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가 물려 주어야 할 대한제국칙령제41호에 명기된 석도(독도)
'울'과 '우리'를 두고 보면 나를 지칭하지만, 동물을 가두어 사육하는 양육장을 뜻하기도 하고, 현대에는 관계자산으로 미래를 함께해야 할 소속연대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라는 어휘를 기록으로 보면 정음이 정리된 이후 기록이니 16세기 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일인칭 대명사로 쓰임을 보는 한계에 머무른 시각입니다.
한국 사회와 인류문화가 낳은 '독도' 지명을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를 이해하고 일본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습니다.
'우리'는 '나'를 포함한 관계성을 말하지만, 결국 지배와 피지배가 수직과 수평을 이루는 질서라는 사회 구조에 형체를 유지하는 주체를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는 '울'이라는 관계성 구조를 기초로 하여 화자와 청자를 포함한 최소 집단에서 국가 단위로까지 성장변이를 반복 경험한 국민과 국가와에 관계성까지 이입되어 있는 어휘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관계자산 구조에서 가장 상위단에 있는 '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주체라는 뜻입니다.
청경
2. 1900년10월25일 '대한제국칙령제41호'가 반포되었습니다.
24일 발의, 25일 광무(고종)황제 제가, 27일 관보게재를 하여 황제가 일련에 절차를 당시 국제(국법)에 따라 '반포'하였기에 국제법으로도 지극히 소중한 독도역사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독도'를 알고자 하면 먼저 '우리'를 돌아보고 '우리'를 이해하려면 '울릉도'를 보라 했습니다.
울릉을 지켜온 우리를 이해하면 '대한제국칙령제41호'에 '독도'를 '석도'로 명기한 한국문화를 이해 할 수가 있습니다.
독도를 두고 '우리땅~한국땅'까지 어느 표현이 바람직한가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독도를 두고 '우리땅'이라 함은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대한민국 영토주권을 표현한것이니 틀리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분쟁화를 목적으로 한 상대가 있으니 피아와 제3자에게 명료한 분별을 주기 위해, 피아를 구획할 수 있는 분명한 어절을 사용함이 바람직하겠습니다
청경
3
'우리'가 '울'이 되는 과정을 봅니다.
원래 '울'이었으나 '울'이 인간 생활에 접목되면서 부터 '우리'가 되었고, 가축화하는 과정에 동물들과 함께 살아온 인수문화에 근접성을 지칭하는 공용어로 사용되다가 '우리'가 다시 '울'을 지명으로 재탄생 시켰습니다.
'독도'로 가는 '울릉'을 두고 보면 다양한 풀이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울릉'을 '우산국'이라고 하는 신라 이사부 우산국 정벌은 독도와 울릉을 배경으로 존재했던 강력한 해상세력에 존재를 뜻하는 것입니다.
해상 세력이라 함은 울릉과 독도 및 그 근해는 물론이고, 우산국이 정벌한 대마도까지 우산국의 세력권에 포함되어 있었슴을 세심하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산국을 울릉이라 칭하게 되는 것은 신라 경덕왕4년에 우리글 한자를 다시 받아들여 공인하게 됨에 따라 지명도 개칭당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산'은 '우시산'을 지칭하게되어 '울산' 옛지명 '우시산국'과 충돌이 일어나게됩니다.
울릉ㆍ울산ㆍ울진에 나타난 '울'은 이두로 표기하던 후대 '우시'에서 '시'는 'ㄹ'이었기에 '우+ㄹ' = '울'됩니다.
'울'은 본래 '우리'에서 왔으며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에 집합체'입니다만 매우 넖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우리말이 지닌 '시간에 화석'입니다.
청경
4.
'울'은 '성'을 지칭하며, 마을에 의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습니다.
'성'에는 마을이 있기에 집단생활이 불러온 약탈을 대비해 초기 목책과 토성이 있었고, 점차 기술과 문화 발달에 의한 석성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울'은 목책을 지칭하며 인류문화 발달과정을 품은 화석이 되었고, 지명속으로 스며들어 지역에 역사와 정서를 전하고 있습니다.
'울'은 신석기 유적,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도 가축을 가둬두고 있는 그림으로 나타나듯이, 점점 삶 속으로 동화 변이되어 왔슴을 알수가 있습니다.
'울'은 더욱 발전하여 오랫동안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둘러친 성곽으로 까지 발전한것이라 하겠습니다.
