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나 아이로 살 테지요?
이정환(시인)
윤석중 선생은 아홉 살에도 아이였고, 마흔 살에도 아이였으며, 아흔 살 넘어서도 아이로 살다가 간 분입니다. 여기 또 한 분 그런 시인을 소개합니다. 첫 동시조집을 펴내는 이용숙 시인입니다.『꽃간판』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의 시 세계에 한껏 빠져들어 ‘언제까지나 아이로 살아가야지’ 하고 혼자 중얼거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작품들이 온전히 아이의 눈높이에서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동심을 잃은 사람은 사실 모든 것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답니다. 맑고 고운 마음 없이 사는 삶, 그것은 어쩌면 누덕누덕한 누더기를 몸에서 떼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지요. 이용숙 시인의 동시조를 읽다 보면 ‘어떻게 어른이 이렇듯 정겨운 생각들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감탄하게 됩니다. 다른 것이 없지요. 영롱한 새벽이슬, 드맑은 가을 하늘 같은 마음결을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 집 귀염둥이
배고프면 빠, 하지
빠, 소리 한번에
밥 한 술 입에 쏘옥
빠, 한번
밥 한 숟갈에
옴찔옴찔 자란다
-「빠빠」
「빠빠」는 사랑스러운 외손녀 오하루의 일상을 눈여겨보고 쓴 작품이지요. 어른들은 아기가 ‘빠!’하는 것만으로도 기쁘기 그지없지요.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에 ‘빠, 한번/ 밥 한 숟갈에/ 옴찔옴찔’자라는 것이 대견하지요. 온 세상과 바꿀 수 없는 선물이어서 보고 또 보아도 또 보고 싶은 것이지요.
「물어보다 혼났다」에서는 할머니 배가 ‘엄마처럼 두리둥실’ 둥글어서 ‘아기 언제 낳아?’라고 물어보다가 혼나고, ‘할머니! 이가 언제 나?’ 하고 또 물어보다 혼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할머니와 손자 사이의 이러한 대화는 사회생활의 기초를 닦는 하나의 긴한 예가 됩니다. 그런 점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가정은 참 바람직하지요.
「할머니 댁 마당에는」도 그렇습니다. 그곳에서 보초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들과도 마주칩니다. ‘매발톱꽃, 민들레, 쑥, 금낭화’와 같은 풀꽃들이 어우러져 작은 사회를 이룹니다.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를 지켜주는 모습에서 우리는 더불어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지요.
「씨앗」에서는 잘 참아낸 것을 신기해하면서 ‘새파란 잎사귀들을/ 나풀나풀 쏟아낸다’라고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고 ‘학예회 화려한 무대’를 한꺼번에 펼치는 것을 보고 놀라워합니다. 자연의 변화를 이렇듯 꼼꼼하게 살피고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것이 재미나지 않습니까?
「산」은 또 ‘봄나물 뜯은 자리/ 흉터로 남을까 봐’가 걱정하는 눈길이 어여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얼른 ‘초록 물감’으로 물들이지요. 그뿐입니까? 한참 지난 후에는 ‘다정한/ 친구 목소리/ 메아리로 돌려’주기까지 합니다. 산이 우리에게 베푸는 것은 무한정입니다. 우리도 넉넉한 ‘산’처럼 이제 이웃에게, 친구에게 더 많이 베풀어야 하겠지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논다고 바쁘고
꽃들은 나름대로 꽃 피우기 바쁘고
제비꽃 은행나무 따라
키 크고 싶어 바쁘다
-「바쁘고 바쁘다」중에서
봄이 참 바쁜 철임을 알게 합니다.「바쁘고 바쁘다」에서 모두가 바쁜 것은 살아 있다는 뜻이지요.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지요. 논다고 바쁜 아이들, 꽃피우기에 바쁜 꽃들, 앙증맞은 제비꽃은 어림없게도 은행나무 따라 키 크고 싶어 또 바쁘니 봄은 역시 펄펄 살아 움직입니다. 이렇게 바쁜 것은 무척 행복한 일이겠지요.
