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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심장 2강 | 2019.11.13. 길잡이 정원진 목사 |
2장 신앙 : 심장의 길
1. 문제 제기
∙‘신앙’(faith)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 : 특정한 기독교적 ‘믿음의 조항들’(beliefs)이 참되다고 믿는 것
∙이런 태도는 기독교 신앙을 “머리의 문제”(head matter)로 만들어버림. 하지만 현대 이전 시대에는 ‘신앙’은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가슴, 곧 심장(heart)의 문제로 이해했음.
∙이렇듯 신앙을 ‘믿음의 조항들’로 간주하는 것은 신앙 자체의 의미를 축소하고 왜곡시키는 것임. 따라서 신앙의 풍부한 의미를 회복할 필요가 있음.
2. 신앙의 중심성
∙신앙은 기독교의 심장이다. = 신앙은 기독교인의 삶에서 극히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① 신약성서 27권 가운데 25권이 ‘신앙’이라는 명사 또는 ‘믿는다’는 동사를 사용함.
② 신약성서가 신앙에 대해 결정적인 중요성을 부여함 : (예수: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 바울: “신앙을 통한 은총에 의해서 의롭게 됨” 히브리서 12:2 “우리의 신앙의 창시자요 완성자인 예수”, 요 3:16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 등)
③ 16세기 개신교 교회개혁이 “신앙 의인”을 강조.
3. 신앙의 네 가지 의미
∙신앙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기독교 역사에서 신앙은 네 가지 의미가 있음.
∙첫 번째 의미는 “두뇌의 문제”로서의 신앙에 가깝고, 나머지 세 가지는 신앙을 “가슴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들임.
(1) ‘동의’로서의 신앙(faith as assensus) = assent
∙이것은 어떤 명제에 대해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으로서, 어떤 주장이나 선언이 참되다고 믿는 것을 뜻함.
∙기독교 신앙이 일차적으로 ‘동의’에 관한 것이라는 관념은 최근의 일임.
① 종교개혁은 수많은 새로운 교파들을 만들어냈고, 그 각각의 교파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교리나 신앙고백을 통해 자신을 다른 개신교 교파들과 구별했음.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서로 다른 교파들의 믿음 조항들 가운데) ‘올바른’ 것을 믿는 문제가 되어버렸음.
② 계몽주의는 성서와 기독교의 수많은 전통적 가르침들의 사실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이후 기독교 신앙은 의문스러운 것들을 참되다고 믿는 것을 뜻하는 말이 되기 시작했음. ⇒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신앙은 믿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믿는 것, “믿을 수 없는” 것을 참되다고 믿는 것을 뜻함.
∙‘동의’로서의 신앙에 반대되는 것은 의심(doubt)과 불신(disbelief)임. 만일 당신이 의심한다면 신앙이 적은 것이고, 불신은 신앙이 없는 것임.
∙이런 신앙은 상대적으로 힘이 없으며 무능함. → 변화시킬 힘이 거의 없음.
(2) 신뢰로서의 신앙(faith as fiducia) = trust
∙신뢰로서의 신앙은 깊은 바다에서 물에 떠가는 것과 같음. 즉, 하나님의 부력(浮力)을 신뢰하는 것임.
∙이 신앙은 우리가 살고 행동하는 존재의 바다를 신뢰하는 것임. (성서적 은유 : 하나님을 우리의 바위와 요새로서 신뢰하는 것.)
∙신뢰의 반대어는 “걱정” 혹은 “염려”임. 신뢰로서의 신앙이 자라나게 되면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게 되고,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게 됨. → 변화를 일으킬 힘
(3) 충실함으로서의 신앙(faith as fidelitas) = fidelity
∙‘충실함’으로서의 신앙은 ‘신실함’으로서의 신앙으로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충성, 전념, 자기의 가장 깊은 차원에서 헌신하는 것, 즉 “가슴”의 헌신을 뜻함.
∙충실함의 반대어는 배신(infidelity)인데, 성서의 은유로는 간음(adultery)과 우상숭배(idolatry)임. 간음은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과 맺은 계약에 대해 충실하지 않은 것’을 가리키며, 우상숭배는 ‘우리들 자신의 궁극적인 충성 혹은 헌신을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에 두지 말라는 것’임.
∙기독교 신앙은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께 충성하는 것이지, 우리의 삶의 지배자처럼 행세하려는 유혹들, 곧 국가, 풍요, 성취, 가족, 혹은 욕망에 충성하지 않는 것임.
∙충실함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무엇보다도 이 두 가지 위대한 관계들에 충실한 것을 뜻함.
∙우리는 예배, 기도, 수행, 연민과 정의의 삶이라는 단순한 방법들을 통해 하나님 및 이웃과의 관계에 마음을 쏟을 수 있음.
