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4354년 辛丑年 2021.11.03.수.흐림 (하트) 계피의 효능 (Cinnamomum,benefit to health) - http://naver.me/F0KIxgGE (하트) "알약 먹을 때 물 많이 마시세요!" 영양제 효과 10배 내는 법 - http://naver.me/5rst89o1 (하트) 나이 들면 왜 잠은 줄고 살은 찔까? - http://naver.me/5fn7Hux8 (하트) 천식에 쓰이는 약은 어떤 게 있나요? - http://naver.me/F9QY9gZC (꺄아) 뒤늦게 선택한 인생길 - http://naver.me/G3JrTWTP https://youtu.be/OyA7pMF5cJg 오늘도 건강! 좋은 하루를~ 역대하 20장 22절~26절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승리를 하게 하시는지 하번 보시지요. 오늘도 용서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본문정리- 22 노래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노래를 부르니, 주님께서 복병을 시켜서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 산에서 온 사람들을 치게 하셔서, 그들을 대파하셨다. 23 오히려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이 짝이 되어, 세일 산에서 온 사람들을 모조리 쳐죽이는 것이 아닌가! 세일산에서 온 사람들을 쳐죽인 다음에는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이 서로 쳐죽였다. 24 유다 사람들이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망대에 이르러서 보니, 적군이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고, 모두 주검이 되어 땅에 엎드려 있었다. 25 여호사밧이 백성을 데리고 가서 전리품을 거두어들였다. 전리품 가운데는 상당히 많은 물건과 옷과 귀중품이 있었다. 그래서 각자가 마음껏 탈취하였는데, 전리품이 너무 많아 운반할 수가 없었다. 전리품이 이처럼 많아, 그것을 다 거두어들이는 데 3일이나 걸렸다. 26 4일째 되던 날, 그들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 거기서 주님을 찬양하였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그 곳을 ‘찬양(블라가)골짜기’라고 부른다. 22 노래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노래를 부르니, 주님께서 복병을 시켜서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 산에서 온 사람들을 치게 하셔서, 그들을 대파하셨다. -노래를 어떻게 불렀었나요? 대하 20: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가만히 앉아 찬양을 불렀던 것이 아니지요. 군대가 출병을 하여 그들과 맞서 싸우게 하시지요. 그 앞에 마치 총알받이 같이 무기도 없이 앞장 서서 찬양을 하고 나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 옛날 미국 전쟁을 보면 전쟁을 할 때 이렇게 하지요. 악기를 든 사람들이 제일 앞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나아가지요. 제일 먼저 이들이 죽는 것이지요. 일부 죽는 사람이 있겠지요. 그러나 작은 희생을 치르고 이기게 하시는 것이지요. 처음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여리고 성 전투의 경우는 좀, 다르지요. 제사장들이 앞서가며 나팔을 불고 백성을 아무 소리없이 성을 돌기만 하지요. 그런데 무장한 군대 일부가 먼저 앞서고 그 뒤에 나팔 든 제사장이 뒤를 따르고 그 뒤에 다시 무장한 군대가 따르는 형식이지요. 수 6:4,5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수 6:9 그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행진하며 후군은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더라 -그리고 성이 무너지면 그 때 마치 쫓기는 짐승을 잡듯 하는 것이지요. 수 6: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이때의 전쟁의 상황은 전쟁이라기 보다는 사냥하는 것 같은 입장에서 하는 전쟁이니, 지금의 모압과 암몬과 세일산 지역의 연합군을 맞는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지요. 지금은 말하자면 반대의 입장이지요. 짐승같이 쫓기는 상황과 같은 입장이지요. 그런데 그런 상대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적을 대항해서 싸우러 나가는 것이지요. 그것도 제일 앞에 무기도 없는 찬양하는 사람들이 서지요. 총알받이 즉 방패막이 인 것이지요. 이들을 방패막이 하며 나아가는 것이지요. 즉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것과 같은 상황인 것이지요. 이 두려움 속에서 하는 찬양은 어떤 찬양일 것 같은가요? 나가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주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 긴장된 찬양이겠지요. 무기를 든 군사들도 너무 열세인 상황이라 엄청 긴장이 되었겠지요. 그래서 여호사밧이 그들을 이렇게 격려를 하였지요. 대하 20:20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용기를 내야 하는 상황인 것이지요.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따라 용기를 내어 찬양을 하며 나아갔더니 승리를 하게 하신 것이지요. 용기를 내어 나아가는 것도 힘든데, 찬양까지 하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두려운 상황에서 말입니다.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이렇지요. 그 상황에서 믿고 담대하게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 상황에서 하는 찬양은 믿음의 결단이 있는 찬양이겠지요. 승리를 하고 난 다음의 찬양과는 다른 결연한 의지가 담긴 찬양인 것이지요.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의 찬양인 것이지요. 간절한 소망이 담긴 찬양이기도 하지요. 찬양도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의 찬양이 있는 것이지요. 이들이 한 찬양은 간단하지요. 하나님의 속성을 계속 말하고 있지요. 대하 20: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이지요. 