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흘러도 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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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주마다
서울을 한 번씩 오르내린다.
작년에
두 번을 왕래했던 것에 비하면
적게 가는 셈이지만,
비록 고속 기차를 타고 간다 하여도
통도사에서 천리 길을
왕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11년 째 경전 공부를 하는
패엽회 모임이 있어
수도(首都)를 빈번히 가게 되었다.
요즈음은
때 아닌 50견 때문에
갈 때마다 병원에 들른다.
양재동에 있는
‘바른손연세재활의학원’이라는
긴 이름의 병원이 내가 치료 받는 곳이다.
공부방에 나오는 신도님이
친절하게
같은 병을 앓은 선배(?)라면서
인생 학년이 높은 7학년 후배를
매주 역까지 마중을 나와 안내해 준다.
만 7개월을
꼬박 앓아온 어깨 통증 때문에
병원, 한의원을 여러 군데 다녔다.
물리치료도 몇 달을 받았다.
그러다가
어느 스님의 소개로 가게 된 병원인데
때가 되어서 그런지
병원 치료의 효과 때문인지
이젠 두 팔을 세워 만세를 할 수 있고
등 뒤로 손을 돌려
손바닥을 마주 잡는 뒷짐도 된다.
병이 나아지니
그동안 도와 준 여러 사람이 고맙다.
그 중에 특이한 한 분이 있다.
내 병을 치료해 주는
병원 원장님의 어머니인 노보살님이다.
불명이 금선화인
이 보살님의 어질고
삼보를 받드는 정성에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아들의 병원이
개업한지 1년 남짓 되었는데
처음 개업할 때
의사인 아들은 물론
며느리 손자들을 다 데리고
통도사까지 내려와
사리탑 보궁(寶宮)에서
다 같이 기도를 하였다 한다.
통도사뿐만 아니라
천황사 등 다른 절에 가서도
기도를 하였는데
아들이 치료하는 사람들이
부디 잘 나아
많은 사람들이 건강해 지기를
기도했다는 것이다.
속되게 말해
병원이 잘 되어
아들이 돈을 잘 벌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아들이 치료한 사람이
어서 쾌차되기를 빌었다는 말에
보통 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다.
간혹 스님들이 치료를 받아야 할 경우
꼭 병원에 오게 하여
치료를 받고 낫게 해 준다 하였다.
내 경우
주마다 가 여섯 번을 치료를 받았는데
처음 두어 번 하고 나서
치료비를 받지 않아
미안해서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럴까봐
이 보살님이 병원까지 나와
나을 때까지
꾸준히 다녀 치료를 잘 받으라고
신신 당부를 한다.
거기다가
“스님께 꼭 공양대접을
해 드리고 싶다.” 하여
유명한 음식점에 가게 되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스럽기도 하면서 따라 가게 되었다.
역삼동인가
대치동인가 하는 곳에 있는
자연 한정식 식당이었다.
식당 이름이 ‘채근담’이었다.
들어가면서
나는 식당 이름이
‘채근당’이 아니고
책 이름인
‘채근담’을 그대로 썼구나 하고
입구의 계단을 걸어 들어가는데
입구 좌우에
대구(對句)가 되게 시구를 적어
주련처럼
세로로 걸어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水流而境無聲
물은 흘러도 소리가 없고
山高而雲無碍
산이 높아도
구름은 꺼리지 않는다.”
『채근담(菜根談)』
에 나오는 구절을
그대로 써 붙인 말이었다.
식당 현판 아래
『채근담』 글귀로
주련을 달아 붙이다니
식당도 보통 식당이 아닌 것 같았다.
향토음식이라 할 수 있는
자연 한정식 식사가 나왔는데
음식들이 마치 예술품 같았다.
김치와 녹두 나물, 버섯요리 등
그릇에 담겨 있는 찬들의 모양이
특별한 작품 같았다.
밥을 먹으면서
나는 엇갈린 생각을 하였다.
원래 ‘채근담’이란
‘나물 뿌리를
씹어 먹고 사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나물 뿌리를 씹어 먹고 살 수 있다면
백 가지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말 속에는
인간이 욕망에 쫓기지 않고
검소하고 단순하게 사는데
삶의 참뜻이 있다는
교훈적인 가르침이 숨어 있다.
일종의 삶의 참뜻을 알고 살라는
경책성 말이
잠언처럼 설해져 있는 것이다.
음식이 워낙 고급스럽게 보여
채근담 정신하고
상치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엉뚱한 생각이
머릿속에 일어났던 것이다.
중국 고전의 책 이름인
『채근담』은
명나라 말기(1644년 경)
홍자성(洪自誠)이 저술한 책이다.
홍자성은
본래 이름이 홍응명(洪應明) 이고
자(字) 자성(自誠)이었는데
홍자성으로 더 알려져 있다.
때로는
환초도인(還初道人)으로 부르기도 했다.
책 내용을 살펴보면
유교, 불교, 도교에서 말하는
좋은 말들을
간추려 집록해 놓은 것이다.
전집(前集),
후집(後集)으로 되어 있는데
전집에 225개,
후집에 134개의 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종의 처세훈
이라 할 수 있는 말들이 많으며
전집에는
주로 인간관계에 관한
교류의 이야기이고
후집은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얻는 즐거움을 애기한 것이 많다.
식당 입구에 소개된 구절은
후집에 나오는 말로
대구인 두 구에
각각 붙어 있는 말이 더 있다.
“물은 흘러도 소리가 없나니
시끄러운 곳에 처해도
고요함을 보는 취미를 얻을 것이요,
산이 높아도
구름은 꺼리지 않나니
유(有)에서 나와
무(無)로 들어가는
기틀을 깨달아야 하리라.”
(水流而境無聲
得處喧見寂之趣
山高而雲無碍
悟出有入無之機)
물은 본래 소리가 없다.
물이 소리를 내는 것은
바닥이 고르지 않아
무엇엔가
부딪치기 때문에 소리가 나는 것이다.
그렇듯이
사람의 마음도 고요하다면
아무리 시끄러운 곳에 있어도
고요한 적정(寂靜)의 참맛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선수행에서 말하는
선열(禪悅)
혹은 선미(禪味)와 같은 것이다.
또 산이 아무리 높아도
구름이 오가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
구름은 속이 비어 있어
무엇에 부딪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란
마음에 아무 집착이 없어
구름처럼 무심한 경지이다.
이 해탈의 경지에 들어가지 위해서는
유(有)를 벗어나
무(無)에 들어가야 한다.
유란
마음에 생각이 남아
집착이 끊어지지 않은 것을 말한다.
집착을 끊고 상(相)을 여의면
무(無)의 경지에 들어가
일체 만물에 무심해 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해탈(解脫)이다.
갈등과 불안의 요소들을 제거하고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채근담』의 이 구절을
깊이,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채근담』의
또 한 대목에 이런 말도 있다.
사람이
누구나 원하는 행복을
불러들이는 방법에 대하여
설해 놓은 이야기다.
“행복은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항상
기뿐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행복을 불러들인다.
불행은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항상 남의 마음을
아프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이것이
불행을 멀리하게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착한 일을 많이 함으로써
복을 부르는 근본을 삼고,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버림으로써
화를 멀리하는 근본을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