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드 오브 타임 by 브리아언 그린 (tistory.com)
1장. 영원함의 매력
모든 생명은 때가 되면 죽는다. 지구에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한 후 대략 30억 년에 걸쳐 복잡한 생명체로 진화하는 동안, 죽음의 칼날은 그들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바다에서 탄생한 생명체는 육지로, 하늘로 진출하면서 삶의 영역을 꾸준히 넓혀 왔지만, 은하의 별보다 많았떤 탄생과 죽음의 대차대조표는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정교한 균형을 이룰 것이다. 생명이 번성하는 과정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그들의 마지막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죽음은 지평선 밑으로 사라지는 태양처럼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오직 인간만이 간파할 수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냉혹한 현실을 깨달은 후 깊은 의식 속에 묻어 두거나 애써 무시한 채 살아가지만, 의식을 한 꺼풀 벗겨 내면 불편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이것을 두고 ‘기쁨의 원천에 서식하는 벌레’라고 했다. 일과 놀이, 갈망, 노력, 사랑 등 인생을 풍부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들은 다양한 실로 짠 직물처럼 우리의 삶 속에 치밀하게 엮여 있다가 죽음과 함께 모두 사라져 버린다.
문화인류학자 어니스트 베커는 말한다. “인간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우리의 의식은 자신을 자연에서 가장 특별하고 고귀한 존재로 여기고 있지만 육체는 결국 땅 속에 묻혀 썩어 갈 운명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은 ‘고귀한 존재’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죽음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개인의 수명보다 훨씬 오래 지속될 단체(가족, 팀, 사회, 종교, 국가 등)에 헌신하면서 영원에 대한 갈망을 진정시키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담은 상징적 인공물을 세우는 데 일생을 바치기도 한다. 미국의 사상가 랠프 윌도 에머슨은 “인간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했다. 개중에는 보통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육체적 우월감이나 권력, 또는 부를 통해 죽음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다.
모든 생명은 일시적이며, 우리가 애써 이해한 내용도 언젠가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절대적인 것도 없다. 그러므로 가치와 목적을 추구하는 여정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영감과 해답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 태양의 가호 아래 잠시 동안 존재하면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고귀한 임무다.
2장. 시간의 언어
일반적으로 대규모 집단은 개체 수준에서 알 수 없는 통계적 규칙을 갖는다. 여러 개의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진 물리계를 분석하는 방법은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과 루돌프 클라우지우스, 그리고 루트비히 볼츠만 등에 의해 개발. 이들은 각 입자의 자세한 궤적을 규명하는 대신 모든 입자의 평균적인 거동을 서술함으로써 수학적 계산이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로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물리적 특성을 알아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수증기가 피스톤을 밀어내는 압력은 물 분자 개개의 운동 궤적과 무관. 기체의 압력은 매 초마다 용기의 벽에 부딪히는 분자의 개수와 관련되어 있으며, 이 값은 분자의 개별적 운동이 아닌 ‘평균적 거동’에 의해 결정. 이 값은 입자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계산 가능 → 막다른 길에 갇힐 뻔한 물리학을 통계역학이 구해냄.
주어진 배열(그룹)의 엔트로피는 그룹의 크기, 즉 서로 구별되지 않는 멤버의 수와 같다. 멤버가 많은 배열은 엔트로피가 높고, 멤버가 적은 배열은 엔트로피가 낮음. 여러 개의 동전을 상자에 넣고 무작위로 흔든 후 쏟았을 때 나타난 배열은 엔트로피가 높은 그룹에 속할 가능성이 높음. 엔트로피가 높을수록 멤버의 수가 많기 때문.
열과 엔트로피 흐름은 밀접하게 연관. 열을 흡수한다는 것은 에너지를 흡수한다는 뜻이고, 분자의 무작위 운동을 통해 운반된 에너지는 다른 분자 속도를 높이거나 넓게 퍼지게 해서 엔트로피 증가를 초래. 따라서 A에서 B로 엔트로피가 이동하려면 그 방향으로 열이 흘러야 한다. 열이 흐르면 엔트로피도 이동. 간단히 말해 엔트로피는 흐르는 열의 파동을 타고 이동.
4장. 정보와 생명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의 목적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신체적 경계 안에서 일어나는 시공간의 사건을 물리학과 화학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를 찾는 것(=돌맹이와 토끼는 어떻게 다른가). 그간 물리학과 분자생물학은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가 제기한 질문은 아직 결론에 미도달. 생명을 가장 작은 구성 성분으로 분해하는 기술은 크게 진보했지만, 기본 입자들이 특별한 형태로 배열되었을 때 생명이 가동되는 이유는 아직도 오리무중. 물 분자를 분해하면 산소 원자, 산소 원자를 분해하면 양정사와 전자가 나타나지만, 이 단계에 이르면 원래의 물 분자가 생명체의 일부였는지, 무생물의 일부였는지 판단 불가.
