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벌거벗은 세계사 경제편 중 메디치 가문에
대해 읽어봤다.메디치 가문은 많은 사람에게 중세 유럽 최고의 부자이고 예술을 아주 사랑해서 예술가들에게 많은 돈을 후원했다고 알려져 있다.나도 그렇게 알고있었고 읽어보니 틀린 것도 아니었다.그래도 놀란 점이 있었다.바로 메디치 가문이 어떻게 권력을 잡게 되었고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다.
돈과 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메디치 가문은 사실 평민 출신이다.피란체에 살던 평민출신의 이름은 바로 조반니 데 메데치.그는 25세가 되던해에 인생을 뒤바꿀 중요한 선택을 했다.피란체에서 은행업으로 돈을 벌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다.사실 그 기독교적 가치관이 절대적이던 그 당시에 이자를 주고 받는 은행업은 지옥에 떨어질 만큼 최악의 범죄로 취급되었다.그럼에도 조반니가 은행으로 시작했던 이유는 은행업이 돈을 잘 벌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던 조반니는 피란체로 가기 전에 로마에 가서 먼 친척이 운영하는 은행의 직원으로 취업해 일을 배우기로 한 것이다.그 후에 조반니는 약 10년간 일하며 교황청으로 흐르는 거대한 돈의 흐름을 파악하고 친척이 운영하던 은행을 인수한뒤 피란체로 돌아와 동업자들과 새로운 은행을 시작했다.
시작하고 나서 평균의 순 수익을 벌었지만 만족하지 못했고 메디치 은행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그 목표는 바로 교황청의 전담 은행이 되는 것이다.그렇게 조반니가 교황청과의 연을 만들기 위해 기회를 엿볼때, 교황이 되고 싶다는 발다사레 코사가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빌리러 메디치 은행을 찾았다.다른 은행이였다면 단칼에 거절 했을 100억원을 조반니는 치밀하게 계산을 한뒤 그가 교황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빌려주었다.이때 나는 100억원이 있다고 교황이 무조건 되는 건 아닐텐데 이상하네 라고 생각이 들었다.사실 당시에 가톨릭 교회는 극도로 혼란했고 이 덕분에 코사는 단숨에 교황으로 등극했고(당시에 교황은 3명이였다)메디치 가문을 자신의 전담 은행으로 낙점하였다.
그런데 5년만에 메디치 은행에 위기가 찾아왔다.세명의 교황 등 혼란한 상황을 정리하려 요한 23세(코사)를 교황 자리에서 쫓아낸 것이다.거기다 요한 23세는 온갗 난잡한 죄(이단,동성애 등)로 감옥에 갇쳤다.하지만 조반니가 요한 23세에게 많은 돈을 들여 도와주었고 쫓겨난 교황인데도 아름답게 장식한 묘까지 만들어 주었다.이렇게 위기가 찾아왔어도 그 위기를 다른 이들에게 신뢰를 품게 만든 메디치 가문은 영리하게 행동하여 다음 교황때도 그의 전담 은행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교황청 전담 은행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던 메디치 가문은 후계자에게 기업을 물려주면서 유럽 최대 은행가로 자리매김했다.기업을 물려받은 후계자 코시모는 굉장히 똑똑했고, 메디치은행을 유럽 각 국가에서 사업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특혜를 받아 내기도 했다.교황청도 메디치 은행의 성장을 도왔다.
이 외에도 메디치 가문은 은행에서 성직자들에게 빌려준 돈의 이자를 받는 대신 교회에 공급하는 물건값을 부풀리는 것으로 돈을 벌었다.은행에 빚을 진 성직자들은 이런 꼼수들을 이자 대신이라 생각해 눈 감아 주었고 메디치 가문은 큰 이익을 보았다.
하지만 메디치 가문은 평민 출신으로 사람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었고 코시모는 고심 끝에 자신들만에 문장을 만들었고 또 피란체 정부가 전쟁 자금으로 고생할때 돈을 빌려주어 시민들의 시선을 달라지게 만들었다.메디치 가문이 권력을 잡는 첫 발걸음이다.
결국 메디치 가문은 권모술수와 암투,그리고
정적들을 제거하는 잔인함을 앞세워 페란체의 권력을 장악하고 전유럽에서 돈을 막대한 돈을 쓸어담았다.그리고 여기서 메디치 가문이 어떻게 역사속 수많은 가문중에서도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왔는지 알 수 있다.바로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해 르네상스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업적 때문이다.
사실 앞에서도 말했던 것 처럼 지금도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를 후원한 위대한 가문으로 널리 알려 져 있다.하지만 메디치 가문이 돈을 앞세운 암투와 권모술수로 권력을 장악한 추악한 이면은 주목받지 못했다.
권력을 장악한 메디치 가문에 입맛에 맞춰져 역사가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거희 모든 역사가 그렇다고 생각한다.일본의 아이들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발전 시켰다고만 알고 있지 일본이 구체적으로 우리나라에게 무슨 일들을 했는지 모르고 교과서도 굉장히 왜곡되어져 있다(예를 들어 한국 ‘침략’을 ‘진출’로, 외교권 박탈과 내정 장악을 ‘접수’로).또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교과서에는 우리나라가 참전한 베트남 전쟁 후로 많은 베트남 여성들이 임신했다는 사실이 나와있지 않다.
뭐 창피하고 안좋은 역사를 굳이 안 알려주고 싶겠지만 왜곡되게 역사를 쓰는건 진짜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오히려 창피하고 슬픈 역사를 정면으로 보고 반성한다면 훨씬 좋은 나라가 되지않을까?예를 들어 독일은 유대인 학살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가장 좋은 땅에 유대인 추모비를 세운다던가 외국인이 독일대를 들어갈때 돈을 안내고 오게 해줄 수 있게 하는등 계속해서 반성하고 있다.그리고 독일은?행복지수가 꽤 높은 편이다.우리 삶에서도 똑같이 적응해도 좋을 것 같다.실제로 회피하는 것 보다 똑바로 보고 실패를 통해 배워서 더 강하게 서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