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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강-1 (서품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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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를 위한 법화경강의 제2강 1
(無比 큰스님, 문수선원, 2008년 3월 21일)
1.서품 1-2
지난 시간에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고 하는 경전 제목을 말씀 드렸고, 오늘은 지난번에 나눠드린 유인물 있죠.
부족 부분은 오늘 많이 인쇄를 해놨으니까 충분히 돌아갈 겁니다. 유인물 잠깐 봐 주시기 바랍니다.
유인물 보면은 한쪽에는 <경전을 공부할 때 생각할 점> 이 있고, 뒤에 보면 <교상판석> 이렇게 돼 있는데 교상판석이라고 하는 부분을 좀 보겠습니다.
<법화경 1강 유인물>
교상판석(敎相判釋) - 경전해석법
법화경을 근거로 한 천태종의 교판은 오시교(五時敎)다.
1.화엄시-21일간-화엄경
2.녹원시-12년-아함경
3.방등시-8년-유마경, 사익경, 금광명경, 승만경 등의 대승 경전
4.반야시-21년-여러 반야경
5.법화열반시-8년-법화경. 1일간 열반경.
阿含十二方等八 二十一載談般若 終談法華又八年 最初華嚴三七日
아함십이방등팔 이십일재담반야 종담법화우팔년 최초화엄삼칠일
窮子驚愕華嚴時 除糞定價阿含時 出入自在方等時
궁자경악화엄시 제분정가아함시 출입자재방등시
令知寶物般若時 傳付家業法華時
영지보물반야시 전부가업법화시
교리발달사적 관점
원시불교--부파불교--상좌부와 대중부를 중심으로 20개 부파
초기대승불교, 중기, 후기
비밀불교, 선정불교, 호국불교 기도불교(기복불교)
*** <참고〉부파불교(部派佛敎)--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나고 100여년이 지나자 교단 내에서는 교리와 계율의 해석 문제를 놓고 논쟁이 일었고, 이에 따라 과거의 계율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는 보수적인 성향과 시대 변화에 따라 융통성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진보적 성향의 두 입장이 공존하게 되었다. 전자를 상좌부(上座部), 숫자적으로 우세하였던 후자를 대중부(大衆部)라 하며 이들의 대립을 근본분열이라 한다. 이후 다시 200~300년에 걸쳐 이들 두 파로부터 다시 분파가 생겨나 기원전 200년경에는 총 20여 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부파불교는 이 시기의 불교를 일컫는 것으로, 각 교단은 저마다 석가의 교리와 계율을 연구·정리하여 방대한 논서(論書)를 작성하면서 논쟁을 그치지 않았다. ‘논(論)’이라는 말의 원어가 ’아비다르마(abhidharma)이고 이를 한역(漢譯)한 것이 아비달마(阿毘達磨)이므로,부파불교를 아비달마불교라고도 한다. 당시 교단의 관심은 온통 석가의 가르침에 충실하기 위한 교리의 해석이었으며, 자연히 출가자와 승원(僧院)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불교의 성격을 띠어갔다. 따라서 출가를 전제로 하여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수행하고, 또 타인의 구제보다는 자기 수행의 완성을 우선목표로 삼았다. 이로 인해 교단으로부터 멀어진 대중들은 교단에 반발하며 불탑(佛塔)을 중심으로 석가에게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이로써 대승불교가 탄생하였다. 이들은 개인보다는 전체의 완성을 우선한다는 입장에서 스스로를 대승(大乘)이라 칭하고, 이에 반해 기존의 부파불교를 소승(小乘)이라 낮추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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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經典)을 공부할 때 생각할 점>
1. 부처님의 생애(生涯)와 설법(說法)--49(45)년 설법
2. 결집(結集:편찬)과 경전성립사적(經典成立史的) 입장--
불설(佛說)과 비불설(非佛說)의 문제
3. 경전(經典)의 분류(分類)---신수대장경의 예(例)
아함부(阿含部), 본연부(本緣部), 반야부(般若部), 법화부(法華部), 화엄부(華嚴部), 보적부(寶積部), 열반부(涅槃部), 대집부(大集部), 경집부(經集部), 밀교부(密敎部)--경전은 10부
그 외 선종부(禪宗部), 논소부(論疎部), 사전부(史傳部), 도상부(圖相部) 등등. 현재 가장 합리적인 분류로 인정
4. 경전(經典) 49년 설(說)에서 본 법화경의 위치(位置)--
오시(五時:오분법(五分法))와 궁자유(窮子諭)
가, 아함십이방등팔(阿含十二方等八) 이십일재담반야(二十一載談般若)
종담법화우팔년(終談法華又八年) 최초화엄삼칠일(最初華嚴三七日)
(열반경은 최후 3개월)
나, 궁자경악화엄시(窮子驚愕華嚴時) 제분정가아함시(際糞定價阿含時)
출입자재방등시(出入自在方等時) 영지보물반야시(令知寶物般若時)
전수가업법화시(傳付家業法華時)
5. 삼종(三宗)---상(相) ·공(空) ·성(性)
6. 삼종관(三種觀)---가관(假觀) · 공관(空觀) ·중도관(中道觀)
7. 선어(禪語)의 입장
산시산 수시수(山是山 水是水),---------가관(假觀)-----상(相)
산불시산 수불시수(山不是山 水不是水),---공관(空觀)-----공(空)
산지시산 수지시수(山只是山 水只是水),--중도관(中道觀)---성(性)
8. 전경(全經), 품(品), 장(章), 분(分), 대단락(大段落), 중간단락(中問段落), 세부단락(細部段 落:과목(科目))의 종지(宗旨), 대지(大旨), 대의(大義), 요점(要點)
예:법화경--회삼귀일(會三歸一)
화엄경--통만법 명일심(統萬法 明一心)
능엄경--기탁염 발묘명(棄濁染 發妙明)
금강경--파이집 현삼공(破二執 現三空)
팔만대장경--원각도량하처 현금생사즉시(圓覺道場何處 現今生死卽是)
9. 명언(名言), 명구(名句), 명유(名喩), 설화, 등장인물(불, 보살, 팔부신장, 불제자, 기타)
<경전을 공부할 때 생각할 점> 이건 여러분들이 혼자 자습하실 때 잘 살펴보고, 이걸 이대로 경전노트에 한 열 번 정도 써 보는 훈련을 하시면 상당히 공부에 도움이 되실 줄 믿습니다.
무조건 공부한 것을 열 번 쓸 작정 하세요 열 번.
무조건 하여튼 뭐가 됐든지 열 번을 쓰도록, 유인물이 됐든지, 경전 경문이 됐든지, 경전 제목이 됐든지 아니면은 경전의 품 이름 있죠? 이십팔 품 이름이 됐든지 간에 ‘무조건 열 번을 쓴다’ 하는 각오로 써버릇 하기를 익혀야 자기 공부가 됩니다.
여기 오실 때 교재도 챙기고 사경집도 챙기고 노트도 챙기고 유인물도 챙기고 또 한 가지 챙길 것, 접수하는 것도 챙기고 (웃음) 그거 고루고루 좀 챙겨서 그렇게 차질 없도록 하세요 하하.
우리가 불교 공부한다고 하는 이 인연으로
또 불교를 믿는다고 하는
부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 인연으로
자꾸 여러분들이 학생으로 돌아가고 또 의식이
생각이 젊어지고 행동이 젊어지고
그래서 그동안 묵혀두었던 머리도 자꾸 깨어나고,
그래서 이제 어떻게 사는가,
늙어 죽을 때까지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게 정말 제대로 사는가 하는 것을 불교 안에서 배우게 됩니다.
불교 안에서 사는 방법을 배워 놓으면 아주 할 일이 많아요. 늘 바쁩니다. 늘 학생으로 돌아가서 배우는 입장에서 삶을 영위해 가기 때문에 항상 의식이, 생각이 싱싱해 젊어.
그런 자세로 우리가 평생 살면 다음 생에 태어나도 머리 나빠서 부모 속 썩히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항상 공부하는 자세로 80이 되든, 90이 되든 그런 생활 습관이 딱 몸에 배어 있으면
다음 생으로 그 정신, 그 자세, 그 태도가 그대로 이어져요. 그대로 이어져 가지고 다음에 태어나면 틀림없이 천재가 되는 거야.
우리가 익숙하게 하지 않은 것 이걸 하려다 보니까 힘들지. 그런데 과거생에 익숙하게 해 놓은 거는 안 가르쳐줘도 잘 해. 안 가르쳐 줘도 잘 하는 거 있죠? 그게 왜 잘 하느냐?
결코 배운 적도 없는데 잘 하는 것은 과거생에 틀림없이 우리가 익숙하게 해 놔서 그러는 거야.
그런데 공부는 어떻게 된 심산인지 도대체 머리에 안 들어 오는 거야. 그건 익숙하게 안 해서 그래.
익숙하게 한 사람은 아주 쉽습니다.
먹고 자고 하는 것 보다 더 쉽다는 거예요.
여기 우리 스님들 법화경 공부하는데 뒤에 와서 심부름하고 보조하고 하는 중학생이 하나 있어요.
금년에 중학생이 됐어.
그애는 초등학생 때부터 벌써 영어로 된 금강경 다 외우고
한문으로 된 금강경 다 외우고,
지금 내가 법화경 와서 옆에서,
저 뒷방에서 ‘심부름 하면서 들으면서 법화경 외워라’ 하고 교재를 한 권 줬더니
그걸 딱 매일 몇 줄씩 정해놓고 또박또박 외우고
또 저희 아버지가 영어로 된 법화경을 구해가지고 고 분량만치 올려주니까 영어로 된 법화경도 외우고
일어로 된 법화경을 구하고 싶다 해서 내가 그걸 또 복사를 해가지고 일어로 된 법화경을 또 줬어. 그랬더니 그것도 일어 공부하면서 같이 외우고 쓰고 이렇게 하고 있어요 법화경을 지금.
그런데 그놈은 아무리 봐도 전생에 여러분들처럼 이렇게 열심히 와서 공부한 사람 같애 하하하 내가 참 그런 불자를 처음 봤어요.
아주 똑똑하고 머리 좋고 훌륭한 불자 아들 많이 계시지만은 초등학생이 벌써, 이제 중학교 일학년인데,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요.
어떻게나 귀여운지, 그리고 또 생각이 됐어.
그래 법화경을 지금 여러분들처럼 그렇게 쓰고 사경하고 외우고 있습니다. 그게 아마 틀림없이 과거생에 공부를 많이 했던 그 습관 그대로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만반장불거(萬般將不去)요 유유업수신(唯有業隨身)이라
오늘 유인물에 마음이라는 것, 마음 닦는 것 돌려졌나요?
거기 보면은 만 가지를 가져갈 수가 없고 오직,
마음 아니네 그거 마음 말고 수심이라고 하는 유인물인데, 그건 이제 범어사 올라가면 있습니다 수심(修心).
수심이라고 하는 데 보면 그래요. 아무것도 우리가 가져갈 수가 없고, 오직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업만 가져간다 그랬어요. 우리가 지은 업만 가져가는데 업이 뭐냐?
공부한 버릇, 공부한 일 이게 업이예요.
안 좋은 업도 가져가, 좋은 업도 가져가고,
업은 다 가져가게 돼 있어. 그래서 걔는 공부한 업을 그대로 가져온 모양이라. 집에다 돈은 다 버리고, 아마 죽을 때 돈은 못 가져 왔는가, 하여튼 돈은 별로 없는 것 같애 내가 보니까. 돈은 안 가져왔는데 공부하던 버릇을 가져와 가지고 그래 공부를 잘하더라고.
