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햄 샤크 모습을 보면 컴퓨터 디스플레이어가 대부분 있습니다.
이제 이 디스플레이어가 햄들에게도 필수품이 되었으므로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디스플레이어를 바꾸시거나 새로 마련하시는 분은 가급적 대화면과 해상도는 Full HD 급 이상으로 하시기를
권합니다.
시장에 LCD 디스플레이 제고가 많다하여 가격도 저렴 합니다.
HL2IR은 최근 28인치 삼성 디스플레이어를 17만원에 구입 하였습니다.
화면을 둘로 나눠서 한쪽에서는 FT-8 데이터 통신 교신 하면서 다른 한쪽에 QRZ.COM을 열어 상대방 정보를
본다든지 PSK Reporter 세계지도를 보면서 현제 송신하는 전파가 세계 전역에서 잘 수신되는지 확인하는 정보를
볼수 있습니다.
QRT후에는 유투브로 동영상을 보는데 칼라와 해상도가 너무 좋습니다.
1979년 미국에서 APPLE II Plus가 대 히트를 쳐서 퍼스널 컴퓨터를 전세계에 알릴 때 HL2IR은 SSB통신과
CW통신에 흥미가 적어지고 않 해보던 RTTY 테이터 통신이 해 보고 싶어 안달을 했습니다.
당시 신문사 외신부에 가보면 여러 대의 RTTY 텔레타이프가 덜거덕 덜거덕 소리를 내면서 AP, UPI, 로이터, AFP등 세계 각국의 통신사들로부터 세계뉴스를 수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추어 무선사가 사용하는 RTTY 장비도 같은 장비 이므로 가격이 어마 어마 하여 접근 할수 없는 기계
였습니다.
HL1BB등 선배 OM들이 고장난 군용품을 값 싸게 구하여 손봐서 RTTY를 운용한 적이 있다하고 연세대학교
정치외교 학과 교수 였던 HL1TN OM이 집안에 RTTY 기계를 들여놓고 Collins 51S-1으로 세계 뉴스를 수신하여 국제정치 연구를 하신다 하여 만나서 알아보니 값싸게 구할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었는데 그 가격도 지불할 능력이 않되어 속알이를 했습니다.
당시는 신문 검열이 심하여 국내 신문 외신기사만 가지고 정확한 세계뉴스를 알 수 없었던 시절 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당시 우리나라 전자 통신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OPC 연구실에 HAM이 여러명 있었는데 그들로부터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가지고 RTTY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국내에는 정보와 부품등이 전무하여 당시 교류하던 일본 HAM들로부터 자료를 수집하여 디지털 공부와 연구를 시작 했습니다.
무전기는 회로와 부품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데 디지털은 소프트웨어가 맞아야 동작하므로 난관 이었습니다.
어려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도 그것을 ROM이라는 기억소자에 집어 넣어야 하는데 이것은 별도 장비가 있어야 가능 했습니다.
OPC의 HAM들이 연구소 장비를 사용하여 해주었지만 글자를 입력하는 키보드와 글자를 CRT 디스플레이어에 보여주는 장치 모든 것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습니다.
그냥 부품과 부품, 기계와 기계를 연결하는 것이 아니고 인터페이스라 하는 소프트웨어가 함께 동작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일본 나고야에 있는 당시 오므론 전자회사 기술자 HAM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동경 아끼하바라에 애플 퍼스널 컴퓨터 해적판을 만들 수 있는 마더보드와 부품 일체가 있으니 그것을
사다가 컴퓨터를 먼저 만들고 RTTY 프로그래밍을 하면 문제가 해결 된다“ 는 것 이었습니다.
퍼스널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키보드를 가지고 있고 이것을 통해 입력을 하면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정보처리를 하고 결과를 디스플레이에 내보내게 되어 있으므로 텔레 타이프 라이터 기능을 완벽히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1982년 8월 27일 RTTY운용 허가를 받고 운용을 하게 되었습니다.
허가 신청을 한지 2년 만에 허가장을 받았고 한국 아마추어 무선 역사 에서 처음 허가해 주는 사건이므로
심사 기준이 없어 이것을 허가 당국과 함께 만드느라 오랜 시간 이 걸렸습니다.
HL2IR은 정식 허가국과 더불어 디지털 RTTY 국내 최초의 무선국이 되었습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사태 떄 RTTY를 완성하여 허가 전이므로 주로 수신만 하고 있었습니다.
HL1TN OM이 분양해준 Collins 51S-1이 있었으므로 외국 뉴스를 수신하여 보던 중 일본 교도 통신에서 광주 사태 뉴스가 자세히 나와 깜짝 놀랐습니다. 국내에는 바로 보도가 않 되고 후에도 자세한 보도가 없었습니다.
