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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사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신 구나라타나 스님께서 20008년 10월 27일에서 2008년 11월 2일까지 집중수행을 지도하시면서 초전법륜경에 대해서 법문하신 내용 중에 나오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는 다섯 가지 방법
초전법륜경에서 강조하는 것은 수행입니다. 수행을 계속하면 우리의 마음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점진적으로 진리를 보기 시작하게 되어 진리를 받아들이고 나아가서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 법문을 듣는 동안, 들리는 단어 하나하나에 100% 주의를 기울여 들으면서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때, 법문이 끝나기 전에 지혜의 눈(eye of wisdom)이 열려서 깨닫게 됩니다.
둘째 법문하면서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도중에 자신의 마음속에서 진리를 보고 깨달음의 단계를 성취하게 됩니다.
셋째 염송(chanting)을 하는 도중에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염송하거나 경전을 읽으면서, 그 경의 내용을 분명하고도 분명하게 그 의미를 이해할 때, 집중이 되기 시작하어 진리를 보기 시작하게 되고, 깨달음의 단계를 성취하게 됩니다.
넷째 심오한 법문을 읽으면서 주의를 기울여서 단어 하나하나를 알 뿐만 아니라 그 깊은 뜻까지 조사하는(investigating) 도중에 희열과 행복감과 집중이 깊어질 때 깨닫게 됩니다.
다섯째 수행주제를 택해서 계속 수행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앉음, 섬, 걸음 등의 수행 대상을 놓치지 않고 항상 수행할 때 깨달음을 성취하게 됩니다.
스승과 제자가 한꺼번에 깨닫는 사례가 상윳따니까야 케마까 경에 나와 있습니다. 케마까 존자가 나이 많은 장로 비구들에게 법문을 하는 도중에 법문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이 동시에 동일한 깨달음의 단계를 성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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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초전법륜경 법문
구나라타나 스님
오원탁(향원) 메모
2018년 3월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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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일러두기 …
1. 경전의 배경 …
2. 경전의 개략적 설명 …
3. 마라 …
4. 여래 …
5. 양 극단 다섯 가지 …
6. 검은 소와 흰 소 …
7. 눈을 뜬 장님과 꼰단냐 존자 …
8. 60가지 즐기는 것 …
9. 숩빠붓다 이야기 …
10. 차제설법 …
11. 수다원 …
12. 지계의 중요성 …
13. 십바라밀 …
14. 말 조련사와 찬나 비구 …
15. 스승의 잘못을 안 부처님의 천재성 …
16. 진리의 권위자 …
17. 진리의 맛 …
18. 기억해야 할 것 …
19. 기타 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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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1. 이 자료는 홍원사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신 구나라타나 스님께서 20008년 10월 27일에서 2008년 11월 2일까지 집중수행을 지도하시면서 초전법륜경에 대해서 법문(최숙희 선생님 통역)하신 다음 DVD의 일부를 메모한 것입니다. 훌륭한 스님을 초청해 주신 성오스님을 비롯한 홍원사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구나라타나 스님 DVD 법문, 『초전법륜경 강의』, 홍원사.
일부 용어는 다음 자료들을 참고로 하여 변경하였으나 가급적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① 마하시 아가 마하 빤디따 지음, 김한상 옮김, 『초전법륜경』, 행복한 숲, 2011.
② Translated by U Ko Lay, 『A Great Discourse on the Wheel of Dhamma (Dhammacakkappavattana Sutta by The Venerable Mahāsī Sayādaw』, 1995, Buddha- sāsana Nuggaha Organization, Mahasi Sāsana Yeiktha, Yangon, Myanmar.
③ 각묵 스님 옮김, 『상윳따 니까야 6』, “초전법륜경”, 2009, 초기불전연구원, 384-392쪽.
④ 일창 스님, 『부처님을 만나다』, 이솔, 2012.
⑤ 한국마하시선원, 『수행독송집』, “초전법륜경”, 2014, 174-201쪽.
⑥ 빤디따라마 서울 위빳사나 명상센터, 『예경독송문』, “초전법륜경”, 2008, 246-285쪽.
⑦ http://www.accesstoinsight.org/tipitaka/sn/sn56/sn56.011.tha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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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전의 배경
<20081027>
지금부터 초전법륜경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이 경의 배경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부처님께서 자신의 가장 큰 과제를 깨달으시고 극복했는지 여러분이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극복하셨을 때, 진리를 발견한 결과가 100% 확고하고 순수하고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것이므로 그 배경을 여러분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그날 밤 초경(오후 6시-10시)에 부처님 자신의 전생을 아는 숙명통(宿命通)을 얻으셨고, 이경(오후 10시-새벽 2시)에 다른 모든 중생들이 어떻게 각자의 업에 따라 윤회하는지를 아는 천안통(天眼通)을 얻으셨고, 삼경(새벽 2시-6시)에는 모든 번뇌가 사라지는 누진통(漏盡通)을 얻으셨습니다. 이때 부처님의 가장 큰 질문인 ‘왜 모든 인간들이 계속해서 오랫동안 끊임없이 윤회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으셨는데 그것이 바로 연기(緣起)입니다.
