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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상필진萬祥必臻
이 홍사
또 한 분이 로그아웃을 하셨다.
생이라는 질곡이 많은 카페에서 로그아웃을 하신 것이다.
슬픈 일이다.
홍랑은 메시지를 확인하고 휴대폰을 쥔 손을 조금 떨리고 있었고 머릿속에는 엉뚱하게도 만상필진萬祥必臻이라는 글귀가 스치고 지나갔다. 만 가지 상스러움이 반드시 이곳에 이르라. 모든 고상함이 이곳에 모여라. 그 글귀를 적힌 액자는 표구를 해서 홍랑의 한국 사무실, 벽에 걸려있다.
-그 분이 돌아가시다니........
홍랑은 믿기지 않는 투다.
오토바이를 타느라고 메시지가 오는 소리를 못 들었다. 항상 오토바이를 좀 타고나면 내려서 바로 휴대폰부터 확인하는 게 버릇이 되었다. 오토바이를 타는 동안은 메고 있는 손가방의 전화소리를 못 듣기 때문이다. 오늘은 오토바이를 타고 한사장이 하는 따깨다의 정비공장까지 커피를 마시러 갔다 왔으니 좀 오랫동안 전화나 메시지가 온 줄을 몰랐었다.
첫 번째로 꺼내든 한국 폰에서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부고였다.
-아니, 이 분께서?
홍랑이 미얀마에서 쓰는 휴대폰은 세 대다.
한국에서 가져온 폰과 현지에서 유심을 사서 넣은 현지의 휴대폰이 있다. 현지의 휴대폰은 두 대다. 그러니까 한국 전화와 항상 세 대를 손가방에 넣어 메고 다닌다.
휴대폰만 한 짐인 셈이다.
허나, 어느 것 하나도 불필요한 게 없다. 한국의 휴대폰은 은행에 입금과 지급을 문자로 받고 어쩌다 연락이 오는 지인들의 메시지를 받는다. 어쩌다 이 전화로,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받지 않고 기다렸다가 울리는 벨소리가 끝나면 바로 현지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힌다. 전화를 거는 상대방도 부담이 없고.
요금차이가 엄청나다.
미얀마의 휴대폰은 선불이라 얼마짜리 카드를 사서 요금을 저장하면 한 통화가 끝날 때마다 얼마치를 이용했고 얼마가 남았다는 메시지가 뜬다. 하여, 한국의 휴대폰은 한국에서 출국하기 전에 제일 낮은 요금제로 변경을 하고 나와서 한국에 들어가면 인터넷을 사용해야 하기에 요금을 정액제로 올리는 방법을 쓴다. 한국에서는 그게 또 싸게 먹힌다. 좀 귀찮지만 나오면 한 달씩 머무니 요금차이가 엄청나다.
굳이 해외로밍을 하지 않더라도 비행기를 타면서 전화를 껐다가 여기에 와서 켜면 자동로밍이 된다. 미얀마도 이동통신사가 서너 곳이 있다. 대표적인 게 텔리너와 엠피티인데, 텔리너에는 카톡과 인터넷을 깔아서 한국의 집이나 사무실, 가까운 지인들은 카톡의 무료전화를 하고 엠피티는 국제전화로 이용한다. 텔리너는 인터넷이 잘 되고 엠피티는 국제전화요금이 저렴한 장점이 있다. 국제전화로 한참을 떠들었는데도 나중에 요금을 보면 고작 몇 백 원이다. 한국 휴대폰으로 그렇게 긴 국제통화를 했다면 요금이 폭탄이리라.