이후 애플 퍼스널 컴퓨터를 사용한 디지털 RTTY 무선국들이 여러 탄생 하여 HL1AV OM이 1998년 3월호 KARL지에 “어느 노병의 회상” 이라는 제목으로 아마추어 무선 역사를 말씀 하던중 “디지털 시대의 개막(1983년 - 현제)”
이라는 소제목으로 RTTY 스토리를 소개 합니다.
“83년 2월, Apple이 아닌 Kapple computer를 monitor, disk deive도 없는 본체에만 250K라는 거금을 투자해서
구입 했다. 잡지에서 본 RTTY를 하기 위하여서였다. 남들처럼 거창한 안테나, 최신장비 섭렵, 초DX등을 실현
하기에는 능력 부족이니 새로운 mode라도 시도해 보고 싶어 투자했다.
HL1BO 이 OM에게서 초보적인 RTTY 복조기, TU-1000의 프린트 기판과 software를 공급받아 제작에 들어갔다.
머리도 나쁘고 게을러서 공부를 안한 탓도 있겠지만 진공관 세대인 나는 반도체 전성시대인 신석기 시대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마땅한 측정기도 없이 책에서 읽은 약간의 지식과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모니터 화면에
완전한 문장이 되는 영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자작 리그는 준비 과정이 불편하고 완벽하지 못해 반도체로 만든 전용 RTTY 복조기를 HL9에 부탁하여
미국에서 구입하고 AFSK와 CW신호를 만드는 고급 기계식 키보드를 구입하여 Upgrade 시켰습니다.
여전히 CRT monitor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프로급 모니터는 공항에서 비행기 스케쥴을 보여주는 용도로 사용되고
구할수 있는 것은 OPC에서 만드는 CCTV용이 있었는데 글씨가 지렁이 가는것과 같이 꾸불 꾸불 보였습니다.
장사동에 있는 석영전자는 일본 아끼하바라에 있는 애플의 해적판 마더보드를 Copy하여 부품과 함께 키트형태로 팔아 대박이 났습니다.
마더 보드와 함께 파는 반도체 칩수가 많아 한 보따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운상가 3층 4층에는 키트를 가져다주면 땜질을 하여 테스트를 커쳐 마더보드가 동작되도록 해주는
업체도 생겨났습니다.
미국 오리지날 애플 컴퓨터는 값도 무지 비쌌지만($1,200) 수입도 불가 하여 삼보 컴퓨터라는 회사가 생겨
애플 퍼스널 컴퓨터를 Copy한 국산 퍼스널 컴퓨터를 보급 하기 시작 했습니다.
애플 퍼스널 컴퓨터는 학생들이 컴퓨터를 배우는 학습용과 그래픽 게임 프로그램 놀이용으로 인기가 높았지만
소프트 웨어 개발자들이 참여해서 회사 업무용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보급 함에 따라 상업 회사에도 대량
보급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오늘 마이크로 소프트 액셀 프로그램의 전신인 비지켈크 라는 표 계산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문서작성 프로그램 워드입니다.
이찬진 이라는 고등학생이 한글 문서작성 프로그램 아래 한글을 처음 만든 것도 이 때입니다. 후에 한글과 컴퓨터 회사를 세워 크게 성공 했습니다.
이 두 프로그램은 애플이후 오늘 까지 변하지 않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피치트리 라는 소프트웨어 회사는 회사용으로 사용 할 수 있는 본격 적인 판매관리 프로그램, 재고관리 프로그램, 인사관리 프로그램, 복식 장부 작성으로 총 계정 원장 및 재무제표 작성 등을 애플 컴퓨터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시장에 발매 하였습니다.
자료 처리량과 규모에는 제한이 있었지만 수십만 달라의 메인 프레임 컴퓨터에서만 할 수 있던 일을 퍼스널 컴퓨터에서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가히 혁명적인 일 이었습니다.
사무실에는 반듯이 타이피스트 라는 직업이 있어서 그중 가장 어려운 작업이 회사의 제무 제표를 줄 맞추고
이쁘게 모든 계산이 맞게 작성하는 일이 였는데 이 일을 비지켈크를 사용하면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프로그램은 후에 타이피스트라는 직업이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삼보 컴퓨터가 국내에서 개인과 회사에 퍼스널 컴퓨터를 대량 보급함에 따라 컴퓨터 모니터도 제대로 된 것이 나타 났고 그회사는 삼우사입니다.
삼보 컴퓨터는 삼우사 모니터를 함께 판매 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시는 애플 컴퓨터위에 놓인 모니터가 삼우사 모니터 이고 삼우사로부터 기증 받은 것입니다.
삼우사가 모니터를 개발 할 때 품질 측정 프로그램에 HL1TN OM과 함께 참여 하였기 때문입니다.
