사는 무엇이고 예물은 무엇인가요
제사는 드리는 것입니다. 왜 드립니까? 제사를 드리는 이유는 죄를 처리함 받기 위한 것입니다.
예물은 뭡니까 ?가장 귀한 것을 드린다 선물이라는 그러한 의미에서의 예물입니다.
예물과 제사는 차별이 있고 구별이 있고 분리가 있습니다.
제사는 무엇이라고요 죄를 제거하기 위한 예물은 무엇이라고요 하나님의 기분을 만족시켜주시기 위한
선물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합니다.
죄를 위한 이 제물은 사실은 하나의 제사의 형태 속에 속하지만 더욱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적이고도
주관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실은 만약에 여러분 제사가 나의 죄를 제거시키기 위한 구속하기 위한 제사가
필요할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기분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선물이 필요할까요.
여러분 만약에 이 두 가지 중에서 하나만을 만약에 드릴 수 있는 그러한 상황과 입장에 처해 있다면
무엇을 드려야 됩니까 ?먼저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 제사를 드려야 된다라고 생각을 하겠죠.
그다음에 선물을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기분을 이렇게 만족시켜주는 그런데 엄격하게 말한다면
이 제물은 하나의 제사에 속합니다.
우리가 죄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원만한 교통과 원만한 교제와 원만한 그러한 화평을 나누기
위해서 하나님께 우리가 무언가를 드린다라면 우리가 드리는 것은 죄를 위한 제사를 드리는 일을 통해서
함께 병행해서 예물을 드리는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제물을 드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히브리서 10장 5절에서 하나님께서 제사와 예물은 원치 아니하시고 대신 무엇을 원한다고 그랬어요.
그리스도를 위하여 한몸을 예배하셨다라고 바로 그리스도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모든 구약 성경에 나오는 제사와 예물들의 어떤 교환 대치가 되게 하시려고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제사와 예물 제사 속에 예물이 포함되어 있죠 예물은 하나님의 기분을 만족시켜주고
제사는 죄를 위한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 속에는 이 두 가지 제사와 선물 하나님께 드리지는 선물이 예물이 두 가지 모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와 같은 것이 드려져야 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6절에서 6전체로 번제제(번제물)과 속죄제(속제물)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5절에 이렇게 말씀을 이어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7절에서도 계속 7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8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10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여기 7절에서 나오는 그 두루마리 책이란 모든 구약 성경의 모든 말씀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내가 행하러 왔나이다 라는 하나님의 뜻은 먼저 구약에서의 모든 동물들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 드려지는 모든 제사의 형식인 동물의 희생을 없이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제물의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지 않는 한 이 일은 계속되어지고 반복되어지고
그렇게 지속적으로 행해져야 될 일이기 때문에 이것을 단번에 제거시키고 단절시키고 잘라내어 버려야 될
그럴 필요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동물의 희생을 없이 하고자 하나님께서는 바로 제물의 실체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이 희생 제물의 희생을 영원히 없이 해주고 하나님께 가장 귀한 선물인 예물을
드려지는 일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려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구약의 동물의 희생 제물로 드려지는 희생 제물과 하나님께 기분을 만족시켜주는 그 예물을
대신하기 위해서 실체로 오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는 구원의 주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이천년 전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모든 동물의 희생들을
다 없이 하시고 그리고 동물의 제사를 드리는 형태의 희생들과 양, 염소, 비들기, 새 ,소 ,이런 죽음을
희생을다 없이 하시고 자신이 십자가를 통해서 죽음으로 말미암아 흘리신 피를 통하여 신약의 새로운 희생을
세우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 구약 성경에 나오는 특별히 레위기 성경 말씀에 나오는 구약의 동물의 희생과 제물들은 모두 실체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예표요,그림자요, 상징이고 모양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구약 성경에 나오는 동물들과 좀 전에 언급했던 양,염소, 새들, 비들기들, 소들 이런 모든
동물의 희생과 제물들의 실체이시고 실제 진리이십니다.