우리도 부처님에게서
우리가 여러 가지 소득을 얻지만은
그 중에서 불자가 삶을 살아가는 방법, 이걸 우리가 배우게 되고, 그것을 습관화 하는 것,
이것이 어쩌면 제일 큰 소득이 아닐까 싶습니다.
불자(佛子)로서 살아가는 방법이 뭡니까?
열심히 기도하고 정진하고 마음 닦고 사경하고 강의 듣고
쓰면은 힘들죠 잘 안 돌아가지만은 그래도 한 자 한 자 그리면서라도 익히려고 하는 그 노력,
그 자세, 그 정신
이게 업이 되어가지고 그거 그대로 다음 생에 가는 거야.
그런데 다음생에 가면 금생에 한 것처럼 그렇게 힘들지가 않습니다. 지금은 연세가 있어서 하기가 힘들지만은 다음생에는 그것이 그대로 어린아이에게로 전달되기 때문에
열 배 백 배로 아주 익숙하고 순조롭습니다.
지금 하는 것처럼 그러면 뭐 별로 잘 하지도 못하지.
그런데 하하
지금처럼 그렇게 되는 게 아니고,
어린아이로 태어나면은 이게 순수한 마음에서 금생에 하던 업을 그대로 가지고 가기 때문에 아주 그건 뭐
익숙하고 쉽고, 잘 할 수가 있도록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불교를 믿고 또 부처님 공부를 하는 것 중에서 여러 가지 소득이 있는데 그 중에 또 큰 소득이 바로 이 살아가는 자세를 우리가 배운다고 하는 것,
그래서 여기 와서 이렇게 하는 것은 훈련이고,
각자 집에 돌아가서 평소의 삶이
이런 부처님 공부한 것으로 훈련이 된다고 하는 것,
이거는 큰 소득이예요.
아이들 보고 공부하라 마라 할 필요가 없는 거지.
부모가 앉아서 공부하고 있는데 어떤 아이가 그거 본 안 보겠습니까? 괜히 입만 가지고 ‘공부해라 공부해라’ 해봐야 그거는 반발만 사거든요.
이런 지혜도 또 절에 와서 배우고
부처님 앞에 와서 배우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이치를 알고 또 지혜를 갈고 닦아서
지혜롭게 산다고 하는 것은
이치를 꿰뚫어 보고 산다 하는 것입니다. 이치를 꿰뚫어 보고, 이치대로 살면 그게 지혜롭게 사는 거야.
그만 무리하게 이치하고 어긋나게 자꾸 사니까
내 생각대로, 이치 이건 생각하지 않고,
이치하고 영 어긋나게 살려고 하니까
이제 뭐가 잘 안 돌아가는 거고,
해놓으면 판판이 실패하고, 억지를 부리게 되고 그렇게 되는 거죠.
절에 와서 부처님 공부 한다고 하는 것은
이치를 깨닫는 것이고
이치를 깨닫는 그 일이 곧 지혜로운 일이고 그렇습니다.
오늘은 그 교상판석 이제 다 챙겼죠?
‘경전해석법이다’ 해서 부처님 경전을 흔히 팔만대장경 이렇게 하잖습니까? 너무나도 많고 많은 경전인데
이것이 분류를 해 보면은 어떻게 나누어 지는가?
이런 뜻이예요,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는 게.
법화경을 근거로 한 천태종의 교판은 오시교(五時敎)다,
이랬습니다. 다섯 시기로 경전을 분류하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화엄시 해가지고 21일간 화엄경을 설했다 이렇게 보는데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시고 21일간
그 깨달음의 환희 그리고 그 충격, 그 법희선열, 그 기쁨, 법락 이런 것을 21일간 밤잠도 설쳐가면서,
한숨도 안 잤겠지 21일간,
그러면서 그 깨달음의 환희와 그 깨달음의 깊이와
그 깨달음의 넓이와 이것을 그대로 표현해 놓은 것을
화엄경이라 이렇게 합니다.
왜인고 하니 부처님이 깨닫기까지는 어마어마한 투자를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 와서 법화경 공부하는데도 어느 정도 시간투자, 정력투자,
오늘 이 좋은 봄날씨에 어디 놀러갈 때도 많겠지만은 그거 다 포기하고, 여기 온 거 그것도 큰 투자 아닙니까?
희생이라고요, 어떻게 보면. 그런 희생을 치르고 한 시간의 공부를 하듯이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는 데는 그런 정도의 희생이 아니예요 이건. 태자로 태어나서 태자 지위를 헌신짝 버리듯이 버렸습니다. 요즘 취직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보통 사원으로 들어가기도 어려운데 태자의 지위, 그게 보장이 되어있는데 그 직장을 버렸다니까.
곧 왕이 될 거야, 부왕이 돌아가시면 곧 왕이 될 그 엄청난 자리를 버린 거야. 큰 희생을 치뤘죠.
깨달음을 그거하고 맞바꾼게 아니예요 또,
그거는 그냥 입학금에 불과해 사실은.
태자의 지위를 버린 것은 입학금 정도에 불과하다고요.
그 다음에 6년간 고행이라고 하는 게 엄청난 수업이야
6년간 고행. 금지옥엽 귀한 태자의 몸으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엄청난 고행을 6년이란 세월을 했다고 하는 것,
이게 본수업이죠.
최소한도 부처님은 깨달음을 위해서 그 정도 희생과 그 정도 투자를 했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게 되어 있는 것 아닙니까? 이게 이치예요, 세상 이치야.
오늘날 부처님 부처님 하고 전세계, 삼천 년의 세월동안 전세계, 특히 서양 같은 데서 이제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과 그 정신을 잘 알기 때문에 이 동양보다도 더 야단법석이야 오늘날 서양에서는.
그런 정도로 그분의 가르침과 그분의 인격과 그분의 위대성을 추앙받는 이유가 그냥 맨 입에 되겠어요?
될 수가 없는 거예요.
앞서 설명했듯이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만한 희생과 그만한 투자를 했어. 가난한 집에 태어나가지고 목수아들로 태어나가지고 저기 말, 무슨 거기에서 태어난 그런 출신하고는 처음부터 이게 달라. 엄청난 투자를 한 거예요 부처님이 스스로.
그런 희생과 투자를 통해서 얻은 큰 깨달음,
그 깨달음의 능력, 그 깨달음을 통한 그 인격,
위대함 그 훌륭함이 오늘 우리에게 까지 이렇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이걸 우리 불자들은 아셔야 되고, 또 거기에 대한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셔야 되는 거예요.
‘아 내가 모시는 스승님 우리 부처님은 이런 분이다; 라고, 나는 거기에 바로 적손(嫡孫)이다, 그 분의 적손이다.
뭐 김씨의 딸, 이씨의 아들이 아니고, 부처님의 적손이다 말이야. 이런 정도로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되고, 또 그렇게 될라면은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좀 알아야 돼.
살림살이도 몇 푼 어치 알지도 못하고
그냥 덮어놓고 아, 나는 부처님 제자야, 부처님 적손이야 이렇게 하면 좀 미안치요.
부처님의 적손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만 하려면 그만치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내 것으로 해야 돼. 이 법화경을 공부하면서 내가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바로 법화경 안에
‘모든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법화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 전달해 준다’ 하는 그런 뜻이 법화경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 여기 보면은 그이야기가 바로 나와요.
보면은 그 깨달음의 그 경지, 그 넓이와 그 높이를 적나라하게 다 드러내 놓은 것이 화엄경이고,
그 화엄경의 경지를 너무 높은 까닭에 우리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부처님이 완전히 저 유치원 수준으로 낮추어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이 녹야원시 해서 12년 동안 아함경을 설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 다음에 8년 동안 방등시라 해서 여기는 유마경, 사익경, 금광명경, 승만경 등 일종의 대승 경전인데 이런 대승경전을 설한 것으로 분류를 합니다.
그 다음에 반야시라 해서 21년 동안 여러 반야부 경전을 설하는데 이게 600권이나 되요. 권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세월도 길었지만은.
그래서 우리가 익히 아는 금강경, 반야심경 이것이 전부 여기 반야시에 들어가요.
그 다음에 법화경과 열반, 열반경은 사실은 1일간 열반경 이렇게 했지만은 법화경을 8년간 설하신 것으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법화경 열반경을 같이 묶어서 법화 열반시 이렇게 말하는데 그 중에서 주로 법화경의 이치를 8년간 설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법화경을 마지막으로 8년간 설하시면서 열반경은 뭐 하루밤낮의 부처님의 열반에 드시는 광경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법화경을 우선시 하는 거죠.
법화경은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전부 우리들에게,
부처님 제자 우리들에게 전부 전해주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살림살이를 우리가 잘 알아야 불자로서
부처님 제자로서 또 불교를 믿는 불교 신도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자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아니면 무슨 누구로부터 물려받은 예를 들어서 수십억 수백억 수천억 재산을 설사 가졌다손 치더라도 또 절을 뭐 몇 십억 짜리 절을 물려받고, 몇 백억짜리 절을 물려받았다손 치더라도 이건 별거 아닌 거예요.
그런 기록은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없습니다 사실.
요즘 중생들이 하도 깊은 내용에는 이해가 없고, 취미도 별로 없고, 공부를 안 하는데 취미가 없지, 그래서 눈에 보이는 어떤 재산, 여기에만 관심이 있어 가지고 뭐 부모로부터 얼마를 물려받았느니 스승으로부터 몇 십억 짜리 몇 백억 짜리 절을 물려받았느니 모두 이런 데 이제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그렇지
사실 부처님은 우리에게 전해주려고 하는 것이 그런 유형의 재산이 아니라 정말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그 깨달음의 내용을 우리에게 법화경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다 물려주는데 뜻이 있습니다.
불자들은 그걸 아셔야 돼요.
부처님의 재산을 통째로 물려받는 일이니까 이게 얼마나 엄청난 일입니까? 수 백 억 재산을 부모에게 물려받는 거하고 비교가 안 되요 이건.
비교가 안 된다고요. 앞서서 말씀드렸듯이 수백억의 재산 물려 받았자 내 생명이 다 하면 다 버리고 가는 것이지만은, 부처님의 재산을 물려받으면은 이걸 이제 우리가 공부하면은 세세생생 써 먹는 거예요.
세세생생 나의 어떤 깨달음의 지혜가 되어 가지고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부처님의 지혜와 같은 밝은 지혜로써 인생을 철철철철 아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치에 맞게,
결코 역류하거나 무리수 두지 않고,
이치에 맞게 아주 지혜롭게 척척척 이렇게 잘 살아가는 지혜를 세세생생 활용할 수 있는 길.
이게 부처님 재산을 물려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걸 조금 관심있게 생각하시고, 공부하시려면
아함십이방등팔(阿含十二方等八)
이십일재담반야(二十一載談般若)
종담법화우팔년(終談法華又八年)
최초화엄삼칠일(最初華嚴三七日)
요걸 외우세요. 열 번 이상 쓰라고 했으니까, 반드시 쓰시게 될 것이고 고거 내용은 고 위에 일이삼사오번으로 해 놓은 것하고 똑같습니다. 요걸 앞으로 법화경 공부 속에 들어가면은
궁자경악화엄시(窮子驚愕華嚴時)
제분정가아함시(除糞定價阿含時)
출입자재방등시(出入自在方等時)
영지보물반야시(令知寶物般若時)
전부가업법화시(傳付家業法華時)
그렇게 되어 있어요.