기본요금이 없는 선불 시스템이니 한국에서 사온 중고단말기만 있으면 간단하게 두 대를 들고 다닐 수가 있다. 더구나, 미얀마는 기지국이 드물어서 어느 지역에서는 텔리너가 먹통이고 어느 구역에 가면 엠피티가 불통이라 현지인들도 장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은 휴대폰을 두 대씩 들고 다닌다. 공칠공이라는. 직통 선택전화가 한 때 해외 유학생들 사이에서 유용하게 쓰였으나 지금은 그런 전화를 쓰는 사람이 없다. 그런 시스템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한국의 휴대폰은 은행 입출금뿐만 아니라 카드를 이용하면 알림 메시지까지 뜬다. 하여 절구는 미얀마에 앉아서도 집에 있는 아들 녀석이 통닭을 시켜먹는지, 아내가 어느 마트에서 장을 얼마치 봤는지 알 수가 있다. 참 머리 아프게 정보를 공유하는 세상이다. 너무 사사건건 아는 것도 피곤하기 짝이 없다.
아무튼, 첫 번째로 열어본 전화에 부고가 메시지로 들어와 있었다. 월파회 총무다. 고등학교 동기들 중에서 절친하게 지냈던 열두 명이서 만든 계가 있다. 제대하고 결혼할 무렵에 만들었으니 그 역사가 족히 삼십 년이 된다. 계의 이름은 그 학교를 설립하신 월파선생의 호를 따서 월파회라 하였다. 그 월파회 총무를 맡은 녀석이 계원들에게 일괄로 날린 문자였다.
*김진수 부친 금일 오전 별세. 빈소 00병원, 0일 발인, 장지00선영
-정정하셨던 분인데.......
다음 전화기를 열어보았다. 카톡이 들어와 있었다.
사무실의 여동생이 보낸 카톡이었다. 그것 또한 부고였다.
*오빠! 김진수 오빠 부친께서 별세 하셨다고, 연락하라고 어딘가에서 전화가 왔어요.
같은 부고다,
친하게 지내니 여동생은 진수를 알고 있다.
-일단 알았고.
헌데, 돌아가신 분은 불과 열흘 전에 만났었다. 미얀마에 나오기 전에 진수네 집에 들렀다가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연세는 아흔이 넘었지만 정정하셨다. 귀도 밝고, 목소리도 꼬장꼬장 했었고, 백수는 하실 줄 알았는데 고인의 말씀대로 생에서 로그아웃을 하신 것이다. 노인은 당장 내일을 모른다고, 밤새 안녕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아니다. 열흘 남짓 사이에 그렇게 유명을 달리하시다니, 뭔가가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 연락을 해봐야 되나?
상주인 진수는 지금 전화를 받을 짬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연락하는 것, 또한 상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누구에게 연락을 해보지? 그렇게 궁리를 하고 있는데 또 쥐고 있던 휴대폰에서 또 메시지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군대 동기들 모임에서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같은 내용이었다.
진수는 홍랑의 고등학교 동기이면서 군에도 같이 갔었다. 지역의 예비사단, 같은 훈련소에서 보병훈련을 받고 희한하게 자대 배치도 같이 받아, 서로 등을 기대고 한 중대에서 삼 년간 전우로 지냈으니 진수의 아버지에 대해서라면 소상히 알고 있다. 그 뿐이 아니라 진수 아버지는 홍랑의 돌아가신 아버지와 그 옛날 공민학교 동기다. 농경사회였던 시골에서는 그런 연결고리를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홍랑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홍랑은 진수의 아버님이 장수하시는 걸 보고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연결고리를 생각하니 홍랑, 자신도 상주와 진배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주가 이래 있어도 되나? 누구에게 연락을 해보지?
고등학교 동기들 사이에서 모든 정보가 최초로 접수되는 공인중개사 사무실 천배가 유력했다. 천배라는 녀석에게, 요금이 저렴한 엠피티로 국제전화를 걸었다.
시골마을, 소산골 한동네 출신이고 또 지금 한 동네에서 살고 있으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진수도 녀석의 사무실에 가끔 나타나니 알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받지 않는 것이었다.
두 번을 했으나 죽으라고 받지 않는 것이었다. 공인중개사라는 녀석이 외국에서 땅을 사겠다는 매수자 전화면 어쩌려고 받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 글로벌시대에 외국에서 땅을 사겠다는 사람의 전화는 왜 없겠는가? 이 자식의 복덕방 사무실이 아지트라 무슨 정보든 제일 먼저 접하고 주제넘게 참견한다. 돈이 되는 일이고 아니고 참견을 하니 공인중개사로는 적성에 딱 맞는 녀석이다. 잡학에 관한한 사통팔달인 녀석이라 별명이 팔도인데 받지 않는 것이다.
