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 류영남박사 수필 동인지 제7집 ‘길’ 책자를 며칠 전 산행에서 받았다. 집에 와 책을 펼치니 내용 중에 ‘봄내에 대한 변’에서 ‘봄내’ ---버들 강아지가 눈을 뜨고 있었다. 녹아 가는 얼음장 아래로 시내가 흐른다. ‘봄의 시내’를 줄여서 자신의 호(號)를 ‘봄내’라 지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아하! 나의 호 ‘한뜻’에 대해 소고 형식으로 술회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감히 친구들 앞에 몇 자 적어 본다. 가지고 갈 것 아니쟎아. 버리고 갈 것인데-----.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부모로부터 이름과 자(字)를 받는다. 학문과 덕행이 높아지면 윗 어른이, 스승, 친구에게서 호를 받아 이름 대신으로 불려지게 되고, 예술, 학문, 정치 등 각종 분야 등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이들에게는 호로 그 인격을 대표한다. 단원, 추사, 갈물, 석파, 일중, -----
서예 작품에는 작가를 나타내는 낙관이 필수다. 작품 마지막에 호를 쓰고 이름을 쓴다. 또는 이름을 생략하고 호만 쓰기도 한다. 찾아가서 “호 부탁합니다.” 할 선생님도, 이웃 어른도, 친구도 없었다. 첫 발령지가 산청 덕산초등학교다. 이곳에서 강대철, 천명진 친구와 함께 근무하기도 했다.
진주사범 15기 선배와 같이 근무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선배의 친구가 학교를 점심 무렵에 찾아와 그 선배의 호를 해송(海松)이라 지었으니 앞으로는 00선생이라 부르지 말고 해송선생으로 불러달라고 부탁을 한다. 친구의 우정이 돈독하지 않은가?
덕산은 나의 할아버지, 아버지의 고향이다. 호를 ‘德山(덕산)’으로 할까? 하다가 그만 둔다. 전국적으로 덕산이라는 지명이 너무 많아서였다.
제법 오랜 기간 고민을 하다 문득 ‘石花(석화)’가 떠오른다. 뜻에 돌꽃을 함축하는 의미가 있어 내 생에 최초의 호로 정했다. 근무지가 부산에 편입되어 작품을 제작하면서 낙관을 ‘石花’로 장만하여 사용했다.
어느 날 고인이 된 주백종 친구가 “재준아, 니 호 지어줄게 사주(四柱)를 말해라” 그 친구는 나름대로 주역(周易)에 일가견을 갖고 있었다. 며칠 후 호를 풀이한 문서를 내 놓으면서
“야! 재준아 니, 호 기똥차게 잘 나왔데이. 고마 내가 할라꼬 켔는데 니 준데이. 참 좋다.” 저 혼자 신이 났다. 친구의 호는 백공(白空)이다.
주역 풀이를 한 문서를 보니 ‘雙龜(쌍구)’였다. 거북이 두 마리이니 얼마나 장수하겠는가?
“재준아! 48획인데 이렇게 획수가 많은 호는 역사에 별로 없데이. 니 안할라쿠만 내가 하끼다.”
이 호를 짓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고, 자기도 놀랍다고, 만날 때마다 강조하고 자랑을 했다.
“백공! 친구야 두고, 두고 고맙데이”.
서로 쌍雙자에 거북 구龜 쌍구(雙龜)였다. 쌍자가 된 소리고 龜자가 나라이름구龜, 거북귀龜, 틀균龜의 뜻이 있어서 쌍구, 쌍귀, 쌍균, 이렇게 세 가지로 발음이 된다. 백공 친구는 쌍구라고 불러 주었다.
“백공아 고맙다. 호 값으로 한 잔 하자”
이 후로 낙관을 쌍구로 제작하여 작품에 사용했다.
