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 안하면 전부 놀았다?
- 이명박의 거짓자존심을 심어준 조갑제식 궤변 연구-
1. 좌파 민중주의 ‘현장성’ 담론을 산업화 시대에 쑤셔 넣은 조갑제 스타일이, 이명박 궤변의 실체적 주범.
이명박은 70년대와 80년대에 남들을 ‘빈둥댔다’고 말한다.
근데, 어라? 이상하다!
‘보수’는 보수 대로 ‘진보’는 진보 대로, 저 가공할 망언을 규탄한다고 나선다.
이회창 이후에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조갑제가 써주는 원고를 읽어야 했다. 그렇다. 이명박엔 죄가 없다. 이는 철저하게 정치사기꾼 조갑제의 ‘좌경용공 와꾸’로 반공한다는 억지 춘향이 죄가 된다. 과감하게 ‘정치사기꾼’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정통 반공’인 척 하면서, 용공 사상의 ‘틀’이란 실체를 버리지 않는다면 ‘사칭’한다는 의미로서의 ‘사기성’이 정당하게 규정된다.
조갑제는 김정일 주체사상 수준으로서 독백 의도로 김정일이 자기의 주장을 북한 노동계급이 인용해주고 사용하기 바라듯이 보수세력이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 여러 차례 조갑제가 노골적으로 주체사상적인 표현들에 대하여 쓰지 말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주체사상 있다는 엽기 지랄에 입각하여 황장엽을 가까이 하는 차원을 지속하고 있다.
이명박 망언의 이유는 ‘1980년대 좌파 민중주의’의 현장성 개념을 일관되게 ‘산업화 시대’해석 논거에 잡종 교배했던 조갑제에 지적인 책임이 주어진다.
2. ‘산업화 시대’ 혹은 ‘70년대 좌파 운동사’를 해석하는 전형적인 방법. 그 사이에 ‘중도 좌파’적으로 끼어있는 ‘빡테리아’로서의 조갑제 코드.
김영삼 정부 이래 ‘영삼스러운’ 보수는 늘 ‘경제’를 내세웠다. 사실, ‘경제’가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인간 정신을 묻지 않는 차원의 ‘경제’는 ‘사회주의적 문제’에 가깝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김영삼 시대 이후에 [조선일보]를 통해서 강조하는 과거 해석법은 ‘사실성’ ‘현장성’ ‘실질성’으로서의 경제 타령이다. 리얼리즘 민중주의 가닥을 보수세력도 쓴다는 의미로서 조중동이 좌익 학자 키워 주며 신문의 사세를 막강하게 펼치던 게 90년대 김영삼 시대였다.
그러나, ‘과연’ 정치 지도자에게 있어서 ‘민생’을 아는 것이 민중주의의 ‘현장성’과 일치될 수 있을까? 여기서 같다고 한다면, 그 정부는 국민을 사회주의적으로 세뇌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조갑제는 여태껏 같다고 주장해 온 셈이다. 김진홍과 함께 하는 조갑제의 사상성이 넉넉히 드러나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스탈린’은 농업현장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철저한 관료였다. 그러나, 현장성 자체가 모든 것을 판가름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2007년 대한민국 학술문화계는 파시즘 연구로서 ‘액터(연기자)’로서의 정치인의 현장성을 넉넉히 바라본다. 민생 어쩌고 하면서 소소한 데 내려와서 있는 것은 결국은 ‘쑈’하고 ‘쑈’를 통해서 지지율 상승을 노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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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갑제 이전의 정신 제대로 박힌 우익 지도자들에게 ‘현장성’에 대한 민중주의 수준의 과시는, ‘떠라이 자격증’ 수준의 미친 일로 통일되었음.
70년대에 해외에 나가시는 어른들 정말 많이 봤다. 그들이 일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겠는가?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가족이 더 편하기 위해서 그러했다. 그러한 해외 파견 근로를 국가는 알고 있었다.
