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참소리 박물관장인 손성목 관장을 2월 15일 화요일 저녁
휴넷의 골드클래스 강의를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일과 연관되지 않은 강의를 들을때면 일종의 휴식이라는 느낌을 받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박물관을 만들고 키워낸 한 평범한 열정의 소유자의 이야기정도로 예단했었다....
동영상을 보고 손관장의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며 듣는 이야기에서 묘한 뜨거움을 느낀다.
그럴 수 밖에 없는 태생적인 이유도 발견하게 되었고
그러한 확실한 사명을 스스로 만들고 가꾼 한 사람의 열정에 박수를 치고 싶었다.
"에디슨은 청각장애자였슴다 아버지는 못수였고 엄마는 선생이었지요 7자녀중 막내였는데
하도 말도 안되는 질문들을 해대니 6개월만에 학교가 손 든 가망이 없어보이는 존재였슴다....."
라고...시작된 강연장에 손관장은 100년이 넘은 축음기와 에디슨이 직접 발명한 벽열전구를 가져와
아름다운 필라멘트 빛을 선보여 주기도 했다. 알고보니 더욱 아름다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인류의 역사는 소리와 빛을 자본화 해온 역사다라고 정의를 내리는 손관장의 강연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척도가 소리와 빛에 얼마나 집중되어있는지 그 열정을 가름할 수 있었다.
130년전만 하더라도, 소리나 빛은 절대로 저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였다.
불과 100여년 전부터 시작된 소리와 빛의 저장의 역사가 에디슨을 통해 시작되었다는 사실!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형광등과 LED의 시초가 불과 100여년전이라니...
알면서도 새삼 놀랜다는 건 바로 이런걸 두고 얘기하나보다.
200여가지의 주옥같은 발명품을 남긴 에디슨에게 라이프지 기자가 물어보았다.
"그많은 발명품 중 그래도 애착이 가고 보람이 남다른 발명품이 있을텐데요?"
에디슨의 답은 명확했다.
"아니요! 어느 하나를 꼽을 수가 없답니다. 전부 산고의 고통을 안고 태어난 자식들이니까요!"
여러차례 계속된 물음에 어느 하나를 꼽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버티다가 결국 하나를 꼽았다.
그건 바로 축음기입니다.
고종3년에 세브란스 설립자인 엘렌 선교사가 축음기를 들고와서 고종에게 들려주려 했을 때
고종뿐 아니라 아무도 믿지 안았다고 한다.
고종은 박춘재 명창을 불러 적벽가를 부르게 하였고, 엘렌은 녹음된 박춘재명창의 적벽가를 다시 틀어주었다.
고종황제와 박춘재 명창 그리고 함꼐 자리했던 많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떄 박춘재 명창이 했던 말이 간떨어질뻔 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소리를 저장해두었다가 다시 듣는다는 100여년전 사람들의 꿈은 에디슨을 통해 세상에 드러났고,
당시 오페라 입장권이 10달러였는데 축음기의 값이 20달러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축음기의 인기가 높았을까 생각이 든다.
강연장에서 100년이 넘은 축음기를 통해 국내 최초의 유행가였던 윤심덕의 사의찬미 판을 가져왔으나 듣지는 못했고
대신 1958년 발매된 앵두나무사랑이라는 유행가를 들었다. 마치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으로...
강릉에 가면 참소리박물관과 에디슨박물관이 있다.
에디슨의 고향은 미국이지만, 에디슨의 영혼을 보려면 한국의 강릉을 찾으라고 할 정도다.
그 소문을 뒷받침할 증거는 명명백백한듯 하다.
당시 축음기의 음을 재생시키는 판을 15만장이나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에디슨의 손떄가 묻은 일상품들, 그리고 축음기를 비롯해 다리미 세탁기 전기자동차까지
그야말로 에디슨을 보려면 강릉을 찾아야할 것 같다.
세계 최초의 전기자동차 발병도 에디슨인지는 이 떄 처음 알았다.
에디슨과 친했던 포드가 자동차를 만들었지만, 동네가 시끄럽고 매연이 심했던 그 당시
에디슨은 최초의 전기자동차를 3대 만들어 1대를 포드의 부인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그 중 한대가 에디슨 박물관에 있다 손관장이 직접 수집을 한 것이다.
