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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7코스는
서귀포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시작하여
월평동 월평리 아왜낭목버스정류장까지 이어지는
총거리 17.6킬로미터, 난이도 '중' 구간이다.
오늘 여정 출발지도 숙소에서 멀다.
숙소에서 나온 시간이 6시 20분,
202번 버스를 타고 평생학습관 정류장 하차하여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 도착하니 8시 반이 지난다.
상점 문을 열기에 이른 시간인데도
아침 식사를 하는 테이블이 몇 있다.
먼저 다가와 인사하며 도울 일이 있는지 묻는 직원에게
제주 올레 홈페이지에서 풀지못한 숙제를 해소한다.
올레 코스 중 - 1, A, B코스에 대한 궁금증,
답은 - 1은 완주를 위해 반드시 걸어야 할 코스고
A와 B는 선택하여 한 곳 만 걸어도 완제 인증이 된다.
서문로터리다.
오랜만에 정방향,
파란색 화살표를 따라간다.
서문로터리에서 왼쪽으로 돌아 횡단보도 건너
서귀교로 올라선다.
한라산 정상부가 구름에 가렸다.
서귀교 난간이 조금 특이하다.
바닥에 박힌 설명문에는
'서귀포 칠십시 주상절리를 형상화'.
난간에 일정한 굴곡을 주어
주상절리를 표현하였단다.
천지연폭포가 있는 연외천 상부를
서귀교에서 올려본다.
'서귀포 칠십리 시 공원'으로 들어선다.
제주 올레 7코스와
이중섭미술관과 소암기념관까지 이어지는
4.9킬로미터 작가의 산책로에도 포함된다.
조선시대 초기, 제주도를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세 고을로 나누었다.
정의현에 속한 서귀포 서귀진 관문까지 거리가
정의현청 관문에서 거리가 70여 리가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8 정의현조를 살펴보면,
정의현성에서 홍롯내[洪爐川, 솟밧내]까지 거리가 64리이고,
서귀포 방호소까지 거리가 71리라 했다.
1679년(숙종 5)에 당시 정의현감 김성구가 쓴 『남천록(南遷錄)』을 보면,
“정의현청 관아에서 옷귀[지금의 의귀리]까지가 30리이고,
옷귀에서 서귀포까지가 40리이다.
길은 모두 바다와 어우러져 있지만 험한 곳은 없었다.
70리를 지나는 동안 옷귀와 쉐둔[지금의 효돈] 두 마을을 제외하고는
사람 사는 곳이 없었다.”라고 기록했다.
18세기 말에 쓰인 『제주읍지』의 「정의현지」를 보면,
“서귀리는 정의현청 관문에서 서쪽으로 70리의 거리에 있다.
천지연도 서쪽으로 70리 거리에 있고,
서귀포도 서쪽으로 70리 거리에 있다.”라고 했다.
<출처 : 디지털 서귀포 문화대전>
서귀포시와 자매도시를 맺은
일본 이바라키현 가시마시 친선협회에서 기증한 기금으로
매화나무를 식재하여 조성한 '한일 우호 매화 친선 공원'이다.
공원 내 천지연폭포가 조망되는 장소에서
폭포를 사진에 담는다.
서귀포 해안선의 길이가 70리,
또는 서귀포 앞바다 섬 둘레가 70리라는 데서
‘서귀포 칠십리’라는 말이 나왔다고도 한다.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서귀포 칠십리' 가요가
1938년 남인수 노래로 발표되면서다.
삼매봉입구에서 절벽을 따라 600m 구간에 조성된
시(詩) 공원이다
재해위험지구 정비사업으로 추진되어
서귀포 관련 시비와 노래비를 공원 곳곳에 세워놓았다.
공원을 빠져나와 삼매봉으로 가는 길,
도로 가운데 로터리처럼 나무가 서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선다.
왼쪽 바다 위 범섬이 보인다.
삼매봉 오르는 길이다.
왼쪽은 '진입금지'로 표시하고 있다.
방송 중계탑이 보인다.
'KBS서귀포 방송센터'다
정상 전망 정자로 오르는 계단이다.
노인성, 수성이라고 부르는 카노푸스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태양, 시리우스 다음으로 밝은 밝은 별이다.
동양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
'수명을 관장하는 별'로 여긴다.
이 별을 세 번 보면
무병장수한다고 알려져있다/
정상에 있는 '남성정'이다.
남극에 나타나는 별,
카노푸스를 이르는 '남극노인성'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정상 아래 '남성대'표지석이 있다.
예전에 누대가 있었던 것 같다.
뒷면에는 시비가 있다.
'세송이 매화닮아 삼매봉 되었던가,
왜구 침노를 경계하는 봉화,
남극천 저 멀리 노인성...'