여기에 다른 건 다 놔두더라도 마지막에 전부가업법화시(傳付家業法華時) 이렇게 되어 있죠.
전해주다 전부(傳付) 전해준다 그말이예요. 누구에게?
우리에게 전해준다, 무엇을? 부처님의 가업(家業)을,
부처님의 가업을 다 전해 주는 것 이것이 법화경이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가업, 부처님의 살림살이 부처님의 재산을 물려받고 싶으면은 법화경을 공부해야 돼.
법화경을 공부하면 저절로 부처님 재산 물려받는 거야.
다른 물질적 재산 물려받아도 아등바등 아등바등 잘 지켜야 현상유지 하는 거죠 사실은.
그래봐야 의식주 해결에 불과한 것이고 또 물론 사람이 사는 데, 육신을 가지고 사는데는 그게 최소한 필요한 만치는 있어야 되겠죠 기본적으로. 그건 뭐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그래도 숨이라도 쉴 만치 쉬고 밥술이라도 먹을 만치 먹고 사는 시대이니까 이젠 좀 더 눈을 좀 떠서 부처님 재산을 넘볼 수 있는, 부처님 재산을 넘겨다 볼 수 있는 그런 욕심도 한 번 부려 봐야 된다고요.
그래 마침 이 법화경 설하는 인연이 돼서
여러 불자님들 참 잘 오셨어요.
이제 이 인연으로 부처님 재산을 물려받는
그런 시대가 도래한 것 같습니다.
근래에 아시다시피 여기 보면 ‘문수경전연구회 법화경’ 했는데 스님들이 이 숫자가 지금 와요.
이 숫자보다 조금 더 오나? 이 숫자 하고 거의 비슷하게 오니까. 이 숫자 정도로 스님들이 오셔가지고 부처님 재산 물려 받을라고 법화경 공부를 하는 거야.
하는데 이제 거기는 스님반, 여기는 신도반 이렇게 되네요.
똑같은 법화경, 같은 교재 가지고 법화경 내용을 이렇게 정말 이제는 조금 철이 들었는가, 또 정신을 차리게 됐는가, 정말 부처님의 재산이 무엇인가.
우리가 부처님 제자라고 하면서 부처님 재산을 물려 받아야 되겠다. 이런 욕심 아닌 욕심을 이렇게 참 늦었지만은
다행스럽게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되어서
이런 법화회상이 승,속을 막론하고 벌어졌습니다.
참 좋은 현상이죠.
그렇습니다.
그 밑에는 경전을 교리발달사적인 관점에서 대강 정리를 했는데 요건 참고로 읽어보시기 바라고
지금까지 이야기는
법화경 공부는 부처님의 재산을 물려받는 것이고
또 부처님 재산을 물려받는 이 일을 우리가 열심히 정진함으로 해서 명실공히 당당하게 불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어디가서 자랑할 수 있고,
또 다음 생에 까지도 부처님 제자로서 이어지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을 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정리해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목차를 한 번 봅시다.
목차를 보면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하고 권 수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은. 옛날에는 말을 권(卷)자거든요 이게.
두루마리였어요. 두루마리.
경전이 전부 두루마리로 만들어졌어.
그래서 권자를 쓰는 거야.
한 두루마리, 두 두루마리 세 두루마리 이런 뜻이야.
두루마리가 너무 길면은 참 불편하겠죠 사용하기가.
그래 알맞은 길이의 두루마리로 잘라가지고 한 권 한 권 그렇게 했다고요.
그러니까 내용으로 분류한 게 아니고 양으로 분류하는게 권(卷)이야. 그런데 이게 쭉 지금까지 그 권자가 내려와져서 무조건 권권 하지만 본래 요렇게 된 건 요건 책(冊)이야 이렇게 된 건 이건 책이라고.
책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대쪽을 매었을 때 그걸 가지고 했지만은 그거하고 비슷하기 때문에.
책이라고 해도 상관없고, 권이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만 그러나 권의 유래는 그렇다 하는 것이고,
이건 품, 28품입니다.
目 次
妙法蓮華經(묘법연화경)
第一卷
1. 序 品 (서 품)
2. 方便品(방편품)
第二卷
3. 譬喩品(비유품)
4. 信解品(신해품)
第三卷
5. 藥草喩品(약초유품)
6. 授記品(수기품)
7. 化城喩品(화성유품)
第四卷
8.五百弟子授記品(오백제자수기품)
9.授學無學人記品 (수학무학인기품)
10.法師品(법사품)
11.見寶塔品(견보탑품)
12.提婆達多品(제바달다품)
13.勸持品(권지품)
第五卷
14. 安 樂 行 品(안락행품)
15. 從地涌出品(종지용출품)
16. 如來壽量品(여래수량품)
17. 分別功德品(분별공덕품)
第六卷
18,隨喜功德品(수희공덕품)
19.法師功德品(법사공덕품)
20.常不輕菩薩品(상불경보살품)
21.如來神力品(여래신력품)
22.囑累品(촉루품)
23,藥王菩薩本事品(약왕보살본사품)
第七卷
24. 妙音菩薩品(묘음보살품)
25. 觀世音菩薩普門品(관세음보살보문품)
26. 陀羅尼品(다라니품)
27. 妙莊嚴王本事品(묘장엄왕본사품)
28. 普賢菩薩勸發品(보현보살권발품)
서품, 방편품, 비유품, 신해품,약초유품, 수기품, 화성유품
그 다음에 오백제자수기품, 수학무학인기품, 법사품, 견보탑품, 제바달다품, 권지품, 안락행품, 종지용출품, 여래수량품, 분별공덕품, 수희공덕품, 법사공덕품, 상불경보살품, 여래신력품, 촉루품, 약왕보살본사품,묘음보살품, 관세음보살보문품,
잘 아시는 품이죠? 그거 사경 다 하셨나요? 한 권 다 했지죠? (웃음)
그 다음에 다라니품, 묘장엄왕본사품, 그 다음에 보현보살권발품 요렇게 해서 28품이 이제 법화경의 전체 품입니다.
妙法蓮華經
묘법연화경
제목은 말씀을 드렸고,
第一卷
제일권
序品 第一
서품 제일
서품(序品) 하는 것은 그야말로 서론입니다.
법화경의 서론이고 그다음에 방편품부터 이제 본론에 해당 되는 거죠. 워낙 양이 많고, 부처님의 재산이 고스란히 이 법화경 하나 속에 다 담겨 있기 때문에 품도 많고 양도 많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그동안 하시지 않았던 이야기,
다른 경전에서 그러니까 70세가 될 때까지 하시지 않았던 이야기를 70세부터 80에 돌아가시기
그 72세 부터가 되겠네요 73세부터 정확하게 80이라는 숫자라면은
73세부터 80에 열반에 드시기까지 새로운 이야기,
그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종합정리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법화경에서 다 털어 내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 아까 유인물에 보면은 이런 저런 비유가 뒤에 나옵니다만. 그동안의 이야기는 사실은 화엄경은 놀라서 이해도 못하는 수준이라면은 아함경은 제분정가아함시(除糞定價阿含時)라고 하는데, 아함이라고 하는 게 아함십이방등팔 하는 고 아함입니다.
제분정가아함시 그다음에 출입자재방등시(出入自在方等時)
영지보물반야시(令知寶物般若時) 전부가업법화시(傳付家業法華時) 그렇게 되어 있어요.
제분정가(除糞定價) 요건 우리가 불교에 들어왔다손 치더라도 기껏해야 저기 일꾼, 하인 같은 일꾼 노릇을 겨우 해가지고 똥이나 치고, 거름이나 치고 청소나 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겨우 하루 품값, 최저임금 하루 품값을 받고
그저 고것으로 만족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거야
그 다음에 출입자재방등시(出入自在方等時)라고 하는 것은 비록 그 집에서 거름이나 치고 청소나 하고 최저임금 받으면서 겨우겨우 연명해 가지만은
그래도 그 집에 이제 출입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처음에는 출입을 마음대로 못했어.
뭐 거름더미나 마당이나 저기 화장실이나 이런 데 밖에 출입을 못했다고
제분정가아함시(除糞定價阿含時) 아함경을 설할 때는
그 다음에 이제 방등경을 설할 때는 그래도 그 집에 이리저리 이 방, 방에야 못들어 갔겠지.
그러니까 이 집 저 집, 집이 워낙 넓으니까.
그 출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야.
예를 들어서 범어사 하면 범어사 처음에 가 가지고는 어디가 어딘지 몰라서도 못 찾아다니지. 자주 다니다 보면은 이제 이 법당 저 법당 이제 마음대로 출입하는 거야.
산신각 가고 싶으면 산신각 가고 큰법당 가고 싶으면 큰법당 가고, 이제는 눈 감고도 탁 찾아갈 수 있는 거야.
그게 방등경을 설할 정도라.
그래봤자 법당에 그저 출입자재 하는 것이지
부처님의 보물이 뭔지, 부처님이 소중하게 아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잘 모르는 거지.
그런데 그걸 아는 때가 언젠고 하면
반야경을 설하는 때다. 영지보물(令知寶物) 보물, 부처님이 아끼는 보물을 아는 때, 그게 이제 반야경,
다시 말해서 금강경, 반야심경, 그 외 대품반야경 등등 이런 반야경을 설할 때가 부처님의 보물을,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아는 때야.
그래봤자 아직까지는 부처님의 살림살이지
그것이 내 것이 되진 않았어. 그런데 내 것이 되는 때가 뭔고 하면은 법화경을 설할 때다.
그래 전부가업(傳付家業) 법화경이야.
부처님이 전부 부처님의 살림살이, 부처님의 재산을 우리에게 딱 물려줘 가지고 그것이 그대로 내 것이 되어버리는 때가 법화시야 법화경을 설 할 때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와 같이 중대한 경전이기 때문에 서론이 이렇게 길어져요 서품이라고 하는게.
서론도 상당히 장황합니다.
이거 언제 끝날지 몰라 서론만 하더라도.
그렇지만은 꾸준히 참고 공부하고, 또 급하신 분은 번역한 것도 많고 하니까, 나중에 번역한 것도 읽어보시고.
그래봤자, 제대로 다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설명을 해 드려도 이게 이해될까 말까 한데
번역, 그거는 한문을 한글로 바꿔놨다는 것이지,
그 속에 담은 깊은 뜻은 정말 알기 어려워요.
아는 사람에게 설명을 듣는 게 혼자 공부하는 것하고 비교하면 거저먹기야 사실은. 그래서 선생이 필요하고, 선지식이 필요하다 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번역도 참고하시고 다른 사람의 해설도 참고하시되,
또 이렇게 와서
모두 법화회상에 이렇게 법화행자가 되어서 동참을 해 가지고 같이 공부하는 이런 분위기가
또 내 공부 반 이상을 덜어주는게 되거든요.
그래서 이런 분위기를 우리가 소중히 생각하고 또 높이 사야 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자 그럼 서론 이제 들어가겠습니다.
1. 如是我聞하사오니
여시아문
저는 이와 같은 사실들을 보고 들었습니다.
如是我聞하사오니
여시아문(如是我聞)하오니 그랬어요.
이와 같은 내용을 내가 들었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여시(如是)라고 하는 것, 이와 같은.
이와 같은 내용을 저가 들었습니다.