수집가의 과정이 우리의 예상처럼 순탄치만은 않다는 사실 확인은
강연이 끝난 뒤 질문시간에 던진 재원마련이란 질문의 답변에서였다.
현대건설 직장인 시절부터 중동으로부터 축음기를 5~600 대나 들여오는 극성을(?) 떨던 손관장은
회사를 그만두고 강릉에 임대아파트를 지어 그 분양대금으로 축음기와 각종 수집품들을 사들이고 하다가
파산까지 갔던 기억들을 되내이셨다.
김연아가 따로 있을까? 박태환이 따로 있을까?
축음기 아니 소리와 빛의 역사의 세계에 장미란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현재 박물관의 99%의 실물들은 전부 작동이 되는것이라고 하는 게 또한 놀라웠다.
영화제는 있지만, 영화박물관이 없다는 말씀!
사람의 움직임을 저장해보자 꿈꿔왔던 에디슨이 영사기를 만들었기에
그래서 영화를 만들 수 있었기에 반드시 영화 박물관을 만드리라 다짐을 해보이는 손관장은
6500 여점이나 되는 자식(?)들을 진짜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이 없다고 한다.
모든것은 사회로 환원될 것이고, 후세들이 소리와 빛을 즐기고 그 도움없이 살아갈 수 없지만,
그 역사만큼은 반드시 알아야 하기에 꼭 사회에 환원하여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 하셨다.
평안도 원남태생의 그가 1.4 후퇴 그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어린나이에 아버지가 사 준 축음기를 들고
피난을 가겠다는 믿지못할 장면부터 그의 꿈과 사명은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에디슨을 만났고 에디슨에게 빚을 지지않은 사람은 지구상에 몇사람 없다고 말 할 정도로
에디슨에 애착을 가졌다. 그래서 그의 꿈도 진화를 했고 강릉을 품은 한국을 명실상부한 에디슨의 제2의 고향으로 만들어버렸다.
복권을 산 자만이 당첨을 기대할 수 있듯이 꿈을 꾼 자만이 그 꿈을 얻을 수 있다.
손성목 관장의 강의 100분이 내 인생의 또다른 영점조정의 순간이 되었다.
암투병으로 위를 잘라내고 대장까지 잘라낸 분이라 가끔씩 의자에 탁자에 의지하면서도
에디슨과 축음기 영사기 얘기에 벌떡 벌덕 일어나 그 사랑스러운 언어를 토해내신 값진 열정에 입이 다물어질 정도였다.
진정한 영화 박물관을 꼭 만들겠다. 테마공원이 아닌 진짜 어린이 박물관을 꼭 선보이겠다는 많은 공약도
저세상에 가서도 꼭 박물고나을 짓고 있을겁니다.라는 말로 전부 가름이 되지 않을까...
한밤중 여의도의 골드특강에서 나는 또다른 세상과 조우했다. 고맙고 감사하다.
얼마전 다녀왔던 강릉을 3월이 가기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다녀올란다.
한 사람의 꿈과 열정이 어떤 파급효과를 낳는지를 설명해주면서...~^L^~...
첫댓글 물소리 발 지내시는가? 보고잡네..자넨 참 재주많은 사람일세. 소리도 잘하지 소리랑 살림도 잘하지..이렇게 글쓰는 재주도 좋지..100분 강연을 많은 사람과 들엇을진져 어찌 이렇게 핵심을 잘 추려내고 내면과 ㅇ 융합하여 감정을 실어 남에게 전달하는지..부럽네 ㅡ소리공부도 잘허고 있으리라.담에 함 보세
행님! 소리공부 손 놓은지가 1년 하고도 2개월째입니다. 소리공부 얘기만 나오면 밑 안 닦고 나온것처럼 찝찝해 죽겄습니다. 해서 3월부터 어떻게 해서든 공부 다시 시작할 요량이구요...시간 아끼려면 그냥 생각나는데로 쓴 강의 후기는 쓰다보니 넘 길어 사람들이 안볼까 걱정됩니다....내가 들은 강의를 다 전달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말이죠...ㅎㅎㅎ 암튼 다음달 시산제때 뵙도록해요~^L^~
끝까지 잘 읽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