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렸던 날이다. 기획 단계부터 마음이 설렜던 것은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아는 초등 친구들과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간식을 챙기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동안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죽마고우들과 하룻밤을 같이 보낼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2) 오랜만에 만나는 백발의 친구들은 어떤 모습일까? 서울 부산 울산 각지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이기에 보고 싶은 마음이 강가의 봄버들처럼 하늘거렸다. 정해진 시간에 감포항에 도착한 친구들은 끼리끼리 서로 얼싸안고 회포를 나누었다. 여러 해 동안 누적된 정이 따스한 햇살에 실려 모두의 가슴으로 번져나갔다.
3) 1박 2일 계획을 발표했을 때, 반대하는 친구들이 많아 끝까지 마무리를 할 수 있을까 싶어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여자 친구들은 모두 찬성인데 외람되게도 남자친구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꺼린다고 했다. 숙박이 싫은 사람은 저녁에 돌아가도 좋다는 전제하에 처음이자 마지막 1박2일이라며 일단은 밀어붙인 만남이었다.
4) 점심 식사가 끝나기 바쁘게 하나의 추억이라도 더 쌓으려고 초등학교 수학여행인 양 감은사지로 향했다. 감은사는 신라의 호국 사찰이다.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고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어 감은사지라 한다. 국보로 지정된 감은사지 삼층 석탑이 절터를 지키고 있는데 소곤소곤 봄빛 속에 숨은 생명의 씨가 깊이 잠든 천년 바위를 두드리고 있었다.
5) 내친김에 함월산 기림사에도 다녀왔다. 기림사는 인도의 정토 신앙이 성행하던 시절 옛 신라인의 이상향인 이 땅에 안락국의 세계를 구현하고자 하는 염원이 깃든 도량이다. 흘러넘치는 맑은 샘 화정수를 떠먹고 원효가 다녀간 구도의 길을 상상해 보았다. 군데군데 모여서 사진을 남기고 야산에 핀 진달래꽃이 반가워 어릴 적 이야기들을 소환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6) 공무원으로 퇴직한 서울친구는 맨발 걷기 전도사이다. 고향 친구들의 건강을 위해 좋은 것을 알려주려고 먼 곳을 한걸음에 달려왔다. 저녁 시간에 푹푹 빠지는 문무 대왕암 해수욕장 모래밭에서 맨발 걷기를 했다. 하하 호호 웃으며 동심으로 돌아간 신나는 맨발걷기였다. 촉촉이 젖은 모래 위를 걸으며 접지 효과를 최대한 누렸다. 물기가 있으면 음이온이 발생하는 더 좋은 환경이라고 했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손에 손을 맞잡고 부르는 만남 노랫소리가 동해에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7) 횟집은 방 2개에 다락방 두개가 딸려 있어 남 여 방으로 나누었다. 빙 둘러 앉아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친구들을 위한 묵념을 했다. 한 사람씩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시간을 갖다보니 끝없는 덕담이 이어졌다. 밤이 늦도록 부모님, 형제, 선생님, 마을 사람이야기, 등 저녁 시간 내내 도란도란 옛이야기로 마음이 활짝 열렸다.
8) 학교가 파하면 개구장이 남자친구가 신작로에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서서 자기 다리사이로 기어서 지나가야 집으로 갈 수 있다고 어깃장을 놓아 학교 오기가 부담스러웠다는 말에 박장대소했다. 밤새는 줄 모르고 무르익은 대화로 많이 피곤할 터인데도 모두들 너무 좋은 시간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해주었다. 그 동안의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특히 여자 친구들은 식사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모처럼의 휴가라고 더욱 좋아했다.
9) 다음날,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늦게 찾은 우리의 여유 시간을 만끽하기 위해 주상절리를 구경하려고 읍천항으로 갔다. 해안에 조성된 파도 소리 데크 길이 아주 잘 정돈되어 동해의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국가 지질 공원 부채꼴 주상절리 대는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형태라고 한다. 위로 솟은 주상절리, 부채꼴 주상절리, 누워 있는 주상절리, 기울어진 주상절리 등 다양한 주상절리를 볼 수 있었다. 시공을 초월해 영겁의 세월을 견뎌온 주상절리는 우리 친구들의 삶과 닮아 있었다.
10) 내 친구들은 유복자가 많다. 김남조 시인 말씀으로는 인생은 한 번밖에 초대받을 수 없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6,25 때, 전사한 아버지로 인해 고생하고 자란 친구들이다. 그 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왠지 미안하고 가슴이 짠해 왔다. 70대 중반에서 돌아본 우리의 지난날은 미련과 한으로 점철된 날들이어서 남은 삶은 건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1) 차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읍천항으로 돌아가야 한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들은 무리하게 일을 해서 그런지 건강에 문제가 생긴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걷는 걸음걸이가 원활하지 못한 친구도 있었다. 친구는 몸이 아팠고 나는 마음이 아팠다. 모임에 참석해준 친구들에게 답례로 맛있는 칼국수 대접을 했다.
12) 우리가 어느새 건강을 걱정할 나이가 되어 아쉬운 작별에 잡은 손을 놓을 줄 몰랐다.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가슴에 시들지 않을 꽃을 피워 우리가 봄이 되고 봄이 우리가 되는 아름다운 1박2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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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행의 의미를 한 단락 넣어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정서를 경험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의 의미에 대해서요. 그런 게 들어가야 글이 깊어지면서 객관성도 획득하게 되는 거거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