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식 미니멀 라이프 ‘데스클리닝death cleaning’을 전 세계에 알린 마르가레타 망누손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망누손이 80여 년의 삶을 회고하며 찾아낸 ‘나이 듦에 관한 새로운 발견의 기록’이다.
망누손은 ‘어르신’의 전형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다. 화상 통화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 먼 곳에 떨어져 사는 친구와 술 한잔 기울이기도 하고, 마음속에 있는 약간의 허영을 인정하며 매일 마음에 들게 머리를 단장한다. 줄무늬 옷을 입으면 생기가 돌고 명랑한 기분이 든다며 줄무늬 패션을 즐기고 초콜릿을 한입 할 때마다 재채기가 터져 나오곤 하지만 좋아하는 음식 먹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세계 대전, 냉전 등 세계적 위기를 겪은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한 번 죽었다 깨어나기까지 했다.
‘초콜릿을 먹어서 죽든 그보다 훨씬 덜 기분 좋은 무언가 때문에 죽든 어쨌든 곧 죽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마따나 망누손은 한 번뿐인 인생, 웬만하면 조금만 후회하며 살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새로이 하기에 결코 이른 때란 없기에, (아마도) 당신보다 먼저 떠날 망누손이 전하는 지혜는 인생의 후반전을 의미 있게 채워가고 싶은 이들은 물론 살아갈 날이 많은 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나이 들지 고민하는 이들을 위하여
유쾌한 90세 스웨덴 할머니의 열린 마음으로 인생을 즐기는 태도
저자 마르가레타 망누손은 1934년생, 그러니까 올해로 아흔 살이다. 그 나이로 미루어 짐작했을지도 있겠지만 망누손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냉전, 쿠바 미사일 위기, 체르노빌 원전 사고, 지금의 기후 위기까지 세상이 끝날 것만 같은 위기를 몇 번이나 겪으며 살아왔다.
이렇게나 모진 풍파를 이겨낸 여든 넘은 어르신이 전하는 삶의 태도라고 하니 시대에 맞지 않게 고리타분하거나 진지하고 무겁기만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망누손은 주어진 인생에서 긍정적인 면모를 발견해 내려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초콜릿을 참기에는 충분히 오래 살았어≫에서는 그녀가 삶 속에서 찾아낸,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14가지 메시지를 자신의 생애 전반을 담은 이야기 속에 맛깔나게 풀어냈다. 배를 타고 가다 마주친 해적, 쓰레기봉투에 구멍을 뚫어 바다에 던져 버리는 선장과 함께한 이야기 등 옛 시절이기에 가능했던 아찔한 이야기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넘어지지 않도록 애쓰기, 새로운 것에 마음을 열기 등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이야기까지 모두 담겨 있다. 매 장이 망누손 특유의 솔직하고 재치 있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화가인 저자가 직접 그린 유머러스한 그림들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저자가 전하는 인생 태도는 무엇보다도 미래를 꿈꾸며 현재에 충실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어떤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은지, 나아가 어떻게 나의 미래를 맞이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큰 격려와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무엇을 하기에 결코 늦은 때란 없다. 정말 늦어서 죽기 전까지는!’
페이스타임, 스카이프, 줌, 팀스, 왓츠앱 같은 놀랍고 재미있는 기술들 덕분에 예상치 못했던 가능성이 열렸다. 우리처럼 여든이 넘은 사람들이 기술의 발전을 잘 따라가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 현대인의 삶을 더 즐겁게 만들어 주는 수많은 기회를 우리만 놓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자녀들과 손주들이 우리를 늙은 구닥다리로 여기지 않길 바란다면 더더욱 말이다. _26쪽, ’친구와 진토닉을’
우리 세대와 그 전 몇 세대가 지구를 잘 보살피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는 몹시 애석하다. 하지만 (…) 나는 우리에게 미래가 있길 바란다. 그리고 곧 떠올린다. 세상은 지금껏 수십 번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는 사실을. 내가 살아 있을 때만 해도 몇 번이나 그러지 않았나. _42-43쪽, ‘세상은 언제나 망하기 일보 직전’
내 나이가 되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너무 오래 지속되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가 되면 죽음이 재빨리 다가와 주길 빌어라. 죽었다 살아나 본 사람이 한 말이니 믿어도 좋다. 죽음이 꼭 그렇게 끔찍한 것만은 아니다. _79쪽, ‘7년 전에 죽었다 깨어난 사람’
여든이 넘으면 생겨야 할 주름이 생기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일찍부터 찡그리는 시간보다 웃는 시간을 더 많이 갖는 것이다. 웃어서 생긴 주름이 많다면 늙어 보인다기보다 그저 행복해 보일 테니까. _114-115쪽, ‘머리카락은 일찍부터 관리하시길’
무릎이 아프다고 징징대지 말라. 자주 전화하지 않는다고 죄책감을 느끼게 하지 마라. 그저 질문하라. 그리고 들어라. 배부르게 먹이고, 가서 삶을 즐기라고 말해주어라. 그러면 그들은 계속 전화하고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_122쪽, ‘귀여운 아이들일수록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할 것’
여든 살이 넘어가면 쉽게 화를 내게 된다. 언제나 새로운 것들이 생겨난다. 새로운 정치인, 새로운 나라, 새로운 전쟁, 새로운 기술. 실로 모든 것이 계속 새로워진다. 여든이 넘으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화를 내거나 흐름을 따르거나. 하지만 제발 후자를 위해 노력하라. 변화를 수용하고 심지어 즐기다 보면 정말 즐거워질 수 있다. _162쪽, ‘마음을 활짝 열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모든 선택에는 결과가 따른다. 영원히 살 것처럼 초콜릿 바를 먹겠다는, 정확히 말하자면 영원히 살지 못한다고 해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다는 내 결정이 초콜릿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한 것 같다. (…) 하지만 재채기가 멈추자마자 나는 바로 한 입을 더 먹는다. 내 나이쯤 되면 가끔 이렇게 생각해 버리는 것이 정말 중요하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_173-174쪽, 초콜릿은 언제나 옳다
나는 ‘사랑스러운 문제kärt besvär’’라는 스웨덴 표현을 좋아한다. 그 말이 우리가 살면서 해야 하는 많은 중요한 일을 설명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모든 일이 점점 더 ‘사랑스러운 문제’가 되는 것 같다. (…) 예를 들어 매달 고지서를 납부하는 일이 ‘사랑스러운 문제’가 될 수 있다. 귀찮은 일이지만 낼 수 있는 돈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할 일 목록을 하나 지우는 것도 기쁘다 ._175-176쪽, ‘사랑스러운 문제’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우리 집 발코니에서 휘파람을 불며 탭 댄스를 출 수도 있겠지. (…) 이미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나버린 게 아니라면 무엇이든 너무 늦은 때는 없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죽기 시작하는 거다. _199쪽, ‘젊은이들 곁에서 젊었던 자신에게 휘파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