내리막 길이 한동안 계단으로 이어진다.
외돌개휴게소 주차장 옆으로 내려선다.
'황우지 선녀탕', 처음 듣는 지명이다.
올레 코스로 이어지지 않는 지명,
사적으로 만들어진 안내문, 신선바위, 선녀탕의
유혹에도 일순 망설인다.
다행히 그러 먼 거리는 아니라
내려가 보기로 한다.
저 아래 바위를 두른 소가 보인다.
'황우지 선녀탕'이다.
그 소를 두른 바위가 '신선바위'다.
''황우지'는 '황고지'가 변한 것으로 보인다.
'황고지'는 '무지개'의 제주도 고어다.
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목욕을 하고 갔으리라는 상상이 된다.'
여름에는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다.
건너편 해안 암반이 보인다.
일명 '폭풍의 언덕'이라고도 하는
동너븐덕(남주 해금강)이다.
신선바위 군 중 제일 오른쪽이다.
자세히 보니 돌계단을 포함한
길이 보인다.
물이 빠져 드러난
해안가 바위를 딛고 바위로 올라간다.
나무가 우거진 정상 좁은 공간은
딱히 볼 만한 풍경이 없다.
건너 바라다보이는
폭풍의 언덕으로 이어지는 해안모습이다.
절벽 아래 해안에 동굴이 보인다.
모두 12개, 일본군 동굴진지다.
태평양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일본군이
연합군의 제주도 상륙에 대비하여 자폭용 어뢰정,
일명 '회천(回天)을 숨겨두었던 곳이다.
해안에서 올라와 절벽 위 언덕을 따라 걷는다.
방금 지나온 선녀탕과 신선바위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을 보인다.
수학여행 온 것으로 보이는 단체 관광객이
무리를 짓고 있다.
폭풍의 언덕, 동너븐덕이다.
황우지선녀탕을 두른 신선바위와
앞바다에 문섬, 범섬, 섶섬이 떠있고고
해안절벽이 길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남주해금강이라고도 일컫는다.
폭풍의 언덕 끄트머리 못미쳐
'서귀포 칠십리', 노래비가 서있다.
작사 조명암, 작곡 박시춘, 노래 남인수
사연을 가진 노래다.
시인 겸 작사가인 조명암은
광복 후 월북한다.
이 후 노래 작사가가 추미림, 박남포 등
가공의 인물로 바뀌고 개사가 된다.
앞 바다에 문성이 보이고
왼쪽에는 섶섬이 보인다.
법환포구 방향이다.
왼쪽으로 보이는 섬이 범섬이다.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삼매봉이다.
중국인, 수학여행 단체가 지나가니
쓸쓸하리만치 조용해졌다.
해안 절벽 위 길을 걷는다.
'돔베낭길'이다.
상록수가 울창한 숲이다.
예전에는 도마처럼 잎이 넓은 나무가 많았단다.
'돔베'는 '도마'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섬인듯,
머리에 키작은 나무와 풀이 털처럼 보이는 바위가 보인다.
'외돌개'다.
벌써 삼십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신혼여행지로 찾아왔던 제주도,
지금처럼 특별한 정보없이 왔었다.
마침 숙소가 중문관광단지 안이라
걸어왔던 곳이 여기다.
오늘은 혼자다.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이 생각난다.
아쉬운 마음을 담아 사진과 함께
보고싶다는 안부를 전한다.
다른 관광지는 다 희미하거나 잊혀졌는데
유독 이 곳만은 기억에 남는다.
특별함이란 경관이나 가치가 아닌
추억이 아닐까?
고려 말, 백년간 제주를 직할하던
원나라 목호를 정벌하기 위해 최영장군이 파견된다.
범섬으로 달아난 잔당세력 토벌을 위하여
외돌개를 장군 모습으로 변장시켰다 하여
'장군바위'라고도 부른다.
외돌개해변 위 공원을 걷는다.
도마처럼 잎이 넓은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해안 절벽이 잠깐 드러나는 공간에서
사진을 담는다.
강아지풀 같은 털이 난
빨간 꽃이 눈에 들어온다.
긴 길을 걷는 사람들이
더없이 편한한 표정이다.
벼랑 위라는 위기감은 전혀 느낄수 없다.
공사현장에 막힌 올레가
다시 마을길로 올라간다.
태평로에 올라 서귀포여고를 지나고,
다시 왼쪽으로 꺽어져
해안으로 향한다.
종려나무가 무리를 이룬 해안,
크고작은 돌이 해변을 가득 채웠다.
수량이 풍부하고 골짜기가 깊은 계곡,
'속골'이다.
아침을 굶었더니 시장하다.
해안가 노상에 천막을 친 간이 식당이 보인다.
물질을 하시는지 해산물도 보인다.