「봄바람」에서 ‘겨우내 매달아 놓은/ 꽃봉오리 떼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교문 위에 펄럭이던/ 현수막’이 찢어지고, ‘빈 깡통’을 차는 것을 보면서 봄바람의 심술을 물리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잘 담고 있군요. 그리고「나무들은 안단다」에서 ‘달콤한/ 향기를 맡는/ 코도 따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어쩌다 친구가/ 내 어깨를 툭 쳐도/ 사랑인지 미움인지/ 내가 다 아는 것’처럼 ‘눈 /코/ 입/ 하나 없어도/ 나무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한 집 건너 꽃집
간판을 쳐다보다
세상 모든 간판에
꽃, 자를 붙이면
통닭꽃
돼지족발꽃
꽃, 자 따라
향기 날까?
-「꽃간판」
「꽃간판」은 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길을 가면 우리는 무수한 간판들과 만나게 됩니다. 눈을 즐겁게 하기보다 어지럽게 하지요. 그런 간판들을 보면서 시에서 말하는 이는 ‘세상 모든 간판에/ 꽃, 자를 붙이’자고 ‘깜짝 제안’을 합니다. ‘통닭꽃/ 돼지족발꽃’이 얼마나 기발한 생각입니까? 평범한 것에만 익숙한 우리의 눈을 번쩍 뜨게 하는 표현입니다. 세상을 온통 향기로 가득 채우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잘 담겨 있지요.「그림자」에서는 이보다 더 친할 수 없고 이보다 더 질길 수 없는 ‘또 다른 나’에 대한 관심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말 중에 예쁜 말이
무엇인지 알아 봐
머리 떼고 꼬리 떼고
가운데 들어가서
앞 뒷말
치장하여서
맛깔 나게 하는 말
어여쁜 사랑스런
고마운 아름다운
니은 자로 끝나면서
마침표가 전혀 없는
못 갖춘
낱말들 사이
따뜻한 정 느낀다
-「형용사」
「형용사」는 언어를 붙들고 밤낮 씨름하는 시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지요. 특히 형용사가 주는 시적 울림에 대해 나직하게 말합니다. ‘니은 자로 끝나면서/ 마침표가 전혀 없는// 못 갖춘/ 낱말들 사이/ 따뜻한 정’을 느낀다는 표현에서 시를 쓸 때 언어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맛깔 나게 하는 말’의 묘미, 말의 힘은 때로 역사를 바꾸기도 하지요. 우리말을 더욱 잘 갈고 다듬는 일을 통해서 마음을 살찌우고 윤택한 언어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그저 물빛이
궁금했을
따름이었지
공부시간에 혼자
슬며시 나간 것은
겨우내
얼었다 녹은
그 강물 빛
때문이었지
-「궁금해서」
「궁금해서」는 좀 특별한 작품입니다. 엉뚱하기도 합니다. 보통 아이들이 생각하지 못한 뜻밖의 일에 관심을 가진 한 아이가 담담히 말합니다. ‘공부시간에 혼자/ 슬며시 나간 것’은 ‘그저 물빛이/ 궁금했을/ 따름’이었기 때문이라고. 즉 ‘겨우내/ 얼었다 녹은/ 그 강물 빛/ 때문이었다’라고. 그게 무어 그리도 궁금한 일이었는지 혹 묻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우문 곧 어리석은 물음이지요. 왜냐하면 시 속의 아이에게는 그 일이 아주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궁금해서」는 이렇듯 철학적입니다. 동시조의 색다른 모습이지요.
「텃밭 식구」에서는 ‘작은 텃밭’을 두고 ‘걸리버 한 손바닥’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표현을 합니다. 시인의 상상력의 폭과 너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지요.
헤어질 땐 언제나
대청마루 기둥 짚고
돌아보고 돌아봐도
오래오래 손 흔들던
할머니
하얀 손 닮아
만지고픈 억새풀
-「억새풀」
「억새풀」에서 또 다시할머니가 등장합니다.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할머니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헤어질 땐 언제나/ 대청마루기둥 짚고// 돌아보고 돌아봐도/ 오래오래 손 흔들던’ 할머니입니다. 이러한 추억은 참 소중하지요. 훈훈한 가족애는 한 사람의 인성 형성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지요. ‘할머니/ 하얀 손 닮아/ 만지고픈 억새풀’에서 교감 즉 마음의 주고받음을 읽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정서는 삶의 원동력의 한 부분이 되고도 남지 않을까요?