신라말 장보고에 청해진 처럼 제주 해안가에 목책을 둘러 거촌투쟁을 불사한 역사에서도 나타나듯이, '울'은 이때에 이미 완전한 성곽으로 자리매김하였슴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청경
5.
검은 머리 두발달린 지능있는 생명들이 스스로를 가두어 두고 외침으로 부터 자신들을 지키려고 설치한 더 큰 '우리'를 우리글 한자어로 '성'이라 하며 배타에 도구로 완전한 문화를 탄생시켰습니다.
'성'은 '건모라'라고 하여 '큰마을'이라는 뜻입니다.
'건'은 '큰' '모라'는 '마을'을 뜻하는 '모르'가 되어 '몰'이 되는 '큰마을'입니다.
지구촌 문화로 넘겨주게 되니 maii(몰)은 '타운'을 의미하여 '큰마을'을 두고 한국인 조상들이 남겨둔 그대로 '우리'에서 지구촌으로 퍼져 '우리'에 영속문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몰(마을)은 우리글 한자로 城(성/castle)을 이루어 나타납니다.
인류는 집단 생활로 인해 주거 규모가 점차 커지자 '우리'를 '성'으로 둘러 외침으로 부터 보호하는 배타문화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성'을 축성하기 전에는 자연이 주는 지형을 그대로 '성'처럼 활용하여 온 곳이 우리글 한자어 '곡'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두 안전한 집단생활을 추구해온 삶에 의미와 방편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청경
6.
화석같은 옛지명으로 보면 '곡'은 '굴'이었기에 뜻이 같으며, '굴'은 지금도 분화되기전 원시 어원으로 남아 있습니다.
'얼굴'과 '동굴'처럼 '굴'에 뜻을 보전하여 피신과 주거에 안정을 도모하던 기반으로 '굴'은 '집'이라는 의미를 부여해 왔습니다.
옛집에 의미를 지니고 있는 '굴바위엄'이라는 우리글(한자) 속에서 '굴바위엄집'으로 한국인에 조상 의식이 문화로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돌집(동굴집) 속으로 살아 온 '우리'문화에 향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이두표기가 우리글 한자로 회기되는 신라 경덕왕4년 이전까지 '성'은 '불'이었슴을 볼 때, 큰골짜기 '굽불아화'는 '굴아화'로 전이되고 '큰성'이라는 '건모라'는 '큰마을' '대곡'이라는 지배자가 었던 지명으로 현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선사 암각화 반구대가 있는 울산시 소재 태화강 상류 '대곡리' 조금 아래 하류지명이 이두표기로 '굽불' 이었으며, 이두와 우리글 한자가 연음되어 '굴아화'로 전이되다가 '굴화'라는 지명으로 현존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 지리편에
'울릉'에서 '울'이 '우시'로 나타나는 것은 경북 영덕군 영해면을 비정하여 전기 고구려 역사에서 '우시'로 나타나 있으며, 신라경덕왕 4년에 우리글 한자를 재사용 공인하게 되면서, '유린'이라는 우리글 한자명 표기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린'은 마을을 뜻합니다.
신라는 경덕왕4년에 나라말 표기를 우리글 한자표기로 공포하면서, 이두문 '우시'는 우리글 한자문 '울'로 표기하게 되었습니다.
'울'은 마을을 뜻하여 지배 세력이 있는 집단이기에, 점차 통치력이 있는 '국'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우시산국'으로 독도와 울릉 역사에 뿌리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청경
7.
울릉도는 구한말 불법으로 들어온 일본인들을 몰아내고 공도정책을 폐지하면서, 태백산 등 경북ㆍ강원 양도 화전민들과 척박한 지역에서 삶을 이어온 남서해안 주민들을 이주시켜 정착시켰습니다.
당시 한국인들이 사용하던 '돌'을 '독'으로 부르던 어휘가 이주민들을 따라 그대로 사용되어 '돌섬'이던 독도를 '독섬'으로 칭하였고 '독도'로 지명속에서 한국문화에 화석이 되었습니다.
한국문화에서 '돌'을 두고 '독'이라 지칭해온 사례는 특정지역에서만 사용한것이 아니라, 전국에서 통용되어온 공용어 이었다는 점이 돌섬을 '독도' 지명으로 탄생시켜준 주요한 배경이라는 점입니다.
