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벌레의 문답
김미순
이번해 <김승옥 문학상> 작품집이다.
권여선의 <사슴벌레의 문답>, 최진영의 <썸머의 마술과학> , 서유미의 <토요일 아침의 로건> , 최은미의 <그곳> , 구병모의 <있을 법한 모든 것> , 손보미의 <끝없는 밤> , 백수린의 <빛이 다가올 때> 가 실려 있다.
나는 일곱 소설 중에 <사슴벌레의 문답> 과 <썸머의 마술과학> , <그곳> , <빛이 다가올 때>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 문학평론가 양윤의 평 ㅡ커다란 사슴벌레 한 마리가 약을 친 방안에서 뒤집힌 채 버둥거리고 있을 때 "방추앙도 있는데 도대체 그렇게 커다란 사슴벌레가 어디로 들어오는 거예요?" 방문객의 질문에 여행지의 집주인이 이렇게 답한다. "어디로든 들어와" 어디로? 어디로든. 이 "의젓한" 답변에 재미를 느낀 일행은 온갖 질문에 '든 ' 을 덧붙여 말놀이를 벌였고, 단음절의 어미 혹은 조사는 세상의 온갖 질문들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전혀 다른 해답으로 이끈다. 운명론에서 자유의지까지, 체념에서 희망까지 모든 ㅈ대답이 저 '든' 에 들어 있다. 눈앞에서 버둥거리며 죽어가는 (혹은 살려고 발둥치는) 사슴벌레의 비극, 나아가 이 말을 나눈 여자 친구들의 비극은 이 문답법에 따라서 강화되고 혹은 부정되며 혹은극복된다.
* <그곳> 은 재난 상황 속에서 불현듯 출현한 사람들 사이의 들봄과 친절을ㅇ포착해 그려낸다. 그러나 소설은 이를 재난/ 일상. 선/ 악과 같은 단순한 이분법을 통해 보지 않는다. 오히려 위해/ 안전, 고립/ 연결 등의 피성적인 대립을 적극적으로 흔듣다. 단적으로 소설의 주인공인 '나' 의 캐릭터가 그렇다. 동네 체육센터를 애용하는 '나' 는 "언제 어디서든 극혐 행동을 포착할 수 있고 신고에도 적극적인" "이 구역 최다 민원인" 이다. 그런 나는 폭염 대피소가 된 체육센타에서 곳곳에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의 행위들어 잔소리를 해대고 "씩씩거리며 쓰레기를 분리하며" "구청으로 시간 마춰 전화를 했다. " 어느새 나는 흡사 자원봉사자가 되었고 심지어 자율방재단원에 가입하라는 제안을 받기도 한다.재밌는 것은 그 제안을 한 한 사람이 "나한테 매일같이 신고를 당하던 노인" 이라는 점이다. 노인은 덤벨 운둥을 할 때마다 양 손 바닥에 침을 뱉곤 했고 '나 ' 는 감영병 위기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공용 덤벨에 자기 침을 묻히는 행위를 참아줄 수가 업었다. 물론 노인이 최소한의 시국 감수성을 갖추지 못 했다고 해서 안전 지킴이 활동에 진심이 없어 보이진 않는다. 그러니까 '나' 나 노인이나 공동체를 위해 솔선수범하는 사랑이지만, 동시에 꽈 불편한 이웃들이라는 거다. 공동체를 지키는 사람들이 '사람 좋은 얼굴' 을 하고 있을 거라는 건 환상이다.
또 <그곳> 은 '생명보호' 가 상당히 차별적으로 이루어 지고 있음을 계속해서 환기한다. 몇해 전 여름 '나' 가 계곡에서 구조되던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나와 중년여자, 아기를 안은 남자가 로프에 의지해 불어난 강을 건널 때 개가 짖었다. 동네 친구 수락이 대피소에 오지 않는 건 대피소가 반려동물을 허용하지 않았고 시력과 신장이 안 좋은 개를 어딘가로 보내 놓고 혼자 대피소로 올 수 없었다. 또 뜬장에서 탈출한 곰이 사살 될때까지 정전된 대피소에서 갇혀 숨막히는 순간들을 그려낸다. 절망하고 체념하고 옆사람을 피하고 혹은 비난하면서도 이제야 보기 시작한다. 같은 처지에 빠진 사람들을ㆍㆍㆍ 곰을 위해 초코파이를 담았던 종이 접시를 향해 절을한다. 죽은 존재를 기리는 하나의 마음이 여러 사람의 애도를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이 가슴을 울린다. 나의 절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겉으로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 자신의 생존이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가능해 졌다는 데 대한 슬픔이 사람들 마음에 이미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 162 쪽 ㅡ 내가 의지했던 친절의 순간도 나를 살린 것들도 그것들은 여전히 그 곳에 남아 있다.
이 밖에도 <끝없는 밤> 에서 끝없이 돈 많은 남자를 찾아 헤매고 고통을 감수하는 여자의 하루를 그린다. 요트에서 침몰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끝에 '당신들은 두번째 기회를 얻은 거예요' , '그녀가 미처 몰랐던 건 상처에 바르고 거즈를 대고 반창고를 붙이는 건 그녀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점이었다' 아주 인상적인 부분이다.
<빛이 다가올 때> 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모의 병수발을 하느라 마흔을 넘긴 인주 언니가 뉴욕에 와서 화자와 같이 생활하면서 겪는 일이다. 스무 살 아래 아르바이트 생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오롯이 자신을 위해 살아보지 못한 자신을 과감히 버리고 스무 살 아래 아르바이트생을 사랑하면서 얼굴에 빛을 내고 기뻐하는 걸 화지가 보면서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느낀다. 이 세상 모든 소설의 주제가 사랑인데 이 소설은 아주 절묘하게 잔잔하고 소박하게ㅇ그려낸다. 참 좋은 소설이다.
* 짤막짤막하게 감동을 주어서 나도이런 소설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