부처님께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셨을 때, 마음이 100% 완전히 청정하고 마음이 빛나고 해탈의 행복이 넘쳤습니다. 너무나 행복이 넘쳐나서 결가부좌한 상태로 그 자리에 앉은 채로 칠일 간 앉아계셨습니다. 그 동안 되풀이해서 연기에 대해서 되풀이해서 반조하셨습니다. 초경에 다음과 같은 감흥어(우다나)가 저절로 흘러나왔습니다.
열심히 정진하여 명상에 든 바라문에게
37보리분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리하여 모든 의심이 사라지나니
원인과 함께 결과를 알기 때문이다.
이경에 부처님께서 연기를 순관과 역관으로 거듭 관찰하여 모든 의심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기쁨에 넘쳐서 다음과 같은 감흥어가 저절로 흘러나왔습니다.
열심히 정진하여 명상에 든 바라문에게
37보리분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리하여 모든 의심이 사라지나니
조건의 소멸인 열반을 알기 때문이다.
삼경에 부처님께서 또다시 연기를 순관과 역관으로 거듭 관찰하여 마음이 이전보다 더 청정하고 빛나고 편안하고 기쁨으로 넘쳤습니다. 그러자 이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감흥어가 저절로 흘러나왔습니다.
열심히 정진하여 명상에 든 바라문에게
37보리분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리하여 마라의 군대를 물리치나니
마치 태양이 구름을 쫓아내듯이.
부처님께서 깨달으시고 칠일 동안 결가부좌 자세로 앉아계실 때 누가 무슨 질문을 하든지 모두 대답하실 수 있는 확신과 지혜를 가지게 되셨습니다.
칠일이 지난 다음에 반얀 나무 아래에 다시 칠일 간 앉으시고 연기를 순관과 역관으로 반조하셨습니다. 이 과정은 세상으로 내려오는 준비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때의 부처님의 상태는 그지없이 청정하시고 확고부동한 깨달음을 가지고 해탈의 기쁨으로 넘쳐나는 상태였습니다.
그 칠일이 끝난 후 어떤 바라문이 부처님께 성자는 어떤 사람인지 질문하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성자란 모든 번뇌를 전부 소멸한 자, 모든 지혜를 얻은 자, 모든 족쇄에서 벗어난 자, 모든 성자가 해야 할 일을 다 한 자, 그리고 확고부동하고 불퇴전의 깨달음에 서 있는 자이다.”
2. 경전의 개략적 설명
<20081028>
이 경은 부처님 경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45년간 설법하신 내용은 모두 이 경전의 내용을 설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는 왜 거룩한 진리라고 하는가 하면 첫째 누구든지 부처님이 가르치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성인이 되기 때문이며, 둘째 아무도 부처님이 발견한 진리에 대적할 수 없기 때문에 즉 토론해서 이길 수 없고 버금가는 다른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경전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두 극단 즉 감각적 욕망을 추구하는 것과 고행을 추구하는 것을 피해야 하고 중도(팔정도)를 추구해야 한다.
괴로움이라는 진리의 예화 : 우리는 괴로움을 반대로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태어나는 순간 사람들은 축하하고 기뻐하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는 것을 피하려고 하고 병드는 것을 피하려고 약을 먹고 운동하고 죽지 않으려고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애쓰는 것 자체가 즐거움입니까, 괴로움입니까?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잃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81세인데 얻는 것이 없이 계속 잃기만 했습니다.
결혼해서 배우자로부터 듣기 싫은 소리를 계속 들어야 하니 얼마나 괴롭습니까? 회사에 가면 상사가 계속 잔소리하고 일을 계속 시키니 이것도 괴로운 일입니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것이 괴로움입니다. 사실은 원하는 것을 갖는 것도 괴로움입니다. 왜냐하면 원하는 것을 갖는 순간부터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고 불안합니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해서 괴로웠는데, 그것을 갖게 되면 역시 괴로우니 괴로움이 계속됩니다. 부처님께서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사실은 괴로움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갖게 되면 싫어하는 것도 따라옵니다. 하나 사면 하나가 덤으로 따라옵니다.(1 플러스 1) 대표적인 예가 부모가 아이를 갖는 경우인데, 아이가 생기면 부모는 아주 기뻐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자신의 자유가 줄어들고 밤낮으로 자신을 희생해야 합니다. 이것이 기쁨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면 원하지 않는 것도 따라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괴로움이라는 진리에서 부처님께서는 결론적으로 “오취온이 괴로움”이라고 하셨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진리는 갈애를 말합니다.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는 열반을 말합니다.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팔정도)이라는 진리는 행복한 숲의 『초전법륜경』의 148~199쪽 참조.
