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어머니
류현주
파란시선 0176∣2026년 3월 20일 발간∣정가 12,000원∣B6(128×208㎜)∣125쪽
ISBN 979-11-94799-28-3 03810∣(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신간 소개]
한 시인이 일곱 권의 시집을 내고 가는 동안 저 강물은 오직 하나의 글자에만 매달려 있다
[설탕 어머니]는 류현주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으로, 「눈사람」 「一 획」 「내 명의의 집」 등 60편이 실려 있다.
류현주 시인은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2024년 [서정시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설탕 어머니]를 썼다.
“살아서 죽을 유언장을” 쓰며 “모래 먼지 속”을 내내 걷는 여자(「화성에서 사는 여자」). 늘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끙끙 앓으며 기어이 살아 내고 마는 여자. 금성에서 왔지만 화성에서 살아가는 외계인 같은 여자. 그럼에도 화성에 적응하며 마침내 살아 내는 여자. 류현주의 시적 주체는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시인의 아픈 운명을 환기한다.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아프게 하고 외롭게 하는 것일까? 죽음이라는 사건이 깊이 드리워진 가족사,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가부장제라는 족쇄, 이 땅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살아가야 하는 운명의 고단함에서 우선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자연과 멀어진 도시 문명의 삶의 생태 또한 그녀가 체감하는 고독과 상처의 원천을 이룬다. 자연과 가까이하며 더불어 살아가고 싶었지만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어 뿌리 뽑힌 부박한 삶은 그녀에게 깊은 고독과 허무를 남겨 주었다. 류현주의 시는 뿌리 뽑힌 자의 몸부림이자 절규이다. 뿌리 뽑혔지만 죽을 수도 없는 처지에서 기어코 살아 내야 하는 시적 주체의 고군분투가 류현주 시의 원동력이 된다.
류현주의 시에 따르면 “한여름 갑작스레 시려 오는 발은/땅에서 뿌리 뽑힌 기억 때문이다”(「발」). 자연과 더불어 낭만적으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그것은 오직 꿈속에서만 가능했다. 뿌리 뽑힌 현대인의 자의식은 시림의 감각으로 류현주의 시에 고독을 아로새긴다. 죽음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 환상을 통해 마련되었을 것이고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시였을 것이다.
류현주는 소리에 예민한 시인이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뿐 아니라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도 예민하게 귀 기울일 줄 안다. “아주 먼 기억 속에 슬피 우는/막내딸의 울음소리 하나가” 아버지의 “노쇠한 몸을 일으”켰듯이(「고생대의 무덤처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람을 살리는 시를 쓰고 싶어 하는 것이겠다. “우리 동네 어두운 골목길”에서 “누군가 술 취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는 외침에 시인이 귀 기울이는 까닭도 “온밤을 흔들어 보는” “간절한” 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끝내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외침”의 간절함을 기억하며 류현주는 상실을 견디는 시인의 운명을 걸어가고자 한다.(「외치는 사람」) 이것이 류현주의 시가 상실한 대상을 애도하는 방식이다. (이상 이경수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추천사]
류현주의 시에서 존재는 부재로 자신을 입증한다. 죽은 아버지와 오빠와 엄마가 그렇고, 책을 읽다가 사라진 어린 딸이 그렇다. 딸은 책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딸과 이별하기」), 언니의 화장대 유리 밑 사진 속에서 형부는 여전히 감나무 가지에 올라가 감을 딴다(「빈 자루」). 지하철 교량 구간에서는 읽고 있던 루신의 소설 주인공 아Q가 화자의 시선을 타고 한강 물로 뛰어내려 버린다(「한 페이지」). 류현주의 시집에서 생이란 이렇게 각각의 계기로 저마다의 시간을 향해 흘러가는 멀티버스의 중첩과 같다. 무관한 듯 존재하지만, 사실의 경계를 가뿐하게 넘나든다. 자신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전화기 속 한번 다녀가겠다는 딸의 안부 문자가 그렇게 몸 없이 다녀가는가 하면(「문자의 얼굴들」) 눈밭에서 뒹굴다 젖은 털장화를 신고 실내에 들어온 화자를 남편과 딸아이는 알아보지 못한다(「털장화」). 없어도 있고, 있어도 없다. 실제로 없는 누군가를 밤새워 목 놓아 외치는 취객이 있는가 하면(「외치는 사람」) 외출 중에 화자의 머리가 사라지기도 한다(「얼굴 부처」). 이러한 결여와 어긋남은 화자와 세계의 비대칭을 보여 주지만, 또한 그 정념을 넘어 사물의 배후까지 투시하려는 아이러니의 시선을 느끼게 한다. 눈사람의 고달픈 전생을 읽는 화자의 시선에 웃음으로 화답하는 눈사람을 보라(「눈사람」). 얼마나 깊은가. 타자의 시선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이 깊다.