팔도가 전화를 받지 않으니 답답하다.
보이스피싱이 등장하고 나서 사람들은 국제전화를 잘 안 받는다. 그것도 사회악이 낳은 병폐라면 병폐다. 국제전화는 울릴 적에 국제전화, 국제전화, 신호음에 이런 알림이 울리니 받는 사람은 국제전화라는 것을 단박에 안다.
누구에게 연락을 해봐야 되나?
-그래! 그 녀석이라면 알 수 있겠군.
떠올린 인물이 상근이다. 상근은 고등학교 동기인데 진수의 술친구다. 둘 다 술을 어지간히 좋아하던 같은 직장의 위인들이라 자주 만나 술추렴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상근이라면 갑자기 타계하신 자세한 내막을 알 것이다.
상주가 된 진수는 정년을 앞둔 단위농협 지점장이고, 상근도 농협을 다니다가 상무에서 그만두고 지금은 도시의 변두리가 된, 침산골 부근 농지에 우사를 크게 지어 비육우를 사육하고 있다. 홍랑은 다른 중학교를 나왔지만 상근과 진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동기다. 둘 다 같은 면에서 자라 같은 해에 농협에 들어갔는데 한 놈이 지점장으로 진급을 하니 뒤쳐진 한 놈이 배알이 뒤틀려 농협을 그만둔 것이다. 그런데 뒤쳐진 놈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일이다. 그 나이에 퇴직을 했으니 자신만만하게 우사를 지어 소를 먹일 생각을 했지 정년을 다 채우고 나왔더라면 무엇을 다시 시작하기에는 어중간한 나이가 될 것이리라.
홍랑은 한국의 휴대폰에 저장된 상근의 번호를 찾아서 엠피티로 전화를 걸었다. 국제전화를 걸어보면 이쪽에서 네 번째 울려야 상대에게 첫 신호가 가는 것이다. 홍랑이 면밀히 관찰한 바에 의하면 그렇다. 서너 번 신호가 가고 안 받는다고 끊으면 안 된다. 그럼 시스템을 알고 좀 기다릴 줄 알아야한다. 또 받으면 자신이 누구라는 걸 잽싸게 밝혀야 끊지 않는다. 더듬거리면 상대방이 끊어버리고 난 다음이다.
신호가 한참가고 나서야 상근이 전화를 받았다.
홍랑이 누구라는 걸 밝히자, 그렇지 않아도 국제전화라 찜찜해서 받지 않으려다가 그대가 분명하지 싶어 받았노라고 했다.
-너? 진수 아버지 부고를 받고 전화했지?
상근은 냉큼 넘겨짚었다.
-그래! 정정하시던 분인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불과 열흘쯤 전에 만나 뵈었는데?
-인사드리고 나갔었냐? 잘했다.
-노인들 밤새 안녕이라고 하더니, 정말 실감이 안 나네!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는 말로 시작한 상근의 설명은 길었다. 어르신은 기차를 타고 서울로 혼자서 올라가 광복절 날 광화문 태극기집회에 참여를 하셨다는 것이다. 홍랑은 서두에 꺼낸 그 말을 듣고 기가 막혔다. 구십 노인이 거기가 어디라고 가셔? 그것도 불편한 다리로?
홍랑은 미얀마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찾아본 유튜브에서 그날 얼마나 많은 우파보수 인파가 참여를 했는지 알고 있다. 주최 측의 추산으로 십만 명이 넘는다고 했으나 공정을 기해야할 국내 공영방송에는 뉴스 한 꼭지도 다루지 않았던 일이지만 외신보도에만 엄청 크게 실린 집회였다. 홍랑은 띄엄띄엄 영어로 된 기사를 읽어가며 그 외신을 읽고 무슨 뜻인지를 짐작을 하고 있었다. 거기서 점심도 굶고 젊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불편한 다리로 절룩거리며 다니시다가 넘어지신 모양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홍랑은 침을 삼켰다.
