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병원 의사나 간호사는 유독 차갑다. 환자의 목숨을 다루는 병원에선 냉철과 이성이 최우선이겠지만, 굳은 표정과 딱딱한 어투의 의료진은 늘 아쉽기만 하다. 지난 18일 덕숭총림 예산 수덕사에서 만난 동국대 일산병원 의료진 110명은 저녁공양을 마치고 칠흑같은 어둠이 깔린 산사 황하루에 모여앉아 촛불을 켜고 108번뇌에 머리를 숙였다. 채석래 병원장을 비롯해 김민호 행정처장, 성낙진 연우회 회장을 위시하여 행정직 기술직 간호직 의료진을 총망라하여 108배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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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덕사에 가면 수덕사에 주석하는 스님들과 만날 수 있다. 대중 스님들이 모두 템플스테이에 온정을 베푼다. 사진은 능혜스님과 참가자들. | ||
“여러분 번뇌가 무엇입니까?” 수덕사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비구니 능혜스님이 대중을 향해 물었다. 최첨단 의료시설을 완벽하게 갖춘 동국대 일산병원의 100여명 의료진도 ‘번뇌’라는 병명에는 즉답을 하지 못했다. 질병이 있건 없건 누구에게나 ‘번뇌’는 있는 법.
“번뇌란 나를 괴롭게 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생각입니다. 불교에서는, 집착으로 인해 팔만사천의 번뇌가 생긴다고 하지요.” 이어 맨 앞줄부터 뒤로 뒤로 촛불을 나누고 동료가 내리치는 죽비소리에 몸을 낮춰 108번의 오체투지에 들어갔다.
덕숭산 차가운 산바람에 산사는 이미 겨울에 접어들었지만 황하루 바닥에선 온돌방처럼 뜨끈한 기운이 올라왔고 사람들은 하나둘 두껍게 끼어입은 옷을 번뇌를 내려놓듯 하나둘 벗어냈다.
완월당 감로당 등 최신시설
욕실 샤워실 방마다 완비
경허ㆍ만공스님 숨결 느끼며
대중 스님들과 운력하고
다같이 모여서 공양한다
능혜스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은 첫날밤이지요? 그러나 또 마지막밤입니다.”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스님은 이어 말했다. “여러분, 우리 스님들에게 동국대 병원은 그야말로 비빌 언덕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 덕분에 힐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아픈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좋은 에너지를 전해야 하는 여러분들은 날마다 얼마나 힘드실까요….”
이날 의료진들을 향한 스님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의료진들의 가슴에 훈기를 불어넣어줬다. 템플스테이 입재식에서도 수덕사 주지 지운스님이 직접 참석해서 감로법문을 설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지운스님은 특히 재물이 아닌 마음으로 하는 일곱가지 보시행인 무재칠시(無才七施) 가운데 화안시(和顔施)를 강조했다.
스님은 “하루에도 수백명의 아픈 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화색을 띤 얼굴로 웃음보시를 행해야 하는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며 “건강하셔야 건강한 에너지가 환자에게 전해질 터, 건강을 잘 충전하고 가시라”고 말했다.
채석래 병원장은 “오랜만에 올렸던 108배가 참 힘겨웠다”고 하면서도 “수덕사 스님들께서 고향집 어르신들처럼 푸근하고 편안하게 대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개원 10여년차를 맞는 동국대 일산병원은 스님들이 가장 선호하는 병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병원복을 입으면 스님을 분간하기 어려워, 스님만의 병원복을 따로 만들 정도로 임직원 전체가 예절과 병원복지에 충실하고 있다.
김민호 행정처장은 “스님들은 일반인보다 병원에 가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아서 작은 병을 키워서 병원에 오신다”며 “스님들이 내집처럼 편안하게 오셔서 건강을 예방하고 증진시킬 수 있도록 직원들은 불심을 닦고 신심을 증장시키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산 동국대 의료진 110명
“최고 의료진 동대 병원은
스님들이 비빌 언덕입니다”…
능혜스님 덕담 참가자 ‘행복’
365일 연중무휴 휴식ㆍ힐링
단 한 사람만 신청해도
템플스테이는 ‘정상 운영’
‘참나를 만나다’를 주제로 한 이번 동국대 일산병원 의료진 템플스테이는 국선도와 백제미소길 걷기, 보원사 참배 등으로 진행, 참가자들에게 상당한 만족감을 선사했다. 수덕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은 교구본사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알차고 푸짐한데다, 최신시설은 물론 방장 스님과 주지 스님을 비롯해 절에 주석하는 모든 스님들이 한마음으로 찾아오는 이들을 반겨준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한두시간이면 닿는 교통편이도 한몫한다.
수덕사 템플스테이는 우선 시설면에서 타사찰을 압도한다. 지난해 완월당, 감로당 등 개인이나 가족, 연인끼리 이용할 수 있는 친환경 요사채 7개동을 지었다. 산중정서에 어울리면서도 방사마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들어 있어 편리하다.