네 가지 진리에 대해서 각각 세 가지씩 모두 12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즉 사성제를 진리임을 아는 지혜인 삿짜 냐나(sacca ñāṇa), 이 진리와 관련하여 어떤 기능이 행해져야 하는지 아는 지혜인 낏짜(kicca) 냐나(역할을 아는 지혜), 되돌아봄에 의해서 그 기능이 바르고도 완전하게 행해 졌음을 아는 지혜인 까따(kata) 냐나(완수하였음을 아는 지혜)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고성제에 대한 삿짜 냐나가 나타났을 때 혜안, 지혜, 통찰지, 명지, 광명이 생겼고, 고성제에 대한 낏짜 냐나가 나타났을 때 혜안, 지혜, 통찰지, 명지, 광명이 생겼고, 고성제에 대한 까따 냐나가 나타났을 때 혜안, 지혜, 통찰지, 명지, 광명이 생겼다.
집성제에 대한 삿짜 냐나가 나타났을 때 혜안, 지혜, 통찰지, 명지, 광명이 생겼고, 집성제에 대한 낏짜 냐나가 나타났을 때 혜안, 지혜, 통찰지, 명지, 광명이 생겼고, 집성제에 대한 까따 냐나가 나타났을 때 혜안, 지혜, 통찰지, 명지, 광명이 생겼다.
멸성제에 대한 삿짜 냐나가 나타났을 때 혜안, 지혜, 통찰지, 명지, 광명이 생겼고, 멸성제에 대한 낏짜 냐나가 나타났을 때 혜안, 지혜, 통찰지, 명지, 광명이 생겼고, 멸성제에 대한 까따 냐나가 나타났을 때 혜안, 지혜, 통찰지, 명지, 광명이 생겼다.
도성제에 대한 삿짜 냐나가 나타났을 때 혜안, 지혜, 통찰지, 명지, 광명이 생겼고, 도성제에 대한 낏짜 냐나가 나타났을 때 혜안, 지혜, 통찰지, 명지, 광명이 생겼고, 도성제에 대한 까따 냐나가 나타났을 때 혜안, 지혜, 통찰지, 명지, 광명이 생겼다.”
이렇게 모두 12번 혜안, 지혜, 통찰지, 명지, 광명이 생겼을 때 부처님은 다섯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내가 이와 같이 세 가지씩, 열두 가지 형태를 갖추어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 지극히 청정해지기 전까지, 나는 천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 바라문과 천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스스로 천명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내가 이와 같이 세 가지씩, 열두 가지 형태를 갖추어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 지극히 청정해졌을 때, 나는 천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 바라문과 천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스스로 천명하였다. 나에게는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다. 이제 더 이상의 태어남은 없다.’라고 앎과 봄이 생겼다.”
<20081029>
이 상세한 설명이 설해졌을 때 꼰단냐 존자에게 ‘생기는 법은 무엇이든지 모두 소멸하기 마련이다.’라는 티 없고 때가 없는 법안이 생겼습니다. 즉 수다원이 되었습니다.
3. 마라
지금부터는 경전 중에서 좀 더 깊이 이해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마라입니다.
마라는 부처님을 여러 번 방해했습니다. 출가할 때, 고행할 때 그리고 법을 펴기 시작할 때도 방해했습니다. 그때 부처님은 비구들이 다른 종파들의 도전을 받았을 때 적절히 대응하고 법을 펼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그들이 사과(四果: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와 아라한과)를 얻을 때까지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됐을 때 또 마라가 나타나서 이제 그만 열반에 들라고 하자, 비구니들이 다른 종파들의 도전을 받았을 때 적절히 대응하고 법을 펼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그들이 사과를 얻을 때까지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됐을 때 또 마라가 나타나서 이제 그만 열반에 들라고 하자 남자불자들이 다른 종파들의 도전을 받았을 때 적절히 대응하고 법을 펼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그들이 사과를 얻을 때까지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됐을 때 또 마라가 나타나서 이제 그만 열반에 들라고 하자 여자불자들이 다른 종파들의 도전을 받았을 때 적절히 대응하고 법을 펼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그들이 사과를 얻을 때까지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 초전법륜경은 수다원과에서부터 아라한과까지 모두 얻을 수 있는 법문입니다.