∙하나님에게 충실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들, 곧 우리의 이웃들과 실제로 피조물 전체를 사랑하는 것을 뜻함. 이처럼 충실함으로서의 신앙은 윤리적 명령을 포함함.
(4) 보는 방식으로서의 신앙(faith as visio) = vision
∙“보는 방식으로서의 신앙”(faith as a way of seeing)은 삶의 현실 전체를 보는 방식으로서의 신앙, 곧 인생의 “궁극적인 무대(舞臺)”를 보는 방식으로서의 신앙을 가리킴.
∙리처드 니이버(Richard Niebuhr) : 우리가 인생의 궁극적인 무대 전체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인생을 경험하고 살아가는 방식, 즉 우리가 삶에 대해 응답하는 방식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보는 방식으로서의 신앙”은 인생의 궁극적인 무대를 은총이 넘치는 것으로 봄. 그 반대인 불신앙은 인생의 궁극적인 현실을 적대적이거나 위협적인 것으로 보는 것, 혹은 무관심한 것으로 봄.
∙신앙의 이런 의미는 “신뢰로서의 신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나, “보는 방식으로서의 신앙”이 “신뢰로서의 신앙”에 덧붙이는 것은 우리가 현실을 보는 방식과 신뢰하는 능력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임. ‘신뢰’와 ‘보는 방식’은 함께 감. =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을 보는 방식은 함께 감.
※ 신앙에 대한 마지막 세 가지 이해는 모두가 관계를 맺는 것을 강조함. “보는 방식으로서의 신앙”은 우리가 인생의 궁극적인 무대, 곧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하는 전체를 보는 방식임. “충실함으로서의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충실하는 것임. “신뢰로서의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깊게 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에서 우러나는 것임.
∙마틴 루터가 변화를 경험한 것은 자신의 보는 방식을 변화시킨 철저한 은총을 체험했기 때문이며, 이 철저한 은총의 체험이 그에게 신앙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임을 깨닫게 했으며, 그를 하나님에게 충실한 삶으로 이끌었음.
4. 동의로서의 신앙을 재론할 필요성
∙신앙을 동의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함.
∙기독교 신앙에는 핵심적인 세 가지 기초 고백(affirmation)이 있기 때문임.
①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실재(=초월의 세계)를 고백하는 것임
② 기독교 신앙은 예수의 중심성을 고백하는 것임
③ 기독교 신앙은 성서의 중심성을 고백하는 것임
∙동의로서의 기독교 신앙은 이 모든 것을, 깊이 있게 그러나 열린 자세로, 고백하는 것을 뜻함. 깊이 있게 고백한다는 말은 신앙이 우리의 충성과 신뢰, 그리고 우리 자신의 가장 깊은 차원을 보는 방식과 관련된다는 말임. 열린 자세로 고백한다는 말은 우리가 지나친 정확성과 확신으로 치닫는 경향을 피할 필요가 있다는 말임.
∙정신이 거부하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가슴으로 헌신할 수 없음
5. 믿음으로서의 신앙을 재론할 필요성
∙라틴어 ‘크레도(credo)’의 의미 : 흔히 ‘크레도’를 “나는 믿습니다”라고 번역함. 현대인 대부분이 “나는 믿습니다”라는 말을 “나는 동의합니다”라는 뜻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많은 기독교인이 그 신조들을 고백하는 데 어려움을 겪음. 그러나 ‘크레도’는 “나는 다음과 같은 선언들의 문자적-사실적 진리에 동의합니다”라는 뜻이 아님. 오히려 그 라틴어는 “나의 심장을 바칩니다”(I give my heart to)라는 뜻임. 즉 ‘크레도’는 “나는 충성하겠습니다,” “나는 헌신하겠습니다”라는 뜻임.
∙“믿는다”는 말의 전근대적인 의미 : 17세기 이전에 “믿는다”는 말의 목적어는 선언이 아니라, 한 인격(a person)이었음. 가장 간단히 말해서 “믿는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뜻이었음. 실제로 영어에서 “믿는다”(believe)와 “사랑한다”(belove)는 서로 연관된 말임.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임. 신앙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한 것임.
∙이처럼 “신앙”이라는 말의 전근대적인 의미는 기독교인의 삶을 관계를 맺는 것으로(relational) 이해하게 함.
∙신앙의 핵심적인 의미는 (“믿는다”는 말의 전근대적 의미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 신앙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일임. 기독교인의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에 관한 것임.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임. 신앙은 심장의 길임.
∙성경 읽기 : 히 11:8-16
∙다음번 과제 : 4장 하나님, 실재의 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