6년째 수덕사 템플스테이 실무를 총괄하는 아일선 팀장은 “템플스테이 초창기에는 수련회나 집체교육식의 가르침과 교육이 중심이 됐다면, 지금은 문화와 여행, 힐링을 테마로 개인이나 가족단위의 휴식형 템플스테이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며 “불교전통방식의 해우소는 문화적이나 관람용으로 적합하지만 실제 절에서 처음 하룻밤을 보내는 이들에겐 해우소가 오히려 근심을 얻는 곳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수덕사는 편리한 최적의 시설을 제공하면서도 대중 스님들과 함께 운력을 하고 스님들과 똑같은 메뉴로 공양을 하는 등 제대로 절문화를 맛볼 수 있도록 구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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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국대 일산병원 채석래 병원장이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능혜스님과 촛불에 점화했다. | ||
수덕사는 선본찰의 맥을 이어 경허, 만공스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고승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역사문화 프로그램이 알차게 짜여져 있다. 경허스님의 선시에서 따온 ‘일없는 일’이나 경허스님의 삶에 비쳐 소설가 최인호가 말했던 ‘길없는 길’을 표방하면서 다채로운 체험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경허, 만공스님이 포행했던 정혜사와 수덕사 사잇길을 걷기도 하고 천장암을 순례하는가하면 큰스님들의 선맥을 잇고 있는 현 수좌 스님들이 직접 참선을 지도한다. 수덕사 템플스테이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밥맛’이다. 쉐프는 다름아닌 스님들이다.
어른 스님들이 직접 간을 보고, 스님들의 감독하에 만들어진 공양물을 대중 스님들은 물론 템플스테이 참가자들까지 맛볼 수 있다. ‘집밥’의 최고봉이다. 앞서 동국대 일산병원 템플스테이에서는 마지막날 보원사지에 모여 수타짜장면을 직접 만들어 먹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수덕사 템플스테이는 365일 문전성시를 이룬다. 단 하루도 사람 없는 날이 없다. 단 한명이라도 찾아오면 템플스테이는 두 팔을 벌리고 환영한다. 그리고 예정대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방장 스님은 바쁜 와중에도 참가자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방으로 불러들여 차를 달여주고, 주지 스님은 공양간을 돌아다니며 많이 먹고 건강해지라 덕담을 전한다.
수좌 스님들은 틈틈이 내려와 참선을 지도하고, 총무 정범스님은 해질녘 경내 한가운데서 법고실력을 선보이며 환희심을 선사한다. 템플스테이 실무직원들이 귀띔한다. “우리 수덕사 스님들은 한분도 빠짐없이 언제 어디서나 템플스테이 지도법사를 자처합니다. 스님들 권위의식이요? 그게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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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덕사 템플스테이는 모든 프로그램을 스님들이 직접 가르친다. 때로는 학인 스님도 지도법사가 된다. | ||
■ 수덕사 템플스테이 에피소드
각계각층 별별 사람들이 수덕사 템플스테이를 찾다보니, 기막히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넘쳐난다. 얼마전엔 현역에서 물러난 60대 노(老)신부가 자신이 젊은시절 독일에서 만났던 은사격 스승 두 분을 모시고 템플스테이를 찾았다.
80세를 육박한 스위스와 독일인 두 신부는 한국의 제자로부터 초대를 받아서 한국의 사찰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 것이다. 호화롭고 휘황찬란한 호텔도 많고 그럴싸한 관광지도 많았을텐데, 그 신부는 “수덕사 대웅전에 올라서 돌아섰을 때 펼쳐지는 절경을 스승에게 꼭 자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 세 신부는 가야사터와 서산마애삼존불도 친견했고, 절밥이 최고라고 호평을 하기도.
서울 멋쟁이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강남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유명한 모미용실 전직원이 느닷없이 수덕사 템플스테이를 신청하기도 했다.
전 직원이 1:1로 연예인이나 상류층 인사들을 상대하는 이 미용실은 1년 365일 연중무휴인데, 불자인 여점장이 ‘고객’들에게 템플스테이에 다녀오겠다는 문자를 날린채 미용실 문을 닫고 수덕사를 찾은 것. 22명이 각양각색 독특한 스타일로 멋을 내고 찾아와 스님과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단체복을 입어도 저마다 멋을 부리는 통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들이 바닷가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번뇌를 날릴 때는 괴성을 지르거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아산 경찰교육원에서 매년 경찰대와 동국대 경찰학과 출신자들 대상으로 교육훈련을 실시하는데, 교육의 일환으로 수덕사 템플스테이에 참석하기도 한다. 이 때 수덕사에서 힐링에 몰입하다못해 눈이 맞아 결혼까지 골인한 커플이 두쌍이나 된다고 한다.
[불교신문3054호/2014년11월1일자]




첫댓글 동국대병원 임직원 참가 정말 뜻 깊은 시간이었겠습니다.반복되는 일상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 병원근무자는 화안시(和顔施) 필수지요.
어느 미용실 전직원이 참가한 경우도 대박입니다,^^ 고객 눈치보느라 쉽잖은 결정일 텐데 정말 대단하군요^^ 훨씬 훌륭한 서비스가 다시 시작될 에너지를 충전하고 비우고 털고
최신시설, 그렇습니다. 집안에서 최고의 환경을 누리디가 사찰에 와서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다시 발걸음 하려고 마음 낼 확율이 아마도 적을 텐데
예전 해우소는 근심을 푸는 것이 아니라 근심이 생기는ㅋ적절하신 지적, 그런데 사찰이라 연인도 오면 방은 따로 줘야 할 것 같아요ㅎ.
훈훈한 기사들()()()아미타불
연인들에게 방은 과분합니다. 부부지간도 방을 못구하는데 말입니다.ㅋㅋㅋ
스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