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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2장 15-17절.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향기, 요약설교
오늘 읽은 14절 이하에서는, 어제의 복음 전도의 중단과 심령의 참담함을 가슴에 안은 바울이,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고 있습니다.
어제까지 쓰라린 좌절과 마음의 처절한 고통을 안고 있던 바울이, 오늘은 빌립보에서 디도를 만나, 고린도 교회의 수습 소식을 듣고, 개선장군처럼 기쁨으로 본문의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14-17절).
15절.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 여기서 “향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오디아(εὐωδία)는 14절의 “냄새”라는 헬라어(ὀσμὴν)와 그 뜻이 다른 <좋은 향기>(sweet perfume)를 의미합니다.
이 “향기”란 말은 구약에서 하나님께 바쳐진 희생 제물이 태워질 때, 올라가는 향기를 의미합니다( 출 29:18, 레 1:19)
따라서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는 삶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희생 제물의 향기와 같은 삶이었습니다.
2. 흔히 교회에서 성도들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요, 빛과 소금이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합니다.
즉 마태복음 5장 13절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3장 3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예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고린도후서 2장 15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예수님의 생명과 향기를 풍기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 12절에서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들 가운데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선한 행실을 보일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향기요 편지가 되어, 불신자들을 전도할 수 있습니다.
3. 열왕기하 5장 3절에는 아람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서 나아만 장군 집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나라 어린 소녀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여종은 주인집에서 얼마나 신앙생활을 잘했으면, 이 여종의 말을 듣고 주인인 나아만 장군이 왕에게 가서 여종의 말대로 이스라엘에 나병을 고치러 갔겠습니까?
그리고 나아만 장군이 이스라엘 나라에서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서 나병을 고침받고 집에 돌아와서는 이 소녀의 말을 듣고 그대로 신앙생활을 잘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잘것없는 어린 여종일지라도, 불신 이방인 가정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고 빛과 소금이 되고,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니까, 온 주인 가정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4. <요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즉 창세기 39장 3절에는 애굽 왕의 시위 대장 보디발이 자기 집 어린 종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고, 가정의 총무로 삼고 모든 가정사를 다 맡겼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39장 23절에는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의 간수장이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심을 보고, 감옥의 모든 일을 요셉의 손에 맡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나라의 왕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요셉에게 모든 국사를 맡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불신 이방 나라와 감옥에서조차 신앙생활 잘하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고,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고, 빛과 소금이 되어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6장 15절에는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고, 사도행전 1장 8절에는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5. <다니엘>도 불신 이방 나라에 포로가 되었어도, 얼마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는 삶을 살았으면, 나라의 왕이 다니엘의 하나님을 섬겼겠습니까?
즉 다니엘 6장 26절에 다리오 왕은 모든 사람이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다니엘 12장 3절에는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하는 사람은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했습니다.
7. <바울 사도>는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사람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핍박을 받고 죽음의 위험을 받으며 살았습니다(행 21:13. 23:12-15).
그런데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바울의 복음 전도는 어떤 사람에게는 받아들여졌고, 어떤 사람에게는 거부되었습니다.
이러한 받아들임과 거부의 차이는 생명과 사망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즉 받아들인 사람은 구원을 얻지만, 거부하는 사람은 망하게 되었습니다(요 5:24).
이처럼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선행과 향기를 나타내면서 살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 12장 1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바울 사도의 향기로운 삶처럼,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선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6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 바울 사도는 여기서 복음의 양면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즉 바울 사도는 복음을 가리켜 말하기를, “이 사람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이 전파될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복음이 구원의 복된 소식이 되어 영생의 축복을 얻도록 해주지만, 반대로 복음을 영접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결과로써 징벌 곧 영원한 사망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태복음 13:47-48.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2. 이처럼 바울 사도에 의해 선포된 하나의 메시지가 두 가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즉 하나의 향기인 바울의 복음 전도가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의 악취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죽음을 평범한 한 인간의 죽음이라고 여기는 자들은 그들의 불신앙에 따라 죽음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예수님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지금도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롬 8:34).
3. 이처럼 하나의 실체가 선과 악, 생명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 효력을 발생하는 것에 대한 개념은 유대인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상이었습니다.
그 한 가지 예로 <토라>를 들 수 있는데, “꿀벌이 자신의 주인을 위해서는 꿀을 간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독침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토라의 말씀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생명의 약이고, 세상 이방인들에게는 죽게 하는 독약이다”고 했습니다.
4. 개선 행진 시에 거리를 가득 메운 향기가 승전 군인들에게는 생명의 향기이고, 전쟁 포로들에게는 사망의 냄새가 됩니다.
어떤 전쟁 포로는 죽이고, 어떤 전쟁 포로는 양자 삼거나 아내를 삼기도 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이 풍기는 향기(복음)는 믿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향기이고, 불신자들에게는 사망의 냄새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복음 전도는 영원한 생사의 갈림길을 주고 있습니다.
5.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20장 17-18절에서 자신이 거치는 반석과 같아서,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얻게 하는 굳건한 반석이 되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거치는 반석이 되어서, 이 반석이 불신자들 위에 떨어지면, 불신자들을 가루로 만들어 흩어지게 한다고 말씀했습니다(마 21:44 참조).
요즘은 죽순을 캐고 깨를 심는 때입니다.
그런데 대밭을 관리하는 주인은 매년 죽순을 선별 작업을 합니다.
즉 어떤 죽순은 살리고 어떤 죽순은 캐버립니다.