5가지 종류의 마라
가. 오온
나. 번뇌(마라의 10가지 군대) : ① 욕망(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것) ② 혐오 ③ 기갈(飢渴) ④ 갈애(무언가를 애타게 원하는 것) ⑤ 졸림과 게으름 ⑥ 탐욕(남의 것을 탐함) ⑦ 의심 ⑧ 위선 ⑨ 잘못된 방법으로 얻은 명예 ⑩ 잘난 척하고 남을 경멸하는 것
다. 업을 짓는 행위(아비상카라)
라. 죽음
마. 악마의 마음을 갖고 천신의 형상을 가진 악마 천신
4. 여래
부처님께서는 초전법륜경에서 처음으로 부처님께서 스스로를 지칭할 때 여래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쿳다까니까야[小部經]의 이띠웃따까에서 여래를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정의하셨습니다.
첫째 “비구들이여, 세상은 여래에 의해서 완전히 이해되었다. 여래는 세상으로부터 해탈하였다.
세상의 원인은 여래에 의해 완전히 이해되었다. 세상의 원인은 여래에 의해 완전히 제거되었다.
세상의 소멸은 여래에 의해 완전히 이해되었다. 세상의 소멸은 여래에 의해 경험되었다.
세상의 소멸에 이르는 길은 여래에 의해 완전히 이해되었다. 세상의 소멸에 이르는 길은 여래에 의해 계발되었다.”
이는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를 이해한 분,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의 기능을 이해한 분,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를 완성하신 분을 여래라고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세상은 오온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자신의 몸, 느낌, 인식, 상카라, 마음이 오온입니다. 이 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오온에의 집착[五取蘊]을 괴로움(suffering)이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비구들이여, 신이나 마라나 범천이나 수행자나 사제(司祭)나 왕이나 사람의 세상에서, 마음이 보고 듣고 감지하고 인지하고 얻고 추구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여래에 의해서 완전히 이해되었다. 그래서 여래라고 한다.”
마음이 보고 듣고 감지하고 인지하고 얻고 추구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오온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감지하고 인지하고 얻고 추구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오온에 관한 것입니다. 즉 여래는 오온을 완전하게도 완벽하게 아는 분입니다.
다음의 세 번째 정의는 가장 중요합니다.
셋째 “비구들이여, 여래가 스스로 무상정등정각을 완전히 깨달은 그날 밤부터,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무여열반에 든 그날 밤까지, 여래가 말하고 가르치고 설명한 모든 것은 그러한(tatha)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여래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부처님께서 깨달은 다음부터 열반에 들 때까지 45년간 가르치고 말한 모든 것 즉 사성제는 진리입니다. 그 누구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고 도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고통을 고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고, 그 누구도 고통의 원인이 갈애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즉 깨달음의 성취인 열반이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즉 갈애를 소멸시키는 것이 열반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팔정도를 고통의 원인을 소멸시키는 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것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고, 사성제를 그 누구도 진리가 아니라고 반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래라고 한다는 뜻입니다.
넷째 “비구들이여, 여래는 자신이 가르치는 것과 행하는 것이 똑같은(tatha) 이이며, 자신이 행하는 것과 똑같이 가르치는 이이다. 그래서 여래라고 한다.”
이는 부처님의 생각 말 행동은 부처님 자신의 가르침과 완전히 똑같습니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은 부처님 자신의 생각 말 행동과 완전히 똑 같다, 완전히 일치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세상은 여래에 의해서 완전히 이해되었다. 세상의 원인은 여래에 의해 완전히 이해되었다. 세상의 소멸은 여래에 의해 완전히 이해되었다. 세상의 소멸에 이르는 길은 여래에 의해 완전히 이해되었다.”는 것은 여래가 사성제를 완전히 이해했다는 뜻입니다.
위의 정의는 초기경전에 의한 것이고, 후기의 다른 주석서에서는 “tatha”라는 말 자체로부터 만든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렇게 오신 분(Thus come)”이라고 여래를 정의합니다.
또 다른 정의는 부처님 이전의 모든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바라밀을 닦으셔서 깨달음을 얻으신 분”으로 정의합니다.
마지막 정의는 부처님 이전의 모든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열반으로 가신 분 즉 “그렇게 가신 분(Thus gone)”으로 정의합니다.
정리하면 여래란 “그렇게 오신 분, 그렇게 가신 분, 그렇게 깨달으신 분(Thus come. Thus gone. Thus enlightened.)”입니다.
5. 양 극단 다섯 가지
양 극단에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① 쾌락주의와 고행주의
② 존재한다와 존재하지 않는다.
