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의 노래 외 1편
손경선
작은 스피커를 닮은 감꽃에서는
내 유년의 노래가 흐른다
감꽃 목걸이 하나면
세상 부러울 것 없었다고.
이파리 사이로 수줍게 매달린 풋감에는
청춘의 노래가 깃들고
감이 자라면서 주체하지 못할 꿈도 커져만 갔다
사나운 바람에 땡감으로 떨어지기도 하지만
적당히 흔들리고 상처를 감싸면서
허기와 한기, 침묵 속에서
제 색깔로 익어가는 감
어느새 영감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나이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세상의 단단함과 떫은맛을 버리고
홍시가 될는지
호랑이도 물리치는 곶감이 되려는지
달콤하지만 삼켜지지 않는
깊숙이 박힌 감 씨
목에 걸린다
말을 걸다
매일매일 말을 건다
아직 대답은 듣지 못하였지만
높은 자리에, 높이 오르려는 발길에
앞으로만 걷는 발걸음에
햇살 가득 찬 것들에게
남이 잘 모르는 지름길과 비밀스런 장소에
손맛과 죽을 맛 사이의 물고기에
활짝 핀 꽃들에게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들도 있다
아직 대답을 하지 못하였지만
비어 있는 것과 흔들리는 것
이미 시든 꽃이나 낙엽
빛을 잃어가는 것들
낮은 곳에 자리한 것들
뒷걸음질로 제자리를 찾는
성근 별 뿐이었네
----애지사화집 {북극항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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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선의 감의 노래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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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4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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