세월이 가면서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그리고 뜻이 담뿍 담긴 우리말 호를 어디서 받을까 궁리하던 중, 어느 가을 오후 햇볕이 드는 우리 집 대청에서 작품을 쓰고 있는데 문득 ‘한뜻’ 이라는 어휘가 머리를 스친다. “아하! 좋다.” 혼자 쾌재를 부른다. 전국의 여러 작품집을 뒤적여 ‘한뜻’이라는 호를 샅샅이 뒤졌으나 다행이 없었다. 다시 낙관을 ‘한뜻’으로 준비하여 지금껏 활용하고 있다. 한 : 크다, 하나. 뜻 : 마음, 바램, 뜻대로 하소서.
한글작품, 문인화작품에는 ‘한뜻’으로 한문작품, 문인화작품 화제에 한자가 씌여지면 雙龜로 각종 공모전, 작품전시회, 도록에 올리니 감히 내 호를 쓰는 작가들이 아직은 없다. 희소성의 큰 가치를 갖고 있어서 나름대로는 내 호 ‘한뜻’, ‘雙龜’에 애착을 갖고 호의 이름값에 걸맞게 살려 노력하고 있다.
어느 날 “류선생, 이 분한테 호 하나 받으소. 사주를 잘 봅니데이 좋은 호가 나올깁니더.” 사주를 알으켜 주고, 며칠 후 호를 받아 보니 ‘밝을 양亮 마을 촌村, 亮村이다. 할 수 있나? 좋은 호라니 호 값을 치루었다. 또 낙관을 장만한다. 그런데 양자가 뜻에서 해석이 많다는 점이다. 볕양陽, 어질양良, 바다양洋, 헤아릴량量, 밝을량亮---- 亮村 낙관만 파놓고 아직껏 작품에는 활용치 않고 있다. 앞으로의 작품에 ’亮村‘도 낙관을 해야겠다.
위 책자에서 고려 때 이규보(李奎報)는 호 짓는 기준을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① 소처이호(所處以號) : 생활하고 있거나 인연이 있는 처소를 호로 삼음. ② 소지이호(所志以號) : 이루어진 뜻이나 이루고자 하는 뜻으로 호를 삼음. ③ 소우이호(所遇以號) : 처한 환경이나 여건을 호로 삼음 ④ 소축이호(所蓄以號) : 간직하고 있는 것 가운데 특히 좋아하는 것으로 호를 삼음.
내가 지은 ‘石花’, ‘한뜻‘과 친구에게서 받은‘雙龜’, 귀인에게서 받은‘亮村’, 네 가지 호를 간직하게 되었으니 행복한 사나이가 아닐까? 위의 호를 짓는 네 가지 기준에 빗대어 보면 ② 所志以號이리라.
어렸을 때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호를 갖게 되면 호로 불러 주는 것이 예의인데 나는 선생이라는 평생 직업인이라 상대방이 호로 칭하여 주는 사례가 드물다. 류선생, 류선생님, 직함이 이동 되어서는 00선생님, 00선생님으로 불리워지고 있으나 관계하지 않는다.
요즈음은 壽石에 심취해서 소일거리로 삼고 있는데 20여 년 전에 ‘石花’를 호로 스스로 지었으니 그 영향이 아닌가 싶다. 수석에 관해서는 뒷날 나의 신변잡기에서 언급하겠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하였거늘 나의 삶이 이에 걸 맞는지 회상의 시간이 많아짐을 어쪄랴. 친구들아 류재준의, 호 ‘石花’, ‘한뜻’, 雙龜‘, ’亮村‘을 기억해주면 고맙겠다. 있는 게, 남는 게, 시간이라 이리글적, 저리 글적하여 어리광 비슷, 친구들에게 졸문을 보인다. 어여삐 보아 주시기를.
첫댓글 石花, 한뜻, 雙龜, 亮村! 한꺼번에 불러봄세. 어감이 좋은 호를 가졌구먼. 호에 걸맞는 멋진 삶이 되기를 축원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