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Au revoir
▼ 이거슨 나의 패기(?)
조선시대 왕비의 대례복
조선시대 궁중여인들의 예복
조선시대 왕의 의상
앞에 글 보라고 강요하기 위해서
링크 걸어 놓은 거 아님
내가 이젠 하다하다 신하의 관복까지 하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선, 들어가기에 앞서 단령이 무엇인고 하니..
간단하게 혹은 알기 쉽게 말하자면,
조선시대 배경으로 한 사극을 보면
신하들이 주구장창 상복(常服)으로 입는 옷이야.
쉽게 보자면 바로 이런 것이지.
이 단령은 원래 깃을 둥글게 만든 포(袍)를 말하는 것인데,
서역(西域)지역의 복식이었다가 당나라로 도입되고 이것을
신라시대 김춘추(태종무열왕)에 의해서 우리나라로 들어온 옷이야.
그 이전까지는 삼국고유의 옷이 있었는데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기 위하여
당나라 복식을 받아 들이기 위해 합법적(?)으로 수입해온 옷ㅋㅋㅋㅋㅋ
신라시대의 단령을 재현한 모습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이랑 많이 다른 모습이지?
이 단령은 점차 우리나라의 특성에 맞게 변화를 해.
고려시대의 단령은 조선시대처럼 문무백관의 관복이 아니라
공복이라는 의상이 관복이었어.
(공복 역시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도입된 옷)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서 태종때가 되어서야
이 단령이 관복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오늘날에서는 전통혼례때 신랑이 입는 혼례복에서 볼수가 있지.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단령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영의정 하연(1376~1453)의 초상화
하연이 입고 있는 옷은 아청흑색단령이라고
조선 초기에 볼 수 있는 단령이야.
(이 옷을 자세히 볼려면 대왕세종을 보는 걸 추천.
김봉숙1이 사극에 고증하나는 제대로 살림.)
이때는 고려말기의 관복의 형태를 많이 띠었으며,
단령의 깃이 목까지 많이 올라가 있고 소매는 매우 좁았어.
또한 조선시대 초기의 관복은 상당히 혼란스러웠던 시기로
문무백관들의 관복색이 일정하지 못하였던게 특징이었어.
(한마디로 지 입맛대로 골라 입었음ㅋㅋㅋ)
사육신 박팽년(1417~1456)의 초상화
앞에 하연이 입은 단령의 형태는 단종때까지 이어지는데
박팽년이 입은 단령의 다른 점은 바로 가슴에 있는 흉배야.
원래 이 흉배는 중국 당나라부터 사용하였는데
조선 세종때 정인지가 "조선도 흉배를 도입합시다"라고 건의했다가
검소해야 된다는 황희에게 폭풍까이고-_-;; 쩌리되었다가
단종 즉위 후 양성지가 건의하여 그때 도입된 거야.
이때는 흉배가 금색으로만 단령에 직접 수를 놓았어.
(나중에는 이 흉배가 따로 천에다가 수를 놓아져서 단령에 붙이지)
신립의 형인 신잡(1541~1609년)의 초상화
단령의 색이 현록흑색으로 변화되었고 옷고름이 가슴팍 쪽으로 옮겨졌으며,
이때는 직접 단령에 수를 놓은 것이 아니라
따로 다른 천이나 형겁에 흉배를 수놓아서 단령에 붙였어.
또한, 흉배의 모양은 다양해졌고 색또한 화려해졌지.
머리에 쓰는 사모도 변하게 되었는데
조선초기의 사모는 양쪽으로 늘어진 날개
즉, 각이 얇게 휘어진 모습이었지만
조선중기부터는 사모의 각이 곧게 뻗은 형태로 변하였지.
한응인(1554~1614)의 초상화
이때는 사모의 형태가 많이 변하였어.
보다시피 사모의 형태는 매우 높아졌지.
이 이후로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게 되는데
청나라가 세워지고 청나라가 명나라의 복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독자적으로 자기네들 복식을 도입을 하자
조선도 마찬가지로 조선식으로 변하게 돼.
채제공(1720~1799)의 초상화
얼핏보기에는 한응인이 입은 단령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이나
단령의 깃은 내려와 있고 소매는 매우 넓어져 있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의 초상화
뭐시여? 초상화가 왜 이렇게 작아?
이게 뭐시여?! 이게 뭐란 말이여?!
아 몰라-_-
큰사진은 알아서들 찾으쇼...
조선말기에는 사모의 형태가 다시 낮아지고
단령의 소매는 많이 줄어 들게 됨.
(뭐, 흥성대원군 초상화에선 안그렇다만-_-;)
그리고 흥선대원군 단령에 붙어 있는 흉배는
기린 흉배라고 대군의 흉배임.
바로 이게 기린흉배
오늘은 여기까지하고
다음에는 바로 저 흉배에 대해서 써보도록 할께.
첫댓글 존잼,,, 이런 거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