'해물라면 오천원',
자리에 앉아 라면을 주문한다.
홍합과 조개, 알 작은 전복 서너개가 들었다.
공기밥을 주문해봤지만 없단다.
가방을 뒤져 지갑을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급한 마음에 스미트폰으로 이체를 하고 일어선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파도 일렁임은 점점 거칠어진다.
제주올레 길을 만들던 세 번째 시기인 2007년,
길을 찾아 헤매던 올레지기 김수봉이
염소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삽과 곡괭이로만 만들었다는 수봉로' 입구다,
해안가 숲길을 지나고
해안 자갈길을 지나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예보는 알고있었지만 당황스럽다.
아직 본격적인 비는 아닌듯 하여
그냥 걷는다.
공물깍이다.
천둥과 벼락이 치면 물이 솟는단다.
여름에는 비가 많이 와 공물이 터지면
식수로도 사용했지만
주로 세탁과 목욕용도로 썼다고 한다.
'깍'은 '끝 부분'을 가르키는 제주도 사투리다.
바닥을 뒤집는지
바다 물빛도 달라진듯 하다.
파도는 더 조급하게 뭍으로 밀려든다.
법환동 동쪽 마지막 해안가 언덕,
이 동산에서 보는 달의 정취가 일품이라
망(望) 달(月)이라고 하는 '망다리'다.
또는 해안으로 침입하는 외적을 감시하기 위해
망대를 세웠던 곳이라
'망다리'라고 불렀다고도 전해진다.
망다리에서 보이는 해안가 모습과 범섬이다.
법환포구에 다다른다.
법환포구다.
포구옆에 용천수가 보인다.
목호를 정벌하러 온 최영장군은
목호군 대장이 범섬으로 도망가자
이 곳에 군막을 치고 병사를 독려하여 잔당을 섬멸했다고 한다.
군막을 '막숙'이라고 했는데
이 곳에 막숙을 설치하여 '막숙물'이라고도 부른다.
'막숙물'은 동, 서가름물을 통칭한다.
동쪽 동네에서 나는 물이라하여
'동가름물'이라 한다.
바로 옆 용천수 '서가름물'이다.
서쪽 마을 주민이 주로 사용했다.
'가름'은 '동네'를 뜻하는 방언이다.
해안가 노천 풀장처럼 보이지만
해녀체험시설이다.
목호 잔당 토벌을 위해
이 곳에서 범섬까지 뗏목을 이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배염줄이','배를 연결하여 줄을 이었다고
해석해야 할까?
범섬이 온전히 두 개로 보인다.
해안가 바위가 하얗다.
까마귀와 물새들이 앉아
똥을 싸 하얗게 변색되어 '흰돌밑'이라 한다.
이 곳 역시 '환해장성터'다,
해안도로 왼쪽 해안가 포장길을 걷는다.
제주 올레 개척당시
너무 험해 지날 수 없던 길이다.
올레지기들이 손으로 돌을 고르고 옮겨
2009년 2월 이 길을 열었다.
'일강정 바당올레'다.
수고하신 이들의 노고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숲을 지난다.
앞바다 가까운 곳에
섬 하나가 보인다.
해수면이 낮아지는 저조시 드러나는 섬,
'서건도'다.
'썩은 섬'이라고 불렸다.
이 앞바다에 종종 돌고래떼가 출현한다.
7코스 중간스탬프 찍는 곳이 보인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올레요 이레 7쉼터'라는 간판이 있다.
11킬로미터 통과하는 지점이다.
종려나무가 있는 쉼터를 지나는데
물이 솟는 곳이 있는지
물웅덩이가 몇 곳 있다.
밭길,
숲길을 지난다.
해안 바위를 때리는 파도가
그 기세를 더 높인다.
잠시 바다를 벗어난 올레는
도로로 합류한다.
해안 이어도로가 악근천을 지나는
악근교 위에서 천 상류를 바라본다.
풍부하지는 않지만
수량이 제법 보인다.
켄싱턴리조트 서귀포로 올레가 들어간다.
넓은 정원이 잘 가꿔졌다.
하늘은 여전히 흐리고
구름은 한라산을 지워놓았다.
해안 절벽 위 쉼터 정자에
우체통이 자리잡고 있다.
바닷가 우체국,
아마도 느리게 배달하여 오늘 추억을 소환하겠지?
정자 앞에서 조망한 바다다.
좌측으로 악근천이,
우측에는 강정천이 바다와 합류한다.
리조트부지 내 해안 절벽으로
올레가 지나간다.
계단을 내려가
반대편 강정천 변으로 내려선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건물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강정 '제주해군기지 민군 복합항'이다.
악근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넓은 암반이 드러나있다.
