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 필사 23회 (M2권 7차시 M44,45)
1. 모임 내용
M44. 교리 문답의 짧은 경 Cūḷa vedalla sutta
M45. 법 실천의 짧은 경 Cūḷa dhammasamādāna sutta
오늘 필사 내용 일부를 옮깁니다.
1) M44. 2 : “스님, ‘존재 더미, 존재 더미,’라고 합니다. 스님, 세존께서는 무엇을 존재 더미라고 하셨습니까?” “도반 위사카여, 세존께서는 취착의 [대상인] 이들 다섯 가지 무더기들을 존재 더미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취착의 [대상인] 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인]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인]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인] 심리현상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인] 알음알이의 무더기입니다. 도반 위사카여, 세존께서는 취착의 [대상인] 이들 다섯 가지 무더기들을 존재 더미라고 하셨습니다.”
2) M44. 7.중에서 : “스님, 그러면 어떻게 해서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가 생깁니까?” “도반 위사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인도되지 않아서,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느낌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자아 안에 느낌이 있다고 관찰하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인식을…, 심리현상들을…, 알음알이를 자아라고 관찰하고, 알음알이를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자아 안에 알음알이가 있다고 관찰하고, 알음알이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도반 위사카여, 이렇게 해서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가 생깁니다.
3) M44. 11. “스님, 성스러운 팔정도에 三學이 포함됩니까, 아니면 三學에 성스러운 팔정도가 포함됩니까?”v“도반 위사카여, 성스러운 팔정도에 삼학이 포함되는 것이 아니고, 삼학에 성스러운 팔정도가 포함됩니다. 도반 위사카여,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의 이 [세 가지] 법은 계의 무더기[戒蘊]에 포함됩니다. 바른 정진, 바른 sati, 바른 삼매의 이 [세 가지] 법314)은 삼매[定蘊]의 무더기에 포함됩니다. 바른 견해, 바른 사유의 이 [두 가지] 법은 통찰지의 무더기[慧蘊]에 포함됩니다. *314) ‘바른 정진(sammā-vāyāma)’ 등 세 가지 법 중에서 삼매(samādhi)는 자기의 성질로는 대상에 하나 된 상태(ekagga-bhāva)로서 집중할 수 없다. 그러나 정진(vīriya)이 노력하는 역할(paggaha-kicca)을 성취하고 sati가 대상에 깊이 들어가는 역할(apilāpana-kicca)을 성취할 때 그것의 도움으로 가능하다. 예를 들면 '축제를 벌이자.'라고 하면서 세 친구가 정원에 들어갔을 때 한 친구가 꽃이 활짝 핀 짬빠까 나무를 보고 손을 뻗어서 꺾으려 해도 꺾을 수 없자 두 번째 친구가 등을 구부려준다. 그가 그의 등에 올라섰지만 불안정하여 꽃을 꺾을 수 없자 세 번째 친구가 어깨를 대준다. 그는 한 친구의 등에 올라서서 다른 친구의 어깨를 잡고 마음껏 꽃을 꺾어 치장을 하고 축제를 벌이는 것과 같다. 이 비유의 적용은 다음과 같다. 바른 정진 등 함께 생긴 세 가지 법들은 함께 정원으로 들어간 친구와 같다. 대상은 활짝 핀 짬빠까 나무와 같다. 자기의 성질만으로는 대상에 하나 된 상태로 집중할 수 없는 삼매는 손을 뻗어보지만 꽃을 꺾을 수 없는 사람과 같다. 정진은 [자기 등에 올라서도록] 등을 구부려준 친구와 같다. sati는 어깨를 주면서 옆에 서 있는 친구와 같다. 마치 한 사람의 등에 올라서서 다른 사람의 어깨를 잡고 또 다른 사람이 원하는 만큼 꽃을 꺾을 수 있듯이 정진이 노력하는 역할을 하고 sati는 대상에 깊이 들어가는 역할을 할 때 그 도움을 받아 삼매는 대상에 하나 된 상태로 집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삼매는 여기서 같은 종류(sajāti)로 삼매의 무더기[定蘊]에 포함되었고, 정진과 sati는 역할(kiriya)로 포함되었다.(MA.ii.362)
4) M44.20. "스님, 상수멸의 증득에서 출정한 비구에게 몇 가지 감각접촉이 닿습니까?" "도반 위사카여, 상수멸의 증득에서 출정한 비구에게 세 가지 감각접촉이 닿습니다. 그것은 공한 감각 접촉, 표상 없는 감각접촉, 원함 없는 감각접촉입니다."328)