여기 나 아(我)자 요걸 이제 저라고 표현했는데
이건 누구게요? 저라는게? 아난존자입니다.
아난존자가 부처님이 설하신 이와 같은, 아래와 같은 이렇게 해야되겠어요 사실 여하, 여시((如是)보다 여하(如下)
아래와 같은 법문의 내용을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고스란히 들었습니다. 이 뜻입니다.
이게 여시아문(如是我聞)
참 이렇게 글자 넉자만 이렇게 우리가 쓰고 외우고 하더라도
이 속에 그 밑으로 설해져 있는 그 내용을 이렇게
그야말로 옷을 드는데 옷깃을 드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잖아요.
저 위 큰 절에 들어가는데
일주문에 척 당도한 느낌이 딱 드는거야 여시아문(如是我聞)이렇게 하면. 그런 기분을 느껴야 돼요. 아 여시아문이라
뭐 힘들거든 여시아문 넉자만 외워버려 (웃음)
여시아문 여시아문 이와 같은 내용을 아래와 같은 내용을
법화경 안에 담겨 있는 이 많고 많은 내용을 아난존자가 부처님으로부터 들었단다. 그러면 궁금해서도 저절로 그 밑으로는 공부하게 돼 있습니다.
2. 一時에佛이 住 王舍城 耆闍崛山中하사 與大比丘衆
일시 불 주 왕사성 기사굴산중 여대비구중
萬二千人으로 俱러시니 皆是 阿羅漢이라 諸漏 已盡하야
만이천인 구 개시 아라한 제루 이진
無復煩惱하며 逮得己利하야 盡諸有結하고 心得自在러시니
무부번뇌 체득기리 진제유결 심득자재
어느날 부처님께서 왕사성 기사굴 산중에 계셨습니다. 큰스님(大比丘)들 일만 이천 명과 함께 하셨는데, 그들은 모두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이들로서 모든 누(漏)가 이미 다하고 더 이상은 번뇌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진정한 이익을 얻어서 존재의 속박이 다 없어진 상태라 그 마음은 아주 자유로웠습니다.
一時에 佛이
한 때에, 뭐 서기 이천 팔년 무슨 몇 월 며칠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
부처님의 가르침은 살아있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오늘이 며칠이죠? 21일이죠 3월 21일.
2008년 3월 21일 하면 오늘로서 끝납니다 이게.
내일 되면 또 달라져 버리죠. 내일은 22일이 되는거야 그러면은.
물론 그 날도 뭘로 쳐도 몇 년 몇 월 며칠이 있을 겁니다. 있지만은 경전은 어느 하루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야.
또 작년에만 국한되었거나, 금년에만 국한되었거나 무슨 삼 천 년 전에만 국한되었거나 그렇게 하면은 생명이 없는 것이 돼 버립니다. 세상 어떤 기록하고는 전혀 다른 게 거기에 있어요.
세상 기록은 2008년 3월 21일 딱 요렇게 해서
오늘로써 어떤 표현을 충분히 하고 그걸로써 끝나버리고
내일은 또 내일의 일이 있지만은.
여기 일시(一時)에 부처님이
한 때 부처님이 라고 하는 것은 이건 영원한 한 때라.
오늘 보면 오늘이 일시고, 어제 봤으면 어제가 일시고, 삼천년 전에는 그 때가 또 일시고 한 때고, 내일이면 내일, 내년이면 내년 십년 후면 십 년 후 항상 봐도 그 때야.
이렇게 경전은 의미심장합니다.
아무렇게나 해놓은 것 같지만은 참 의미심장하게 해 놨어요.
언제 봐도 이건 부처님이 우리가 경전을 펼쳐서 경전을 읽는 그 순간이 부처님이 설해주는 그 순간이다.
내가 경전을 펼쳐 읽는 그 순간이
부처님이 경전을 설해주는 순간이야.
그게 어디가 됐든지 언제가 됐든지 간에
낮이 됐든 밤이 됐든 뭐 작년이 됐든 내년이 됐든 금년이 됐든 언제가 됐든지 항상 이것이 이제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있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그래 일시에 불이
만고에 이런 가르침은 없습니다 이거 하나만 보더라도요.
진리가 뭐 삼천 년 전에만 살아있고, 작년에만 해당되고 금년에 해당 안 되면 우리 공부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 없죠.
그래 진리는 항상 살아있는 것이고 항상 우리 삶에 적용이 되는 것이죠.
또 내일 내 삶에도 적용이 되는 것이고
내년에 내 인생에도 적용이 되는 것이고
수 백만 년 뒤에 어떤 사람이 살아가는 데도 이 법화경의 가르침은 역시 적용이 된다.
그래서 항상 해당되는, 언제든지 해당될 수 있는 표현으로써
일시(一時)에 이렇게 하는 거예요.
일시에 부처님이
住 王舍城 耆闍崛山中하사
주(住) 머무르셨다. 어디에?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중(耆闍崛山中)에 머무르셨다.
이걸 우리 흔히 영축산 그래요. 기사굴산 바꿔서 영축산
왕사성은 지명이죠. 마갈타의 서울입니다.
마갈타 국의 서울이고 또 그 서울 변두리에 있는 영축산 그걸 기사굴산 그래요.
이 법화경,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신 때를 영산회상 그래요. 그 영산회상이 우리에게는 오늘 이 순간이 영산회상이야.
이 순간이 그대로 영산회상이라고요.
3천년 전에 부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영산회상을 펼쳤던 것은 우리하고 관계없어. 지금 우리는 법화경을 대하고 살아있는 부처님이 우리에게 설해주듯이 대하면은
그게 우리에게는 영산회상이 되는 거야.
그리고 이런 영산회상의
법화경의 내용을 가슴 깊이 새기는 사람,
마음에 닿는 사람
이것으로써 아주 신심을 증장시키는 사람은
그대로 법화행자 그래요. 법화행자.
절에 가서 중 될라고 막 들어간 사람 행자가 아니고
이 행자라고 하는 말은 참 좋은 말이예요.
법화경의 정신을 내 삶에 실천하겠다.
행할 행(行)자 법화행자(法華行者)
참 좋잖아요. 법화행자.
이제 어디가서 나는 법화행자다 그러세요.
법화행자 틀림없습니다. 상관없어요, 나는 법화행자
법화경 공부하는 동안 나는 법화행자다. 그래서 법화행자는 법화경을 열 번을 써야 돼. 최소한도. 하하
그게 그냥 뭐 법화행자 증명서가 그렇게 쉽게 나가나요?
열 번은 써야 법화행자라고 할 수가 있는 거야.
부처님이 부처님으로서 세상의 존경을 받기 위해서 엄청난 투자를 했고 엄청난 희생을 치뤘잖습니까?
여러분도 제대로 된 법화행자가 되려면은 법화경을 열 번을 쓰셔야 돼. 그러면 틀림없이 내생에 아마 천재로 태어날 거예요.
與大比丘衆
거기에 머무셨다. 부처님이 계셨다.
그런데 혼자 계셨을까? 아니죠. 여(與) 더불어 함께 있었다.
더불어 함께 있었다 이 말이예요 여(與) 자가.
누구하고? 큰 비구(比丘) 대중들, 비구스님들.
萬二千人으로 俱러시니
일만이천명 하고 함께 계셨다. 구(俱) 일만 이천명하고 함께 있었다 그랬어요.
금강경은 어떻습니까? 천 이백명하고 함께 있었죠? 금강경은 벌써 설하신지가 법화경보다 훨씬 전이야. 출가한 숫자도 그렇게 많지 않았을 때고.
그런데 법화경은 출가한 숫자도 많고 또 신도들도 엄청 많고. 온갖 대중들이 부처님 신도가 돼 가지고 그 숫자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만 이천 명이 있었는데 비구스님들만, 요 밑에 다른 사람들도 다 소개 됩니다,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이제 어떤 정도의 인격자인가?
요걸 탄덕(嘆德) 이라 합니다. 덕을 찬탄하다. 고 밑에는.
皆是 阿羅漢이라
다 이러한 사람들이다 아라한(阿羅漢)이다 이 말예요.
아라한은 공양 받을 자격이 있는 분,
공양 받을 자격이 있는 분 그 뜻이 이제 아라한입니다.
우리가 어떤 모임에 가서도 “니 여기 와서 밥 먹을 자격이 있나?” 이러잖아요. 그거 봐요. 어디가서 식사 한 끼 하는 데도 자격이 있어야 되요 하하.
회비를 냈거나 아니면 심부름이라도 했거나 뭐 누구라도 많이 알거나. 이 아라한은 누구에게든지 공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이 뜻입니다.
일 안해도 자신이 닦은 수행과 법력만으로
얼마든지 공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그 뜻이예요.
참 좋잖아요. 그런데 이 이름은 부처님에게도 해당 돼.
여래십호(如來十號) 가운데도 이 응공이라고 하는 말이 바로 그겁니다. 응공(應供) 번역하면 응공이거든요. 공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분 그런 사람으로서
諸漏 已盡하야
제루이진(諸漏已盡)이야, 모든 새어 흐르는 것이 이미 다했다. 샌다 우리는 그저 줏어담기는 잘해요 열심히. 그런데 다 새나가. 복도 짓느라고 짓는데 또 한머리에는 까먹기 바빠가지고 다 새 나가. 지혜가 없어서 그래 사실은
지혜가 없어서.
어디 복 짓는다고 하면서도 내- 보면은 복 까먹는 일을 거의 반 이상 하니까 늘 그 모양이야. 그런데 이제 지혜가 있으면요, 잘 안 새나갑니다.
그런데 이 분들은 새나가는 일이 다 됐다 다 끝났다 이거야 이제 더 이상 안 새나간다. 지혜가 있으니까.
지혜를 닦는 일이나 수행을 하는 일이나 뭐 유루복을 짓는 일이나 일체의 것이 하나도 이제 새지를 안 해
우리는 너무 잘 새. 너무 잘 새.
공부도 하느라고 하고, 복도 짓느라고 지어요. 우리 불자들이 뭐 좋은 일 얼마나 잘 합니까?
어디 좋은 일 있다면 삼사 순례 가서도 그 시주 안 하고 오면 마음이 아프지요. 또 기왓장 한 장 그거 뭐 안 사주고 오면 영 마음이 찝찝해서 꼭 사 주고 오고 불전이라도 털어놓고 오고
저기 그 전에 설악산 한 번 갔는데 어떤 신도님이 돈을 있는 대로 다 넣는 거야. ‘아 웬 돈을 거기다 그렇게 많이 넣느냐?’고 ‘이렇게 멀리 어렵게 와가지고 돈 그거 조금 넣어가지고 내 성에 찹니까, 있는 것 다 내놓고 갈랍니다. 이제 뭐 버스만 타면 집에 가니까.’ 불자들 마음이 그렇다고, 그래 고와. 멀리 갔으니까 멀리 간 값한다고 있는 돈 다 털어 내놓는 거예요. 참 좋은 마음이죠. 대개 다 그래.
대개 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데, 또 한머리 좀 어두운 데가 있어가지고 자꾸 새나가. 그 새는 데 그걸 이제 우리가 잘 살피면은 짓는 복이 그대로 잘 남아있고, 닦는 지혜가 그대로 잘 남아 있어서 우리 삶에 잘 적용이 되어서
아주 그 참 이 아라한들처럼 공양 받을 만한
어디 가도 공양받고 존경받을 만한 그런 인물이 될 텐데.