이것이 찬양이지요.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감사하여라‘이지요.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지요. ’그의 인자하십이 영원하다‘ 주님의 성품과 속성을 찬양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고백인 것이지요. 감사와 믿음의 고백이 찬양인 것이지요. 상대에게 감사하라고 하는 것 또한 나의 믿음의 고백이지요. 내가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것보다 더 큰 믿음의 고백이지요. 이것이 진정한 믿음의 찬양인 것이지요. 아직 이루어지기 전에 하는 찬양이기에 그런 것이지요. 우리의 구원도 이루어지기 전에 믿는 믿음으로 받은 구원이지요. 그래서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요. 롬 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이것이 그래서 값진 믿음이 되는 것이지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소망에 대한 믿음으로 산다는 말이 되는 것이지요. 이루어지는 과정을 사는 삶이 믿음의 삶인 것이지요. 기대감이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때이지요. 이루어지면 잠깐 행복하고 말지요. 그래서 연애할 때가 가장 두근거리고 짜릿한 행복이 있지요. 어제 우리교회 설교 본문이 이렇습니다. 렘 29:10~1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들을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 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역사는 우리 인생의 살아가는 모습을 말하고 있지요. 택함받고, 계속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은 징계하시고 구하시고를 반복하시지요. 그러다가 그곳에서 쫓아내기까지 하십니다. 그러다가 구원자를 주신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그 구원자는 그들이 바라는 구원자가 아니셨지요. 나라를 회복하는 구원이 아닌 죄에서의 구원이었지요. 우리 또한 신앙생활의 과정을 보면, 육적인 삶의 평안과 기쁨을 꿈꾸며, 그렇게 열심을 내지만, 결국 마지막 바라는 것은 평안이 되지요. 우리의 마음속은 언제나 시끄럽지요. 싸움터가 따로 없지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힘과 능력이 딸리니 더 시끄러워지지요. 젊어서는 젊어서 대로, 젊은 혈기로 인해 시끄럽지요. 늙어서는 젊을 때의 영광을 다시 회복하고 싶어 시끄럽지요. 그러나 젊음은 가고, 능력이 없으니, 기가 죽을 살 뿐이지요.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지요. 그러나 그게 안되지요. 이제는 욕망을 이루는 것보다 평안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지지요. 그러나 육신이 편안해 지면 다시 욕망이 끌어 오르게 되지요. 그러면 또 시끄러워지지요. 주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도 바로 평안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평안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누군가의 인정을 받을 때이지요. 어제 장모님 생신으로 모였는데 처남들이 사정이 있어 못 온다고 하니, 장모님이 많이 힘들어 하시더군요. 그런데 나중에 처남들이 다 오니, 장모님이 신이 나셨습니다. 음식을 바리바리 싸주시며, 가는 처남과 손주들을 배웅하며, 신이나 있으신 것을 보며, 인생은 결국 죽을 때까지 인정에 목이 마른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속하여 있는 존재로 하나님의 최종적인 인정을 받지 못하면, 끝까지 방황하게 되어있는 것이지요. 이 세상에서 부모를 통해 충분한 인정을 받는다고 하여도 그것도 한계가 있지요. 저같이 부모의 인정을 받지 못해 평생을 방황하며 그것에 얽매여 사는 경우도 참 많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면 그 채워지지 못한 부분이 다 채워지게 되는 것이지요. 세상의 욕구와 욕망은 마치 터진 웅덩이 같고, 밑빠진 독과 같아 절대 채울 수가 없지요. 아무리 우리가 노력을 하여도 채울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신의 마음 속은 시끄러울 수 밖에 없고 항상 가정과 나의 주위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좋은 날보다는 시끄러운 날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항상 용서가 필요하지요. 용서가 그 부족분을 매우게 되지요. 우리가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용서인 것이지요. 사람에게 용서받지 못했다면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로 채워야 하겠지요. 위로는 용서이지요. 격려가 용서이지요. 세일:「털이 많다」 (=숲, 즉 관목이 우거진) 에돔 땅에 살고 있던 호리 족속의 로단˙소발˙시브온˙아나˙디손˙에셀˙디산의 조상이다(창 36:20-21). 호리인의 전통적인 조상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마 그들의 국토(세일 산)의 명칭에 불과할 것이다. 세일의 명칭은 종종 에돔 전체를 가리키는데 쓰이고 있다(창 32:3,33:14,16,36:30,민 24:18,신 1:44,2:4,8,12,22,29,33:2,수 11:17,12:7,삿5:4,대하 20:23,사 21:11). 그러나 보다 한정적으로는 세일 산(MountSeir)으로서 알려져 있는 부분을 가리킨다. 즉, 아라바 저지의 동쪽이며, 사해 남단의 동쪽에서 멀리 남쪽으로 뻗은 산악 지대를 가리키고 있다(창 14:6,36:8,9,신 1:2,2:1,5,수 24:4,대상 4:2,대하 20:10,22,23,겔 35:2,3,7,15). 이 땅의 주민은 `세일 자손'이라 불리우고(대하 25:11,14), 또 `호리 족속'의 계보에 들어 있다(창 36:20,21=대상 1:38). 에서:「털이 많음」 아내 리브가에 의한 이삭의 쌍둥아의 하나인데, 야곱의 형이다. 창 36:2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 창 36:19~21 에서 곧 에돔의 자손으로서 족장 된 자들이 이러하였더라 그 땅의 주민 호리 족속 세일의 자손은 로단과 소발과 시브온과 아나와 디손과 에셀과 디산이니 이들은 에돔 땅에 있는 세일의 자손 중 호리 족속의 족장들이요 축복합니다 강릉에서 11/03.수.흐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