거시 경제 확장만 신경 쓰고 세세한 데에는 전혀 신경 쓰지 못한게, 이른바 ‘산업화’시대였다. 세세한 민생 직업 숫자가 절대적으로 줄어드니 해외로 나가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에 토목 업자로 주목을 받았다는 것이 ‘전부 일’을 독차지 했다라고 하는 것은, 조갑제 이전의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떠라이 자격증’ 수준의 손가락질을 받은 일이다. 겸손 하지 못하는 자에겐 하나님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한국 기독교 부흥의 때인 1970년대야 말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리길 잘했다.
그러나, 조갑제는 기독교를 믿는지 일본 젓까무라 신을 믿는지 알 수가 없다. 기독교를 믿으면 만사가 하나님의 임재에서 비롯되고, 젓까무라 신은 모든 것이 위대한 영웅이 만든 것으로 회귀된다. 여기에서, 기독교 신자의 믿음을 이용하여 젓까무라식으로 비트는 조갑제 특유의 정치 사기극 공학이 드러난다.
토목업자로 국가 경영의 확장한 것은 영웅주의적 개인 공치사 하러 한 바가 절대로 아니었다. 그러한 개인 공치사 모드 역전은 이명박 드라마가 시작되었던 1990년대 이후의 ‘일본 신앙’이 기독교 신앙을 무찌르고 들어선 이후의 일이다. 특히, 해외 파견 건설 근로의 대부분이 사실은 배곯는 자식들을 생각하여, 일제 말기에 가난한 가정 때문에 일본군 근무라도 해야겠다는 식의 생존을 위한 갈구였었다.
군대식 과장법으로 개인 미화를 과장하도록 하는 것은, 전부 김영삼 시대 이후의 일본 젓까무라 교가 휩쓸고 간 이후이다.
산업화 시대는 본질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기반으로 ‘자조 자립’기반이었다. 일했다 어쨌다 민중주의 현장성 가닥의 공치사가 웃기는 것이다.
4. 좌익 민중주의 현장성의 지적 재산권자 민노당과 열린당이 이명박에 대하여 느끼는 분노감. 정통 보수 세력이 이명박에 대하여 느끼는 사기당했다는 느낌.
이회창 이후에 조갑제가 써주는 대본만 읽으면 되던 한나라당 대선 자격의 요건은 이미 끝났다. 오히려, 조갑제의 대본을 어떻게 빨리 짝짝 찢어내는 자유 스타일 후보가 되는가가 대선 후보의 조건이 되었다.
그 시대에 대한민국엔 각종 다양한 직업이 있었다. 간판은 각종 일본어 풍으로 쓰여진 표현이 많았고, 반공 포스터 제목 글쓰기 방식의 간판 아래에 각종 영세 상점들이 있었다. 그들도 분명히 일을 했다. 아니, 더 좃나게 일을 했다.
김영삼 이후에 한국 보수세력은 하나님을 잃고 젓까무라를 얻었다. 이젠 젓까무라를 버리고 하나님을 찾아야 할 것이다. 산업화 시대를 현장성으로 하면 적어도 지배계급이 느낄 수 있었던 지배자의 그릇이 체계적으로 사라지고, 영웅 젓까무라의 도량으로 바뀌어 버리게 된다.
김일성, 김정일, 김영삼, 김대중이 없는 한반도는 정말 살기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속에서는 조갑제가 밥 굶는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민중주의의 그 시대에 자기만 투쟁했다는 오만을, 어쩔 수 없이 살아남기 위해서 좃나게 일해야 했던 시대에 덮어씌우는 논법은, 죽도 밥도 개나발도 아니다. 더도 덜도 아닌 지랄인 것이다.
김일성, 김정일, 김영삼, 김대중이 없는 한반도는 정말 살기 좋을 것이다. 김씨왕조 전체가 무너져야 한반도는 새로운 시대가 오기 때문이다.
첫댓글 김씨 왕조? 대한민국에 김씨 왕조가 어디있나? 북한에는 김정일이있긴 하다마는 남한에는 김영삼이 김대중이 모두다 은퇴한 퇴물에 불과해 그런데 왜 김씨 성을 싸잡아 매도하나? 김씨 성을 가진사람들에게 몰매맞아 죽을려고 작정했나? 간이 부어도 이만저만 안부었군. 김씨가 어쩌구하는 말은 입을 꿰메기전에 정중히 사과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