그리고 깨밭을 관리하는 주인도 어린 깨의 순들을 관리할 때, 어떤 순들은 잘라버리고, 어떤 순들은 살립니다.
이처럼 살리고 죽이는 선별 작업의 권한이 주인에게 있습니다.
이와같이 복음 전도자도 복음 전도로써 어떤 사람은 영생을 얻게 하고, 어떤 사람은 영원한 사망으로 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영생과 영벌의 운명은 절대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작정에 달려 있습니다.
6.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사람들에게 이와 같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복음을 듣고 예수 믿는 사람은 그 그리스도인의 복음이 생명을 주는 향기가 되고,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사망을 가져다주는 악취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 전도를 듣고 고의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은 돌이 머리에 떨어진 사람처럼 스스로 멸망을 자취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대해서 그랬습니다.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1. <누가 감당하리요>란 말씀은 아무도 못 말린다는 말입니다.
즉 복음 전도로 인한 영생과 사망의 결과는 아무도 변경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귀결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 전파로 인한 심판의 결과가 변경될 수 없는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결과는 영생과 영멸이라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못 말리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냄새로서의 영향이 미치는 결과가 영생과 영멸이라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세상에서 선한 향기를 나타냄으로써 한 사람이라도 구원받게 할지언정, 결코 우리로 인해서 시험받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날마다 성령 충만하고 선한 열매가 가득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한편 <누가 감당하리요?>란 말은 바울이 적대자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즉 바울의 적대자들은 자신들의 세속적인 자격과 정치적인 배경으로 자신만만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가름하는 중대한 사역은 인간적인 자격이나 배경만 가지고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 일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으로써만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적대자들이 복음 전도를 방해할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전도의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4장 2절에는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총동원 전도 주일을 맞이하여 생명의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영생으로 구원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17절.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1. <혼잡케 한다>(καπηλεύοντες: peddling)는 말은 행상인이 나쁜 과일은 밑에 숨기고, 좋은 과일은 맨 위에 놓아 전체가 좋은 것인 양 판매하는 ‘부도덕한 상행위’를 가리킵니다.
또는 포도주에 물을 타 양을 많게 하여 질 낮은 포도주를 판매함으로써 ‘과도한 이익을 얻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에서 거짓 사도들이 자신들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추천서를 받아 가지고 온 참된 사도라고 주장하면서 바울 사도를 배척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가르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거짓 전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다고 하면서 개인의 이익을 도모했습니다.
즉 질이 낮은 포도주를 판매하는 잡상인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질을 떨어뜨리는 거짓 사도들의 행위를 했습니다.
2. 그래서 어떤 영어 성경에는 “적어도 우리는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물을 섞어서 팔고 다니는 잡상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반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변인으로서 하나님의 존전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순수한 메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GOD'S WORD)
그런데 ‘잡상인’(peddlers: English Standard Version)으로 번역한 헬라어(καπηλεύοντες: peddling)는 ‘많은 이윤을 얻게 위해서 상품에 불순물을 섞어 판다’는 동사입니다.
이 단어가 이사야 1장 22절(LXX)에서는 포도주에 물을 섞어서 구매자들을 속이는 장사꾼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Linguistic Key. p. 458)
그리고 플라톤은 이 단어를 ‘사이비 철학자’ 즉 궤변론자들(sophists)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습니다(ibid).
그런데 바울 사도는 이 ‘복음의 잡상인’이란 말로써 고린도 교회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린도후서 11: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3. 이들은 고린도 교회에 침투한 율법주의자 거짓 사도들로서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하고, 바울을 배척하는 운동을 했던 반바울파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소위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같은 지도자들인 야고보, 게바, 요한에게서 추천서(고후 3:1)를 받아 가지고 왔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추천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 시간에 볼 3장 1-3절에서 ‘추천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4. 우리 생각에는 바울 사도 당시 성도들은 순수한 신앙을 가졌을 것이고, 또 뜨겁게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 말씀대로 신앙생활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바울 사도 당시에도 수다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5. 그러므로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나, 전도사나, 주일학교 교사나 구역예배 인도자를 위해서 기도할 때, 많이 기도해야 할 사항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교사들이 성경을 가르칠 때 먼저 성경 말씀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할 때, 성경 본문에서 벗어나서 잘못된 적용이나 예화나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고 조심스럽게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설교할 때나 전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전하는 것이 생명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고, 영이요 생명이며,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마시고, 순수하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역사하여 영혼이 구원받고 성장하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1.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는다>는 것은 사도나 선지자가 하나님께 말씀 받은 그대로 전하고, 가감하거나 철학자의 말을 섞거나, 사람의 눈치 보면서 적당히 가감하거나 자기 유익을 위해서 가감하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2.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말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구세주시고, 사람을 구원하시는 분임을 중점적으로 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주의 거짓 사도들이 율법을 지켜야 완전한 구원을 얻는다는 율법주의와 대조되는 순수한 복음이었습니다.
이러한 바울 사도의 말씀 전파의 자세는 거짓 사도들의 모습과는 분명하게 대조되고 있습니다.
3.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았고, 사람들(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타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전도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한 것이고, 개인적 이익이나 사심이 개입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육체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행한 증거이며, 그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증거입니다.
고린도후서 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그러므로 주일학교나 구역 예배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성도 여러분!>
자기의 이해타산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물을 섞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감동으로 성도들이 많은 은혜를 받고, 전파자들도 큰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