생명체의 기원은 하나의 공통 조상을 수렴. 모든 생명체가 갖는 두 가지 공통 특징중의 하나는 정보. 세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정보를 저장하고 활용하는 방법은 거의 동일. 부 번째 특징은 에너지 관련. 모든 생명체에서 세포가 에너지를 입수, 저장, 활용하는 방법도 거의 동일.
생명이 에너지를 처리하는 핵심 과정은 산화 환원 반응. 장작이 탈 때 나무에 함유된 탄소와 수소는 자신이 갖고 있던 전자를 공기 중의 산소에게 내주면서 서로 결합하여 물과 이산화탄소가 되고, 에너지를 방출. 산소가 전자를 포획했을 때 흔히 환원되었다고 함. 산소에게 전자를 양도한 탄소와 수소는 산화되었다고 함. 요즘 과학자들은 산소의 개입 여부와 상관없이, 화학 물질 사이에 전자가 교환되면 그냥 산화 환원 반응이라고 부름.
동물과 식물의 차이점은 전자의 출처 뿐. 동물은 전자를 음식에서 얻고, 식물은 물에서 얻음. 살아 있는 생명체가 에너지를 얻는 과정은 전자가 점프하면서 진행되는 일련의 산화 반원 반응으로 요약.
수영장의 워터슬라이드는 중력법칙을 넘어서지 못하지만, 미끄럼틀의 형태가 타는 사람의 경로를 유도. 미끄럼틀이 없다면 중력에 끌려 수직 방향으로만 추락. 마찬가지로 토끼의 세포 소프트웨어는 화학적 배열을 통해 실행되며, 화학적 배열의 형태와 구조, 구성성분은 분자들이 특별 경로를 따르도록 유도.
자동차가 빨갛다는 것은 빨간 계열의 여러 색상을 하나로 뭉뚱그린 표현. 햇빛의 양과 반사되는 부위에 따라 빛의 진동수는 천차만별. 당신의 의식이 작은 차이를 감지할 정도로 민감하다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 견디지 못할 것. 그래서 마음은 특정 범위 안에 있는 색들을 빨간색을 통합하여 인식. 색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이런 식. 단순화하는 것은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다른 정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함. 세세한 사항을 감지하는 생명체는 데이터 분석에 집중했다가 포식자를 피하지 못해 멸종했을 것.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은 종은 생존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를 몇 개의 범주로 과감하게 통폐합시킨 종. 살아남으려면 반응이 빨라야하고, 반응이 빠르려면 불필요하게 세세한 사항은 무시해야 함.
임의의 대상을 마음속에 떠올릴 때 대부분의 세부사항은 생략. 뉴런이 활성화되는 과정과 정보 처리 과정, 복잡한 신호 교환은 모두 무시되고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만 부각되는 것을 ‘인식’이라 부름.
양자역학의 슈뢰딩거 방정식은 뉴턴의 고전물리학 못지않게 결정론적. 둘 사이의 차이점은 예측된 결과의 가짓수 뿐. 뉴턴역학에 정보를 입력하면 하나의 명확한 미래 상태가 출력되는 반면, 양자역학에 정보를 입력하면 가능한 미래 상태의 목록이 출력. 양자역학은 예견된 미래가 많다는 것뿐, 수학 체계는 다분히 결정론적 구조.
자유의지는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물리법칙에서 온 것이 아님. 자유는 다른 입자 집단에서 볼 수 없는 사행동(도약, 사고, 상상, 관찰, 숙고, 설명 등)을 만들어 냄. 인간의 자유는 의지가 반영된 선택의 문제가 아니며, 자연이 전개되는 방식은 의지와 완전히 무관. 내가 자유로운 것은 물리 법칙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거대한 내부 조직이 나로 하여금 자유롭게 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해방시켰기 때문.
몸을 구성하는 입자들은 매 순간마다 특별한 형태로 배열되어 있으며, 내부 또는 외부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을 때마다 배열 상태가 조금씩 달라지면서 업데이트되어 향후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엉뚱한 실수, 현명한 표현, 뜨거운 포옹, 멸시하는 말투, 영웅적인 행동 등은 당신 몸속의 입자 배열이 바뀌면서 나타나는 결과. 당신의 행동에 대한 타인의 반응을 주도면밀하게 관측하여 입자의 배열을 다시 조정하고,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점차 이상적인 배열을 향해 나아감. 입자 규모에서 볼 때 이것이 바로 학습이며, 결과가 참신하면 입자의 배열이 창의력을 낳은 셈.
6장. 언어와 이야기
사실이건 허구인건, 상징이건 직설이건 간에, 스토리텔링은 모든 사람에게 영향. 우리는 감각을 통해 세상을 인지하고, 일관성과 가능성에 기초하여 자연의 패턴을 찾고, 이미 알려진 패턴을 조합하여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 내고, 이야기를 통해 표현. 이것은 우리의 삶을 준비하고 존재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과정.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상황을 헤쳐 나가는 주인공들은 가상의 세계를 보여주고, 우리는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반응을 상상하고 행동을 개선.
