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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벤에셀의 은혜
(삼상 7:3-12)
희망차게 시작했던 2022년이 다지나 갔습니다. 사실 일년 내내 코로나로 많은 분들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니 모든 것이 다 은혜였습니다. 온 세상과 우리나라도 모든 한국교회에 코로나의 어려움을 지나왔습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는 연로하신 분, 코로나 후유증으로 많은 분들이 힘들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경제적으로 궁핍을 당하고, 개인적으로 기쁠 때도 있었고 슬플 때도 있었습니다. 성공한 적도 있었고, 실패한 적도 있었습니다. 합격해서 좋은 사람도 있지만, 불합격해서 낙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잘돼서 순탄한 적도 있지만, 모든 것이 안돼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있지만, 병든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성을 다해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문제보다 더 크고 넘치게 축복과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과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깨닫고 믿으면 그 말씀이 우리에게 큰 축복이 되고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을 더 아름답고 훌륭하게 인도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감사와 예배로 송구 영신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이 컸고 여러분들이 흔들림 없이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시간을 빌어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고 여러분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2023년 송구영신예배에 주신 말씀은 삼상 7:12입니다.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감사의 제단을 쌓는 장면입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하여 감사의 돌을 세운 것입니다. 그 돌의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했습니다. 이 사무엘의 감사의 모습은 흡사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지난 세월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혜, 에벤에셀의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사시대 말엽에 있었던 특별한 한 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 때는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겼다가 되찾은 지 20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블레셋의 압제 아래서 고생하는 동안 이스라엘 자손은 겸비해져서 하나님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무엘의 권면을 받아들여서 모든 우상을 없애고 하나님만 섬겼습니다. 이에 사무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범민족적인 영적각성운동을 일으키기 위해서 이스라엘 온 지파를 베냐민 지파에 속한 미스바로 소집했습니다.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은 물을 길어 하나님 앞에 붓고 금식하면서 회개했습니다. 이 때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과 전쟁을 하려고 미스바에 모인 줄로 알고는 선제공격을 해 왔습니다. 싸울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이스라엘 자손은 겁에 질려 사무엘에게 이르기를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부르짖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시니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이스라엘에게 패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스바에서 몰려 나가 벳갈 아래까지 추격하며 불레셋 군을 무찔렀습니다. 그 날, 사무엘은 이 승리를 기념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큰 돌을 세우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하고, 그 돌의 이름을 “에벤에셀” 곧 “도움의 돌”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이 돌을 세우며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 처럼 우리들도 이 한해의 끝자락에서 감사의 제단을 쌓습니다. ‘여호와께서 여가까지 도우셨다’의 고백의 단을 쌓습니다. 에벤에셀, 하나님 도움의 기념 돌을 쌓습니다. 사무엘이 에베에셀의 돌을 세운 곳은 ‘미스바와 센’ 사이입니다.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미스바는 ‘망대’ 또는 ‘파수대’란 뜻입니다, ‘보초가 경계하다’입니다. 지난 일들을 돌아보는 망대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들을 뒤돌아보는 망대입니다.‘센은 ‘치아’, ‘송곳니’의 듯으로 뽀족한 바위의 곳을 말합니다. 앞으로 있을 일들을 바라보고 관측하는 곳입니다. 앞으로 있을 일들을 바라보는 송곳니 돌탑 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둘 사이에 있습니다. 지나온 일들을 뒤돌아보는 미스바의 망대에 있고, 새롭게 있어질 새해의 일들을 내다 보는 송곳니 돌에 선 것입니다.
1. 미스바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신 지난 일들의 은혜입니다.
