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그리고 어렵고 힘들었던 시대에는 배는 고팠고 몸도 고달팠지만 최소한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살아가지는 않았다.
몸이 힘들었지만 정신이 힘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정 반대이다... 몸은 한없이 편해졌지만 정신은 제 정신 가지고 살기가 너무나 힘이 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급격한 변화...이제는 그것을 넘어서 급격한 변혁의 시대에 ... 대체 어디서 돌이 날라와 내 머리를 깨고 언제 망하게 될 지 하루하루를 떨면서 버텨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해고통보도 이메일로 하는 시대... 옆집에 우후죽순 생겨나는 나의 경쟁가게들... 무엇하나 예측하기가 불가능하고 설사 예측한 들 대비할 수 조차 없다.
예전에는 다 같이 못살았지만 지금은 다 같이 못사는 시대가 아니기에 끊임없이 주위사람과 나를 비교하면서 '자책감'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잘 될 때면 '자만감'에 그리고 안 될 때면 '자책감'에 허우적대며 살아간다. 둘 다 정상은 아닌 것이다.
현재 그리고 앞으로는 더더욱 그러하겠지만... 대체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고... 무엇을 어떻게 노력해야 할 지 더더욱이 알 수
가 없게 된 세상이기에 우리는 더더욱 공황상태에 빠질 수 밖에 없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앞이 깜깜해져 버린것이다.
옛날조상들은 배고팠지만 최소한 나 때문이야 하면서 자책감에 시달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배고프진 않지만 정신줄
잡고 살아가기가 너무나 힘이 든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유독 예전 세대 보다 남탓을 더 많이 하게 된 이유는 '자책감'(자학)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 든다. 우린 어차피 스스로를 책임질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즉 내 힘과 내 노력 내 지혜 만으로는 이 세상에서 나를 지켜낼
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남탓을 할 것은 더더욱이 해결책이 못된다.
'자책감'은 내가 나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책망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 그래서 내가 책망하는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갈 곳도 없고 도망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 그래서 힘이 든 것이다. 자책감은 자는 시간 빼고 밥 먹을 때나 어디를 갈 때나 무엇을 생각할 때나 끊임없이 나를 괴롭게 한다. 그리고 이것이 계속되면 우리는 생각한다. 나를 책망하는 나로부터 도망갈 방법은 삶을 포기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책감'으로부터 벗어날 길은 단 한가지 뿐이다. 내게는 해결책이 없음을 고백하고 나의 삶의 주관을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그분께서 나 대신 가야할 길을 계획하게 하시고 나의 진로를 결정하게 하시고 내가 그 진로를 성공적으로 걸어갈 수 있게끔 내 길을 평탄케 하기를 기도드리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주님께 매달리고 나 대신 내 삶을 책임져달라고 매달리며 애원하는 것
뿐이다!
주님께로 도망치는 것 그리고 주님께 나대신 책임져달라고 매달리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며 이 방법 외에 '자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I can do it ! 이라는 허황된 믿음으로 살아갔다면 앞으로는 I can't do anything , but God can do anything! 의 전혀다른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