여러분 모든 동물의 희생과 제물들의 실체이시고 예물들의 실제라는 면에서 그분이 진짜 참 진리라는 면입니다. 그렇습니다 히브리서 10장에서 5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은 번제를 계속 얘기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레위기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번제임을 우리에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시고 피 흘리시는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뭐냐 하면
먼저는 우리의 본성 안에 있는 죄와 죄들과 허물들을 제거시켜주었다라는 것 이전에 그 십자가가 우리에게
가장 먼저 대두되고 보여지고 표현되고 보여지고 설명하고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절대적으로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께서는 절대적인 삶을 생애를 사신것과 외형적으로도 내적으로도 그러한 절대적인 삶을 사심으로
말미암아 번제 제물이 되심으로 속죄 제물이 되실 수가 있으셨고 아울러 죄들과 허물들을 없애주는 속건 제물의 자격을 비로소 취할 수가 있으셨다라는 것을 우리에게 성경은 설명하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번제의 제물이신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삶과 그런 삶의 정신으로 사셨던 그리스도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오셨다라고 히브리서 10장 말씀을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설명하고 있는 동물의 모든 희생들과 예물들과 모든 희생들 제사죠 제사를 드리는 일과 하나님의 기분을 만족시켜주는 그 선물들인 예물들 이러한 것들을 바로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내지기를 간절히 원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체가 되셔서 성육신하신 사건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리스도께서는 이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일을 행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라는 우리의 구세주이신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런 모든 제물들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이러한 제물들이 가지고 있는 숨겨진 의미들이 모든 희생 제물 속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삶을 사시고 인생을 사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제물들에 그러한 숨겨진 놀라운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실체들이 이렇게 나타나 지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희생과 제물들의 예물들의 실제가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모든 동물의 희생과 제물들의 실제이시고
참이십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이 구약 성경이 만약에 없었다라면 신약 성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의미에서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셨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정말 우리에게 많은 부족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약 성경 39권이라는 것을 주심으로 특별히 레위기라는 말씀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알 수 있도록 우리에게 계시의 말씀을 허락해 주신 것은 정말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동물의 희생과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고상한 예물들을 드리는 이 구약 성경에서의
제사와 예물들을 바꾸시려는 변화시키는 대체시키시려는 그 첫 번째 것을 폐하시고 둘째 것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행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옛 희생과 구약 성경에 나타난 예물들의
의미를 알고 충분히 인식하고 깨달아야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비로소 행할 수 있는 자격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첫 것을 폐하고 둘째 것을 세운다는 것은 옛 언약 구약 성경에 나타난 모든 동물의 제사와 예물들을 다 폐하고
새 언약 그리스도 자신의 몸을 통한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신 새 언약을 세운다라는 것이 첫 것을 폐하고 둘째
것을 세운다라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10장에 있는 하나님의 뜻은 바로 구약 성경에 동물의 날짐승들의 모든 희생과 제물들로 옛 언약의
모든 희생들과 제물들이 그리스도로 바꿔치기 하여 대체하는 바로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이 바로 절대적인
삶을 사셨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만을 위해서 이러한 삶을 사신 분이십니다.
이 땅에 계셨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주 사소한 일이나 그 어떤 말이나 행동이든간에 인생의 삶을 통하여
아버지와의 관계를 한 번도 끊어본 적도 잃어본 적도 없으시고 유일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자로서의 자신의 마음을 한 번도 세상에게 빼앗기거나 사람들 때문에 잃어버리거나 또 관계를
단절시킨 적이 전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 어떤 일들이나 말들이나 행위들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절대적인 삶의 관계가 결코 훼손되거나
흐트러지거나 뭔가 이렇게 분산되어진 그런 것들이 없어요.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생을 사시면서 이러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이 되고 절대적인 하나님을
떠나서 어떤 이 세상 마귀가 임금으로 있는 이 세상에게 조금이라도 눈을 돌리거나 마음을 뺏겨버렸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그 자신을 위해서 또 다른 어떤 그리스도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 자체로서 다 해결이 됐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완전히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삶을 사실 수가 있으셨기 때문에 번제가 바로 그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번제는 하나님만을 위해서 전적으로 바쳐진 삶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삶의 정신 삶의 마음
삶의 행위 삶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만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사시고자 했던 이것이 번제물이라는 제물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다른 화제 속죄제 속건제물 거제 요제 화목제물 이 모든 것을 끌어당기고 효력을
나타낼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실 수 있으셨던 것은 번제로서의 하나님을 위한 절대적인 삶을 사신 그 이유와
명분과 그 마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 그리스도가 되실 수가 있었고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그분만을 필요로 한다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사랑하였고 하나님만을 위하여 삶을 사셨고 하나님의
집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권위 앞에 순종하기 위해서 간 그 끝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나님만을 위해서 사셨기 때문에 번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활활 타올라서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향을
그 연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높이 삼천층에 계신 하나님께 그 만족스러운 향기가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셨던 것입니다.