無復煩惱하며
무부번뇌(無復煩惱)야 번뇌가 더 이상 없다 이 말이야. 다시는 번뇌가 없다.
逮得己利하야
체득기리(逮得己利)야 자기에게 이로운 것을 얻었다.
기리(己利) 이게 중요해. 무, 번뇌, 기리 그다음에 밑에 유결, 심득자재 이런 낱말 중에서도 이 기리, 자기 기(己)자 이익할 이(利)자 중요한 거예요.
자기에게 이로울 것을 얻은 사람들이다, 만 이천 부처님의 최고 가는 제자들이 뭐 장점이 많겠죠.
어디 한 두 마디로 설명 다 할 수 없죠.
여기 있는 어떤 한 분을 찝어 가지고 그 분의 장점을 이야기 하고 훌륭한 점을 찬탄하더라도 뭐 수 십 가지는 될 거예요.
보통 사람 한 사람만 가지고 이야기해도 그런데
이분들에게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그 중에서도 기리(己利) 기리를 얻었다. 자기 이로울 것을 얻었다. 이거 참 나는 여기에 정말 감동을 하는 구절인데
기리(己利)란, 자기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일까.
우리가 계산하는 나에게 이로운 것하고 부처님이나 성인들, 지혜로운 사람들이 봤을 때, 자기에게 이로운 짓하고
과연 어떤 것이 진정 나에게 이로운 일일까.
돈을 내 주머니에게 넣는 게 나에게 이로운 것인가,
이걸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좀 도와주는 것이 나에게 이로운 것인가, 아, 이거 판단이 안 서네 하하하
갈등이죠. 그거 쉽게 판단 못해요.
그리고 또, 같은 돈 만 원을 쓴다 하더라도 이걸 어떻게 쓰는 게 나에게 더 이로울까 이것도 한 번 생각해야 되요.
덮어놓고 남 준다고 해서 도와준다고 해서 그게 꼭 자기에게 이로운가 그거 아닙니다. 잘못하다가는 동타 지옥가요.
동타지옥이라는 말이 왜 있습니까?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같이 지옥간다 이말이예요.
장물 그거 잘 못 취급하면은 같이 끌려들어 가듯이
이치에도, 부처님 법에도 동타지옥 가는 법이 있어.
그게 이제 잘 안 보이니까.
참 동타지옥 가는 일을 우리가 많이 해요.
동타지옥(同墮地獄) 같을 동(同)자 떨어질 타(墮)자 같이 지옥에 떨어진다. 같이 잘 못된다 이 말입니다. 뭐 지옥이라니까 엄청난 무서운 일로 상상할 필요 없이
같이 잘 못 될 수가 있다. 그래 지혜로와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에게 이롭도록 하는 것,
정말 나에게 이로운 것.
같은 돈 만원을 쓰더라도 이게 정말 효과 있는,
효과 있게 쓸 줄 아는 것, 이걸 이제 우리 불자들은 좀 면밀히 살피고, 그 돈이 아까와서가 아니고 절대 돈이 아까와서가 아니고 현명하게 쓰고, 지혜롭게 쓸 줄 알기 위해서 하는 것이죠.
盡諸有結하고
진제유결(盡諸有結)하고 그리고 또 한가지 좋은 점은 유결을 모두 다 없앴다. 유결(有結)이라고 하는 것, 우리가 어디든지 잘 얽혀있고, 맺을 결(結)자 아닙니까. 맺혀있어. 얽혀있어.
그런데 얽혀있는 것이
있다고 하는 것으로부터 얽혀 있는 거야.
모든 존재로부터 속박이 되어 있는 거예요.
없다고 보면은 속박이 안 돼.
정이 있고, 그 놈의 정이 무엇인지 이대로 정이 있어가지고 얽혀있고, 무엇이 인연이 있어가지고 얽혀있고, 아휴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해서 얽혀있고, 전부 유결이야 유결.
요것도 빨간 줄 그어야 돼.
기리(己利), 유결(有結) 중요한 낱말입니다.
이거 두고두고 가슴 깊이 새기고 여러분들은 내가 해석하는 것보다 아마 험한 세상을 살면서 이리저리 인생 경험이 훨씬 다양하고 넓고 많으실 테니까 훨씬 더 멋지게 해석하실 거예요 아마.
‘아 맞아 유결이야. 있을 유(有)자, 맺을 결(結)자.’
전부 그 있다는 데 그냥 인연 있는 대로 걸리고, 뭐가 정이 있는 데 걸리고 그냥 안다고 하는 안면에 걸리고 전부 유결 아닙니까?
무슨 뭐 나를 방해하고 나를 질투하고 나를 시기하고 나를 해꼬지하는 사람이 뭐 지나가는 남 모르는 사람이 한 적 있어요? 남모르는 사람이 한 적이 없어. 전부 유(有)
인연이 있는 사람이 걸리는 거지.
아, 참 묘한 이치 아닙니까? 이 글자 요 한마디만 하더라도 우리가 부처님 경전이 이렇게 대단한 거구나
알 수가 있습니다.
남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해꼬지 안 해 절대.
전부 나하고 뭔가 걸려 있는 사람, 유(有) 있을 유(有)자
나하고 뭔가 관계가 있는 사람이 이렇게 걸려 있는 거야.
그런데 이 아라한들은 만 이 천 명 부처님 제자들은 전부 그 문제가 다 해결됐다. 다 해결됐다 왜냐?
지혜로우니까. 꿰뚫어 보니까
세상이 그런 것, 세상의 이치를 환히 꿰뚫어보니까
그런 문제가 다 해결이 됐다.
心得自在러시니
그래서 심득자재(心得自在)야 마음으로부터 자유자재함을 얻었다. 아 시원하다.
글이 참 구성이 기가 막히죠 보면은.
모두 아라한이다.
그리고 아라한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냐?
모든 새 빠져서 나가는 것이 다 끝났고, 더 이상은 번뇌가 없고, 그래서 진정 나에게 무엇이 이로운가를 잘 아는 사람이고, 그리고 이것저것 있음으로부터 결박되어 있는 그런 그 속박과 결박이 다 끝나 버렸고 그래서 마음이 자유자재 돼 버렸다. 심득자재(心得自在)라 마음의 자재를 얻은 사람이다. ((*))
제2강-2(서품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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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를 위한 법화경강의 제2강 2
(無比 큰스님, 문수선원, 2008년 3월 21일)
1. 서품 3-13
제가 이 법화경 가지고 평생 정말, 금강경은 사실 좀 부족합니다 한 권 가지고 하기는 평생 한 권 가지고는 의지하기는.
뭐 그나마도 좋긴 좋아요.
그런데 지금 나이가 삼십이 됐든 사십이 됐든 아직도 인생이 창창한 사람에게까지도 이 법화경 하나만 가지고 평생 열 번 아니라 백 번 쓰고 천 번 만 번 외우고 또 남에게 권하고 하는 일을 세세생생 해도 이 법화경 한 권은,
정말 이거는 훌륭한 경전이고, 내가 아주 자신 있게 권하고 싶어요. 내 평생 공부한, 나 이래봬도 50년 공부했어요? 불교공부, 하하하 반 백년. 그런데 이 법화경을,
아 스님들이 150명 접수해 가지고 와서 공부하는데, 그 스님들이 뭐 보통 알고 그렇게 이 자리에 와서
150명이나 와서 접수하고 공부하겠어요?
법화경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덮어 놓고 믿어도 좋습니다.
내 말을 덮어놓고 믿어도, 맹목적으로 믿어도 좋아요.
그래 가지고 나중에 진짜 법화경의 가치를 알면 그건 뭐
‘아 그 스님 참 뭔가 쫌 그래도 아는 것 같더라’고
‘아 정말 법화경 대단한 경전이야.’
이렇게 아마 이해를 하실 겁니다.
얼마든지 이거는 평생을 투자해도 결코 손해 볼 일이 아니고, 손해 볼 일이 아닌 것이 아니라, 수 천만 배 이득을 가져오는 그런 가르침이 법화경입니다. 일본 불교는 거의 7,80프로가 법화경 불교예요.
우리나라 법화경을 근거로 한 종파가 내가 한 번 꼽아 볼까?
천태종, 천태종은 법화경 전체 몰라 사실은, 저 뒤에 아까 보문품, 고거 하나 겨우 아는 거예요 사실은.
고거 하나 가지고, 그것도 많아가지고 관세음보살이라고 하는 고거 하나 가지고 하는 거예요. 단순해서 대중들 이끌기에는 좋지. 단순해서 좋지만은 그러나 그 깊은 뜻을 좀 알고 했으면 좋겠어 내가 참 그게 안타까와.
그 많은 대중들에게 이 법화경의 진수를, 법화경의 참뜻을 다 속속들이 공부하게 할 수 있다면, 거긴 법화경 하나면 끝나니까, 그런데 보문품도 아니고 관세음보살 하나 가지고 끝내니까 그게 얼마나 우리가 보기엔 안타까우냐 이거죠.
법화경 전체를 가지고 우리 평생을 투자한다면 지금 십대가 됐든, 이십 대가 됐든 삼십 대가 됐든 결코 아까운 인생이 아니라고 나는 자신있게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금년에 그, 서두에 말씀드린 중학생 중학교 1학년 애가 일본어로 된 책 구해가지고 내가 복사해 주고 일본어로도 법화경 외워라, 영어로도 외워라, 한문으로도 외워라 이래 갖고 다 제공해 지금 잘 외우고 있어요 꼬박꼬박.
1년을 딱 목표로 해서 1년을 잡고, 영어로 된 거 외우고 한문으로 된 것 까지 외우게 했다고, 일어로 된 거는 쓰기만 하고. 일어는 좀 서툴고 영어하고 한문은 그런대로 소화할 수 있는 정도니까, 중학교 1학년이.
전생에 법화경 공부해서 그런 거예요. 거기에 뭐 온갖 절에 아는 스님들이 많아. 그런데 법화경하고 인연이 있는지, 내한테 나는 두 번 밖에 안 봤어 가아.
그런데 법화경 주니까 외우겠다고 딱 그렇게 한 거야. 그게 법화경 인연이 아니면 그렇게 안 되지.
심득자재(心得自在) 이거 한 말만 하더라도 얼마나 좋습니까?
마음에 자유자재를 얻었다.
뭐 세상에 아무리 힘들고 인생사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마음으로부터 자유자재(自由自在) 시원하게 벗어나서 자유자재를 얻으면 그거 끝이지.
재산이 어떻다, 어떻다 하더라도 그만 뭐
외롭고 속상하면 그냥
그냥 법화경 쓰고 법화경 읽고 그래요.
그런데 이제 그 분들이 어떤 분들인가?
3. 其名曰 阿若憍陳如와 摩詞迦葉과 優樓頻螺迦葉과 伽耶迦
기명왈 아야교진여 마하가섭 우루빈나가섭 가야가
葉과 那提迦葉과 舍利弗과 大目犍連과 摩詞迦旃延과 阿누樓
섭 나제가섭 사리불 대목건련 마하가전연 아누루
駄와 劫賓那와 憍梵波提와 離婆多와 畢陵伽婆蹉와 薄拘羅와
타 겁빈나 교범바제 이바다 필릉가바차 박구라
摩詞拘絺羅와 難陀와 孫陀羅難陀와 富樓那彌多羅尼子와 須菩
마하구치라 난타 손타라난타 부루나미다라니자 수보
提와 阿難과 羅睺羅와 如是衆所知識인 大阿羅漢等이며
리 아난 라후라 여시중소지식 대아라한등
그분들의 이름은 아야교진여,마하가섭,우루빈나가섭,가야가섭,나제가섭,사리불,대목건련,마하가전연,아누루타,겁빈나,교범바제,이바다,필릉가바차,박구라,마하구치라,난타,손타라난타,부루나미다라니자,수보리,아난,라후라 등등 세상에 널리 알려진 참으로 큰스님들이었습니다.