―이현승 시인
[시인의 말]
늦잠 자는 여자를 지나쳐 가는 여자가
기타를 꺼내 들고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버터와 커피와 빵 앞에서 구부정하던 여자가
새로운 그녀를 보고 있다
비스듬히 벽에 기대 책을 거꾸로 넘기는 여자가
외출을 서두른다
루주 바른 여자들이 한꺼번에 현관 앞에 선다
한 켤레의 초록 구두 속에 휘청이는 여자들이
골목길을 빠져나가자 사방으로 튕겨 나간다
[저자 소개]
류현주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2024년 [서정시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설탕 어머니]를 썼다.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눈사람 – 11
一 획 – 12
낡은 신발을 끌고 간다 – 14
그림자 옮기기 – 16
내 명의의 집 – 17
벼랑을 끼고 – 18
봄을 실어 나르는 버스 – 20
달팽이 – 22
검은 대낮 – 24
사라진 자전거길 – 25
목도장 – 26
필담 – 27
노스님의 면벽 – 28
물 도화지 – 29
산 – 30
제2부
발 – 33
도돌이표 – 34
감은사로 간 시인 – 36
눈물 저장법 – 38
설탕 어머니 – 40
남편 고르기 – 42
변형되는 하루 – 44
가난한 외출 – 46
수상한 짐승 – 48
뜨거운 나뭇잎 – 50
리필 – 51
두 개의 명함 – 52
모래 시간 – 53
선물 – 54
나무의 언어 – 55
제3부
붉은 리코더 – 59
잇몸 – 60
고생대의 무덤처럼 – 62
꿈꾸는 날 – 64
바람의 안부 – 65
기울어진 그릇 – 66
딸과 이별하기 – 67
무기 개발 – 68
남해를 지나며 – 70
빈 자루 – 72
문자의 얼굴들 – 74
어제가 일직선상에 서다 – 75
털 장화 – 76
한 짝 – 77
달빛 그리고 화병 – 78
제4부
나를 앞서가는 그림자 – 81
털 스웨터 – 82
십자수 – 83
한 페이지 – 84
슬픈 주먹 – 86
표정을 잘 좀 입력해 주세요 – 87
커다란 짐승 – 88
약화(略畵) – 90
외치는 사람 – 92
야크를 몰던 사람 – 94
선유도에서 – 96
벽돌꽃 – 98
박자를 가지고 온 사람 – 100
얼굴 부처 – 102
화성에서 사는 여자 – 103
해설 이경수 상실을 견디는 시인의 운명 – 104
[시집 속의 시 세 편]
눈사람
눈 내리는 밤 공원에
누군가 만들어 놓고 간 눈사람
전생에 한 번쯤은 사람이었던 걸까
심하게 부려먹은 손이 없네
전생에 한번은 떠돌이였던 게지
종일 걸어왔을 두 다리도 없네
볼을 한 번 꼬집으니 살점이 부서져 내려도
서 있기만 하는 눈사람
너무 많은 말을 해 버린 걸까
너무 많은 것을 알아 버린 걸까
아프다 할 눈 코 귀 입 하나도 없네
보고 들어야 할 세상이 모두 절벽인 사람
그리하여 온몸이 눈물로 가득 채워진 사람
누더기 이파리를 뜯어 눈을 하나 만들어 주네
잘못 든 길 돌아가려다 한밤을 서성이는
날 알아보고 웃고 있네 ■
一 획
한 시인이 일곱 권의 시집을 내고 가는 동안
유명 소설가가 열 권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동안
저 강물은 오직 하나의 글자에만 매달려 있다
사람의 영혼을 매단 글자들
수억만 장의 종이 위로 구물구물 살아갈 수는 있지만
백 년이 다해 한 장의 종이로 바스러지기도 하는 일
고단한 그들 사이에서도 강물이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것은
한 획으로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렸기 때문
쓰고 지운 흔적들은 길게 늘어나 있다
오랜 뒤척임으로
손의 힘이 빠지기도 하여
위로 혹은 아래로 구부러져 있다
긴장된 떨림이 잠시 서린 곳
옹이가 박혔을 자리마다 제 몸을 때리며
세차게 흘러간다
한 획이 깊어지는 일은 고독한 일
안개가 산등성이로 올라가는 정오 무렵이면
발아래 북녘이 내려다보이는 강가로 가
깊어진 한강을 유심히 내려다보는 사람들
강이 쥐고 있는 손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힘을 주고 있는 것이다 ■
내 명의의 집
이십 년 동안 부은 적금으로
하늘의 구름집을 샀다
앉으면 깊어지고 누우면 늘어난다
다섯 시간을 달려야
모서리에 닿는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든다
지상에는 내릴 수 없는
독수리 날개 무늬 탁자와
은하수가 움직이며 떠가는 책장의 요술 문
무지개가 종일 피어오르는 커피잔
이곳에 나무를 심어
뿌리를 단단히 내려야겠어
울타리를 쳐서 튼튼하게 막아 둬야 해
지나가는 또 한 무더기의
구름 떼를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