사무엘과 이스라엘은 미스바에서 지난 날을 감사로 제단을 쌓습니다. 우리가 지난 2022년을 지나오며 감사로 나아옴과 같습니다. 사무엘과 이스라엘은 이전에 미스바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그들은 블레셋을 돌파했었습니다.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쳤더라’ ‘벧갈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파한 것입니다. ‘쳐들어 온 블레셋을 쳤더라’ 사무엘과 이스라엘도 미스바의 은혜로 블레셋을 돌파한 것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계속된 코로나, 이어서 변이 오미크론 만 돌파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도 돌파하였고 오늘날에도 돌파의 은혜가 있습니다. 이 시대의 돌파의 시대입니다. 과연 누가 돌파를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2022년은 온 세계와 우리나라 모두가 각자가 돌파해 왔습니다. 창궐한 코로나를 모두가 돌파해 왔고 돌파하는 중에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대외적으로도 여러 상황들을 받으며 돌파해 왔습니다. 북한의 핵위협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정치가 혼란스러웠습니다. 새로운 지도자 대통령을 세우기까지 극심한 대립구도로 이어져 왔습니다. 경제도 어려웠습니다. 유류가 파동이 극심했고 이율이 너무 높아서 서민들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우리 성도들 가정적으로도 주어진 어려운 상황에서 돌파해 오셨습니다. 장사가 잘 안 되어지는 여건에서도 잘 버티며 돌파해 오셨습니다. 코로나로 교회에 다니는 것이 흉이 되는 상황에서 돌파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후유증으로 많은 분들이 건강이 약해졌습니다. 지금까지 힘든 상황도 많았고 마음의 어려움도 컸을텐데 잘 돌파해 오신 여러분을 축하합니다. 축복합니다. 너무 수고하셨고 너무 애쓰셨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돌파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로 여겨지는데 1. 여러분들의 신실한 믿음으로의 충성과 헌신이 있었고. 2. 전적으로는 하나님의 한 없으신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한순간도 버틸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위로하시며 믿음 더하시며 용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써 사람을 보내시고 힘을 보태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써 일어서고 한 발자욱씩 내 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방의 우겨 쌈을 당하여도 돌파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과 이스라엘은 미스바에 돌을 쌓아 감사한 것입니다. ‘여기까지 하나님이 도우셨다’ ‘여기까지 하나님이 돌파하게 하셨다’입니다. 여기까지 도우신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기까지 도우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아 올려 드립니다. 여가까지 돌파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 ‘센’의 은혜입니다. 미래에 가야 할 길을 은혜의 하나님께 의지합니다.
사무엘과 이스라엘은 센, 송곳이 바위, 뾰족한 바위 앞에서 앞 일을 생각합니다. 사무엘과 이스라엘은 지나온 그간의 걸어 온 삶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올 수 없었던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은혜의 하나님께 의탁합니다. 우리에게도 새해가 주어졌습니다. 새해는 우리에게 기회이고 축복입니다. 이 새해가 기회이고 축복인 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의 센처럼 새해의 송곳이 같은 이 시간에 하나님께 의탁합니다. 우리는 새해로 나아갈 때 도하도, 돌파도, 비행도 해야합니다. 우리의 새해는 걷고, 건너고, 뚫고, 쳐내고, 날르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새해는 세우고, 심고, 거두고, 나누고, 누리고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꼭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에 있던 에벤에셀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새해에 전 세계, 전방위적으로 코로나를 돌파해야합니다. 새해에는 우리나라는 대선의 엄중한 일을 건너야합니다. 새해에는 교회적으로 영적 위축과 신뢰를 회복해야합니다. 새해에 가정이나 개인이나 해결되어져야 야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직장과 재정, 자녀의 학업의 일로 세워야 어떤 이는 건강을 회복, 우지해야 합니다. 어떤 가정은 노후 대책과 친척과의 관계로 회복해야 합니다. 사무엘과 이스라엘도 센에서 저들의 앞날을 하나님께 의탁합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앞으로도 도우소서’하는 믿음으로 돌을 세웁니다. ‘지나온 나날 들에 은혜로 돌보신 하나님이 앞으로도’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에벤에셀의 돌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 모여 기도함으로 영적 부흥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지파를 미스바로 모은 것은 영적인 부흥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지난날의 불신앙과 우상 숭배의 죄악을 회개했습니다. 