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지역적으로 서울에 편중되어 있고, 서울대학교를 정점으로 소위 S,K,Y로
서열화되어 있다. 그래서 대학의 편중과 서열화는 인적, 물적자원과 지적인 정보 그리고 문화를
서울 지역에 집중시키는 이른바 '서울제국주의'를 부추키고, 졸업학교에 따라 새로운 신분 집단을
양성하는 이른바 '교종(校種)주의' 를 만연시키고 있다. 사실 서울에 편중되어 있으면서 위계화되어
있는 대학들을 적정하게 통폐합하여 각 지역으로 균형있게 분산시켜서 지역적 특색에 따라 적정하게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지적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 정치적, 경제적 민주주의는 제대로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대학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정의로운 절대 권력이 요청된다고 한편에서는 주장하기도 한다. 그것은
학연에 기초한 학벌주의는 혈연과 지연보다도 더 해결하기 어려운 탱크를 앞세우고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혈연과 지연에 기초한 연고주의는 사회구조가 변동함에 따라 저절로
약화되어 가고 있다. 그렇지만 학벌주의는 혈연과 지연의 대체제로서 한국 사회의 지배층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그것도 아주 세련된 방법으로, 그리고 제도적으로 점점 강력하게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선과 악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인지 모른다. 혈연, 지연, 학연은 일전한 범위 안에서는,
즉 사적인 차원에서는 선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범위를 벗어나면 그것은 분명히 악으로 변한다.
혈연, 지연, 학연, 이 세가지 모두가 사회적 차원에서 작용한다면 그것은 최악의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현실인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학벌은 더 이상
긍정적 의미에서 생산적 경쟁을 위한 기제가 아니라 기존의 지배와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 구조라는 점에서 반드시 구제되어야 할 악이라 할 것이다. 학벌주의의 수혜자들은
형식적인 기회균등론과 자유경쟁 논리에 기초해서 현재의 학벌주의의 주조를 변호하고 있다.
그러나 학벌주의 옹호론자들의 논리는 단 한 번의 도박으로 획득한 학벌이라는 부동산에서 평생동안
받고있는 지대(地代)를 그럴듯한 언어로 미화하는 허구에 불과한 것이다.
어느 사회든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든 사회 문제는 그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도 이러한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한국 사회는 일본 식민지배에서 해방되기
이전부터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봉건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잔재와 일제식민 지배적 잔재에 의한
왜곡, 해방 이후 남북 분단에 의한 이데올로기의 왜곡, 그리고 미국의 지배적 상황하에 진행된
개발독재적 왜곡 등 이중 삼중의 왜곡을 안고 있다. 이러한 왜곡 속에서 대학을 중심으로 한 학벌
주의는 그러한 왜곡을 해소하는 쪽으로 작용하지 않고 그것을 더욱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해
왔다. 학벌주의는 새로운 한국적 마피아 조직이라고 해고 과언은 아닌 것이다. 21세기 지식기반
사회를 맞이하여 개인의 창의력이 가장 중시되는 이 시점에서 학벌주의는 새로운 왜곡으로서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그러면 학벌해체는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인가? 그것은 국립대학과 사립대학 그리고 수도권 대학과 지방 대학 간의 차별 해소 방안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즉 특성화대학으로의 변화이다. 아울러 대학 입시제도의 개혁과 대학 자체의
제도적 개혁에 집중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사회적, 의식적 차원에서 학벌주의 해체에 대한 의식
개혁운동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의 학벌주의의 폐단에 대한 것은 여기서 그치고 한국 사회의 새로운
'마피아 집단'으로 등장한 이 학벌주의의 타파와 새로운 대안에 대하여 토론해 보기로 합시다.
일간에서는 한국의 학벌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서울대학교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었습니다만, 이에 대해서 서울대학본부 측은 연구중심 대학원제도로 서울대학교의 학제를
점진적으로 개편한다는 장기발전플랜이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대학의 개혁이 미국식
특성화대학의 방향으로 가는 것인 옳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더 좋은 해법은 있는지 카페 회원님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싶습니다.
첫댓글 오자가 눈에 거슬립니다. 두번째 문장 7번열의 '주조'를 '구조'로, 마지막 문장 '것인'을 '것이'로 정정입니다.
서울대 폐지는 제2, 제3의 또다른 학벌주의를 만들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 좋은 방향은 아닌듯.
제가 논의를 확장시키는 게 아닌가 해서 걱정입니다만 - 저는 학벌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가치 체계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의식이 더 많은 것 - 경제력이든 권력이든 - 을 소유하려는 방향으로만 놓여지면, 아무리 제도를 뜯어고쳐 봐야 헛수고가 아닐까 합니다.
이미 우리 교육체계는 여러 번 바뀌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효과를 본 적이 없지 않나요. 내 자식만큼은 공부를 잘 하게 만들어서 나보다 나은(혹은, 적어도 나만큼의) 삶을 살게 해야지 - 라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 SKY대를 몽땅 해체해도 똑같은 현상이 되풀이될 것입니다.
저는 그런 외형적이고 급진적인 변화가 아니라, 점진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사법시험을 통과한 사람이나 공장 노동자나 똑같이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받고 원하는 것을 추구할 수 있다면, 지금처럼 박터지게
고시 준비하느라 난리법석을 떨진 않겠죠. 또, 사법시험을 통과한 사람들도 기득권을 지키려고(혹은 특권을 위해) 학연에 매달리는 일이 줄어들 겁니다. 재미있게도 IMF이후에 공부 좀 한다고 해 봐야 별 소용 없다는 것이 밝혀졌죠. 최고가 아니면 차라리 연예계나 스포츠계로 방향을 잡는 게 낫다고도 합니다.