其名曰 阿若憍陳如와 摩詞迦葉과
기명왈(其名曰) 아야교진여, 마하가섭 여러분들하고 친한 분들도 이름이 더러 나오죠? (웃음) 우루빈나가섭 뭐 집에다 모셔놓은 분들도 계실테고 (웃음)
優樓頻螺迦葉과 伽耶迦葉과 那提迦葉과 舍利弗과
가야가섭, 나제가섭, 사리불 아이구 사리불 나왔네.(웃음)
大目犍連과 摩詞迦旃延과 阿누樓駄와 劫賓那와 憍梵波提와
대목건련 아 이 효도, 효도하면 또 목련존자 아닙니까? 대목건련, 마하가전연, 아누루타,겁빈나, 교범바제,
離婆多와 畢陵伽婆蹉와 薄拘羅와摩詞拘絺羅와難陀와
이바다, 필릉가바차, 박구라,마하구치라, 난타,
孫陀羅難陀와富樓那彌多羅尼子와 須菩提와
손타라난타, 부루나미다라니자, 수보리 아이구 수보리 나왔다 (웃음) 수보리 아 친하죠? 여러분들? 수보리.
阿難과 羅睺羅와
아난도 나왔네? 아난?
그 다음에 라후라. 라후라 이거 부처님 아들 아닙니까?
뭐 중요한 분들 많이 나왔네요 음.
이렇게 만 이천 명 명단 다 적으면은 이 한 권 가지고 안 될 거고, 그래서 여기 스물 한 명의 이름만 대강 이렇게 적었습니다.
如是衆所知識인 大阿羅漢等이며
여시중소지식(如是衆所知識)인 대아라한등(大阿羅漢等)이다, 그랬어요. 여시(如是) 이와 같은, 중소지식(衆所知識) 대중들이 많이 알고 있는, 대중들이 이미 알고 있는 그 뜻입니다. 중소지식이라는 말은.
한문 쉽죠? 요렇게 해주니까 너무너무 쉽죠? 어려운 줄 알았는데 대중 중(衆)자 바 소(所)자 알 지(知)자 알 식(識)자
대중들이 알고 있는 바 그 말입니다.
널리 이제 소문나가지고 다 아는 거야 우리까지 다 아는데 두 말할 것 없지. 삼천년 이 후 여기 변두리, 변두리 국가에서 다 잘 아는데 뭐. 이러한 대아라한등이다.
연꽃처럼 아름답고 미묘한 진리의 가르침.
새겨볼수록, 읽어볼수록, 살펴볼수록, 또 써볼수록
정말 연꽃처럼 아름답고 미묘한 진리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이 참 적절한 표현이구나,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그 이름도 아름다운 묘법연화경이야.
묘법(妙法) 참, 액자 해 가지고 걸어놨어요?
안 해놨나? 왜 대답이 없어요?(웃음) 그 다음 또 이제 대중들이, 이 법화경 설하는 자리에는 대중들이 많이
여러 대중들이 모여 있습니다.
왜 그렇게 여러 종류의 대중들이 모여 있느냐?
이 진리의 가르침은 출가한 비구들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고, 보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고 일체 천룡, 팔부, 욕계대중, 색계대중 무색계대중, 가루라 긴나라 건달바 아수라 별별 대중들에게도 다 적용되는 가르침이 법화경의 가르침이다 그 뜻입니다.
그렇게 알고 대중들을 소개받아야 돼요.
그러니까 이제 스님들에게만 왜 해주느냐? 왜 법화경이 우리 신도들에게는 해당이 안 되느냐?
내가 할말이 없는 거지 그래되면
여기에 보면 가루라 아수라 긴나라 마후라가 야차 건달바 이런 사람들도 다 해당 되는데 신도라고 스님들하고 차별해서 안 해주면 그건 법을 아끼는 게 되는 거야.
그래서 법화경의 이치에 의해서 이런 법석이 마련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법화경의 진리는 누구에게든지 다 해당되는 거야, 불교인에게도 해당되고, 기독교인에게도 해당되고, 천주교인에게 유교인에게 무슨 뭐 어떤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든지 다 적용되고 해당되는 진리의 가르침이다.
이걸 염두에 둬야 돼요. 그 다음에
4. 復有學無學二千人하며 摩詞波闍波提比丘尼는 與 眷屬六千
부유학무학이천인 마하파사파제비구니 여 권속육천
人과 俱하며 羅睺羅의 母 耶輸陀羅比丘尼는 亦與眷屬으로
인 구 라후라 모 야수다라비구니 역여권속
俱하며
구
또 한창 공부를 하고 있는 이들(學)과 공부를 다 마친 이들(無學)이천 명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하파사파제 비구니(比丘尼)는 그들의 권속들 육천여 명과 함께 있었으며, 라후라의 어머니인 야수다라 비구니도 역시 그들의 권속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復有學無學二千人하며
부유(復有) 또 있다. 학 무학(學無學) 학은 한창 공부하고 있는 사람, 그 다음에 무학은 공부 다 한 사람,
이천 명 그 중에 이런 사람들이예요.
이천명도 있고, 그 다음에
摩詞波闍波提比丘尼는 與 眷屬六千人과 俱하며
마하파사파제비구니, 부처님 이모죠. 말하자면 부처님 어머니가 7일 만에 열반에 들어가셨으니까, 싯다르 태자, 어린 싯다르 태자, 기껏해야 일주일밖에 안 된 젖먹이 아이를 누가 키우겠어요? 그 어머니의 동생이 키울 수 밖에 없는 거야.
그 동생이라. 이모, 이모지 그러니까.
부처님 어머니의 동생이니까 이모죠. 부처님 이모라 이분이.
근데 이 분이 비구니가 될 때, 부처님이 처음에는 여자들은 이제 스님, 고생스럽다고 생각했겠지
고생스러우니까 하지 말라고 자꾸 하니까, 이 마하파사파제 비구니가 하도 스님 노릇 하고 싶은 마음에서 아주 최후 수단을 쓴 거야.
아난존자를 잘 설득을 시켜가지고 부처님한테 좀 이해를 시켜라, 당근하고 채찍하고 같이 써라 그랬어요.
어떻게 당근하고 채찍하고 같이 쓰느냐?
내가 부처님 이모 아니냐, 내가 당신 젖 먹여서 키웠다 이 이야기도 해라. 정 안 듣거든.
말 안 듣거든 하하하하 요건 이제 내가 설명하는 거고 (웃음)
어쨌든 아난존자가 이 분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너무 가슴이 아픈 거야. 그래서 부처님한테 가서 설득을 했어.
“부처님 여자가 중노릇하기가 힘들지만은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이모가 저렇게 부탁을 하고, 또 이모가 보통 이모입니까? 부처님을 키운 사람 아닙니까? 어떻게 우리가 거부합니까? 만들어 줍시다. 스님으로 머리 깎아서 만들어 줍시다.”
이렇게 이렇게 해가지고 결국엔 이제 된 거예요.
되어서 이제 나중에 비구니가 돼 가지고 비구니의 원조지.
그래 가지고 세상이 그냥 비구니판이라 지금은 (웃음)
대만가도 비구니판, 한국도 그렇고 곳곳에 가면 말도 못해 얼마나 많은지 하하하 그런 아주 유래가 있는 분입니다.
뭐 일일이 이름, 개인 따라서 이렇게 표현하기로 하면은 끝이 없고. 그분들의 권속이 그러니까
비구니의 총대장이니까 6천명이 되나 봐. 상좌도 많이도 뒀지? 그 권속 6천 여 명과 더불어 함께 했고 그다음에
羅睺羅의 母 耶輸陀羅比丘尼는 亦與眷屬으로 俱하며
라후라의 어머니 야수다라, 비구니.
여기는 라후라의 어머니이지 부처님 마누라라는 말은 아니고 하하하하(웃음) 참 교묘하잖아요 응? 부처님 거시기라고 안 하고는 (웃음) 라후라의 어머니 야수다라 비구니도 그들 권속으로 더불어 함께 있었다. 하하하 참
그렇습니다. 우리가 후대에 사니까 이런 내용도 이렇게 알고 공부하게 되는 겁니다. 이 법화경은
그래서 친절하고 좋은 점이기도 하고,
또 표현이 아주 근사하잖아요?
라후라의 어머니 야수다라 비구니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제 말도 정말 가려서 써야 돼요.
이 보십시오. 얼마나 가려서 썼습니까?(웃음)
참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했잖아요.
우리 같으면 막 바로 그냥 이렇게 부처님 뭐라고 이렇게 표현을 했을 텐데, 그렇게 안하고 기록한 분이
아난존자는 뛰어난 분이라, 그래 막바로 직설적으로 표현 안 하고 ‘라후라의 어머니 야수다라’ 이렇게 했어요.
그 다음에 보살대중입니다.
5. 菩薩摩河薩 八萬人이 皆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不退轉
보살마하살 팔만인 개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 불퇴전
하야 皆得陀羅尼와 樂設辯才하사 轉 不退轉法輪하시며 供養
개득다라니 요설변재 전 불퇴전법륜 공양
無量百千諸佛하사와 於諸佛所에 植 衆德本하야 常爲諸佛之所
무량백천제불 어제불소 식 중덕본 상위제불지소
稱歎하며 以慈修身하야 善入佛慧하며 通達大智하야 到於彼岸
칭탄 이자수신 선입불혜 통달대지 도어피안
하며 名稱이 普聞無量世界하사 能度無數百千衆生하시니
명칭 보문무량세계 능도무수백천중생
또 보살 마하살 팔만여 명이 있었는데 모두들 최상의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더 이상 물러서지 않는 이들이었습니다. 다라니와 말을 잘하는 변재(辯才)를 얻어서 불퇴전(不退轉)의 법륜(法輪)을 굴리어 무량 백 천 만 억 부처님들께 공양(供養)올렸습니다.그 모든 부처님들의 처소에서 갖가지 덕(德)의 씨앗을 심어서 늘 부처님들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자비를 실천하여 심신을 닦고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지혜를 몸소 체험하였습니다. 또 큰 지혜를 통달하여 피안(彼岸)에 올랐기 때문에 그들의 명성은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알려져서 무수한 백 천 만 억 중생들을 제도(濟度)하십니다.
菩薩摩河薩 八萬人이
보살마하살(菩薩摩河薩) 팔만 명이 함께 있었다.
皆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不退轉하야
그런데 그들은 모두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불퇴전(不退轉)했다. 퇴전하지 아니했다, 그랬어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무상정각(無上正覺) 최상의 깨달음 이렇게 해버리세요 가장 간단하게. 최상의 깨달음, 최상의 깨달음에서 물러서지 아니함,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한 분이다 이래놔도 됩니다. 그리고
皆得陀羅尼와
개득다라니(皆得陀羅尼) 이들은 또 다라니를 다 얻었어, 다라니는 총지(總持)라고 하는데 다 잘 기억하는 능력 그렇습니다. 그리 아세요.
