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운디드니(Wounded Knee)에 묻어주오
중딩말에서 고딩말까지 나시찬 주연의 전우라는 TV 연작이 있었다. 6.25전쟁에서 국군과 북한 괴뢰군(가끔 중국군)과의 전투를 그린 당대 최고의 인기있는 드라마였다.
동시에 인디언과의 싸움을 소재로한 존웨인 주연의 서부극 또한 흑백 TV앞에 모여들게 하는 인기 드라마였다. 확실한 2분법적 선악구도에서 언제나 착한 놈은 나쁜 놈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결말에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무조건 괴뢰군은 나쁜 놈, 무조건 인디언은 나쁜 놈이라는 인식이 고정화된다. 하긴 1차대전이나 2차대전을 소재로한 영화도 거의 마찬가지다. 톰행크스가 주연한 Band of Brothers 시리즈도 그렇다. 심지어 코메디 프로그램마저도 일본인은 무조건 악독하고 우스꽝스럽거나 나쁜 사람들로 표현한다.
그런데 정말로 다 그런가?
미국 인디언 멸망사를 다룬 Dee Brown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최준석 옮김)를 읽으며 아메리카 인디언의 처절한 생존투쟁에 눈시울이 뜨겁다.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 백인과 인디언의 선악구도가 바뀐 것을 보고 존 웨인식의 서부영화가 허구일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은 ‘문명이라고는 일도 없는 미개한 인디언’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확실하게 뒤집어 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1860년부터 1890년 12월까지 30년간 민족의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맞서지만 결국 총과 대포로 무장한 백인들에 의해 잔혹하게 학살, 멸족되어 가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에 대한 처절한 기록서이다. 사이엔족, 유트족, 수우족, 코만치족, 나바호족, 아파치족 등 수많은 인디언들이 백인들에 의해 죽거나 사라졌다.
백인들이 들어오기 전 그들은 자연을 사랑하며 매우 평화롭게 살아가는 민족이었다. 이방인인 백인들에게도 매우 우호적이었으며 그들의 태도는 예절 바르고 훌륭했다고 한다. 하지만 백인들은 이들을 감언이설로 회유하고, 금전으로 매수하고, 사기와 협박으로 도장을 찍게 만들고, 대포와 총칼로 수많은 부족을 짓밟으면서까지 그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 죽음으로 몰고 갔다. 다시 말해 미국의 서부 개척사는 백인이라는 이방인에 의한 원주민인 인디언의 땅뺏기 놀이의 역사다. 이를 뒤집어 보면 인디언 멸망사가 나타난다.
백인들이 인디언의 땅을 빼앗은 방법은 전형적이다. 고의로 인디언을 도발하여 인디언이 격한 행동을 하도록 조장한다. 인디언을 몰아내라는 여론이 조성된다. 정부는 군대를 파견한다. 결국 그 땅은 백인의 수중에 떨어진다. 여기에 회유, 매수, 협박, 살육 등 온갖 수단이 동원된다. 마치 구한말 조선을 강점한 일본이 이들의 수법을 따른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오늘은 2023년 12월 29일이다. 133년전인 1890년 12월 29일 미 육군 제7기병연대 500여 명이 수우족 인디언 노인, 여자, 어린이 포함 290여명을 학살한 장소가 바로 사우스다코타 주에 있는 운디드니(Wounded Knee)다. 라코타어로 '상처입은 무릎'이란 뜻인 창크페 오피 와크팔라(Čhaŋkpé Ópi Wakpála)를 영어로 번역한 이름이라고 한다.
삼가 억울한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그들의 영혼이 부디 안식하길 빈다.
이 ‘한강물도 어는 계절‘에 내 가슴도 시리고 먹먹하다.
추기
1. 본문중
눈이 천막 안으로 휘몰아치는 달(1870년 1월) 매부리코는 죽었다. 검은 주전자도 죽고 이제 키큰 소도 죽었다. 이제 그들은 모두 좋은 인디언이 되었다. 긍지 높은 사이엔족은 들소 떼나 영양 떼처럼 점점 줄어 멸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버찌가 익는 달, 노인과 아녀자들이 대부분이었는데 219명의 피건족 가운데 46명만이 도피해서 이사실을 알렸다. 33명의 남자, 90명의 여자, 50명의 어린아이들이 도망가다 사살되었다.
이 대지는 태양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 원래 경계선 같은 것은 없었다. 사람들이 땅을 갈라 이리 붙이고 저리 붙이고 해서는 안된다.
2. 인디언이 계절의 변화를 표현하는 언어는 우리의 24절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눈이 천막 안으로 휘몰아치는 달(1870년 1월)
사슴이 땅을 파는 달
말의 달 7-15
나는 개미의 달 1
넓은 잎사귀의 달 4/21
잎이 퍼지는 달 4월
곡식이 익는달 7월
얼음이 어는 달
기러기가 날아가는 달 11월
잎이 돋는 달
싹이 트고 잎이 나는 달 3월말
잎이 노랗게 물들어 가는 달
딸기가 익는 달
산벚나무의 열매가 익는 달
사슴이 발정하는 달
나무껍질이 터지는 달
늑대가 무리를 지어 달리는 달
검푸른 녹음이 드는 계절(5월).........
3. 인디언식 이름
‘늑대와 춤을‘ 영화에서 ’주먹쥐고 일어서’, ‘발로 차는 새’, ‘머리속의 바람’, ‘열마리 곰’ 등의 인디언식 이름이 등장하듯 그들의 이름은 열마리 곰, 외로운 늑대, 차는 새, 비틀거리는 곰, 점박이 꼬리, 여윈 곰, 작은 까마귀, 선 사슴, 칠면조 다리, 검은 주전자, 검은 소........
우리도 연거푸 딸만 둔 집에서 아들바라기 이름으로 후남이, 종숙이, 말숙이, 끝순이, 향남이...생월에 따라 삼월이, 사월이, 오월이...
첫댓글 '고난사'가 아닌 '멸망사'... 제목부터 슬프고 잔인하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남을 밟고 일어서야 만 하는 것인가? 남미의 원주민, 아프리카에서 잡혀 온 노예...
세밑에 생각할 숙제를 주시는구만.
이데올로기가 됐든, 땅따먹기가 됐든 전쟁은 언제나 민초들이 거의 무방비상태로 가장 큰 희생을 치뤄야 했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여전히 전쟁중인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