대상에 마음을 투영하는 우리의 습성은 가끔 정도를 지나칠 때가 있음. 이것도 진화적으로 좋은 습성. 달빛에 비친 작은 나무를 사자로 오인하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표범이 다가오면서 내는 소리를 나뭇가지가 바람에 날리는 소리로 착각했다간 목숨이 위태로울 것.
7장. 두뇌와 믿음
미국의 심리학자 베링은 집단의 규율을 위반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고 상상하면 범법 행위를 자제하게 되고, 가십에 오르는 횟수가 줄어들고, 집단에서 추방될 가능성도 낮아진다고 했다. 따라서 안전하게 후손을 낳고 그 후손들도 신을 두려워하는 습성을 물려받아 규율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 즉 종교적 성향은 혈통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기에 세대가 거듭될수록 종교에 심취하게 되고 인원수도 증가.
어니스트 베커와 사회심리학자들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공포감이 생물학적 원형질의 상당 부분을 빠르게 감퇴시키지만, 현실적이건 상징적이건 죽은 후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보장이 있으면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고 선조들이 초자연적 존재를 소환하여 죽음에 대한 공포를 완화시킨 것이 혁신적 발상이라고 주장.
8장. 본능과 창조력
예술을 매개체로 강렬한 감정을 공유한 사람들 사이에는 일종의 공동체 의식 형성. 미국 철학자 노엘 캐럴은 예술을 “사람들을 문화 활동에 끌어들여서 하나로 뭉치도록 감정을 자극하고 유도하는 행위”로 정의. 실제로 각 지역의 문화(전통, 관습, 풍속, 가치, 관점 등의 총체)는 선조들이 남긴 예술적 유산과 밀접하게 관련. 집단에 정서적으로 동화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높으므로 집단 유대감은 세대가 거듭될수록 견고해짐.
과학적 재능이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사성과 은유적 표현으로 설명하고, 색과 질감으로 표현하고, 리듬과 가락으로 상상하는 능력은 인지 가능한 세계를 훨씬 넓고 풍성하게 확장. 예술은 유연한 사고력과 번뜩이는 직관을 함양하고 선조들은 이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창을 만들고, 요리법을 개발하고, 바퀴를 활용하고, B단조 미사를 작곡하고, 시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 예술은 혁신적 사고를 촉진하고 사회적 결속력을 다지는 등,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데 많은 도움. 예술은 언어와 이야기, 신화, 종교를 하나로 묶어서 상상적 사고력과 조건법적 추론, 자유로운 상상력, 협동 정신을 낳음.
11장. 존재의 고귀함
모든 여정은 입장, 장, 물리법칙, 초기 조건이라는 네 개의 단어로 요약. 입자와 장은 만물의 구성 요소이고 물리법칙은 주어진 초기 조건에 의거하여 우주가 나아갈 길을 결정. 현실 세계는 양자역학의 법칙을 따르고 있으므로 물리 법칙은 확률적으로 적용도지만, 확률 자체는 엄밀한 수학을 통해 결정. 또한 입자와 장은 가치나 의미를 따르지 않고 법칙에 따라 자신의 길을 걸어갈 뿐. 자연이 수학을 따라 전개되다가 생명체를 낳을 수 있지만 이것도 물리 법칙을 따른 결과. 생명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입자 집단을 일제히 움직이게 하거나 특정한 집단행동을 유도하는 것 뿐. 진화는 선택력을 발휘하여 생명체의 행동양식을 결정했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은 생존과 번식. 생각도 진화의 산물. 자신이 겪은 것을 기억하고 상황을 분석하고 과거의 경험을 미래에 적용하는 것은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강력한 무기. 사고 능력을 획득한 종은 수만 세대에 걸친 생존 경쟁에서 연달아 승리하면서 사고가 점차 정교해지고 마침내 자기 자신을 인식. 이들의 의지는 전통적 의미의 자유의지(물리 법칙에 좌우되지 않는 의지)가 아니었지만 고도로 조직화된 몸은 무생물과 달리 외부 자극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었음.
우리는 공동체를 구축하고, 참여하고, 관심을 갖고, 웃고, 소중히 여기고, 위로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찬양하고, 숭배하고, 후회한다. 우리는 자신이나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 또는 숭배하는 사람이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강한 전율.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자극하거나 위안을 주는 무언가를 찾고, 사람들의 주위를 끌고, 새로운 곳을 찾아 이동하는 데 익숙. 그러나 우주는 생명과 마음이 번창할 만한 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과 마음은 우주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한 결과물일 뿐.
춥고 황량한 우주를 향해 나가려면 웅장한 설계도 같은 것은 잊어야 한다. 인간의 상태를 탐구하는 여정에서우리가 봐라봐야 할 곳은 바깥이 아닌 내면. 과학을 제외한 모든 것은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이 할 일을 결정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간사로 이루어짐. 그들의 이야기는 짙은 어둠을 뚫고 소리와 침묵에 각인되어 끊임없이 영혼을 자극할 것.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