-거기서 돌아가셨어?
홍랑은 급해서 상근의 말을 자르고 그렇게 물었다.
-아니야. 혼자서 집에까지 내려오셨어.
맥이 쭉 빠져서 내려오셔서는 집에서 하루를 주무시고 다음날 병원으로 실려 가셨다는 것이다. 아마도 아버님은 그 시위에서 기력을 탕진하고 초죽음이 되어 내려오신 모양이라고 했다.
진수 부친을 두고 홍랑은 춘부장이 아니라 대놓고 아버님이라 지칭한다. 홍랑은 돌아가신 자신의 부친을 두고 아버지라고 하고 진수의 부친을 아버님이라 구분해서 지칭하는데, 면전에서만 그렇게 부른다.
-너는 나이를 먹을수록, 네 아버지를 그렇게 닮느냐?
출국하기 전에 찾아뵈었을 때 홍랑을 보고 진수 아버님께서 먼저 던진 말씀이었다. 다른 친구에게는 그러지 않으시는데 진수 아버님은 홍랑에게만은 너, 네, 하신다. 자네라는 어중간한 호칭은 쓰시지 않는다. 친구의 아들이자, 아들의 친구라 당연히 그러셔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이십니까? 아버님 건강은 어떠십니까?
-그럭저럭해. 요양병원은 가지 않고 로그아웃을 해야 할 터인데........
아버님께선 죽음을 두고 로그아웃이라 지칭하셨다. 로그아웃이 무슨 뜻인지 아시느냐고 웃으면서 물었더니 누구를 바보로 아느냐고 역정을 내실 정도로 정정하시던 분이었다.
상근은 그게 과로사의 화근이 되어 영천종결 하셨다고 했다. 워낙에 연세가 있으니까 서울에서 객사하시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했다. 일단 알았다. 홍랑이 얼른 생각하기에는 과로사가 아니라 화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근에게 조의금을 부탁하고 문상은 부득이 못 간다고 하고 끊었다. 상주가 된 진수는 홍랑이 외국에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니 크게 마음 상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과로사가 아니라 화병이 분명하다.
-너희 아버진 좋겠다. 이 험한 세상 돌아가는 꼴 안보고.
-작금이 왜 험한 세상이라 생각하십니까? 평화의 시대가 오고 있지 않습니까?
-평화?
말에 고리를 걸어 뒷말을 낚아 올리셨다. 그 때, 그 말씀하시며 홍랑을 쳐다보시던 섬뜩한 눈동자가 어른거리는데 로그아웃을 하신 것이다.
진수의 아버님은 홍랑의 아버지와 동갑이시다. 1928년생, 홍랑의 아버지와 공민학교를 같이 다니셨으니 홍랑은 그 분의 출생연도를 기억하고 있다. 진수의 아버지는 군대를 두 번이나, 아니 전쟁을 두 번이나 치르셨던 분이다. 결과는 평생을 절룩거리며 사셨던 분이다.
인생이란 자고로 이렇게 절룩거리는 거야. 세상에 똑 바르게 균형이 잡힌 건 존재하지 않는 법이야. 좌우 논리가 그렇고, 상하의 이치도 마찬가지야.
진수 아버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었다.
공민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에 있는 고등보통학교를 다니시다가 열일곱 살에 동경으로 유학을 가셨다. 잘은 모르지만 당시에 동경유학의 꿈을 꿀 집안이라면 농촌에서 땅마지기나 가지고 머슴을 거느리고 넉넉하게 살았던 집안이리라.
청운의 뜻을 품고 물을 건너가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듬해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베트남전선에 투입되신 것이었다. 베트남에서 어디인지도 모르고 정글을 통해 전진에 전진을 거듭하다보니, 캄보디아로 넘어가셨다고 하셨다. 그 당시에는 그 곳이 캄보디아인 줄 모르셨다고 하셨다. 그렇게 불시에 징집되었으니 그걸 고향집에서는 알 리가 없었다. 누가 적인지도 모르고, 왜 싸워야하는지, 그 이유조차도 모르고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낙오가 되지 않고 전진을 하면서 싸우셨다고 했다.
