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알친구와 나무타령 ^
개중에는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도 분위기에 휩쓸려 김삿갓의 손을 움켜잡으며,
"나는 초면이기는 하오만, 노형의 말씀을 많이 들었소. 또래 친구들에게 조조니, 참새니 하는 엉뚱한 별명을 지어 주었다가 , 어른들에게 몰매를 맞은 일이 있었다면서요?"
하고 말하는 바람에 , 좌중에는 일시에 폭소가 터지기도 하였다.
김삿갓은 까맣게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이렇게 자기를 기억하고 열열히 환영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리하여 자리에 앉으며, "나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 오늘처럼 기쁘고 행복하게 느껴 보기는 처음일쎄 , 우리들 모두가 죽지 않고 다시 만났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네.
우리네 인간살이에서 우정보다 더 소중한 것이 뭐가 있겠나. 나는 자네들과의 기쁜 재회를 함께 나누고 싶어 술이라도 한잔 사기로 하겠네."
그러면서 개풍 군수 강호동이 몰래 넣어 주었던 전별금(錢別金)중 그동안 쓰고 남은 스무 냥을 송두리째 내놓았다.
그러자 제제가 성큼 앞으로 나앉으며, 김삿갓을 호되게 꾸짖는다.
"야, 임마 ! 너 정신이 돌았냐? 내일 부터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 밤은 너는 고향을 찾아온 손님이고 우리들은 주인 아니냐.
그러니 손님이 술을 산다면, 주인인 우리 꼴이 뭐가 된단 말이냐.
너를 환영하는 술은 우리가 살테니, 그 돈이랑 썩 집어 넣어라 ! "
그 바람에 모두들 "옳소 !" "옳소! " 하며 박수를 보낸다.
천동 마을에는 大洞契가 있어서 경조사를 맞았을 때 서로 도와 주는 제도가 있었고 그 계장은 제제였다. 제제는 김삿갓이 내놓은 술값을 억지로 집어 넣어주고 나서, 계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은 삼십 년 동안이나 헤어져 지내던 죽마 고우가 돌아와서 , 환영주가 한 잔 없을 수가 없는데 , 오늘 밤 술값은 곗돈으로 쓰면 어떨까?"
그러자 계원들은 모두가 쌍수를 들어 찬성한다.
"물론 그래야지. 그건 계장이 알아서 하게, 그리고 술만 많이 먹게 해주게."
"막걸리 두 말쯤 사오면 되겠지 ? "
"아따, 이 사람아 ! 두 말이고 서 말이고 어서 가져오도록 시키기나 하게."
"그래,그래..그러면 財務막동이가 막걸이 서 말하고, 북어 두쾌만 사오너라. 그리고 합죽이네 김치가 매우 맛이 좋으니 , 합죽아 ! 오늘은 자네집 김치 좀 꺼내다 맛 좀 보여줘라."
재무 막동이는 술을 사오려고, 합죽이는 김치를 가지러, 문밖으러 나서려다 둘이서 거의 동시에 소리를 지른다.
"어이구 ! 눈이 오시네 ! 어느새 제법 많이 쌓였는걸 ... "
그러자 모두들 문 앞으로 우루르 몰려와 밖을 내다 보았다.
함박눈이 소리도 없이 펄펄 내려 ,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은세계로 바뀌고 있었다.
"야아 ! 눈 한번 탐스럽게 온다. 명년 농사는 풍년이 들겠구나 ! "
"옛날 친구가 눈까지 몰고 와서 오늘 밤 술 맛은 기막히겠다."
이윽고 막걸리 서 말이 도착되었고 김삿갓을 맞는 환영연이 성대하게 시작되었다.
제제가 대동계 계장으로 첫 잔을 김삿갓에게 따라주며 말한다.
"여기 친구들은 모두가 好酒家들이라네, 자네 술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그래 ? 나는 지고는 못 가도 마시고는 가는 사람이니 ,오늘 밤은 맘대로 따라주게."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 모두가 웃음을 터트리며 박수 갈채를 보낸다.
"그렇다면 오는 밤 멋지게 어울려 보세. 술 없는 인생이 무슨 인생이란 말인가 ! "
이렇게 술자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술자리가 어울려 오자, 옛 친구들은 앞을 다투어 김삿갓에게 술잔을 권하였다.
이렇게 취홍이 도도해져오자 땅꼬마가 큰 소리로 외친다.
"술이 있는데 가락이 없을 수 있는가 ? 까불아 너,
"나무 타령" 한 곡조 뽑거라 ! "
"그래, 그래 ! 그거 좋은 생각이다. 까불아 ! 퍼떡 일어나서 나무 타령 하거라."
모두가 박수를 치며 까불이에게 시선이 모아지자 , 까불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 나더니
머리에는 일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바지춤을 일부러 비틀어 당겨 입더니, 허리를 반쯤 꼬부려 병신 시늉을 하면서 나무 타령을 부는다.
=품배 품배 품배야!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천 냥 주고 배운 소리
한두 푼에 팔린다
얼시구 좋다 엄나무
한다리 절뚝 전나무
이 산 저 산 소나무
오다가다 오동나무
가다오다 가닥나무
님의 손목 쥐염나무
칼로 푹찔러 피나무
달 가운데 계수나무
방귀 뀌었다 뽕나무
십 리 절반 오리나무
열아홉에 스무나무
돈이 많아 은행나무
돈없으면 박달나무
방긋 웃는 복사나무
배를 타라네 배나무
휘휘칭칭 버드나무
물고 늘어지는 물구나무
*** 사평35" 민순기님' 연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