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歲暮)의 정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산 너머로 떨어지는 붉은 낙조가 하늘을 물들이는 순간, 마음속에 오래 묵은 고독이 조용히 깃든다. 사람들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어도 생각은 자꾸만 지난날로 흘러가고, 세월이 앗아간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안쓰러움이 번갈아 가슴을 스친다.
언제나 겨울은 유난히 온정이 그리운 계절이다. 무엇보다 군불로 달군 시골 사랑방에 빙 둘러앉아 군고구마를 나누던 그 시절의 따스함이, 친구들의 환한 얼굴과 함께 달덩이처럼 떠올라 나를 감싼다.
성탄절과 연말이 다가오면 대개 가난한 이웃에 대한 인정을 베푼다. 문득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서 주인공인 구두쇠 「스크루지」가 개과천선(改過遷善)하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비록 서양의 이야기지만, 그가 인색함을 털어내고 따뜻한 인정을 베푸는 모습은 인간이 가진 가능성과 회심(回心)의 희망을 보여 주었다.
그 이야기처럼 우리도 해가 바뀌는 이 순간 마음 한구석에는 주변을 들여다보며 가난한 이웃에게 조그만 자선을 베푼다.
그러나 세모(歲暮)의 풍경 속에서 가장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은 역시 부모님의 얼굴이다. 살아계실 때에는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전화 한 통으로 안부를 대신하던 일이 이제는 씁쓸한 후회로 남는다.
보통 우리들 부모님 대부분은 자식에게 조금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삶의 마지막까지 애쓰셨다. 그 숨은 뜻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충분히 보살피지 못했던 죄책감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순간, 어찌하여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자책을 하게 된다.
얼마 전 함께 근무했던 회사의 임원들과 점심을 했다. 그 중 한 사람은 지난 초여름 어머니를 떠나보낸 아픔이 남아 있었다. 무슨 병으로 타계했는지 묻게 되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충격 그 자체였다.
평소 건강하시던 분이 폐암 판정을 받고 고통이 시작되자, 가족들이 모인 틈을 타서 홀로 농약을 음독하여 생을 마감하신 것이다. 자존심이 강하신 그의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입버릇처럼 연명치료나 요양원 입소를 거부하시고 평생 농토를 지켜온 고향집에서 머물기를 소망하셨다고 하였다.
그 전날 막내가 쓰던 책상을 정성스럽게 닦아내며 먼 하늘을 바라보시다가 한 줄기 눈물을 보였다는 이야기가 깊게 여운으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육친에게 남긴 애절한 사랑의 몸짓이었을 것이다.
이런 사연은 결코 남의 일만이 아니다. 나 또한 비슷한 상실을 겪었다. 오랫동안 병상에 계시면서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자식들의 근심을 먼저 걱정하시던 어머니,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몇 달 후 홀연히 떠나 어머니의 곁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나가신 빈자리를 마주할 때마다 부모라는 존재가 얼마나 조용히, 그러나 깊게 자식을 사랑해 왔는지 새삼 깨닫는다.
장모님 역시 평생 고생 끝에 자식들을 일으켜 세우셨지만, 세월 앞에서 점점 기력이 쇠잔해지시며 요양병원에 계신다. 하나 뿐인 딸이 집에 모시려 해도 “폐만 끼친다.”며 한사코 사양하시고, 몇 년째 주말에야 얼굴을 뵙는다.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아내의 시름도 깊어간다. 부모라는 이름은 어디까지나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깊은 속마음을 품고 사는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제 핵가족 시대가 되면서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는 완전히 무너졌다. 부모 세대는 외로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자식들은 생계를 위해 일터에 매여 시간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손자들은 학교와 학원에 쫓기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조차 대화는 점점 사라져 간다. 정작 가장 큰 온정과 위로를 나누어야 할 사람들이 서로 바빠 스쳐 지나가며, 부모와 자식 사이의 간절한 시름은 시대의 속도만큼 깊어져 간다.
한편, 효도를 한다고 시골에서 동네 벗들과 어울려 지내는 부모님을 도시로 모시는 것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고향에 머물며 이따금 찾아오는 자식들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세모의 저녁, 붉게 기울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깨닫게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사랑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흐르는 그 조용한 숨결이라는 것을. 노년의 고독 속에서도 자식 걱정을 놓지 않고, 떠나기 직전까지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자식들은 그 사랑을 너무 늦게 이해하고 돌아와 눈물로 회한을 삼킨다.
고독한 노인의 행복은 무엇보다도 가족의 따뜻한 품을 찾아주는 일이다. 동시에 인구절벽으로 인한 가족의 붕괴에도 서둘러 대비할 필요가 있다.
문득 우리 어머니 세대에서 즐겨 시청하시던 「이미자」의 『아씨』라는 주제곡이 고향 마을의 풍광과 함께 모정의 세월을 떠올린다.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말 탄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 여기던가 저기던가 복사꽃 곱게 피어있던 길 /한 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엔 노을이 섧구나.”
낙조가 사라진 자리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그럼에도 부모가 남긴 온기는 꺼지지 않는 작은 등불처럼 가슴 한쪽에서 빛나며 우리를 지탱한다.
세모의 정은 어쩌면 이 등불을 다시 어루만지고, 그 따뜻함을 언젠가 누군가에게 건네줄 차례임을 조용히 일러주는 계절인지도 모른다.
(2025.12.12.작성/12.31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