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경남도의회 의원님께 드립니다.
의정 활동에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마침 검색하다가 이 블로그에 쓰신 의원님의 글이 눈에 띄어 반론을 드립니다.
그런데, 박춘금을 밀성대군단 건립과 연관 지어 친일잔재로 매도하는 것은 지나치지 아니한가요. 의원님께서 인용한 졸당공파 비문의 한자는 '춘순'입니다. 국역이 춘금입니다. 졸당공파에서 한 국역 오류입니다. 사이트 들어가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춘순의 직이 유학인데 천하의 망나니 박춘금이가 성은 박씨이지만 어찌 선비인 유학이 되겠습니까.
일제시대지만 건립 당시에 관의 허가를 받아 11평 부지를 확보했습니다. 산책하다가 뼈조각을 발견한 게 아니고 1922년 대홍수 때 영남루 북편이 무너지고선 큰 무덤이 나타나서 권근의 본조유사의 밀성, 밀양이 밀성대군 박언침의 봉지였고, 대군의 집무지였던 영남루 터에 신라 법흥왕 때 지은 영남사가 있었음에 근거하여 밀성대군의 무덤이라고 믿게 되어 전국 13도의 박씨들이 의논하여 단비를 세웠습니다.
밀양시의 디지털문화대전에도 인근 하남읍 대사리 풍류고개 세루정이 신라 왕실의 이궁이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나옵니다. 개뼉다구도 아니고 인골이 발견되었는데도 그것을 '뼈조각'이라고 하는 것은 남의 조상에 대한 무례가 아닐까 합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박춘금이가 타성씨도 아닌 밀양박씨 종친을 권총으로 협박했다는데, 그래도 박가인 춘금이가 아무리 불학무식해도 자기 고향에서 문중 어른에게 권총을 들이대겠습니까? 문중 어른이 단비 건립을 반대할 리가 없잖겠습니까.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전국의 박밀양박씨 문중 모두가 참여했습니다.
무안면에 건립한 경덕단은 영남루의 단비 허가 면적이 11평이라서 좁기 때문에 밀성대군과 아들인 삼한벽공도대장군 욱, 손자인 요동독포사 란 세분의 비석과 재실을 별도로 건립한 것입니다. 무슨 다툼이나 이견이 있어서 따로 세운 게 아닙니다.
친일부역자로 극악무도한 박춘금이가 밀성대군단비를 강압으로 영남루 앞에 세웠다면, 11평이 아니라 적어도 30평 부지는 확보했을 것입니다. 옆의 천진궁은 1600년대 지어진 것입니다. 밀성대군의 유택이라는 본조유사가 있는 데 마침 폭우로 큰무덤터가 노출되었으니 유택이 맞다고 여겨 세운 기념비입니다.
밀양시 인구의 8%가 될 정도로 박씨가 밀양에 많이 삽니다. 그런 성씨의 시조지가 영남루에 있는 것이 바로 유적이 됩니다. 그런데도 김영진 의원께서는 왜 굳이 밀성대군단비를 박춘금과 연관시켜 친일 잔재라고 매도하시는 것입니까. 그 흉악무도한 박춘금이가 같은 박씨인 것이 징그럽울 정도로 싫습니다. 그러나 어느 성씨에나 꼭 그런 막종이 가끔씩 태어납니다.
윤석열이 보세요. 대통령이 되자 파평윤씨가 얼마나 자랑했습니까. 파평윤씨는 조선조 때 왕비를 가장 많이 낸 집안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은 내란죄 우두머리가 되었으니 파평윤씨들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파평윤씨 족보에서 파내려 하겠지요? 왕비만 많이 냈지 백성을 위해 한 일은 별로 없었지요.
우리 박씨는 박혁거세거서간 이후 신라의 왕실로서 나라의 유지와 발전에 노력했으며, 고려와 조선 시대를 통해 우리나라 우리 겨레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금도 420만 박씨들이, 316만 밀성대군의 후손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면서 애국애족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씨족의 중시조이신 밀성대군의 유허에 단비 하나 세워져 있음으로서 박씨족 모두가 힘을 얻어 국가 발전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박춘금이라는 망종 하나를 엮어서 친일잔재인 밀성대군단비가 국유지에 있느니 하면서 경남도민들에게 말하는 것은 어떤 정치적 의도나 씨족적 견제의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보는 제 생각이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김영진 의원님은 관향이 어디신지요?
물론 친일파 청산이란, 특히 악질인 박춘금을 뼈조각 하나, 뼈가루 한 숟갈이라도 우리나라 금수강산 어디에라도 묻을 수 없다는 좋은 의도로 그런 주장을 하시겠지만, 밀성대군단비를 왜 그곳에 건립하게 되었는가 하는 연유에 대한 깊은 천착과 폭넓은 사유를 하신다면, 주장하시는 바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남루는 조선의 3대 누각으로 치는 명루입니다. 밀양과 경남인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온 국민들이 아끼고 보존하는 명루이자 명소입니다. 마찬가지로 신라 역시 우리나라의 역사이고, 신라 망국과 밀성대군의 밀양 분봉 역시 우리의 역사입니다.
밀성대군의 후손으로 밀양과 청도에 사는 밀양박씨들이 몽골의 지배에 저항한 삼별초 군에 동조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고 밀양이 부곡으로 강등되었으며, 박위 장군, 박찬 장군과 함께 대마도를 토벌한 자랑스러운 역사의 주역이었습니다. 그 힘의 원천이 바로 씨족의식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기원전에 수많은 씨족과 부족들이 서북쪽에서 남하하여 한반도 각 곳에 정착했습니다. 그 씨족 집단이 지금 각 성씨이지 않습니까. 성씨를 따지는 것이 구시대적 인습이라고 하지만, 사람의 근본이 가족에 있으므로 가족의 확대인 씨족 의식은 우리 민족 전체의 소중한 자산이자 동력입니다.
그런 박씨족이 고전에 근거하여 영남루 경내에 11평 관청 허가지(물론 일제 관청입니다만 일제시대에도 우리가 사회를 이루어 살자면 행정 조직이 필요했습니다)에 밀성대군단비를 세워 중시조 한 분을 기념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러한 정성과 현상은 우리나라 반듯한 성씨 어느 문중에서나 하는 사업입니다. 박춘금이처럼 대성 출신 중에도 그러한 망종이있지만, 조상 유래와 근본을 모르는 자들은 조상을 위한 비 하나 세우는 것도 돈 안 된다고 싫어합니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시대를 보내느라 피곤한 박씨족들에게 나타난 밀성대군 유허는 삶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박씨족이 환호했습니다. 그리하여 작은 단비 하나에 316만 밀양박씨의 정성이 담겨있습니다. 물론 김영진 의원님의 생각이 다르시겠지만, 제가 드리는 말씀을 한 번이라도 되새기시어 참고하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25년 2월 15일 안동에서
박혁거세거서간 69세손 개산팔경 박희용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