공부 좀 했다는 많은 직장인들이 퇴직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었으니까요. 역설적이지만, IMF덕에 우리는 좀 더 시야를 넓힐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전까지는 공부 잘해서 좋은 대우 받는(가치를 인정받는) 것만 당연하게 여겼지만, 이젠 공부만이 아니라 다른 걸로도 마찬가지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으니까요.
Garian님의 의견에 일견 동의 합니다. 우리가 IMF를 겪으며, 전 아이러니칼하게도 내심(?) 이 신자유주의의 밀물을 희원했었습니다. 즉 우리 사회는 사회 체제에 대한(특히 군부독재와 민주화에 대해서는) 저항과 개혁의 방향에 대해서는 동력도, 그것을 완성시키는 추동력도 견지한 훌륭한 전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주관적인 이익과 관련된 의제에 대해서만은 목숨을 거는 경향이 다분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외부의 썰물같은 '쓰나미에' 의해 즉, 외부의 자극과 동력에 의해서만이 변화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보았기에 이 사회의 철옹성같은 철밥통 집단들을 개혁하고 변화시킬 요인으로 환영(?)한 것이 진심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밀물같은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훑고 지나가자 소위 그들만의 리그는 변화와 깨지기는 커녕, 놈들은 '이대로만~'을 외치고 있더란 겁니다. 아니 그들만의 '이너 서클'의 강고함은 더욱 심화되는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결과 중산층은 무너지고 저 경제학의 파레토 법칙이 아직도 완전하게
유용한 이론임을 이 땅에서 증명해 보였습니다. 따라서 저도 Garian님 고견처럼, 이것은 이 사회와 동시대인들의 의식의 문제다. 이것이 변화되지 않고는 저 수구적이며 동시에 퇴행적인 패러다임에서 단 한 발자욱도 앞으로 내딛을 수 없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만, 그 대안으로는 대학간, 각 지역간, 관,민간단체
간의 사회적 합의가 우선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말은 이렇게 하지만 '합의와 타협'이라는 문화가 이 나라에 아직은 가당치 않은 정서이며, 문화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 다시 생각은 절벽에 다다르게 됩니다.
합의와 타협은 일단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사고를 필요로 하겠죠.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요구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네 사회는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며 토론하는 문화가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가당치도 않죠. 얘기가 더 새기 전에 여기까지만. 휘유 =3=3=3
일제또한 한국의 기존 지배질서를 근간으로 한 식민지배였듯이, 외세의 침탈은 기존의 지배질서를 엎고 등장한다고 봅니다. 이인화의 <하늘꽃>에 나오는 원에 의한 '세계화', 박노자가 전하는 일제시대의 대동아공영조차 세계화의 틀을 쓴채 등장하는 것.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현재의 세계화. 반복의 역사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언제쯤 가능한 것일까요? 요원일까요? 아님 그 해답은 각자의 마음에 있는 걸까요?
솔직히 학벌주의에 대한 문제는 폐단을 알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이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의 학벌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고대, 연대 등에서 이루어지는 학벌주의도 만만치 않으며 이외의 대학에서도 열심히 학벌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게다가 특히 더 염려스러운 것은 학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양극화가 심상치 않다는 점입니다. 이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야 하는데,,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학벌부분에서는 뒷걸음을 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학벌은 점점 성역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벌, 종교, 언론(아직 성역으로 남아있다
고 생각하는)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진실된 진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진보진영내에서도 학벌에 대한 폐단이 많이 지적되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아픕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길라잡이>에 '잘된 사람도 동경대, 사회망치는 놈도 동경대'ㅋㅋ회사입사때 출신학교를 알 수 없도록하자는 제안인데, 내부추천으로 끼리끼리하고 있는 실정. 그것이 이른바 '인적자본'? 부르디외가 말한 "교육은 계급상승의 도구가 아니고, 계급격차를 확인하는 수단"으로의 전락
혹세무민하는 논리의 허구를 깨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모습이 학계나 사회 어디서나 반복된다고 봅니다. trained incapacity '전문화의 무능' 작금의 지자체 의원 유급화니 선거구제니 모든 것이 소위 '엘리트' 라는 작자들의 자기 이해관계일뿐. 선망의 시각을 거두면 잘 볼 수 있으리라.
박노자가 말한 바, 일제때 조선공산당의 부침 또한 학연에 의한 파벌때문에 비롯된 것이란 지적. ㅋㅋ좁은 땅덩어리에 한정된 사회적 자원을 가지고 서열을 가리는 것이야 인지상정이지만, 고래로 외세에 빌붙은 무리들 또한 소위 엘리트들이었으니...남북경제공동체라는 평화,복지, 번영의 길로 가기위해서 냉전인식해체를
기초로 유라시아대륙으로의 접근을 꾀하여야. 내부적 간극을 밖으로 분출함을 통하여 더이상 아시아의 '섬나라'에 자리잡아서는 안되겟죠. 학벌이 곧 地閥의 지역감정으로 나아가는 고질의 병. 다들 옹졸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너와 나의 구분이 필요하게 된 소이가.ㅜ.ㅜ선망과 탐욕에 기반한 '돈'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