주328) "'공한 감각 접촉' 등은 본질적인 특성과 대상에 의한 것이다. 본질적인 특성에 의하면, 공함이라는 것은 과의 증득을 말하고, 그 과의 증득과 함께 생긴 감각접촉을 두고 공한 감각접촉이라 한다. 대상에 의하면, 열반은 탐욕 등이 비어있기 때문에 '공'이라 하고, 탐욕의 표상 등이 없기 때문에 '표상 없음'이라 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원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원함 없음'이라 한다. 그 공한 열반을 대상으로 일어난 과의 증득에서 감각접촉은 공이라 한다." (MA.ii.367)
5) M44. 28 : “스님, 모든 즐거운 느낌에 대해 탐욕의 잠재성향을 버려야 하고, 모든 괴로운 느낌에 대해 적의의 잠재성향을 버려야 하고, 모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 무명의 잠재성향을 버려야 합니까?” “도반 위사카여, 모든 즐거운 느낌에 대해 탐욕의 잠재성향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괴로운 느낌에 대해 적의의 잠재성향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 무명의 잠재성향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반 위사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그는 이것으로 탐욕을 제거합니다. 거기에는 탐욕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습니다. 도반 위사카여, 여기 비구는 이렇게 반조합니다. ‘성자들이 증득하여 머무는 그런 경지를 언제 나는 증득하여 머물게 될 것인가?’라고, 이처럼 위없는 해탈들에 대한 염원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에게 그 염원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이 생깁니다. 이것으로 그는 적의를 제거합니다. 거기에는 적의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습니다. 도반 위사카여, 여기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소멸하였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이것으로 그는 무명을 제거합니다. 거기에는 더 이상 무명의 잠재성향이 잠재하지 않습니다.”
6) M44.29. “스님, 즐거운 느낌 이면은 무엇입니까?” “도반 위사카여, 즐거운 느낌의 이면은 괴로운 느낌입니다.” “스님, 괴로운 느낌의 이면은 무엇입니까?” “도반 위사카여, 괴로운 느낌 이면은 즐거운 느낌입니다.” “스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이면은 무엇입니까?” “도반 위사카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이면은 무명입니다.” “스님, 무명의 이면은 무엇입니까?” “도반 위사카여, 무명의 이면은 명지(明知)입니다.” “스님, 명지의 이면은 무엇입니까?” “도반 위사카여, 명지의 이면은 해탈입니다.” “스님, 해탈의 이면은 무엇입니까?” “도반 위사카여, 해탈의 이면은 열반입니다.” “스님, 열반의 이면은 무엇 입니까?” “도반 위사카여, 그대는 질문의 범위를 넘어서 버렸습니다. 그런 질문들은 한계를 정할 수가 없습니다.337) 도반 위사카여, 왜냐 하면 청정 범행은 열반으로 귀결 되고338) 열반을 궁극으로 하고 열반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339) 도반 위사카여, 그대가 원한다면 세존을 뵙고 세존계 이뜻을 여쭈어 보십시오. 그래서 세존께서 설명해 주시는 대로 호지 하십시오.”
337) “그런 질문들은 한계를 정할 수가 없다.”(nāsakki paňhānaṁ pariyantaṁ gahetuṁ)’고 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이면 (裏面,裡面,뒷면)이 없는 법(appaatibhāga-dhamma)의 이면 (paṭibhāga)를 질문한 것이다. 열반은 이면이 없는 법이어서 푸른이나 노란색으라고 어떤 법과 함께 그 이면을 보여줄 수가 없다.(MA.ii.370)
338) “열반으로 귀결되고(nibbān-ogadho)란 열반에 확립됨(patiṭṭhita)을 말한다.”(SA.ii.335)
339) ‘그대는 질문의 범위를 넘어서 버렸습니다.’부터 여기까지는 「상윳따 니까야」 제 3권 「마라경」(S23:1) §6과 제 5권 「운나비 바라문경」(S48:42) §8에도 나타나고 있다.
2. 다음 필사 범위 : 24회 M46-48 / M49,50
독송한 공덕을 모든 존재들에게 회향합니다. 모든 존재들이 나와 똑같이 고르게 나누어 가지기를. sādhu sādhu sādhu!
*독경 참가 신청은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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