③ 상견(영원주의)과 단견(허무주의)
④ 업을 통해서 모든 것이 일어난다와 업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⑤ 세상은 끝이 있다와 없다.
6. 검은 소와 흰 소
<20081030>
검은 소와 흰 소가 멍에로 묶여 있을 때, 흰 소가 검은 소에 매여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검은 소가 흰 소에 묶여 있는 것입니까? 흰 소가 검은 소의 족쇄입니까, 아니면 검은 소가 흰 소의 족쇄입니까? 둘 다 아니죠. 둘을 묶고 멍에입니다.
이것은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감각기관도 족쇄가 아니고 감각대상도 족쇄가 아닙니다. 이 둘을 묶고 있는 것은 욕심입니다.
7. 눈을 뜬 장님과 꼰단냐 존자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던 사람이 치료를 받아서 눈을 떠서 사물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로, 팔정도를 실천하면 눈이 열리고 지혜가 생겨서, 감각기관이 우리로 하여금 더러운 것을 깨끗한 것이라고 알도록 속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꼰단냐 존자가 법안이 열린 경우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고통과 고통의 원인과 고통의 소멸과 소멸로 인도하는 길에 대해서만 설명했지만, 꼰단냐 존자는 온 정신과 온 몸을 기울여 들었기에 무상과 무아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생기는 법은 무엇이든지 모두 소멸하기 마련이다.”라고 한 것은 부처님께서 표현하지 않으신 무상과 무아도 알아차리고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합니다. 그 무상한 것을 좋아하고 원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면 깨달은 다음에는 무상한 것이 무상하지 않게 변합니까? 아니지요. 모든 것이 무상한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깨달으면 집착이 없어지기 때문에 괴로움이 사라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꼰단냐 존자가 그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8. 60가지 즐기는 것
여러분에게는 매순간 60가지 즐기는 것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선 안이비설신의 여섯 가지입니다. 눈이 있어서 볼 수 있어서 즐겁고, 귀, 코, 혀, 몸, 마음이 있어서 즐겁습니다. 다음에 색성향미촉법 여섯 가지 대상이 있어서 즐겁습니다.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 여섯 가지 마음, 육촉(눈 접촉, 귀 접촉 … 마음 접촉)이 있어서 즐겁고, 여섯 가지 느낌(눈 접촉으로 생긴 느낌, … 마음 접촉으로 생긴 느낌), 여섯 가지 인식(형상에 대한 인식, … 법에 대한 인식), 여섯 가지 의도(형상에 대한 의도, … 법에 대한 의도), 여섯 가지 갈애(형상에 대한 갈애, … 법에 대한 갈애), 여섯 가지 일으킨 생각(형상에 대한 일으킨 생각, … 법에 대한 일으킨 생각), 여섯 가지 지속적 고찰(형상에 대한 지속적 고찰, … 법에 대한 지속적 고찰) 모두 60가지, 이러한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60가지 감각적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는 순간입니다. 이것 중에 하나가 생겼다 사라지면 즉시 다른 하나가 생깁니다. 이것들을 추구하면 성스러운 수행을 할 수 없습니다. 성자의 법문을 듣고 성자의 삶을 동경하고 성자의 수행을 따르면 여러분도 팔정도를 잘 실천할 수 있습니다.
9. 숩빠붓다 이야기
보통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을 단계적으로 가르치십니다. 그러나 꼰단냐 장로의 경우는, 상세하게 가르치지도 않으셨고 60가지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가르치시지 않고 팔정도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법하기만 하셨는데, 그는 깨달았습니다. 거지이자 문둥병 환자였던 숩빠붓다도 설법을 듣는 순간 깨달은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부처님으로부터 단계적인 설법(차제설법)을 들은 다음에 깨달았습니다.
10. 차제설법
<20081031>
부처님께서는 보통 차제설법을 하시지만, 초전법륜경의 오비구들은 이미 수행을 많이 한 분들이었기 때문에 간단하게 설법하셨습니다. 그러나 숩빠붓다에게는 보시, 지계, 천상에 태어나는 법, 사성제 설법을 차례로 하셨습니다. 보시에 대한 설법을 해서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가 되면, 지계 설법을 하는 등의 순서로 하신 것입니다.
계는 빠알리어로 ‘실라(sīla)’인데 영어로는 ‘sealant(접합제)’ 즉 금이 갔거나 틈이 생긴 것을 메꾸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또한 ‘습관’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계를 계속 지키면 도덕적인 삶이 좋은 습관이 됩니다.
보시하고 계를 지켜서 도덕적인 삶을 살면 천상에 태어납니다. 천상에 태어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진리를 알고 진리에 따라 살고, 화를 내지 말고, 타인이 원하는 것을 주면 됩니다.