꼬박 일 년 반을 그렇게 전장을 누볐는데 히로시마에 원폭을 맞으면서 일본이 대륙진출의 꿈을 접고 백기를 들자 전선에서 풀려나 동경으로 돌아가셨다가, 학업을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오신 것이다. 고국에서는 학도병으로 끌려간 줄을 모르는 부모님들이 이제나 저제나 돌아오기만을 고대를 하고 계셨다고 하셨다.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부모님께서 일찌감치 정해놓은 혼처에 색시를 만나 결혼을 했는데 격동의 시대, 잘못 타고난 시대 덕에 그 결혼생활이 또 오래가지는 않았던 것이다. 한국전이 발발을 해서 징집영장이 날아온 것이다. 그땐 이미 진수의 큰누나를 낳고 난 뒤였다고 했다.
징집영장을 받고, 동경유학파에 전쟁을 치렀다는 이력으로 군관학교에서 이 개월, 속성교육을 받고 소위로 임관을 하신 것이다.
나를 따르라.
바로 소대장으로 전장에 투입되신 것이다.
먼저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어 방어를 하다가, 진수 아버님이 소속된 17연대는 빠져서 인천상륙작전에 가담하게 된다. 인천에 상륙한 17연대는 서울탈환에 주력을 기울인 부대였다. 인천에서 상륙한 해병대와 힘을 합쳐 서울수복을 목표로 밀고 들어가 김포공항을 먼저 탈환했다는 것이다. 공항 탈환은 미군 수송기가 내려앉을 수 있는 곳이니 전략상 요새를 확보한 셈이다. 소대원 스물일곱 명을 이끌고 소탕작전을 벌이며 부평으로 밀고 들어가 한강을 건너 서울에 진입하니, 성질 급한 해병대에서 9월 27일 새벽 중앙청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태극기를 게양하였고 다음날 서울을 완전히 접수했다는 것이다. 그게 9.28 서울수복이었다. 서울수복에서 잔류된 적의 소탕작전을 벌이다가 사지에 몰린 적이 쏜 총알에 왼쪽 무릎이 관통하는 총상을 입고 후송된 것이라 하셨다.
홍랑이 알고 있는 건 거기까지다.
진수 아버님께 오래 전에 들은 얘기였다.
헌데, 출국하기 전에 찾아뵙고 평화를 들먹였다가 된통 혼이 난 것이다. 처음에는 정치 얘기가 나오지 않았었다. 그냥 사업에 관한 얘기였다.
네가 있는 곳이 미얀마라고 했지? 사업은 어떠냐? 예! 그럭저럭 하고 있습니다만, 그쪽도 경기가 좋지 않아서........ 집 장사를 한다고 했지? 몇 채나 지었는데? 다세대주택이라 세대수는 많습니다. 거의 서른 채 가까이 됩니다. 아이구나, 작은 사업이 아니네? 분양은 좀 했고? 예! 몇 채 팔아서 막바지 공사비 주고 아직 들여오지는 못했습니다.
거기까지는 대화가 순탄했다.
진수아버님은 홍랑에게, 너? 아직까지 담배를 못 끊었지? 라고 물었고 홍랑은 면구스러워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다고 했더니 방안 서랍에서 담배를 한 보루 꺼내 홍랑에게 밀어주었다. 진수 아버님은 담배를 피우지 않으시는데 누가 선물로 가져온 모양이다. 홍랑이 들고 간 술과 담배를 교환 한 셈이 되었다. 술은 공항 면세점에서 산 양주였는데 거기까지도 좋았다.
헌데, 극좌와 극우가 대립하는 이 이념의 혼란기에 정치 얘기를 꺼낸 게 잘못이었다. 아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정치 얘기는 아버님께서 먼저 꺼내셨다.
너희 아버지는 좋겠다. 이 험한 세상 돌아가는 꼴을 안 봐서.
그 말씀을 하신 분이 바로 진수 아버님이셨다.
평화?