그 번제물이신 그리스도를 가지고 오는 그 자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보시고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와
같이 사랑하고 기뻐하고
만족케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를 보시고 우리를 만족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체험된 그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우리가 드릴 때 하나님께 우리가 내어 놓을 때
하나님은 그 체험된 경험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기뻐하시고 만족스럽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생애를 사시면서 하나님 앞에 이와 같은 절대적인 하나님만을 위한
삶을 사셨으므로 번제의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희생 제물 나머지 희생 제물의 효력을 갖고 오게 하는 위대한
그러한 자격 요건을 갖추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삶의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행하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구약의 제물을 바꾸시고 동물의 희생을 대신 제물의 실체가 되시는 자신을 통해서 그 모든 것을 첫 것은 폐하고 둘째 것을 이렇게 세우고자 이러한 일을 이렇게 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이 뜻을 쫓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하면서
히브리서 10장 10절에 이렇게 바로 내가 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이 땅에 왔습니다라고 이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구속해 주기 위한 속죄 제물이 되시고
우리의 죄들과 허물들을 처리해 주는 속건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따라서 그 의미를 알고 살아야 될 것입니다.
그 의미를 충분히 인식하고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사는 그리스도를 우리가 체험하고 경험함으로
말미암아 그 그리스도 그 내 안에 그러한 몸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를 흘리신
그 피를 통해서 성취하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내놓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그리스도를 보시고 만족해 하십니다.
첫사람 아담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그 본성 안에 깊이 깊이 박혀 있는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번제물로서 삶을 사시고 십자가에서 그러한 죽음의 경험을 하신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만족하실 수 있는 제물이 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속죄의 제물로서 죄를 구속하여 주신 것은 번제로서 절대적으로 하나님께만 만족하실 수 있는 삶을 사시기
위해서 세상과 단절되고 사람들과 단절되고 마귀와 단절되고 모든 것이 하나님만을 충분히 만족하기 위한
삶을 사시기 위해서 그분이 버리고 없애고 처리하고 희생당하고 고통당하신 삶은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삶을 살게 된 이유는 하나님께서만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너무나 기쁨과 충분한 만족함이 있는 삶을 사시기 위한 것을 보여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로 나타났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전 생애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항상 그러한 충분히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만족시켜 드리기 위한 삶을 사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제한된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께 최대한으로 만족시켜드리고 누리게 하기 위한 삶을 사시기 위하여 그분의 생애는 천지를 창조하신
그분께서는 편협되고 제한되고 희생된 삶을 사셨습니다. 바로 그러한 삶으로 나타나셔서 보여주신 분이 바로
사람으로 제시된 인자의 삶이었습니다.
그분의 인자로서의 삶의 아름다운 모습은 신성의 본성을 지니셨지만 거룩한 인자로서의 거룩한 본성의
삶으로 표현된 것이 바로 특별히 그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도구가 되어진 그런 유대 율법학자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서기관들, 헤롯당원들에 의하여 정말 말할 수 없이 오해 받고 조롱당하고 손가락질
당하고 시험 받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그 인자로서의 거룩한 본성을 그대로 표출을 시키셨습니다.