부처님께서 감각적 쾌락의 허물에 대해서 법문하셨을 때 숩빠붓다의 마음이 열려서 부처님의 법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고, 마음에 장애가 없어졌습니다. 그러자 희열이 생겼고 불법승 삼보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가장 심오한 설법을 하셨는데 그것이 부처님만 하실 수 있는 사성제입니다. 사성제 법문을 듣는 순간 꼰단냐 존자에게 티끌 없고 청정한 사구게가 흘러나왔습니다. “생기는 법은 무엇이든지 모두 소멸하기 마련이다.” 이는 수다원이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수다원이 된 꼰단냐 존자의 마음 상태는 다음과 같이 여덟 가지로 표현됩니다. 이는 숩빠붓다나 여러분이 수다원이 돼도 마찬가지입니다.
① 법(진리)을 본다. ② 법을 얻는다. 즉 법의 속으로 들어간다. ③ 법을 이해한다. ④ 더 깊이 깨쳐서 들어간다. ⑤ 의심이 사라진다. ⑥ 혼동이 없어진다. ⑦ 법이 그의 마음에 확립되어 있어서 아무도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 ⑧ 불법 안에서 다른 사람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깨닫는 경지에 들어간다.
11. 수다원
한때 부처님께서는 사리불 존자에게 “소따(sotā)가 무엇이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소따’에는 ‘귀[耳]’라는 뜻도 있고 ‘흐름(stream)’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사리불이 아주 아름다운 대답을 했습니다. “소따라는 것은 팔정도를 일컫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옳다. 옳다. 그러면 수다원이란 무엇이냐?” 사리불이 대답했습니다. “수다원이란 팔정도를 체득(possess)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 팔정도를 닦고 있는데 우리들 모두 수다원입니까? 아니라면 수다원은 또 어떤 특성을 가져야 할까요?
수다원이 되려면 입류자 즉 흐름에 든 자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 흐름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습니다. 팔정도에 대해서 알기도 하고 말도 많이 하고 남에게 설명하지만 아직 자기 것으로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다원이 아닙니다.
수다원이 되면 세 가지 족쇄 즉 유신견, 의심, 계금취견에서 벗어납니다.
수다원이 되면 어머니, 아버지, 아라한을 죽임, 부처님 몸에 상처를 냄, 삿된 견해를 갖지 않고, 다른 종교로 개종하지 않는 여섯 가지 공덕을 지니게 됩니다. 또한 오계를 범하지 않게 되어 오계를 지키지 못할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납니다.
그리고 부처님[佛]과 부처님의 가르침[法]과 승가[僧]에 대해서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되고 계행이 완전해지는 네 가지 성스러운 품성을 갖게 됩니다. 수다원의 도덕적인 삶은 완전해서 가끔 실수하는 일이 없어집니다. 또한 오력인 믿음, 정진, 사띠, 삼매, 지혜가 아주 강력해집니다.
나아가서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 스님인 경우 의복 음식 약 숙소 등과 관련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유스럽습니다. 또한 성자들이 그를 칭찬합니다. 또한 수다원은 ‘나는 더 이상 사악처에 태어나지 않는다. 내가 얻은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나는 반드시 깨달음을 얻게 된다.’라고 스스로 알게 됩니다. 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수다원이 되었을 때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다원을 얻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한때 손톱 위에 흙을 올려놓고 “비구들이여, 이 손톱 위에 있는 흙과 이 세상에 있는 나머지 흙과 어느 것이 더 많으냐?” “이 세상에 있는 나머지 흙이 훨씬 더 많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여, 수다원이 제거한 번뇌는 이 세상에 있는 나머지 흙과 같고 남아 있는 번뇌는 이 손톱 위에 있는 흙과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수다원이 되는 것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왕이 되는 것이나 천상에 태어나는 것보다 더 훌륭하다. 왜냐하면 수다원이 되면 사악처에 떨어지지 않고 완전히 깨닫는다는 100%의 보장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수다원은 사정근(四正勤)을 함에 있어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로 출세간의 수행을 합니다. ①~③ 불법승에 대해서 확고한 믿음을 갖습니다. ④성자들처럼 계를 지키고 ⑤ 훌륭한 삼매에 들고 ⑥ 부지런히 정진하며 ⑦ 항상 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토의하고 질문합니다.
12. 지계의 중요성
<20081101>
부처님의 깨달음은 단계적인 수행의 결과입니다. 이것은 “가나까 목갈라나 경”에 나와 있는데, 수행할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계를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말 조련사가 말을 길들일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입에 재갈을 물려서 말이 그것에 익숙하게 된 다음부터 다른 일들에 익숙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자의 도덕적인 삶이 완전해 졌을 때 여래께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갑니다.