-너 정말 평화가 오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이런 식의 평화를 나는 결코 원치 않아.
그 다음부터는 홍랑이 들어야만 했다. 그걸 이미 알고 있었다. 무슨 대답이나 반론을 제기했다가는 노인의 화를 돋우는 일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반일감정을 조장해서 정치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어? 그게 양쪽에 칼날을 지닌 부메랑이 될 줄 몰랐어? 한일협정이 체결된 이후에 일본 총리가 바뀔 때마다 공식적인 사과를 했어. 그게 무려 열다섯 번이야. 무슨 진정성이 어린 사과를 요구해? 진정성이라는 잣대의 기준이 뭐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과를 해야 하나? 내 무릎관절을 박살낸 전범인 북한에게 진정성이 어린 사과를 받아본 적이 있나? 이젠 우리의 주적이 아니라며? 동란 이후로 얼마나 많은 침략을 받았어? 궁극적으로 통일이 왜 필요해? 분단이후 칠십 년간 잘 먹고 잘 살았잖아? 북한 인권 좋아하시네? 북한의 눈치를 본다고 북한을 탈출해서 중국에 머물고 있는 탈북자들을 안 받아주고 있잖아? 우리가 어떻게 지킨 나라인데 그런 작태를 부리고 있어?
구십 노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흥분을 하시고선 홍랑에게 물었다.
-너? 혹시 포퓰리즘에 대해서 알고 있냐?
홍랑은 조금 놀랐다. 아흔 노인 입에서 포퓰리즘 얘기가 나오다니?
포퓰리즘이란 보통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사상이나 활동으로 알고 있다. 반反엘리트주의적인 민중연합주의! 영어로 피플people을 뜻하는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유래된 말로, 백삼십 년 전 미국 농촌 사회에서 일어난 농민운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포퓰리즘은 주로 라틴아메리카 연구에서 발달한 개념이다.
혁명적이라기보다는 개혁적인 경향, 단순하고 감정에 기반을 둔 대안 제시 등의 특성을 갖는다. 포퓰리즘은 사회주의와 비슷한 점이 많지만, 분노에 토대를 두고 있어 분노를 느끼는 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 포퓰리즘의 성격이 달라진다. 실제로 모든 포퓰리즘 유형은 선악 이분법에 근거해 자신의 열악한 처지를 감성적으로 강조함으로써 동정심과 분노를 유발시키는 것을 말한다.
홍랑이 알고 있는 것은 대충 이 정도다. 그러나 아버님 앞에서는 말을 삼가하고 있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질문이 아니었다.
-포퓰리즘? 그거 알고 보면 얼마나 무서운 정책인줄 알아? 직설적으로 말하면 감성을 자극하는 빨갱이사상이야. 정치판에서 무엇이든 국익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해야 마땅하지.
노인이 발끈하시며 묻고는 답을 내리고 있었다. 그 답을 들으며 홍랑은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아흔 노인이 초롱같은 정신으로 자신의 이념에 대한 잣대를 견고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란 것이다.
그날 아버님은 얘기 끝에 이런 세상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지키고, 어떻게 이루어 세운 나라인데? 순식간에 모든 것이 붕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너도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거냐?
아버님은 그날 홍랑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간 혼쭐을 면치 못하리라.
-아닙니다. 그럴 짬이 없습니다.
-그거? 나라 망치는 일이다. 누워서 침 뱉기야.
홍랑은 노인께서 워낙 발끈하시는 바람에 앉은 자리가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뭔가 화제를 돌려야 하는데 드릴 말씀이 궁했다.
-네가 오랜만에 왔는데 내가 너무 발끈한 거냐?
-아닙니다. 말씀을 들으니 제 속이 다 시원합니다.
홍랑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는 대청에 놓여있는 지필묵을 둘러보며 요즘도 글씨를 쓰시느냐고 물었다. 진수 아버님은 붓글씨에 달필이다. 웬만한 세예대가에 못지않은 필력을 지니신 분이고 붓을 손에서 놓지 않으시는 분이다.
-쓰긴 하는데 획에 힘이 없어. 글씨도 늙는 것이야.
