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에 문제가 생기면 단골처럼 등장하는 일이 청정승가 회복, 승풍진작 등의 용어다. 그러나 그동안 청정승가와 바람직한 승풍을 상징하는 인물이나 이미지는 제시해준 바가 없었다. 이런 현실은 필요할 때마다 나오는 구호들이 늘 일회적으로 끝나는 원인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승가의 상은 어떤 것일까. 오대산 월정사가 한암 스님을 모든 승가가 본받아야 할 가장 이상적인 본보기이자 대상으로 제시하는 세미나를 마련한다.
오대산 상원사에서 좌탈입망으로 열반에 드신 한암 대종사.
경허스님으로부터 전법을 받아 20대에 최고의 선지식의 반열에 올랐고, 특히 계행이 철저해 모두가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며, 교학에도 정통해 선교율을 두루 겸비한 가장 이상적인 스님상으로 한암 대선사에 견줄 분은 없다는 것이다.
월정사가 마련한 이번 세미나는 ‘경허 선사와 한암 선사’를 대주제로 열리는 제4회 한암사상연구원 학술회의다. 세미나는 오는 6월 15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이번 세미나는 선불교 중흥조 경허 스님과 조계종 초대 종정을 역임하고 경허의 선풍을 이은 한암 스님을 조명하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한암 스님이 저술한 <경허집>과 만해 스님이 저술한 <경허집>에 대한 학술적 비교분석이 처음 시도된다는 점이다. 또한 경허 스님과 법제자 한암 스님의 선사상과 사자(師資)관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근대 한국 선불교에서 경허 스님과 그의 제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조계종단의 양대 문중으로 일컬어지는 덕숭문중이 바로 경허 스님의 선맥을 잇고 있다. 경허 스님에게는 혜월, 만공, 치문, 한암 등 법제자가 있었다. 특히 한암은 경허 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지음(知音)’ 또는 ‘지음자(知音者)’라고 불린 적통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허는 1903년 하안거 당시 해인사 선방에서 한암 스님에게 인가했고 삼수갑산으로 떠나면서 한암을 향해 동행을 권했다.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진실로 내 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아, 원개사(遠開士, 한암 중원)가 아니면 내 누구와 더불어 지음(知音)이 되리오(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 吁. 微遠開士, 吾孰與爲知)”라는 전별시는 이 때 나온 것이다.
오도 후 걸림 없는 무애행을 보였던 경허 스님과 달리 법제자 한암 스님은 계율과 교학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선과 교와 계율을 두루 아우르는 가장 이상적인 승가의 입장을 견지했다. 한암은 자신이 쓴 <경허집>에서 스승인 경허 스님의 무애행을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총 4편의 논문이 발표된다.
변희욱(서울대 철학, 간화선 전공) 박사는 ‘한암의 격외관문(格外關門)과 간화(看話)’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경허, 한암 스님 각각의 선사상 특성과 관련성 등을 살핀다.
이상하 민족문화추진회 교학처장은 ‘경허집 편찬, 간행의 경위와 변모 양상’에 대해 발표한다. 한암 스님의 친필본 <경허집>(1931년)과 1943년 선학원판 <경허집>, 1980년대 간행된 번역본 등의 차이점과 변모 양상에 대해 조명한다.
김광식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한암과 만공’ 논문을 통해 경허 스님의 두 법제자 만공 스님과 한암 스님의 차이와 비교 등을 발표한다.
한암스님의 문도이기도 한 윤창화 민족사 대표는 ‘경허의 지음자(知音者) 한암’이라는 제목의 주제발표에서 경허 스님이 한암 스님을 지음자로 칭한 배경과 이유 등을 고찰한다.
논평자로는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와 전보삼 신구대학 교수, 동국대 외래강사 자현 스님(월정사 교무국장) 등이 나선다. 토론의 형식은 논평자와 발표자, 청중이 함께 자유토론 형식으로 벌일 예정이다.
월정사 부주지 원행 스님은 이번 세미나와 관련 “한암 대선사의 삶은 그 자체가 수행이자 정진이었으며, 대선사의 참면목은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가사장삼 한 벌, 발우 하나로 오직 정진과 수행, 교학과 지계행을 견지해온 것”이라며 “이번 세미나를 통해 한암 대선사께서 보여주신 삶과 수행의 모습이 모든 승가의 규범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월정사 교무 자현 스님도 “경허 스님은 한 시대의 큰 획을 그은 선지식으로 그 자취가 너무도 크지만, 한암 스님은 경허 스님과는 달리 계율정신까지 고양했던 분”이라며 “부처님도 두타행을 인정했지만 그것을 장려하지는 않은 것처럼 한암의 승풍이 오늘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스님상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