신성을 통하여 인자로서의 그 거룩한 본성이 이렇게 드러난 삶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속성이 인자로서의 거룩한 본성을 통하여 사람들 앞에 그렇게 시험을 받고
그렇게 조롱을 받고 없신 여인을 받고 말할 수 없는 그러한 짓밟힘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인자로서의
삶의 거룩한 아름다운 본성들이 이렇게 우리에게 보여집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만약에 그러한 삶을 그러한 환경을 접했다면 우리를 대적하는 우리를 걸려 넘어
뜨리려는 그들에 대하여 뭔가 반응하는 그런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 대하여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어떤 변명이나 핑계나 어떤 그러한 나 자신을 보호하는 차원에서의
그런 여러 가지 행동이나 말이나 일들이 있을 수 있지만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과의 대적자들과의 만남에
있어서 그 어떤 결점이나 흠이나 부족함이나 미비함이나 결함이 결코 조금도 없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인자로서의 거룩한 본성이 너무나 완전했고 너무나 절대적이었던 것은 하나님만을 위하는 하나님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하나님만을 충족시키고 기쁨을 드리기 위한 삶을 사시는 일로 인하여 생애 자체가 절대적인 결함이나 흠이나 잘못이 없는 삶을 사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라는 것이 생애뿐만 아니라 인생 그 전체에
그 십자가에서 특별히 나타난 그것이 결정체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것이 빌립보서 2장 8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죽기까지 순종 하신 분이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과 같은 모양이 되어서 온전한 인성의 상태에 이르셨을 때
그분은 예수님은 사람의 형태로 나타나셨습니다.
이 사람의 모양이 되었다라는 이 말씀은 외모 외관뿐만 아니라 인성을 지니신 그 자체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완전한 사람의 형태로 나타나셨다라는 뜻입니다.
자신을 죽기까지 복종 하셨다라는 이런 낮추심에 대한 얘기는 자신을 비우신 것보다도 훨씬 더 깊은
말씀입니다. 자신을 낮추셨다라는 그 목수의 아들로서 하나님이 목수의 아들로서 사셨다고요?
유대 땅 베들레헴의 그 사관에서 태어나셨다고요?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왜 그분이 그런 낮추신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세상에 오셨을까요.
자신을 그렇게 낮추신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을 비우신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함께 하고자 우리에게
나누어 주고자 우리에게 좋은 곳을 공유하게 하고자 그리 하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특별히 하늘과 땅 사이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가장 낮추신 것의 절정입니다.
유대인들이 볼 때 십자가는 저주받은 죽음입니다.
그 십자가 상해서 달려서 죽는다는 건 사망을 당한다라는 것은 가장 큰 저주라는 것이 신명기 21장 22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22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이방인들 로마 특별히 그때 당시에 이방인들과 빌라도를 포함한 로마 이 세상 이방인들을 대표하고 있는
로마인들이 볼 때 그것은 범죄자들이나 노예들에게 내려진 사형 선고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의 죽음은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업신여김을 당하는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히브리서 12장 2절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2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낮아지신 것이 성경은 여러 가지 형태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자신을 비우신
것으로 낮아지시기도 하시고 노예와 종의 모습을 가지고 오심으로 말미암아 낮아지셨다고 우리에게 설명도
해 주시고 사람과 같은 모양이 되셨다는 것을 통해서 가장 낮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성취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자신을 이 땅에서 극도로 가장
낮은 상태로 낮추셨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장 낮은 상태로 이 땅에 내려앉은 그분을 하늘의 가장 높은 곳으로
들림 받게 하여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기 위한 것이며 참된 번제가 되어서 옛 것을 폐하고 새 것을 이루기 위한 일
때문에 첫 것을 폐하고 둘째 것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바로 옛 언약을 폐하고 새 언약을 이루시고 성취하기 위한 일로서 이러한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가장 낮은
형태의 삶을 사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상에서 자신을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단번에
드릴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히브리서10장 10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0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여러분 우리가 이 제물들을 통해서 제물들을 드림에 있어서 크고 작은 제물들이 계속 나타납니다 .