이십 년이 넘었을 거다. 홍랑이 사업자를 내고 사무실을 차리고 나니 진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버님께서 시간을 내서 집에 한번 들리시라는 전갈이었다. 그렇잖아도 찾아뵌 지가 오래되어 술이라도 한 병 대접해 올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사무실 정리를 좀 하고 며칠 후에 찾아뵈었더니 간단한 인사를 끝내고 진수아버님은 대청으로 나가 지필묵을 꺼내 들으셨다.
항상 붓을 손에 놓지 않으시는 분이라 대청에는 책상 높이의, 텅스텐으로 맞춘 장방형의 탁자가 상시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위에 담요가 깔려 있었다. 서서 쓸 수 있도록 만드신 것이다. 거실 한쪽에는 여러 장의 습자를 한 한지가 쌓여 있었다.
-네가 사장이 되었다는 데 줄 건 없고, 글을 한 줄 써 주마.
담요 위에 한지를 깔며 하신 말씀이다.
진수 아버님은 당시에 일흔이 갓 넘으셨을 것이다. 한참 글씨에 기교와 힘이 들어갈 연세라고 하셨다.
붓걸이에 걸린 큰 붓을 꺼내 먹을 묻히고 한숨을 고르시더니 일필휘지로 써내려가셨다.
萬. 祥. 必. 臻
-아버님! 마지막에 이 자가 무슨 자 입니까?
홍랑이 알쏭달쏭한 글씨였다.
-이를 진, 이를 진 자이니라. 만상필진! 풀이하자면, 모든 상스러움이 반드시 이곳에 이르라.
글씨에 모가 나지 않고 획에 힘이 들어간 게 세예에 대해선 문외한인 홍랑의 눈으로 보아도 썩 마음에 들었다.
사무실이라고 차렸으면 이런 휘호는 하나쯤 있어야지!
그 다음에 작은 붓에 먹을 찍어 회사이름을 홍랑에게 물어서 적고는 큼직한 낙관을 찍으셨다. 덜 마른 먹을 다른 한지로 꾹꾹 눌러 낙관이 찍힌 자리는 번지지 않게 한지 조각으로 덧대어 접어서 건네주신 것이다.
홍랑은 그 길로 나와 바로 시내 표구점에 맡겼다.
인간은 작은 소유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그 글귀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진수 아버님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장이라는 직책으로 인정받은 것이 무엇보다 감격스러웠던 것이다. 아버님! 좋은 결과!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홍랑은 그 글을 받고 주문처럼 그 말을 되풀이했다. 그 글씨는 지금까지 사무실 한쪽 벽에 걸려있다.
헌데, 그 분이 로그아웃을 해버리신 것이다.
마음이 짠하다.
출국하기 전에 찾아뵈었을 때 너무나 정정하셔서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전화기를 놓지 못하고 있는 홍랑의 뇌리에는 자신도 상주에 진배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영천종결을 두고 로그아웃이라고 하시던 분은 정말 로그아웃을 해버린 것이다. 어른께 어떤 방법으로 예서 상주의 도리를 다 하지? 명복을 빌어야 할 터인데, 잠시 묵념이라도 할까?
그런 걸 생각하고 앉아있을 때 쥐고 있던 전화가 울렸다. 한국 폰이었다. 발신인을 보니 천배, 팔도라는 녀석이다. 이건 받아야한다.
-너? 지금 미얀마에 있냐?
팔도는 첫마디에 그렇게 물었다.
-좀 전에 국제전화를 한 게 너였지?
그렇다고 했다. 녀석은 짐작이 맞았다며 국제전화라 받지 않았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그대지 싶어 확인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잠깐만! 팔도야! 이 전화를 끊고 내가 국제전화로 금방 전화를 할게. 이건 요금이 비싸!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바로 현지전화 엠피티로 전화를 했다.
녀석은 냉큼 받았다.
-상근이에게 대충 들었지만, 노인께서 광복절에 광화문 규탄대회에 참석하셨다며? 거기서 쓰러지셨다면서?
팔도는 그렇다고 했다.