삼우사는 세월호 사건을 일으킨 유병현씨가 만든 회사인데 어쩌다가 선박 운송업을 하다 그지경이 되었는지
씁슬 합니다.
전자 계통 사업으로 계속 갔으면 좋았을 뻔 했습니다.
나라도 더 좋게 만들고......
끝으로 오늘날도 충성 고객이 많은 애플회사의 로고에 대한 말씀을 드립니다.
1976년 회사설립 시에 로고는 사과나무아래 뉴턴이 책을 읽고 있는 그림 이었습니다.
1977년 애플 컴퓨터가 처음 탄생 할 때의 로고는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한입 베어 문 사과를 무지개 색으로
그린 것입니다. 무지개 색은 후에 검은 색으로 바뀌었습니다.
애플 회사를 세운 스티브 잡스는 과일 다이어트를 하고 사과를 좋아 했다 합니다.
그러나 이 로고에 대한 다른 스토리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난공불락의 독일 암호기 에니그마의 암호를 해독하여 종전을 2년이나 앞당기고 그로인해
그가 구한 생명은 1400만 명에 달한다는 당대의 천재 수학자 영국의 앨런 튜링에 관한 스토리입니다.
그는 전후에 컴퓨터 공학으로 인공지능의 초석을 놓은 인물로 평가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1951년 동성애를 했다는 이유로 화학적 거세를 받은 2년 후 자살을 했는데 그 옆에 한입 베어 문
사과가 떨어져 있었고 그 속에서 청산가리가 발견 되었다 합니다.
애플의 로고가 여기서 영감을 얻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애플은 공식적으로 이를 부인 했습니다.
미국 속담 :“an apple a day keeps the doctor away.”(하루에 사과 1개 먹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
첫댓글 한편의 드라마.. 장편의 역사 책을 읽은듯합니다. 8bit 짝퉁 Apple PC이야기가 나올 때엔 다시 그 옛날로 돌아 간 듯.. 고 이해수(ex/HL1BO) om이 눈에 선하게 다가 오기도 합니다. 모니터가 없어 TV로 모니터를 대신하기도 했던 그날이... 저 FY는 큰 것을 구입하지 않고 굴러다니는 모니터 2대를 Dual로 연결해서 한쪽에는 LOG4OM을 작동시키고 다른 한쪽은 WSJTx와 JTAlert를 작동합니다만... 이놈들이 서로 연계해서 동작하는 것을 보면 참 신통하기도 합니다. log4om은 log를 자동으로 입력해 주고 JTAert는 많은 무선국을 선별하여 과거 교신한 국인가? 아닌가를 구분해 줄 뿐 아니라 동 앱이 설정된 국과는 문자로도 인사를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사진 참조 -오른쪽이 짤렸군요 ㅋㅋ)
디스플레이가 좋으면 눈이 즐겁고 오디오 플레이어가 좋으면 귀가 즐겁 습니다. 좋은 음식은 입을 즐겁게 하지요.
좋은 디스플레이를 마련 하시여 눈을 즐겁게 하소서.
그렇군요... 맞는 말씀•~!
IR 김오엠님이 최초로 RTTY 정식 개국한 것으로 기록 된것을 KARL 지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저도 81년 즈음 청계천 에서 조립한 APPLE 컴퓨터에 HM1AV로 부터 받은기판으로 RTTY 터미날 유니트를 사진과 같이 만들어
외국 통신사의 소식을 프린트 하여 회사 동료들에게 보여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영업용과 아마추어는 SHIFT 주파수가 달라 운영 하는 스위치 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TRX 자체에서 DECODING 하는 것을 보면 세월의 변화를 느낍니다.
73년경 HM1BB 가 운영하던 기계식 텔레 타이프는 직장 생활 시작할때 텔렉스 실에서 본것과 같은 유형 이었구요.
그후 KANTRONICS 가 만든 KAM PLUS에 DOS PROGRAM의 PACTERM이라는 SOFT를 사용하여 RY를 운용하다 안테나 설치 문제로 잠시 휴지신고하고 2000년 들어 백수가 되어 다시 해보려니 프로그램을 돌릴수도 없고하여 HAMDELUXE를 사용했는데
요즘 다시 그 프로그램을 사용 하려니 유료로 전환되어 그냥 TRX 에서 남들 교신하는것을 그냥 보고만 있습니다.
요즘은 FY 황오엠님이 말씀 하시는 "아프다 팔" 같은 새로운 방식은 시도도 못하고 그저 그런게 있구나 하고만 있습니다.
아프다 팔(FT8) mode는 차라리 어려진 않아요.. 우연치 않게 저 FY도 접하게 되었지만 . 요즈음 알리(중국)사이트에서 각종(Icom. Yaesu. Kenwood..) 인터페이스를 저렴하게 구입 할 수 있으니 용기를 내 보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