전라남도 여수, 고흥 지역에서는 지금도 '돌'을 '독'으로 부르고 있으며, '자갈'을 '독자갈'이라고 합니다.
서울 '도곡동' 지명에서 '도곡'은 '독'에서 왔으며 '돌'을 지칭하여 '도곡'이라는 지명유례를 내림하고 있습니다.
'독'이 '돌'을 지칭하고 있었슴은 전남 남해안 여수 지역 '독섬(돌섬)'에서 서울 '도곡'을 낳은 '독'은 모두 한결같이 '돌'을 지칭하여 '독'으로 불러온 증표입니다.
한국인이라면 자신은 싫어도 조상으로 부터 물려받은 고유한 문화유산입니다.
한국인 조상들에 의한 지구촌 DNA속에서 고대사회로 부터 '독'은 '돌'을 지칭하였고 '갑독'과 '캅독'은 다산과 번성을기원하며 남근석을 숭배하던 원시 신앙 '갑독문화(캅독)' 속에서 지구촌 카돌문화(큰돌문화/거석문화)가 되어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갑돌'이로 전래되어 다산과 화합을 의미하는 원시주술 신앙 속으로 스며 들어 내림되었고, 한국인들에 정서를 담은 무형문화유산 '갑돌이와 갑순이'설화로 구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돌'을 지칭하는 '독'은 전세계에서 다양한 분야에 스며들어 증명되고 있습니다.
청경
8.
독도는 지리상으로 울릉도에 가까워 울릉도 자도라고 합니다.
독도를 자도로 두고 있는 울릉군 도동일대는 1899년 대한제국 시절 혼란한 틈을 타고, 일본인들이 무단으로 들어와 어업침략발판으로 세운 도방청이 있던 곳입니다.
구한말 울릉도에 무단으로 들어온 일본인 벌목꾼들을 모두 몰아내고 '대한제국칙령제41호'를 반포했습니다.
1900년 10월 25일 독도를 당시 부르던 '돌섬'이라는 의미로 한자훈에 따라 '석도'로 명기하고 대한제국칙령제41호를 반포하여 국제(국법)로 지켰습니다.
울릉도 '울'속에서는 제국주의 수탈에 역사가 독도 침탈에 전초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구한말 제정 러시아 가문중에 허리우드 영화배우 율브린너 선대(조부)가 조선 삼림 벌체권을 따고, 울릉도 향나무와 간도에서 두만강, 백두산 삼림을 벌체해간 외세에 의한 역사에 발자취로 남아 있습니다.
강점기 건축한 '사카모토나이지로'에 적산가옥이 '울릉문화전수관'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울릉도 아리랑' 전수를 하며, 아픈 역사를 노래하는 문화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근년에 들어와 중공 전투기가 우리 DIZ를 침범했다고 하는 안보 우려가 있었고, 그 먼저 러시아 전투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하자 6.25이후 공군 최초로 발포를 하는 사태가 뉴스로 탔습니다.
심지어 중공 경비선이 동해로 들어와 천퇴(대화퇴)를 비켜지나 나선항까지 들락거리는 정황이 보이고, 사흘이 멀다하는 열도에 독도망동과 함께 일주일에 한번은 꼭 모습을 드러내고야 마는 독도 인근 일본 순시선에 궤적이 예사롭지 않는 역사에 경고입니다.
'독도'를 둘러치고 있는 외세가 120여년 전 역사에 스크린을 다시 돌려 비추고 있습니다.
'독도'를 '석도'로 명기하여 물려주신 선대에 소중한 역사와 지혜를 두고도 '우리'에 갇힌 '우리'가 '우리'속에서 반목을 거듭하는 동안, '독도'라는 '울'속에 갇힌 역사없는 동물들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 스스로에게 반문합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독도 도판 이미지를 "삭제하라"고 우리에게 보여준 IOC에 모습과, 다가올 도쿄올림픽에서 일본이 독도 명기에 대한 우리에 IOC 중재제안에 답변이 형평을 잃어버렸습니다.
한국 문체부 장관명의로 보낸 의견서에 IOC 일개 국장이 답서를 보내오면서 "일본이 독도를 표기한 것은 그냥 독도 위치만 표현한 것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인류사 스포츠 대제전을 총괄하는 IOC를 두고, 스포츠 맨십에 생명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우선 소중하게 지켜야 할 형평이 무엇인지?
그 여부를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청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