우리는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돌아서면 잊어버리지만은 이분들은 돌아서도 안 잊어버려. 아무리 돌아서도 안 잊어버려. 그게 다라니야. 그리고
樂設辯才하사
요설변재(樂設辯才)여 요설변재.
요설변재라고 하는 것은 말을 잘 해. 말을 잘 하는 게 뭐 무슨 설교하듯이 그렇게 화악 그냥 마음에도 없는 말을 그냥 입으로만 하는 게 그게 잘 하는 게 아니고,
어눌해도, 말을 띄엄띄엄하고 더러 이제 앞 뒤가 안 맞고, 그래도 뜻을 전하는 데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고, 무게가 있고, 들으면 감동하고 이게 요설변재입니다.
막 그냥 따발총 쏘듯이 말을 하는 것, 그걸 가지고 요설변재라 안 해요. 절대 불교에는 그런 뜻은 아닙니다.
설득력 있고, 감동을 주고, 띄엄띄엄하고 영 말은 서툴러도 그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들 가슴을 울리고, 이런 능력이 있는 분들이다 이 말이야, 그리고
轉 不退轉法輪하시며
전불퇴전법륜(轉不退轉法輪)이라, 물러서지 않는 법륜을 굴리는 사람 이런 말입니다. 물러서지 않는 법륜.
나도 그래도 지난 시간에 불퇴전 법륜을 굴렸는지 안 빠지고 다 왔네요.
또 오는 것, 또 오도록 하는 것, 다음 시간에 또 공부하러 오도록 하는 게 불퇴전이야 하하 부처님법이.
이거 어려운 거야. 쉬운 게 아니라, 그래 내가
다른 스님들 강의하는 테이프나 법문하는 것 들으면 장기간에 일년쯤이나 하면은 자리가 자꾸 비니까 그런 토로한 내용도 녹음이 돼 있더라고.
‘난 온 사람 안 보이고 자리 빈자리만 자꾸 보인다.’ 이런 테이프를 요즘 내가 들었어, 그런 일들이 많습니다 사실은.
그러니까 공부하는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자리를 메꿔 주면은 그게 큰 복이 되는 거야. 계속 불퇴전 법륜을 굴린다. 그리고
供養無量百千諸佛하사와
공양무량백천제불(供養無量百千諸佛)이라,무량(無量)한량없는 백천(百千) 모든 부처님을 공양했다.
여기서 ‘백천제불’ ‘한량없는’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만은.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생각하고 받들어 섬길 줄 아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뭐 그 꼴이 어땠든 그 사람 마음 씀씀이가 어떻든, 또 행동이 어떻든 그건 그 사람 살림살이고 그 사람 인생이야. 그 사람 삶이라고.
그 사람 절대 탓하지 말고, 나는 내 할 몫만 하는 거야.
그게 공양무량백천제불(供養無量百千諸佛)이야.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보고,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고 하는 그런 태도, ‘아이구 저 뭐 인간 개차반 같은 것, 저 사람 같지도 않은 것 저걸 어째 내가’ 그건 그 사람 삶입니다.
그냥 그대로 두세요. 안 고쳐집니다. 고치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아 당신은
당신은 당신대로의 감나무라고
나는 나 나름대로 사과나무다.
서로 각각 다른 삶을 살 뿐이지. 결코 고의적으로 뭐 어떻게 하거나 그런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그대로 봐 줄 줄 아는 것. 그게 우리 현대적으로 생각한다면 무량백천제불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그렇게만 우리가 이해해 주는 것도 상당한 마음씀씀이 아닙니까? 사실, 그렇죠?
그래 자기하고 다르다고 해서 결코 틀린 인생은 아닙니다.
내하고 달랐을 뿐이지 틀린 건 아니예요.
이게 21세기 최대 발견이야. 내 인생하고 내 견해하고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이거예요.
이제 21세기에 와서 그걸 알았어요.
각자의 삶의 모습이 다를 뿐이지 틀린 삶은 아니다 이거예요.
다른 삶이지, 다른 것하고 틀린 건 아니예요.
시험치는데 답안지는 다른 게 있고, 틀린 게 있을 수 있지만은 인생에 있어서는 틀린 것은 없습니다.
다를 뿐이지. 그거 알아야 돼요.
그래 절대 다르다고 얘기 해야지, 틀리다고, 비판하거나 배격하거나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요.
이거 하나만 건져도 대단한 거예요.
공양무량백천제불을 현대적으로 나는 그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於諸佛所에 植 衆德本하야
어제불소(於諸佛所)에 식중덕본(植衆德本)이라, 그리고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부처님 처소, 사람이 사는 곳을 전부 이렇게 표현합니다. 중덕본(衆德本), 여러 가지 덕의 근본을 심었다.
그러니까 선한 일이 된다면은 무엇이든지 다 하는 거야.
그걸 선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 그냥 하는 거야. 그게 내 살림살이가 돼서 그냥 하는 거야. 그냥 하다보니까 저절로 선한 일이 된 거야. 이 보살들은 그런 분들이야 최소한도. 그래서
常爲諸佛之所稱歎하며
상위제불지소칭탄(常爲諸佛之所稱歎)이라.
그래서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항상 칭찬하는 바가 되어서.
‘아 그 보살 대단해, 그 사람은 대단해.’
그래 이제 우리 법화행자 여러분들은 집에 가서 칭찬받는 사람이 되고 이웃으로부터 또 친척들로부터 친구들로부터 칭찬받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분들은 또 장점이 뭔고 하니
以慈修身하야
이자수신(以慈修身)이야. 자비로써 몸을 닦았어.
자비가 그냥 몸에서 묻어나. 또
善入佛慧하며
선입불혜(善入佛慧)야,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지혜에 잘 들어가서 선(善)은 잘 들어갔다 그 말이야 잘. 잘한다 하는 선(善)자야, 착할 선이 아니고. 부처님 지혜
그러니까 끝임없이 부처님 지혜를 강조하는 것이 이 또한 법화경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등장하고 여기도 이제 문수 선원이고, 또 그 다음에 지혜의 제일인 사리불도 처음에 등장하고 시종일관 지혜로 무장되어 있는 것이 또한 법화경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이 보살들은 선입불혜(善入佛慧)라 부처님의 지혜에 잘 들어갔으며
通達大智하야
통달대지(通達大智)야, 큰 지혜를 통달했다 이 보십시오.
불해(佛慧)나 대지(大智)나 결국은 뜻은 같습니다, 말만 다르게 했을 뿐이지.
부처님 지혜에 잘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큰 지혜를 잘 통달하는 일,
이게 우리의 이상 아닙니까? 사실은.
뭐 여기 이제 팔만 명이나 되는 보살들의 덕을 찬탄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은 이게 법화행자, 법화경을 공부하는 우리들의 꿈이고 우리들의 이상입니다. 그래서
到於彼岸하며
도어피안(到於彼岸)이야, 저 언덕에 이르렀다. 저 언덕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어떤 문제가 닥쳐오더라도 그 문제를 슬기롭게 풀 줄 아는, 그런 사람 그게 피안(彼岸)에 이른 사람입니다.
부처님이라고 해서 문제없을 줄 알아요? 끊임없이 문제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도 끊임없이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에게는 문제가 문제로 다가오지를 않고,
그 문제를 잘 슬기롭게 헤쳐나가.
헤쳐나가는 그런 사람이라.
그러니까 이미 그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문제가 아니야.
우리에게는 어리석으니까, 또 지혜가 없으니까 문제가 문제로 남아있어, 이 차이라고요.
그러면 피안이라고 하는 이 말은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상태. 어떤 문제가 오더라도 그 문제를 슬기롭게 잘 풀 줄 아는 사람
그거는 이치를 알면 되요.
순리를 따를 줄 알면 돼, 인연을 따를 줄 알면 돼, 자기 분 지킬 줄 알면 되는 거예요.
크게 어려운 게 아닙니다.
자기 분 모르고 자기 인연도 모르고 자기 깜량도 모르고,
그만 욕심만 앞서 가지고 캄캄해가지고 무리수 두니까,
역리(逆理) 이치를 거스르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지.
간단해요.
그래 이제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에게 지혜를 배워서
지혜롭게 사는 것,
무리하지 않고 자기 분 지킬 줄 아는 것, 자기 인연 따르면서 살 줄 아는 것, 그러면서 한편 차츰차츰 좋은 인연을 자꾸 맺어 가는 것. 이게 불자의 지혜로운 삶이죠. 그래서
名稱이 普聞無量世界하사
명칭(名稱)이 보문무량세계(普聞無量世界)라,
아까 중소지식(衆所知識)이라고 했듯이 여기도 명칭, 그들의 이름과 소문이 널리 한량없는 세계에 다 들린다. 그리고
能度無數百千衆生하시니
능도무수백천중생(能度無數百千衆生)이라 이 분들은 가는 곳마다 능히 무수한 백천 중생들을 다 제도한다.
능도(能度) 무수한 백천 중생들을 다 제도한다.
밥으로 제도할 사람 밥으로 제도하고 옷으로 제도할 사람 옷으로 제도하고 그 중에서도 제일 좋은 제도는 이치를 가르쳐서, 진리를 가르쳐서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진리를 내가 빌어서 전해주는 것.
내가 그것을 내 살림으로 만들고 그것을 또 다른 사람에게 그 이치를 전해주고 깨우쳐주고 하는 것 이게 이제
중생제도죠. 그래 그들 이름은 뭐라고?
6. 其名曰 文殊師利菩薩과 觀世音菩薩과 得大勢菩薩과 常精
기명왈 문수사리보살 관세음보살 득대세보살 상정
進菩薩과 不休息菩薩과 寶掌菩薩과 藥王菩薩과 勇施菩薩과
진보살 불휴식보살 보장보살 약왕보살 용시보살
寶月菩薩과 月光菩薩과 滿月菩薩과 大力菩薩과 無量力菩薩과
보월보살 월광보살 만월보살 대력보살 무량력보살
越三界菩薩과 跋陀婆羅菩薩과 彌勒菩薩과 寶積菩薩과導師菩
월삼계보살 발타바라보살 미륵보살 보적보살 도사보
薩인 如是等의 菩薩摩詞薩八萬人으로 俱하며
살 여시등 보살마하살팔만인 구
그들의 이름은 문수사리보살,관세음보살,득대세보살,상정진보살,불휴식보살,보장보살,약왕보살,용시보살,보월보살,월광보살,만월보살,대력보살,무량력보살,월삼계보살,발타바라보살,미륵보살,보적보살,도사보살들입니다.
이와 같은 보살마하살 팔만여 명이 함께 하셨습니다.
其名曰 文殊師利菩薩과 觀世音菩薩과 得大勢菩薩과
문수사리보살,관세음보살, 득대세보살,
常精進菩薩과 不休息菩薩과 寶掌菩薩과 藥王菩薩과
상정진보살,불휴식보살, 보장보살,약왕보살,
勇施菩薩과 寶月菩薩과 月光菩薩과 滿月菩薩과 大力菩薩과
용시보살, 보월보살,월광보살,만월보살,대력보살,
無量力菩薩과 越三界菩薩과 跋陀婆羅菩薩과
무량력보살,월삼계보살,발타바라보살
彌勒菩薩과 寶積菩薩과導師菩薩인
미륵보살,보적보살,도사보살인
如是等의 菩薩摩詞薩八萬人으로 俱하며
이와 같은 등의 보살마하살 팔만인으로 더불어 함께 했다, 그랬습니다.
