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록성 재경 대병면 향우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빅토리! 빅토리!
유난히도 무더웠던 8월과 추석 명절 절기가 지났다. 지금은 10월 초순, 옛날 같으면 또 하나 같이 우리를 기다리는 추억 거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운동회였다. 약 한달 전부터 청백으로 나누어 운동회 연습을 해왔다.
운동회날은 아침부터 어머니는 김밥, 삶은 달걀, 밤, 고구마, 등 푸짐한 먹거리 준비에 바쁘셨고, 학생들은 청군 백군 머리띠를 두르고 학교로 향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만국기가 펄럭이는 넓은 운동장에서
신호총 소리에 맞추어 조별 달리기 하며 1등, 2등, 3등 손도장을 찍어 주고 공책을 상으로 받았다. 이때 받은 상 공책 한권은 지금의 롯또 복권 당첨의 기쁨 보더 더 큰 기쁨이요 즐거움이었다.
저학년은 꼭두각시 민속춤, 고학년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부채춤, 소고춤 등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학생들이 줄다리기, 이를 악물고 힘껏 줄을 잡아당겼다.. 지켜보는 아이들은 목청껏 응원하며 소리쳐 힘을 실어주었다.
1학년들의 키보다 높은 큰 공 굴리기, 모든 학년이 참여하는 단체 계주까지. 넓은 운동장에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와 응원소리로 가득 넘쳤다. 하이라이트(high light)는 청백 이어달리기(계주)였다. 이때 목청 높여 불렀던 응원가 중에는 「따르릉 따르릉 전화왔어요 청군이 이겼다고 전화왔어요 아니야 아니야 그건 거짓말 백군이 이겼다고 전화왔어요.」 또 다른 응원가는 「이 세상에 백군 없으면 무슨 재미로 해가 떠도 백군 달아 떠도 백군 백군이 최고야! 아니야! 청군이 최고야! 또 아니야! 백군이 최고야!」
운동회는 기다리는 학생도 학생이려니와 학부모님들 또한 고장의 큰 축제인 운동회에 기대감이 컸습니다.
왜냐하면 학부모들도 참여 가능한 졸업생(학부모) 달리기, 마라톤 등 학교가 마련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일등은 정해져 있었지만 올해는 하고 자신감과 기대감이 부풀었던 사람들도 있었으리라. 오자미로 청백 바구니 터트리기가 끝나면 「즐거운 점심시간」이란 큰 글씨가 오색종이와 함께 쏟아져 나왔다.
운동회 날 점심 준비를 열심히 해온 어머니들은 온가족과 함게 나무 그날에 앉아서 찹쌀로 만든 찰밥에다 밤과 연시, 싱싱한 배추 겉조리, 삭힌감, 삶은 밤, 옥수수, 고구마, 콩밥, 약밤 등 시골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일체가 품평회를 하는 듯 등장하곤 했다. 학생들의 개별 달리기 상품으로는 공책이 고작 몇권이냐?가 문제였지 이날만은 빈부의 차이 없이 마음껏 즐거워 했던 고장 축제의 날.
티 없는 어린 시절 아! 아! 그때 그 시절이 어느때나 또 오려나 그런데 나는 어릴 때부터 눈이 안보여 어머니가 사다주시는 선물만 기다리는 처지였지만 사춘기 때 쯤이면 논밭에 와서 새겼던 친구들이 내버려두지 않고 꼭 데리고 가는 바람에 오히려 귀찮을 정도였다.
지난 추석전 금요일 경남 창원시청 국장으로 정년을 마친 박00 친구가 오랫만에 통화가 되어 이메일로 편지를 보냈는데 그 친구와의 우정은 참좋은 친구였다. 요즘은 농촌 인구의 감소로 사라져가는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기억 속으로 그 시절을 오늘도 그려보며 마음 속에 고이 담아두고 싶다.
-2024.10.10, 합천일보
☞ 글쓴이 오녹성씨는 맹인이다. 어릴적 냇가에서 놀다 6.25 전쟁 때 떨어진 폭탄이 터져 시력을 상실하였는데, 이로인해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지니 못해 한 동네 살던 박종훈(후에 창원시 국장으로 퇴직)이란 친구를 통해 그날그날 학교에서 공부한 내용을 전해 들으며 자신의 역량을 키워나갔다고 한다. 그후 지독한 노력으로 기타를 배워 청년시절엔 여름철 동네마다 열린 콩클대회(노래자랑)마다 초청을 받아 기타를 치며 반주를 넣던 멋쟁이었다. 그후 상경하여 안마 등을 배워 생활하였다.<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