물을 길어 하나님 앞에 붓고 금식하며 기도한 것은 ‘하나님 앞에 그들의 마음을 물처럼 쏟아 붓는다.’는 뜻입니다. 한번 쏟아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듯이, 우리의 온 마음을 다 주님 앞에 쏟아놓고 그 앞에 굴복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이처럼 모여서 회개하며 신앙에 부흥의 불을 붙였습니다. 우리의 냉랭한 심령이 뜨거워지고 하나님 섬기는 데 열심을 내려면 영적 부흥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이스라엘 온 지파가 미스바에 모였듯이 성도들은 교회로 모여야 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의 일을 위해 헌신하기 위함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에 관한 성경의 증언을 사도행전 2장 46절로 47절에 보니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이기를 힘썼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3. 기도에 힘 쓸 때 우리 심령에 부흥이 일어납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토로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간절한 소원을 하나님께 고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 영혼은 하나님께로 가장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시간은 기쁘고 은혜로운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때로 우리의 기도가 힘겨운 노동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실 때 이마에 흐르는 땀이 핏방울처럼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어찌나 애쓰고 힘쓰면서 기도하셨던지 모세 혈관이 터져서 피가 땀에 섞여 나왔던 것입니다. 또한 기도는 영적인 싸움이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성도들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인 잠에 빠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은 깨어있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육신이 약하여 졸며 잤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대제사장들이 보낸 무리가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다 도망하였고,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는 패배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 심령에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에 부흥이 일어나면 그 무엇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심령 부흥을 이룬 사람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이룩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삶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우리의 보호자와 인도자가 되어 주십니다. 본문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가 이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당시 블레셋 사람들은 철제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철을 다루는 기술을 갖지 못했습니다. 이는 사울 왕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블레셋과 전쟁을 하는데 칼을 가진 사람은 사울 왕과 요나단,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더구나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은 기도하기 위해 왔으므로 전혀 무장을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철로 만든 창칼보다 더 강한 무기가 있었으니 곧 기도의 무기였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큰 우레에 놀라서 도주하는 적들을 뒤쫓아 가면서 무찌르기만 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즉 성도님들께서는 모이기에 힘쓰고 기도생활에 열심을 내어 영적 부흥을 이룸으로 에벤에셀의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소망이 이것입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입니다’ ‘앞으로 맞이할 새해에 주의 은혜를 구합니다’ ‘새해가 우리에게 기회이나 주님이 함께 하실 것이니 희망찬 새해입니다.’ ‘주님, 새해에 주어질 모든 일들 주님이 함께해 주소서’ ‘주님, 새해에 돌보시는 주님의 은혜 안에서 돌파하게 하소서’ 그리고 여러분들은 미스바의 제단이 교회에 모여 이 제단을 위하여 물을 길으며 수고하고 헌신하는 동역자가 될 때 2023년도 우리 교회에 새로운 이름인 도움의 돌-에벤에셀을 세우게 될 것이다. 우리가 2023년 새해에 우리 주님과 함께 희망차게 맞이합시다. 아직은 코로나 시즌이고 앞으로 계속 더 간다고 하나 우리 주님의 은혜로, 기도의 능력으로 견디며 돌파하며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다.