그 다음
7. 爾時에 釋提桓因이 與其眷屬 二萬天子로 俱하며 復有明月
이시 석제환인 여기권속 이만천자 구 부유명월
天子와 普香天子와 普光天子와 四大天王이與其眷屬 萬天子
천자 보향천자 보광천자 사대천왕 여기권속 만천자
로 俱하며 自在天子와 大自在天子 與其眷屬 三萬天子로 俱
구 자재천자 대자재천자 여기권속 삼만천자 구
하며 裟婆世界主 梵天王 尸棄大梵과 光明大梵等이 與其眷屬
사바세계주 범천왕 시기대범 광명대범등 여기권속
萬二千天子로 俱하며
만이천천자 구
그 때 석제환인도 그의 권속 이만 천자(天子)들과 함께 하였으며, 또 명월천자와 보향천자와 보광천자와 사대천왕들이 역시 그들의 권속 일만 천자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또 자재천자와 대자재천자가 그들의 권속 삼만 천자들과 함께 하였으며, 사바세계의 주인인 범천왕과 시기대범천왕과 광명대범천왕이 또한 그들의 권속 일만 이천 천자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 때 또, 여기는 잡중(雜衆)인데 요밑으로는,
앞에는 비구스님들 비구니스님들, 그 다음에 보살들 이렇게 소개를 했는데 요 밑으로는 잡중이라 해서, 욕계대중, 색계대중 용왕대중 긴나라 건달바 이런 사람들도 쭉 여기 이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름들 뭐 시시하다고 쓸 때 빼먹지 말고 똑같이 (웃음)일문일자시진불(一文一字是眞佛) 그랬죠?
한 글자 한 문장이 모두가 부처님이야.
이 법화경은 그래 돼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글자 하나, 이 시시한 용왕 대중들 뭐 이런 거 내가 꼭 이름 써야 되나? 내가 지보다 높은데, 이러고
그건 이제 법화행자 정신이 아니야.
법화행자의 마음이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보면 이제
爾時에 釋提桓因이 與其眷屬 二萬天子로 俱하며
그 때에 석제환인(釋提桓因) 이게 욕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석제환인이 그 권속 이만 천자와 더불어 함께 했다. 또
復有明月天子와 普香天子와 普光天子와
명월천자와 보향천자와 보광천자와
四大天王이與其眷屬 萬天子로 俱하며
사대천왕이 그들 권속 만 천자로 더불어 함께 했다, 또
自在天子와 大自在天子 與其眷屬 三萬天子로 俱하며
자재천자와 대자재천자가 그 권속 삼만 천자로 더불어 함께 했으며, 또
裟婆世界主 梵天王 尸棄大梵과 光明大梵等이
사바세계의 주인인 범천왕과 시기대범과 광명대범 등이
與其眷屬萬二千天子로 俱하며
그들의 권속 만 이천 천자로 더불어 함께 했으며
그 다음 이제 용왕
8. 有 八龍王하니 難陀龍王과 跋難陀龍王과 娑伽羅龍王과 和
유 팔용왕 난타용왕 발난타용왕 사가라용왕 화
修吉龍王과 德叉迦龍王과 阿那婆達多龍王과 摩那斯龍王과 優
수길용왕 덕차가용왕 아나바달다용왕 마나사용왕 우
癖龍王等이 各與若干 百千眷屬으로 俱하며
발라용왕등 각여약간 백천권속 구
또 여덟 용왕이 있으니, 난타용왕,발난타용왕,사가라용왕,화수길용왕,덕차가용왕,아나바달다용왕,마나사용왕,우발라용왕등이 각기 백 천의 권속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有 八龍王하니 難陀龍王과 跋難陀龍王과 娑伽羅龍王과
또 팔 용왕이 있으니, 난타용왕, 발난타용왕,사가라용왕,
和修吉龍王과德叉迦龍王과 阿那婆達多龍王과 摩那斯龍王과
화수길용왕,덕차가용왕,아나바달다용왕,마나사용왕,
優癖龍王等이各與若干 百千眷屬으로 俱하며
우발라용왕 등이 각각 약간의 백 천 권속으로 더불어 함께 했다. 그 다음에
9. 有 四緊那羅王하니 法緊那羅王과 妙法緊那羅王과 大法緊
유 사긴나라왕 법긴나라왕 묘법긴나라왕 대법긴
那羅王과 持法緊那羅王이 各與若干 百千眷屬으로 俱하며
나라왕 지법긴나라왕 각여약간 백천권속 구
또 네 긴나라왕이 있으니, 법긴나라왕,묘법긴나라왕,대법긴나라왕,지법긴나라왕 등이 각기 백 천의 권속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有 四緊那羅王하니
사 긴나라왕이 있으니,
法緊那羅王과妙法緊那羅王과 大法緊那羅王과 持法緊那羅王이
법긴나라왕,묘법긴나라왕,대법긴나라왕,지법긴나라왕이
各與若干 百千眷屬으로 俱하며
각각 약간의 백 천 권속으로 더불어 함께 했으며 글이 쉽죠? 이런 글이야 뭐 그저 거저먹기 아닙니까?
그 다음에 또 건달바왕이 있어요.
10.有 四乾闥婆王하니 樂乾闥婆王과 樂音乾闥婆王과 美乾闥
유 사건달바왕 악건달바왕 악음건달바왕 미건달
婆王과 美音乾闥婆王이 各與若干 百千眷屬으로 俱하며
바왕 미음건달바왕 각여약간 백천권속 구
또 네 건달바왕이 있으니, 악건달바왕,악음건달바왕,미건달바왕,미음건달바왕이 각기 백 천의 권속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有 四乾闥婆王하니
사 건달바왕이 있으니,
樂乾闥婆王과 樂音乾闥婆王과 美乾闥婆王과 美音乾闥婆王이
락건달바왕, 악건달바왕 이거는 즐길 락(樂)자가 아니고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서 악이라고 그래요, 악건달바왕 악음건달바왕, 미건달바왕,미음건달바왕이
各與若干 百千眷屬으로 俱하며
각각 약간 백 천 권속으로 더불어 함께 했고
그 다음에 이제
11.有 四阿修羅王하니 婆稚阿修羅王과 佉羅騫駄阿修羅王과
유 사아수라왕 바치아수라왕 거라건타아수라왕
毗摩質多羅阿修羅王과 羅睺阿修羅王이 各與若干 百千眷屬
비마질다라아수라왕 나후아수라왕 각여약간 백천권속
과 俱하며
구
또 네 아수라왕이 있으니, 바치아수라왕,거라건타아수라왕,비마질다라아수라왕,나후아수라왕이 각기 백 천의 권속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有 四阿修羅王하니
사 아수라왕이 있으니,
婆稚阿修羅王과 佉羅騫駄阿修羅王과
바치아수라왕,거라건타아수라왕,
摩質多羅阿修羅王과 羅睺阿修羅王이
비마질다라아수라왕과 나후아수라왕이
各與若干 百千眷屬과 俱하며
각각 약간 백천 권속으로 더불어 함께 했으며
그 다음에 가루라왕
12.有 四迦樓羅王하니 大威德迦樓羅王과 大身迦樓羅王과 大
유 사가루라왕 대위덕가루라왕 대신가루라왕 대
滿迦樓羅王과 如意迦樓羅王이 各與若干 百千眷屬으로 俱하며
만가루라왕 여의가루라왕 각여약간 백천권속 구
또 네 가루라왕이 있으니, 대위덕가루라왕,대신가루라왕,대만가루라왕,여의가루라왕이 각기 백 천의 권속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有 四迦樓羅王하니
사 가루라왕이 있으니,
大威德迦樓羅王과 大身迦樓羅王과
대위덕가루라왕과 대신가루라왕과
大滿迦樓羅王과 如意迦樓羅王이
대만가루라왕과 여의가루라왕이
各與若干 百千眷屬으로 俱하며
각각 약간 백 천 권속으로 더불어 함께 했다.
그 다음에 이제
13.韋提希子 阿闍世王이 與 若干百千眷屬으로 俱하사 各禮
위제희자 아사세왕 여 약간백천권속 구 각예
佛足하고 退坐一面이러시니
불족 퇴좌일면
또 위제희(韋提希)의 아들 아사세왕(阿闍世王)도 백 천의 권속들과 함께 각각 부처님의 발에 예배를 올리고 물러 나와 한쪽에 가서 앉았습니다.
韋提希子 阿闍世王이
위제희자 아사세왕이, 위제희는 이분이 이제 보살이고, 위제희의 아들 아사세, 빈바사라 왕의 아들이 아사세고 참 우여곡절이 많은 집안이예요.
아사세왕이 본래는 아주 나쁜 놈이었는데 왜 나쁜 놈인고 하니 빈바사라왕을 말하자면은 자기 부왕을 쫓아냈어요.
그리고 자기가 왕위를 찬탈을 했어.
그런데 나중에 이제 회심(回心)을 해가지고 마음을 돌려가지고 부처님께 귀의 해가지고 아주 훌륭한 부처님의
불교를 수호하는 왕이 됐습니다.
그런데 위제희라고 하는 보살은 참 대단한 분이예요.
그래서 요 아주 훌륭한 어머니를 딱 앞에다 내놓고, 그 훌륭한 어머니 위제희라고 하는 보살의 아들, 아주 나쁜 놈 아사세왕(웃음) 이렇게 해놨어요.
참 이런 것도 교묘하게 아주 멋지게 배열을 잘 했다
이렇게 봅니다.
與 若干百千眷屬으로 俱하사
그들도 약간 백천 권속과 더불어 함께 하여,
各禮佛足하고 退坐一面이
각례불족(各禮佛足) 하고 각각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퇴좌일면(退坐一面)이더라 한쪽으로 물러나서 부처님께 탁 인사하고는 한쪽으로 전부 자기 앉을 자리에 터억 와서 앉았더라.
이렇게 해서 일반적으로 경전을 설할 때 공통되는 서문이 있어요. 그 공통되는 서론이 여기까지입니다.
그 다음에 고 밑으로는 별서(別序) 법화경에만 있는 특별한 서문이 밑에서부터 이어지는데
지금까지 대중 소개가 쭈욱 이렇게 됐고. 밑에도 또 이제 대중소개가 나오고 합니다만은 여기까지 일반적인 서문인데
아까 내가 말씀드렸듯이 왜 이렇게 잡동사니 대중들이 많이 모였느냐? 이 세상에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잡동사니 생명이라도 진리는 다 적용된다.
그런데 하물며 사람일소냐?
어떤 사람에게든지 적용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래 동(東) 서(西) 고(古) 금(今) 흑(黑) 백(白) 할 것 없이, 어느 시대 어느 민족 어느 국가 할 것 없이
다 법화경의 이 진리의 가르침은 다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다 골고루 나눠서 공유해야 한다 법화경의 진리는.
다 모든 사람에게 다 나눠서 우리가 수용해야 한다 하는
이 뜻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 대중들은 보면은 얼마나 잡동사니가 많습니까?
아수라니 가루라왕이니 이건 뭐 인간도 아니죠.
그런데 이분들도 법화회상에 다 동참을 했다 이거예요.
그래 그들 대중은 놔두더라도 우리 사람은,
첫째 우리가 사람이, 사람으로서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이런 마음이 우선 준비되어야
그래도 법화경 공부하는 보람이 있고
법화행자다운 일이 아닐까 ((*))
음악감상;Andrea Bocelli & Sarah Brightman - Time To Say Goodbye
https://www.youtube.com/watch?v=f_JLkIOnq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