13. 십바라밀
초전법륜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부처님께서는 연등불로부터 수기를 받은 다음부터 한없이 긴 세월 동안 열 가지 바라밀(완성)을 닦았습니다. 보리수 밑에 앉아서 금방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바라밀에는 세 단계가 있는데 자신의 재산을 보시하는 기본바라밀(빠라미),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포기하면서 실천하는 중간바라밀(우빠빠라미), 자신의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실천하는 최상바라밀(빠라맛타 빠라미)입니다. 열 가지 바라밀을 세 단계로 실천하기 때문에 ‘삼십 바라밀’이라고도 합니다.
십바라밀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보시 바라밀은 보시를 완전하게 한다는 것인데 그러자면 보시할 때 집착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지계바라밀, 지계를 완성하는 것은 계를 지키는 것이 생활화되어 호흡을 하듯 부드럽게 되는 것입니다. 출리바라밀은 감각적 욕망을 버리고 수행자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지혜바라밀은 수행해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정진바라밀은 노력하는 힘인데 육체적인 것이 아니고 정신적으로 선업을 행하는 정신력을 말합니다.
인욕바라밀은 참을성, 받아들임, 참아내는 것인데 전생록에 많이 예화가 나와 있습니다. 진실바라밀은 진실만을 말하고 자신이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것인데 재산이나 신체나 목숨이 위험하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결심바라밀은 깨달음을 추구함에 있어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애바라밀은 중생들의 행복을 바라는 자애관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평온바라밀은 평온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십바라밀을 모두 완벽하게 닦은 결과로 부처님의 법문은, 욕망이 없고 진리만을 말씀하시고 지혜가 있고 평온하고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음을,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부처님의 행동과 말과 마음에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14. 말 조련사와 찬나 비구
말 조련사가 부처님에게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을 어떻게 훈련시키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부처님은 그에게, “그대는 말을 어떻게 훈련시키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부드러운 방법을 씁니다. 그 방법이 먹히지 않으면 거친 방법을 씁니다. 거친 방법들로도 안 되면 말을 죽여 버립니다.”
부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나도 같은 방법을 쓴다. 나는 부드러운 방법을 쓴다. 그 부드러운 방법으로 제자들을 훈련시킬 수 없는 경우에는, 거친 방법들을 쓴다. 거친 방법들로도 안 되면 그들을 죽인다.”
그러자 말 조련사가 물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비폭력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일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부처님이 자신의 살해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잘못하는 사람을 철저히 배척하거나 무시하는 것으로 “죽인다.” 그러면 그는 승가를 떠나게 됩니다.
부처님이 이 방법을 사용한 유명한 사건이 경전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부처님에게는 찬나라는 오래된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부처님의 마부이고, 어릴 적에는 놀이친구였으며, 보살이 출가자 생활을 하기 위해서 궁전 밖으로 마차를 타고 나갔을 때의 마부였습니다. 찬나는 고령(高齡)의 나이에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일생에 기여한 자신의 역할 때문에, 부처님이 깨달음에 이른 것을 자신의 공로라고 생각하고 몹시 거만했습니다. 수계했을 때부터 승가를 경시했습니다. 한 예로, 자신보다 법랍이 많은 비구가 찾아와도 일어나서 방석을 드리거나 발과 얼굴을 씻을 물을 갖다 주는 등의 관습상의 의무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찬나에게 행동이 아주 오만하다고 지적하고, “너는 비구들을 존경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찬나는 부처님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이 세상을 떠날 때, 아난다 존자가 찬나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부처님에게 물었을 때, 부처님은 승가에게 그를 배척하라(보이콧하라. 상대해주지 말라. 왕따 시켜라.)고 일렀습니다. 배척하라는 부처님의 말을 승가에게 알리는 것은 아난다의 몫이었다.
부처님이 세상을 떠난 뒤, 찬나는 충격을 받고 비탄에 젖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모든 명성과 힘과 용기는 부처님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이제 그가 갔으니 나를 받쳐줄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이제 온 세상이 텅 비었다. 내가 수많은 비구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으니, 그들은 더 이상 내 친구가 아니다.”
아난다가 찬나에게 부처님께서 그대를 배척하라고 말씀하셨다는 말을 전했을 때, 찬나는 두 번째로 놀라서 기절했습니다. 의식을 되찾은 뒤부터 그는 아주 겸손해졌습니다. 부처님은 찬나가 이렇게 될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찬나는 고분고분하면서도 부지런히 수행했습니다. 결국 그는 깨달음을 성취했습니다. 거친 방법도 때로는 효과가 있습니다.