4, 이스라엘 자손이 에벤에셀의 돌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온전한 헌신을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보고를 받은 블레셋 방백들은 군대를 거느리고 물밀 듯이 쳐들어왔습니다. 이를 본 이스라엘 자손은 두려워하여 사무엘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싸우려고 가까이 오자 하나님께서 큰 우뢰를 발하셔서 그들을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도주하는 블레셋 사람들을 뒤쫓아 가면서 쳐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으로 온전한 번제를 드린 것은 이스라엘 자손 모두가 하나님께 헌신하였다는 뜻입니다. 솔로몬이 드린 일천번제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신 것은 많은 제물을 바쳤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성도님들께서 각 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에배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기쁨으로 봉사하는 것을 볼 때 제 마음도 기쁩니다. 이는, 성도님들께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이어령(李御寧) 교수가 늦은 나이에 예수를 믿고 78세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는‘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저서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기독교의 목적은 예수처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나처럼 되어라’는 미션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신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땅의 가치와는 전혀 다른 생명의 떡,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길이 자기 부인의 길입니다. 돌이키는 길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세례 받은 후 네 가지 유형의 크리스천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첫째, 발로 믿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가면 제일 눈에 많이 띄는 부류인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로 기도나 봉사에 언제나 열심을 내며 행위를 중시하는 교인들입니다. 다음으로 가슴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하는 사람인데 가슴으로 받아들이기에 눈물을 흘리며 마음 깊숙한 곳에서 할렐루야와 아멘을 잘합니다. 그 다음으로 머리로 믿는 사람입니다. 대표적 인물이 바로 자신이었다고 토로합니다. 발로 걸어보지도 않고, 가슴으로 받아들이지도 않고 머리를 굴리며 생각을 거듭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머리로만 믿을 경우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마지막으로 몸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발로만, 가슴으로만, 머리로만 믿어서는 부족하고 모든 것이 합쳐져 온전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온 몸으로 믿는 사람이 온전한 신자인데 예수가 모델입니다. 교회에 대한 부정적 사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희망인 것은 몸으로 믿는 신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세례 받은 이유를 세속적 의미의 평화를 구함이 아니라 자신의 해체를 기대하려는 목적이었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말합니다.“생각해보니 예수께서 가신 문이 좁은 문이 아닙니까? 그 분이 가신 길은 만사형통의 길이 아니라 좁은 길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과 성공은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를지도 모릅니다. 진실로 그분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라고 간증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몸된 교회가 하나 세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성도 한 사람이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의 대속을 믿고 구원을 받는 것도 인간의 힘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 교회가 여기 있고, 우리가 지금 이 순간 함께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함께 좋은 교회를 세우고 스스로 좋은 교회가 되고자 열심히 달려온 모든 성도님들의 헌신이 있습니다. 이렇게 한 교회로 뭉쳐서 같이 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뒤에서 우리를 동시에 막 밀어주시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에벤에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에서 이긴 뒤 에벤에셀이라는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이란 뜻입니다. 사무엘이 이 돌을 세우고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도우셨다’ 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오늘 우리 교회와 우리 성도님들의 고백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를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도와주실 것을 확신하는 은혜를 오늘 모두에게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래전 우리나라 숙명여자대학교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이경숙 박사가 1994년 숙명여자대학교의 총장으로 취임했을 때 고종황제가 하사하신 학교부지를 정리하지 못해 국유지로 묶여버려 수억 원의 임대료와 벌금이 쌓여 있었습니다. 이 총장은 부지런히 공무원과 담당자들을 찾아다녔지만 문제는 풀리지 않고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기도실에 가서 '하나님, 왜 저를 도와주시지 않습니까 ' 울며 기도할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왜 너는 나에게 일할 기회를 주지 않느냐? 너 혼자 뛰어다니고 너 혼자 다 하지 않았느냐?"
그때 이 총장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나서 사람도 만나고 움직여야 했었는데 순서가 바뀐 것이었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능력도 체력도 부족해서 저는 기권입니다. 하나님께서 숙대의 주인이 되어주십시오" 그날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공무원과 담당자들의 태도가 달라져 땅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게 되었습니다. 그후 대학 정문에 여호수아 1장 9절의 말씀을 새겨 넣고 지금도 매일 새벽기도에 나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있습니다. 승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하게 됩니다. 방법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본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승리합니다. 사업에도 승리합니다. 가정에도 승리 합니다. 자녀 교육에도 승리가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하나님의 도우시는 에벤에셀의 은총으로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는 역사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내가 사는 동안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을 물리치고 미스바와 센 사이에 에벤에셀의 돌을 세웠듯이, 여러분의 인생길 곳곳에 에벤에셀의 돌이 세워지기 바랍니다. 이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 모든 의심과 불신앙을 버리고 전심으로 하나님만 섬기십시오. 모이기에 힘쓰시고 기도에 힘쓰심으로 영적 부흥을 이루십시오. 하나님께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바쳐 온전한 헌신을 드리십시오. 지금까지 성도님들의 삶을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과 대적을 물리쳐주시고. 인생의 어려운 고비 마다 승리와 감사의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우도록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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