가장 큰 "소" 부터 그다음에 '양" 그다음에 그거보다 적은 염소 그보다 더 적은 산 비둘기 이러한
번제물로서의 여러 가지 크기의 문제 우리가 전적으로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살았던
이 번제물 되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충분히 인식하고 깨우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이것이 내 안에서 증가되어서 은혜로 나타나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께 그 체험한 만큼 내가 소유한 만큼 적은 새끼를 드리는 일보다는 산비둘기를 드리는 일이 좋고요
주먹만한 새 보다는 염소를 드리는 것이 낫고요 염소보다는 양을 드리는 것이 낫고 양보다는 바로 숫송아지를
드리는 것이 좋겠죠 우리가 제물되신 번제의 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충분히 인식하고 깨닫고 믿음으로 그분을 받아들이고 영접하고 내 삶을 통해서 체험한 만큼 증가되어서 하나님께 내가 체험한 그리스도를 드릴 때 하나님은 만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번제물의 크기는 예물을 드린 자의 그리스도를 깨달음 번제로서의 충분한 인식과 믿음과 깨달음을 가진
그 정도의 크기에 따라서 인식의 능력에 따라서 이렇게 좌우가 됩니다.
우리가 집비둘기 새끼를 드릴 수도 있고 또는 그거보다 더 큰 산 비둘기를 드릴 수도 있고 그보다 큰 어떤
염소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더 큰 숫 송아지를 드릴 수도 있겠죠.
이것은 번제물되신 그리스도 자신이 크기가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분량에 따른 우리가 그리스도를
어떻게 어느 정도 인식하고 깨닫고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그리스도와 똑같은 동일하신 그리스도이시지만
그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하나님께 드릴 때 아주 적은 산 비둘기에 집 비둘기 새끼로 드릴 수도 있고 또는
산 비둘기 정도로 또는 염소나 양 정도로 또는 수컷의 새끼 소 같은 정도를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왕이면 수컷의 새끼 소와 같은 커다란 그런 번제물 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베드로가 그런 삶을 살았고, 사도 바울, 그 열두 제자들이 그러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는 지금 예수님 앞에 하나님 앞에 그 번제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깨닫고
어떻게 하나님께 그 제물을 체험한 그리스도를 드리고 있나요?
여러분 우리의 체험에 따라서 그분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레위기 1장3절에 보면 이 소를 번제로 드리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3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찌니라
4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5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6그는 또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7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8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9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또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여러분 우리는 정말 그리스도를 많이 알아야 됩니다.
그 그리스도가 여호와이시면서 우리의 구원자이신 사람이신 바로 인자 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왜 새끼 소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냐면 수컷은 암컷보다 강하고 그리고 수컷의 새끼라는 것을 통해서
싱싱하고 신선하고 생명이 넘치는 충만한 아주 흠없고 성결한 그런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는 이와 같은 강한 분으로 힘이 넘치는 남성이었고 또 신선함과 생명으로 충만한
젊은 30대의 사람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셔서 번제제물이 되셨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강하신 분입니다. 신선하신 분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나누어 분배해 주시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강함과 신선함과 충만한 생명을 소유하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나눠 줄 수가 없습니다. 약함이나 낡음이나 또는 부족함이 있거나 모자람이 있거나 뭐
그러면 우리들에게 이런 흠이 있는 번제물은 결점과 단점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온전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그러한 일의 효력을 가져오게 못하는 것입니다.
번제이신 그리스도는 절대 결점이나 절대 단점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것이 베드로전서 1장 19절에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19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히브리서 9장 14절도 그러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4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이렇게 강하고 신선하고 충만한 생명력이 있고 어떤 결점과 단점이 전혀 없는 싱싱한 생명이 넘치는
그러한 제물로서 하나님 앞에 드려졌기 때문에 여호와 앞에 열납되었다라고 1장 3절에서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 제단은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십자가에서 여호와 앞에 자신을 드리셨습니다.
