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의 초등학교 입학
봄이 오는 길목 삼월의 첫 월요일(3월 3일) 유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향해 꿈과 희망의 날개를 한껏 펼치고 비상(飛翔)을 시작했다. 태어나 여태까지 가정이라는 온실 속의 작은 둥지를 세상의 전부로 알아왔던 아이가 끝없이 넓고 높은 새로운 세상을 학교라는 무궁무진한 배움의 터전을 통해 단계적으로 깨우쳐 갈 것이다.
친구를 사귀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소용되는 알토란같은 지식이나 도리를 배우고 익히면서 하늘의 섭리나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며 공존과 상생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교육의 장이다. 입학하는 모든 어린이는 아직 가다듬거나 정제되지 않았을지라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원석 같은 존재이기에 학교라는 용광로를 통해서 바르고 씩씩하며 슬기로운 천사로 다시 태어나 저마다의 아우라가 뚜렷한 내일의 주인공으로 무럭무럭 성장해 나갈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와 동거하기 시작한 게 불과 얼마 전 같은데 어느 결에 여덟 살에 이르러 초등학생이라니 신기하고 감사하다.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다가 어린이집을 거쳐서 유치원에 보냈던 지난 몇 해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회상되었다. 그런 지난날은 오늘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는 멋진 환희를 맛보기 위해 불가피한 과정이었을까. 미답의 세상을 접하는 아이의 해맑은 민낯에 마냥 행복한 미소가 활짝 피어났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은 애나 어른 다를 바 없나 보다. 유치원과 전혀 다른 학교 환경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막연한 불안감은 말끔히 씻어 줄 요량에서 입학 이전에 두세 번 학교에 데리고 가서 이것저것 구경시키며 나름대로 설명해 주었었다. 학교에 관심이 없는 듯 딴청을 부리다가도 이따금 학교에 대해 궁금한 문제는 어렵게 에둘러 물어대며 의문이나 불안을 해소하려 애쓰는 모습이 왠지 더욱 정겨웠다.
초등학교임에도 자질구레한 준비물에 다소 신경이 쓰였다. 우선 가방과 보조가방은 지난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가 선물한 것으로 가름키로 했다. 그리고 책상과 책장은 지난주에 구입했다. 평생을 책상 앞에 머물던 내 책상보다도 훨씬 멋있고 고급스럽다. 한편, 지난 금요일 문방구에 가서 종류별로 필요한 노트를 골고루 장만했다. 그 외에 필통을 비롯한 색연필이나 크레파스는 유치원 친구들 생일에 선물 받아 가득 쟁여져 있는 것을 그냥 쓰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입학 전날 제 할머니와 백화점에 가서 운동화 두 켤레와 실내화를 사는 것으로 준비의 대미를 마무리 했다.
손주가 입학하는 학교는 아주 오래전 마산국군통합병원이 자리했던 곳이 대단위 아파트 단지로 바뀌면서 개교(마산신월초등학교 : 1998년 개교)하여 역사가 일천한 신흥 학교이다. 하지만 등하굣길에 위험이 전혀 없는 조용한 배움터이다. 아파트 주민 자녀의 입학을 대상으로 하는 까닭에 규모가 단출하여 한 학년이 다섯 혹은 여섯 반으로 편성되었다. 그리고 한 반은 스물다섯에서 스물아홉 명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6.25전쟁 무렵에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당시와 견주면 상전벽해의 변화를 절감한다. 한 동안 우리 교육계를 냉소적으로 조롱했던 얘기이다. 19세기 학교시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아이들을 교육하는 게 우리의 교육 현주소라고. 이러한 조소가 옛 얘기가 된 작금의 환경은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진화되어 있었다.
입학 며칠 전에 학교 홈페이지에 1학년반배정표를 위시해서 담임 배정표와 교실 배치도를 상세히 공지함으로써 학부모에게 긴요한 사항을 일목요연하게 제공하고 있었다. 따라서 입학 전에 손주는 자기가 ‘1학년 2반 16번’이며, 담임선생님 성함까지 꿸 수 있는 정도이다. 입학 관련 내용을 살피다가 전산시스템을 좀 더 살필 요량에서 몇 가지 기능에 시험적으로 접속해 봤다. 전달사항이나 숙제까지도 매일 담임선생님이 게시판에 올리고 있었다. 그 외에도 방과 후 학습이나 돌봄 교실 같은 부차적인 알림까지도 통째로 고지한 사실을 알아채고 세상이 디지털 시대가 활짝 열렸음을 실감했다.
신입생들은 9시 30분까지 배정된 교실에 입실토록 미리 고지한 결과이지 싶다. 지정된 시간이 되기도 전에 스물아홉의 어린천사들이 눈망울을 또랑또랑 굴리며 몰려들었다. 서른에도 이르지 못하는 왕자나 공주들인데도 생김새만큼이나 옷차림과 하는 짓이 사뭇 달라도 개성 같이 보여 눈에 거슬리거나 밉지 않았으며 되레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웅성대며 쉴 새 없이 눈길을 돌리면서 또래의 낯선 친구나 동행한 어른들을 곁눈질하는 모습이 불안과 설렘을 무언으로 웅변했다. 그렇게 낯섦에 적응하려는 물밑 움직임이 한창일 무렵에 죄다 강당인 청량관(淸凉館)으로 옮겨가서 입학식을 했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의 공식행사인 입학이나 졸업식은 고루하고 따분한 형식과 틀을 깨기 어려운 과제일까. 이제 겨우 여덟 살에 이르는 코흘리개들을 앞에 두고 국민의례나 애국가 제창을 비롯하여 교장선생님의 근엄한 환영사가 얼마나 감동적으로 전달될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아리송하고 헷갈렸다. 게다가 여덟 살 배기 입학생부터 연로한 학부형까지 모두가 식이 끌날 때까지 꼼짝없이 서 있을 수밖에 도리가 없는 열악한 환경은 어떤 형태로든지 개선되어야 할 해묵은 과제였다. 또한 각 반에서 담임선생님에 의해서 진행되는 오리엔테이션은 요즘 어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유연하게 꾸며서 오늘의 문화적 성향이나 특징을 살려서 재미있게 진행할 수 없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화두가 분명했다.
학교라는 소통과 배움의 창(窓)을 통해 날갯짓하며 날아오르려는 사랑하는 손주에게 갈망한다. 기왕이면 더 높고 넓은 무한한 푸른 세상을 향해 힘차게 도약하여 많은 것을 보고 깨우치며 바르고 당당한 어린이로 믿음직하게 성장해 달라는 주문이다. 자고로 학교는 끝없는 배움의 둥지로서 지식과 지혜를 쌓고 모두가 공존하고 상생하는 이치와 예에 대한 배움을 통해 고고한 품성의 기틀을 갈고 닦아 여투는 수련의 장이며 놀이터이기에 입학을 특별히 축하하며 기뻐한단다. 유진아!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순리에 따라 푸르른 창공을 거침없이 훨훨 날거나 아름다운 세상을 맘껏 향유할 행복은 오롯이 너희 어린천사들 몫의 선물이란다.
한맥문학, 2014년 5월호, 통권 284호, 2014년 4월 25일
(2014년 3월 3일 월요일)
첫댓글 교수님, 귀여운 손주 유진이의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건강하게 밝게 잘 다닐겁니다.
이번 교수님께 받은 책은 일본서 차분하고 감사히 읽겠습니다.
손주의 입학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