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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김승석
음력 2월 중순에 들어서자 비바람이 좀 거세다. 사나운 ‘영등할망’ 신(神)이 우장을 쓰고 제주 섬을 한 바퀴 돌면서 풀꽃들에게 겨울잠에서 깨어나라 하고, 갯가 연변에서 해녀 채취물의 씨를 뿌린 뒤 본국으로 귀향하려 한다. 농어촌 마을에서는 음력 2월을 ‘영등달’이라고 부르며 영등굿을 벌여 영등할망을 대접한다.
나무가 뿌리에서 물을 빨아올리고, 봄꽃이 피려고 할 때 비바람이 치는 법이다. 여기에 태양에너지가 가해지면 식물의 엽록소가 햇빛을 받아서 나무가 자란다.
마치 태양에서 수소 원자가 핵융합을 하여 헬륨이 되고, 핵융합이 일어나면 에너지가 우주로 방출되어 지구에서 햇빛을 받게 되듯이 모든 존재와 현상은 서로 의존하며 관계 속에서 생기고 사라진다.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인드라망의 그물코마다 칠보의 보배구슬이 달려 있고 각각의 보배구슬은 다른 모든 보배구슬을 비추며 끝없이 중중무진하게 이어지는 것처럼 하나의 존재가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전체는 하나에 영향을 미친다는 ‘일즉다 다즉일 一卽多 多卽一’의 화엄사상은 법계연기(法界緣起)와 뜻은 같고 문자만 다르다.
관측천문학자 이시우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주도 똑같습니다. 우주에는 약 천 억 개의 은하가 반경 140억 광년의 범위 내에 분포하고 있는데, 마치 인드라망의 그물코에 달린 보석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또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멀리 떨어져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도 시간이 지나다보면 만나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지구도 자전, 공전뿐만 아니라 다른 별들과 함께 여러 종류의 운동을 하면서 우주 공간을 돌고 있지요.”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결코 이유 없이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사건은 제각기 원인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도 한 가기 원인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얽혀져 있다. 마음이야말로 모든 행위에 앞서고 모든 인류 문명과 문화의 설계자이다.
행위 중에서도 의도(cetanā)가 개입된 행위를 업(業, kamma)이라 한다. 마치 씨앗을 심으면 그 종자에 고유한 열매가 열리듯이 업은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지었음’ 때문에 반드시 과보(vipāka)를 가져온다.
원인과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이 상대적 현실 세계를 살고 있는 한 우리는 인과법칙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때때로 우리는 원인과 결과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궁금해 한다. 또한 어떤 특정한 결과를 낳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기도 하다. 가끔은 원인을 대출 짐작하지만 대개는 잘 모른다. 업이 전개되는 방식은 매우 유동적이고 엄청 복잡한 시계 장치와 같아서 밝히려 드는 일은 우리의 한계를 벗어나 있다.
업의 작동 방식은 옳고 그름에 대한 우리의 견해에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고 우리가 느끼는 정의감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업으로서의 의도는 그것이 선하든 악하든 들뜸이다. 누군가가 바깥 경계에 대하여 이를 지켜보는 데서 멈추지 못하고 그 사태에 정신적으로 관여하여 이러저러한 입장과 자신과를 동일시하거나 반대하거나 하는 등등으로 휘말려 들기 때문이다.
헐떡임이 있으면 평형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반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이시우 박사는 이렇게 비유해서 말했다. “별은 성간물질에서 집단으로 태어나는데,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듯이 별들 또한 질량에 따른 분포가 다르지만, 별들은 무위적으로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질량이 큰 별은 성단 내에서 중심부에 들어가서 구심력으로 집단을 감싸고 있고, 가벼운 별들은 중심부를 돌아다니면서 서로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별들이 계속 만나다 보면 초기의 고유한 특성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성단 전체가 대립·충돌이 아닌 이완상태에 놓이게 되고, 모든 별들이 평등하며 보편적인 안정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라고.
인류의 역사를 볼 때 각 문명과 문화는 각각 다른 도덕률, 행동규범, 윤리관을 채택해왔다. 하지만 진보적 역사관에 따르면 보통사람들은 인권의 보편적 가치가 보장된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국가나 집단 내에서 평화로운 공존을 원하고 있다.
그 원함이란 별처럼 살고 싶다는 것이다. 이는 연기의 법칙을 제대로 인식하며 산다는 것이요, 물이 늘 수평을 이룬다는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며 산다는 것이 아닐까.
보수이든 진보이든 물위의 파랑(波浪)과 같은 것이다. 바깥에 나타난 현상계는 서로 차별되더라도 자성이 없는 ‘비어있음[空]’인 진리의 세계에서는 ‘상즉상입(相卽相入)’하여 둘이 아니다[不二].
대한민국의 배가 태풍을 만나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정치가 바로 서지 않아서 그렇다. 서쪽에서 부는 잦은 탄핵 풍(風)과 동쪽에서 부는 계엄 풍(風)으로 좌현과 우현이 크게 요동치면서 항행을 못하고 있다. 참다운 정치는 보수·진보의 양극단의 절충이 아닌 그 한계를 인식하는 조화이어야 한다.
거친 풍랑에도 배가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것은 '평형수' 때문이다. 배의 크기와 화물량에 맞춰 물의 양을 조절해 배의 중심을 잡는다. 평형수는 배의 생존에 꼭 필요한 요소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평형수와 같은 존재이다. 이제 법치와 여론으로 균형 잡아가야 한다. 한 쪽을 소홀하게 되면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배의 무게중심과 복원력을 지켜주는 평형수의 자리에 정당이나 유력 정치인들의 입김이 끼어들어서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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