산길에 접어들면
누구나 혼자다
웃고 떠들면서
갈 수만 없는 길
오르막 가풀막진 길
말도 하기 어려운 길
하나 둘 옷가지 벗어
양손에 거머쥐듯
어둡던 생각들을
한 꺼풀씩 벗겨내도
내리막 달음박질에
잊을 것은 잊는다
-「산길」
「산길」은 많이 생각하게 합니다. 사는 것은 결국 혼자인 것을 일깨우지요. ‘누구나 혼자다’라는 것은 고독감을 안겨준다는 뜻보다 스스로 일어서서 살아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미 ‘웃고 떠들면서/ 갈 수만 없는 길’임을 알고, ‘오르막 가풀막진 길/ 말도 하기어려운 길’에서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의 묵상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지요. 그리고 ‘내리막 달음박질에/ 잊을 것’은 잊습니다. 홀로 산길을 걷는 일은 일종의 마음 비우기 시간인데 이를 통해 진중한 생각을 가진 한 사람이 새롭게 거듭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름날 할일 없이
소독차 쫓던 우리처럼
숙제하란 꾸중 듣고
제 방에 간 아이처럼
아무도
부르지 않는데
부른 듯이 일어난다
-「아스팔트 가랑잎」
「아스팔트 가랑잎」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누구든지 예사로 지나칠 수 있는 ‘가랑잎’ 한 장에 대한 시인의 따사로운 눈길이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뭐 이런 것을 가지고 시를 쓸까?', ‘대체 이런 것도 시가 된다는 말일까?’라고 의아해 하는 이들에게「아스팔트 가랑잎」은 특별한 의미를 안겨줍니다. ‘가랑잎’이 아스팔트에서 ‘아무도/ 부르지 않는데/ 부른 듯’이 일어날 때 ‘여름날 할일 없이/ 소독차 쫓던 우리’와 ‘숙제하란 꾸중 듣고/ 제 방에 간 아이’를 떠올리게 되었다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이러한 뜻밖의 결합이 주는 울림은 그 여운이 깁니다. 시는 아무것도 아닌 듯 한 곳에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장면에서 비롯되는 그 어떤 묘한 정경이라는 것을「아스팔트 가랑잎」은 새삼 느끼게 해주는군요.
「뻥이요」에서는 ‘시골장 외진 곳/ 호루라기 휙 불면// 포탄이 터지듯/ 뻥 소리 뒤따른다// 야물던 쌀 한 됫박이/ 부풀어서 가볍다// 온갖 것 틀에 넣고/ 빙글빙글 굴리다가// 참다 참다 터뜨리듯/ 때가 되면 펑하니// 사람들/ 부풀린 말을/ 뻥이란 뜻/알겠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뻥 튀기’는 일을 그리지 않고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과 관련지어서 사람살이의 또 다른 모습을 상기하게 하고 있지요.
마우스만 누르면
뭐든지
해결된다
온 세상과 통하고
게임도 다 하지만
마우스
백날 흔들어도
날파리
못 쫓는다
-「마우스도 못하는 게 있다」
마우스는 오늘의 우리에게는 가장 친근한 것입니다. 마우스 없이 하루가 돌아가지 않을 지경이지요. 어쩌면 마우스는 전지전능합니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 반드시 붙잡아야 할 열쇠이기에 우리는 마우스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하리라 여기지요. 그런데 안 되는 것이 있군요. ‘마우스/ 백날 흔들어도/날파리’ 한 마리 못 쫓는 것입니다. 은근히 문명의 이기에 대해 비꼬는 듯 합니다.「마우스도 못하는 게 있다」는 시 속에서는 전혀 말하고 있지 않지만 ‘좀더 자연과 가까이하면서 살아라!’ 하고 말하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이용숙 선생님! 언제까지나 아이로 사실 테지요? 첫 동시조집『꽃간판』을 따사로운 손길로 어루만지는 어린이들과 함께 동심으로 살면서 더 많은 책들을 펴냈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의 어린이들의 품에『꽃간판』은 소담한 선물로 안겨질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