십자가는 비록 땅에 있었지만 그리스도 자신인 그분의 제물은 번제의 제물 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여호와 앞에 열납되었다. 바로 성막 바깥뜰에서 드려진 그 제물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번제이신 그리스도 위에 이 죄인이 제사장을 통하여 제물 위에 안수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연합되어지는 번제 제물되신 그리스도 위에 죄인이 안수하는 그 동일시된 그 안수를
통하여 하나가 되는 연합되는 하나님과 우리 우리와 하나님이 하나가 된다라는 이 연합 동일시 된다라는
이 얘기가 뭐냐 하면 레위기 1장 4절을 읽어드립니다.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여러분 번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어야 된다 그러면 그 제물이 그를 위한 제물로 기쁘게 받아들여져
그를 위하여 속죄를 이룰 것이다라고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데요.
번제물은 구속을 위한 제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제물을 바친 사람을 위하여 속죄를 이룬다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번제이신 그리스도의 하나로 연합되어지진다는 의미에서 안수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그 안수하는 의미는 우리가 이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죄와 죄로 인하여 죄들과 허물들을
계속 부정한 일을 행할 수밖에 없는 그런 약함과 모자람과 미비함과 부족하고 많이 모자라는 어떤 단점들 결함들 허물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쁜 것들 이 부정적인 것들이 안수를 통하여 그분에게 넘어가고 그분의 것이 되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좋은 아까 신성 안에 있는 그분의 인자로서의 거룩한 본성이 아름다운 미덕들을 통해서
나타난다라는 얘기를 드렸는데요.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그런 거룩한 인자로서의 본성들 거룩한 본성들이 좋은 것들 긍정적인 모든 좋은 요소들이 우리의 것이 된다라는 것입니다.
안수라는 의미는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나쁜 것들은 주님께 다 옮겨 가고 좋은 것들의 모든 것들은 다 우리 것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대치입니다. 이것이 제물의 연합입니다. 나와 그리스도가 하나된다는 것은 뭐냐하면
나의 나쁜 것은 다 가져가고 부정한 것들은 다 가져가고 그분의 좋은 것들은 내가 다 소유하게 된다는
이것이 연합이라는 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꿔치는 것이 아닙니다. 바꿔치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그분에게 주는 것인데
그 의미에서는 누군가 손해 보는 것이 있는데 우리는 손해 볼 것이 전혀 없어요.
하나님만이 그리스도만이 손해 보는 거예요.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제물에게 안수를 하라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
레위기 1장 4절 말씀입니다.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안수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나쁜 것을
그분이 가져가십니다.
우리들의 단점들 약점들이 그분의 단점이 되고 약점이 되고 그분의 좋은 거 긍정적인 거
모든 선한 미덕들 아주 충만한 생명들 신선함 이런 것들이 우리의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러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연합한다는 것은 하나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하나가
되시고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그러한 좋은 것들만을 소유하신 그분을 우리가 모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창조물로서의 삶을 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 그런 삶을 사실 때 그분을 우리가 모시고 살 때 이 땅에서 33년 반 동안 사시면서
가지셨던 하나님 앞에 하나님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했던 절대적인 삶들이 우리의 것으로
반복되어져서 체험되어지게 할 것입니다.
번제 제물이되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받아들이면 번제의 삶이 되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삶을 살 수 있도록
체험하게 하시고 경험하게 하시고 그러한 삶의 영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런 삶의 길로 인도를 해주신다라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소유하지 않으면 이런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분에게 안수함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것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하고 우리의 것이 그분의 것이 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그분이 하나가 되게 하고 우리 자신을 그분과 하나가 되게 합니다.
그때 그분은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계속 반복하고 체험하고 경험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번제의 제물을 드리는 삶의 자세요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의 특권입니다.
여러분 이 번제물이신 그리스도께 내 손을 얹고 안수함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고 연합 진다는 것은
동일시되고연합되어지고 하나가 되는 문제만이 아니라 화목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하나님과 화평과 화목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모신 우리는 우리와
하나님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문제점들이 모두 해결되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번제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삶을 살 때 이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되어진 그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상태가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과
우리가 화평을 가지고 오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물을 잡는 것은 죄사함을 위한 피를 흘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단 사면에 피를 뿌리는 것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제단 위에 태워진 제물을 열납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앞에서 제물을 잡게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끝으로 3부 교제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이사야: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 말씀으로 말씀 정리 후기를 갈음합니다
깊이 깨달으신다면 영혼이 풍성해질 말씀이 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