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āyatana(處, 入場, 立場, 분야, 영역, 處地)
무생물을 포함하여 동식물이 있는 장소(영역), 혹은 '기예技藝' 분야,
심리적인 立場(견해, 주장)등의 용례가 있고
마음(心王)이 들어가는 곳/ 들어가 있는 곳, 장소라는 의미에서 入處라는 의미가 있다.
이럴 때 心(王)을 어떤 處로 들어가게(入)하는 것은 作意인 것으로 생각된다.
作意(manasikāra)는 자신(作意)을 포함하여
[함께 일어난 법들(觸, 受, 想, 思, 등] 心)을
'意쪽으로[manasi] 두다[karoti]'<함께 한 방향으로(ekagga) 향하다.>라는 의미이라면,
먼저 생겨나는 사건은 '心'(과 '함께 생긴 법들')이 意에 들어감(意處 入)이다.
이것(意處)이, 혹은 그 이후가 '法'에 들어감(法處)이다. (☜이것이 '作意의 集이 法의 集')
그러므로 '法'에 들어감(法處 入)이란
욕계 '心'의 立場에서는 12處 모두<眼處, 色處 ~ 意處, 法處>가
'대상(法)'에 들어감(法處 入)에 해당된다.
다만 여기서는 앞의 11개의 處는 구분하여 호칭하고 그 외의 法에 대해 특별히 法處라고 한다.
색계에서의 '法'에 들어감(法處 入)은 初禪處이거나 제이선處이거나 제삼선處이거나 제사선處이다.
각 處에 들어가는 함께 일어난 심리요소들[尋伺喜樂 등]은 조금씩 차이가 난다. (M111참조)
이러한 慾을 벗어난 심리요소들이 [함께 한 방향으로 향하여 (ekagga)] 들어 간 자리를
바른 삼매라고 하는 것 같다.
무색계에서의 '法'에 들어감(法處)은
'공무변처'이거나 '식무변처'이거나 '무소유처'이거나 '비상비비상처'이다.
그리고 '상수멸처'라는 處도 경문에 나타난다.
여기서 어떠한 處이든지 그 기초('원인')가 되는 것은 界이다.
18界든 6界(도 몇 종류가 있음)든 3界든 2界든
이 界를 攀緣하여 觸(受) 혹은 想이 생겨남에 따라
이 법들이 함께 '대상(法)'에 들어감(法處 入)이 일어난다.
욕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건들(六六)을 따라가면
6근의 상호간의 관계는 '前5根은 意根을 의지'하므로
意가 '기둥'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66법(慾界 愛支 緣起)이든지
意界에 대한 '달콤한 기억(念, sati)에 의해서
(慾)愛-取가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겨난다.
이것을 경(S1:30)에서는
[세상에는 다섯 가닥 감각적 욕망이 있고
마음[意]이 여섯 번째라 알려졌나니
여기에 대한 욕구를 빛바래버리면
이렇게 해서 괴로움에서 해탈하노라.
pañca kāmaguṇā loke, manochaṭṭhā paveditā.
ettha chandaṃ virājetvā, evaṃ dukkhā pamuccati.]
이럴 때 意界를 攀緣하여 생겨난 (意)觸을 비롯하여
여기에서 진행된 眼觸~身觸이 이른바 [6處와의 觸들]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이러한 觸들에 의해서 內에서 생겨난 受(想行識)등에 의해서
外로 드러난 것이 [내입(과 외입)을 반연하여 생겨난] (6)識(身)이고
그 이후 三事화합의 (6)觸(身), 또한 [함께 일어난 법들(觸, 受, 想, 思, 등] 처럼
六六法들이 생겨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이미 생겨날 素地(욕계에서는 慾에 어울리는)가 경계를 만나든지(충족)
혹은 만나지 못하는 것(결핍: ex. 잠재 혹은 心行[名身]-[色身]身行)도 인연으로 하여
이러한 법들이 생겨나는 것으로 생각된다.
첫댓글 三科(蘊·處·界)은 어렵습니다.
연기도 어렵지만 봄봄은 界-處가 너무 어렵습니다.
自內證(아빈냐)는 언감생심이고 어떤 의미인지도 알지 못하겠습니다.
가능하면 언급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이해한 것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허점이 많고 과잉해석한 부분이 많지 싶습니다만...
하여튼 지금까지 이해한 것은 이러합니다.
참고만 하시고 더 높은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