15. 스승의 잘못을 안 부처님의 천재성
부처님이 스승이었던 알라라와 웃다까 라마뿟따 밑에서 수행할 때, 부처님은 그들이 오력(믿음 사띠 정진 집중 지혜)을 모두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릇된 오력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그릇된 것인가? 그들의 오력의 출발점인 믿음이 대범천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출발했는데, 그것은 맹신이었으며, 정진 또한 대범천을 향한 정진이어서 그릇된 것이었습니다. 사띠와 집중과 지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스승들 밑에서 배우면서도 그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 수행의 잘못된 점을 발견했다는 것은 부처님의 천재성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그 다음에 바른 수행을 추구해서 결국 팔정도라는 바른 수행법을 발견하신 것입니다.
16. 진리의 권위자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는 모두 부처님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 발견된 것입니다. 부처님은 권위에 대해서 반대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각자가 진리를 추구해서 진리를 발견하면 권위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어떤 한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저 사람은 불교의 권위자다.’라고 말하지만 심지어는 부처님도 불교의 권위자가 아닙니다.
17. 진리의 맛
부처님은 진리를 발견하고 진리에 살고 진리를 가르치신 분입니다. 여래라는 뜻에는 이러한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리는 맛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실(진리)을 알면 다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마음이 깨끗하지 않은 사람 이야기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에게는 진리는 가장 맛있는 것입니다. 진리는 경험에 의해서 발견된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진리의 바퀴는 지금도 돌아가고, 돌아가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18. 기억해야 할 것
<20081102>
⑴ 진리는 언제나 진리입니다. 결코 진리가 아닌 적이 없습니다. 항상 진리입니다.
⑵ 진리를 이해한 사람(수다원)은 믿음(확신, faith)이 강력해져서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부처님 시대에 어떤 불자가 부처님을 집으로 초대하여 법문을 듣고 수다원이 되어 확고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다음날 마라가 부처님으로 변신하여 그 집을 찾아가서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불자가 나가보니 부처님이 또 오셔서 방으로 모시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가짜 부처님이 말했습니다.
“어제 내가 자아가 없다고 말했는데, 돌아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아가 아주 조금은 있다.”
그러나 수다원인 불자가
“너는 마라가 아니냐? 부처님께서는 절대로 틀린 말씀을 하시는 분이 아니다. 당장 나가라.”라고 말해서 마라를 쫓아버렸습니다.
⑶ 깨달음을 얻는 5가지 방법
또 한 가지 이 경에서 강조하는 것은 수행입니다. 수행을 계속하면 우리의 마음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점진적으로 진리를 보기 시작하게 되어 진리를 받아들이고 나아가서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 법문을 듣는 동안, 들리는 단어 하나하나에 100% 주의를 기울여 들으면서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때, 법문이 끝나기 전에 지혜의 눈(eye of wisdom)이 열려서 깨닫게 됩니다.
둘째 법문하면서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도중에 자신의 마음속에서 진리를 보고 깨달음의 단계를 성취하게 됩니다.
셋째 염송(chanting)을 하는 도중에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염송하거나 경전을 읽으면서, 그 경의 내용을 분명하고도 분명하게 그 의미를 이해할 때, 집중이 되기 시작하어 진리를 보기 시작하게 되고, 깨달음의 단계를 성취하게 됩니다.
넷째 심오한 법문을 읽으면서 주의를 기울여서 단어 하나하나를 알 뿐만 아니라 그 깊은 뜻까지 조사하는(investigating) 도중에 희열과 행복감과 집중이 깊어질 때 깨닫게 됩니다.
다섯째 수행주제를 택해서 계속 수행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앉음, 섬, 걸음 등의 수행 대상을 놓치지 않고 항상 수행할 때 깨달음을 성취하게 됩니다.
스승과 제자가 한꺼번에 깨닫는 사례가 상윳따니까야 케마까 경에 나와 있습니다. 케마까 존자가 나이 많은 장로 비구들에게 법문을 하는 도중에 법문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이 동시에 동일한 깨달음의 단계를 성취하였습니다.
19. 기타 사항
- 초전법륜경에는 계정혜 삼학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내가 경험하면 알 수 있게 항상 열려 있다.
- 사성제
고성제와 집성제는 세간의 진리이다.
멸성제는 출세간의 진리이다.
팔정도는 세간의 진리도 되고 출세간의 진리도 된다.
- 수행을 마쳐서 완전히 깨달으면 스스로 “할 일을 다 했다.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스스로 자신 있게 선언할 수 있다. 자신이 스스로에게 증명서를 주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_()_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