-진수는 뭐했데? 말리지 않고서?
-진수도 몰랐다는 거야. 노인이 말도 없이 혼자서 기차를 타고 올라가셨다는 거야. 아마도 참전용사 예비역 장교 모임에서 연락을 받으셨던 모양이야.
-그랬었구나! 거기서 기력을 탕진하시고 입원하셨다가 기어이 회복하시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며?
-그게 아니야.
-뭐가 아니야? 상근이에게 다 들었는데?
-서울에 올라가신 건 맞고. 거기서 기력을 탕진하도 병원에 입원하신 것도 맞는데, 결정적인 건 다른 데 있어.
팔도 녀석의 말에 의하면, 병원에 들어가서 영양제를 맞고 기력이 좀 좋아지셨다고 했다. 며칠 전에 팔도라는 녀석이 병문안을 갔었다는 것이다. 가서 찾아뵈니 사람도 다 알아보시고 노인의 깐깐한 주장을 피력하며 정치얘기를 한참이나 하시며 개탄해 하시더라는 것이었다. 헌데, 병실에 있는 텔레비전이 문제라고 했다.
-텔레비전이 무슨 문제를 일으켜?
-아무튼, 들어봐. 너 지소미아가 뭔지 알고 있어?
-응. 대충 알아.
지소미아는 GSOMIA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의 약자로서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를 말하는데 한일양국 군사간의 정보 교환이다.
해방 이후에 최초로 체결된 한일 양국 간의 조약이고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어, 미국을 경유하지 않고도 한일 양국이 군사정보를 실시간으로 직접 공유할 수 있다. 이 협정의 체결로 미일, 한미 간에 기존에 체결돼 있는 관련 협정과 함께 한미일 간의 삼각형태로 군사정보가 실시간으로 자유롭게 공유되고 보호될 법적 장치인 것이다.
최근에 들어서 우리는 일본에게 정보를 줄 게 별로 없고, 일본의 군사정보를 받는 입장인데 그걸 우리 정부에서 어느 날 느닷없이 파기를 한 것이다.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어느 나라 국익을 말하는가? 혹시 북한의 국익?
홍랑도 그 뉴스를 접하고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지소미아가 노인을 잡았어.
-그게 무슨 소리야?
팔도 녀석의 말에 의하면 노인이 기력을 차렸고, 병실이 갑갑하다며 당장 퇴원을 하겠다는 걸 다음날로 미루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헌데, 오늘 아침, 병실에 있던 텔레비전에서 지소미아의 파기, 우리 측의 선제파기 뉴스를 접하고 노인이 광분을 하며 병실 침대 위에서 데굴데굴 굴렀다는 것이다.
이 미친놈들아! 안 돼! 야! 이 미친놈들아!
그 말을 외치며 구르다가 침대에서 거꾸로 떨어지셨다는 것이다. 머리부터 먼저 떨어져서 실제 사인은 뇌출혈이거나 심리적 충격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간주된다고 했다. 병실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일어난 일이고 아무도 손을 쓰지 못했다고 했다.
-그럴 수가.......
노인의 그 꼬장꼬장한 성격에 상상이 가능한 부분이다.
홍랑은 팔도 녀석의 구체적인 정화을 듣고 갑자기 사지에 힘이 쭉 빠졌다.
알겠다고 하고 전화는 끊었다. 전화 말미에 팔도 녀석이 조의금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서 상근에게 이미 부탁을 했노라고 했다.
지소미아 파기가 한 분을 로그아웃 시켰군.
헌데, 앞으로 얼마나 많은 국민들을 로그아웃 시킬까? 그 생각을 하는데 한국 사무실에 걸려 있을 만상필진이라는 글씨가 눈물을 머금은 눈에 어른거렸다.
그렇다. 만상필진萬祥必臻!
모든 상스러움은 필히 이곳에 이르라.
노인의 목소리가 귀에 이명처럼 살아났다.
책상 앞에 앉은 홍랑은 어른거리는 눈물을 닦지 않고 이미 끊어진 휴대폰을 흐릿한 눈길로 바라만 보며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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