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살기 시작한 지 언 1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제주로 넘어와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있다.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주와 사랑에 빠졌고
3개월의 시간을 넘어 1년 아니 2년 혹은 평생을
제주와 함께 하고자 한다.
나는 현재 제주에서 미래를 그리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온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그 사이의 가을. 마지막 가을날 걸었던 이날의 기억을 추억하고자 한다. 내가 좋아하는, 또 사랑하는 계절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가 태어난 봄의 이야기와 늘 좋은 기억만 있던 가을날의 이야기가 이제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어쩌면,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만나지 못할 그런 계절이 될까 두렵기도 한 2021년의 이날의, 이 계절의 마지막 올레길에서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올레 18코스
제주원도심 - 조천올레
제주시의 도심 한복판, 간세라운지부터 시작 되는 올레 18코스. 제주항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제주 시내권을 빛내는 사랑스러운 두 오름, 사라봉과 별도봉이 아름다운 전망을 선사해준다. 또, 그 길을 지나면 4.3 사건 당시, 마을 전체가 불타 없어져 흔적만 남은 곤을동 마을 터와 신촌 옛길을 만나게 된다. 또, 신촌 옛길을 지나면 18코스의 절정, 세비코지에서 닭머루로 이어지는 바당길에서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올레 18코스 주요 여행지
동문시장 - 사라봉 - 별도봉 산책길 - 삼양해수욕장 - 닭머르해안
올레 18코스 시작에 위치한 동문시장
동문시장
어쩌면 워낙 유명해 소개할 필요가 없을 동문시장, 밤이면 야시장이 열리고, 싱싱한 해산물과 제주에서 유명한 딱새우회를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 또, 유명한 시장답게 안에는 맛집들과 여러 농수산물을 판매하는 여러 가게들이 즐비한다. 나 또한, 이번 올레길을 거닐며 동문시장에 들러 본가에 황금향을 보내기도 했다.
사봉낙조가 아름다운 사라봉의 일몰처럼, 대낮의 사라봉도 아름답다.
사라봉
사라봉은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라고도 말한다. 필자가 쓴 다른 글에도 언급한 곳이 사라봉이니까. 고운 비단을 뜻하는 사라봉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열 곳을 선정한 영주십경 중 사봉낙조에 해당하는 오름이기도 하다. 사봉낙조는 사라봉에서 지는 붉은 노을을 의미하며, 사라봉 정상에 올라 노을로 붉게 물든 바다를 보면 황홀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파란 바다 아래로 유영하는 선박들의 모습과 하늘 위로 날아다니는 항공기의 모습이 멋을 더하는 사라봉은 공항 근처, 가장 아름다운 오름이라 해도 될 것이다.
사실 나 또한, 사라봉은 일몰을 보기 위해 찾는 오름이었다. 그 이유 또한 명확했다. 그 시간의 사라봉은 그 어떤 곳보다 아름다웠으니까. 그래서일까. 낮의 사라봉은 그리 궁금치 않았다. 그래서 내게 사라봉은 반쪽 자리 경험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 올레길을 거닐며 사라봉의 완전한 모습을 느끼게 되었다. 윤슬이 반짝이는 사라봉의 모습은 올레 18코스를 빛내기에 충분한 여행지였다.
별도봉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 위치한 측화산으로 서쪽 사라봉과 더불어 제주 시내에 있는 대표적 오름이다. 정상 봉우리에서 북측 사면의 등성이가 바다 쪽으로 뻗은 벼랑을 '자살바위'라 말하는 이곳엔 고래굴과 애기업은돌이라 불리는 기암을 품고 있다.
사라봉을 시작으로 별도봉으로 이어지는 구간의 능선은 제주에서는 보기 힘든 아름다운 뷰를 가지고 있다. 마치 동해의 절벽을 보는 듯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 오히려 더 특별하다. 어쩌면 올레 18코스를 걷지 않으면 만나기 어려운 뷰를 볼 수 있는 별도봉. 올레 18코스를 빛낼 아름다운 장소였다.
삼양해수욕장
삼양해수욕장은 제주의 다른 해수욕장보단 조금은 소박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만큼 물이 깨끗하고 반짝거리는 검은 모래가 특색 있다. 제주공항에서 약 10km 떨어진 삼양 2동 해안에 위치한 이곳은 내륙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해안지형을 따라 검은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 모래는 신경통과 비만에 좋다 알려져, 매년 여름마다 뜨거운 모래를 덮고 찜질하는 관광객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제주의 검은 백조라 부르고 싶은 삼양해수욕장은 보통 생각하는 황금빛 모래사장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블랙스완이라 부르는 한 마리의 검은 백조 '삼양해수욕장' 우리는 늘 모래사장을 황금색으로, 또 하얀 백사장으로 그리지만, 삼양해수욕장은 그 보통의 해수욕장에선 조금 벗어나 어두운 모래를 보여주어, 여행자에게 더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닭머르해안길
북제주군 조천읍 신촌리 아주 작은 바닷가 마을에 사랑스러운 해안 길이 있다. 생명력 가득한 남생이못을 지나 바다 쪽으로 난 터에 다가서면 맞은편 뾰족뾰족한 검은 바위들이 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 마치 닭이 흙을 파헤치고 그 안에 들어앉은 것처럼 보이는데 이를 '닭머르'라 부르기로 했다. 닭머르 부근은 무엇보다 기암괴석이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날카롭고 선명한 기암들의 모습을 보면 왜인지 누군가 조각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
이런 닭머르해안길은 가을날 여행하기 좋은 여행지다. 제주 동쪽 바다 위에 거의 유일하게 억새로 유명한 여행지가 이곳이기 때문이다. 해가 지는 낙조와 함께 억새를 바라보면 하루를 아름답게, 또 완벽하게 마무리 했다 말할 수 있다.
가을날의 마지막 올레 18코스로 마무리했다. 이제는 겨울날의 이야기로 가득할 제주 이야기. 올레길을 걷는 것은 멈춤 없이 계속될 것이다. 물론 가을을 보내고 겨울날의 이야기로 채워지겠지만 말이다. 짧지만, 강렬했던 21년의 가을. 나는 이 가을을 벗 삼아 제주의 겨울을 즐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