리조트 부지 끝 무렵,
리조트 쪽 절벽에
주상절리대가 뚜렷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도로로나와
강정교에서 하류를 사진에 담는다.
강정천은 제주 대부분의 하천과 달리
사계절 내내 물이 흐른다.
물이 맑고 차가워
서귀포 시민들도 피서를 위해 즐겨 찾는 곳이다.
은어 서식지로도 알려져 있다.
도로변에 현수막이 가득하다.
민군복합항 건설에 반대하는
지역민, 시민, 환경단체 등이 게시해놓았다.
관함식철회를 요구하는 내용도 보인다.
현수막에 자주등장하는 '구럼비',
찾아 본 내용은 이러하다.
제주특별도 서귀포시 대천동 앞 바닷가에 펼쳐져 있는
거대한 용암너럭바위를 말한다.
용암이 흘러내려 굳은 바위이지만
화산섬 제주도의 여느 바위와 달리 평평한 모습이며
길이가 1.2km, 너비가 150m에 달한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당시
구럼비 바위를 발파하는 작업을 둘러싸고
그 보존가치를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구럼비 바위와 해안’은 국내 유일의 바위 습지이자 생태계의 보고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과
구럼비는 제주도 일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지형으로
별로 가치가 없다는 주장이 충돌했다.
<출처 : 에듀윌 시사상식>
도로변에 천막이 보인다.
강정 해군기지 반대 싸움 4,000일,
2018년 4월 29일 기준이었으니,
그리고도 1년이 지났다.
북과 꽹가리, 기지 입구가 소란스럽다.
시위를 마친 일행이
위병소 입구를 나와 휑한 도로를 행진한다.
시위를 지원하는
가건물 막사를 지난다.
현장을 벗어나니
감귤 하우스, 제주도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하우스 안에서는 라디오 소리와
낳선 이방인들의 언어가 간간히 들린다.
그늘 아래,
배낭을 내려놓고 생수를 꺼내
잠깐 휴식을 취한다.
해물라면을 먹고 찾지 못한
지갑을 찾는다.
두 어번 꼼꼼히 뒤져도 보이질 않는다.
불안한 느낌,
허리 앞에 맨 쌕에 두었던 지갑을
마지막으로 꺼낸게 언제 였던가?
버스 안에서 바르는 썬크름을 쓰면서
쌕을 뒤져 의자 옆에 두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스마트폰으로 제주도 버스를 검색해 보지만
몇 개 회사가 확인된다.
그 중 한 곳으로 연락해보니
특정 번호 버스 회사는 어딘지 알지 못 하겠단다.
제주도 통합 민원 콜센터를 연결,
해당 버스회사를 확인하여 통화하니
그 시간 정류장을 통과한 기사 핸드폰번호를 알려준다.
혹여 운행중일까?
조심스럽게 전화를 한다.
다른 승객이 전해준 것은 없지만
한 번 찾아보겠다고...
강정마을 와곽을 지난다.
마을 안 용천수 '큰강정물'이다.
물은 말라 용도를 알 수 없고
풀이 자라 용출부분과 한 쪽 저수조를 넘고있다.
시멘트 포장로 옆 수로에
물이 흘러넘친다.
물 속에 까만 것들이 보인다.
벼농사를 망치는
병해충을 먹이로 사는 우렁이가 우글거린다.
다시 바다로 나온다.
15킬로미터 지점이다.
월평포구 내항이 왜소하다.
하지만 파도는 전혀 걱정 없을 듯
안온하다.
파도를 막는 방파제는
양쪽 언덕 사이 좁은 목 지나 있다.
올레에서 해안으로 몇 걸음 들어간 곳,
자연 방파제 바위가 만들어낸
비밀스러운 정원 물빛이 곱다.
해안을 빠진올레가 마을로 이어져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뭍의 흔한 풍경,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 뒤
야자수가 이색적이다.
해안 바위 절벽 위
숲길을 지난다.
굿당산책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일주일마다 정성을 올리던 굿당,
이레당으로 가던 길이다.
한가로운 숲길이 한동안 이어지다
올라선 도로 아래
작은 천으로 모여든 물이
웅덩이에 고여있다.
전방이 틔인 곳,
계곡하류 방향을 조망한다.
너머 바다가 있다.
마을길로 접어든다.
안쪽으로 보이는 상점에
'천혜향 한 봉지 오천원'안내문이 유리창에 붙어있다.
칼도 필요없이 간편하게 까먹을수 있는,
여행자에겐 괜찮은 먹거리겠다 싶은 마음에
유리문을 밀어보지만 안에서 잠겨있다.
좌측으로 꺽어져 차도로 올라서
조금 더 진행하니
아왜낭목쉼터 언덕이다.
아왜낭목버스정류장 앞에
8코스 시작점 표지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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