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맥주보이 실종사건'은 '여론팀'의 강력수사로 '무사생환'하는 성과를 거뒀다. 덤으로 대면(對面) 구매하는 와인도 '배달가능'이라는 실적을 올리게 될 것 같다. 이참에 남은 미제사건도 전면 재수사에 나서 해결하면 어떨까 싶다.
미제 파일 1 : 세계 어느 나라나 호텔에 투숙하면 칫솔 치약 면도기 세제 등은 기본으로 제공한다. 투숙객의 편의를 위한 필수적 서비스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호텔에서만은, 특히 등급이 높을수록 칫솔 치약 면도기는 구매품목이다. 그것도 인근 편의점보다 등급만큼 높은 가격으로. 아, 일부 등급 낮은 호텔이나 모텔에서는 제공하고 있다. 그렇지만 엄격하게 따지면 분명 규정위반이다. 물론 당초에는 그렇지 않았다. 사건의 발단은 어느 유능한 공무원께서 일회용 사용으로 인한 자원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모든 업소에서 편의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옳겠다는 정책제안을 했고, 그걸 획기적이라 받아들인 결재권자 덕분이다. 그 고매한 뜻에 뒤늦게 딴죽을 걸어 송구하지만 면도기와 칫솔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출장자나 관광객의 입장으로 한 번 생각해보면 사건의 실체가 달라 보이지 않을까 싶다.
미제 파일 2 :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단체로 찾아온 중국 관광객들이 '별그대'의 김수현과 전지현을 꿈꾸다가 생맥주 대신 캔맥주를 들고 씁쓸해했던 사건이다. 역시 청소년의 음주를 예방하고 어쩌고 하는 고매한 발상이 사건의 발단이다. 아니, 규제권자로서는 결코 사건이 아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규제가 제대로 성과를 거두기나 하는 걸까.
미제 파일 3 : 대한민국에서는 미터법에 따르지 않는 도량형 단위인 '자' '평' '근' 따위를 사용하면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아파트나 주택 소개에는 반드시 제곱미터(㎡)로 표기하고 그 옆에 몇 평형이라 별도로 기재한다. 그렇지만 골프장에 가면 여전히 '야드'가 익숙하고 해상에서는 '마일'이 통용된다. 그래도 과태료를 부과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바 없다. 일단 만들어놓은 규제는 누구에게는 칼이다. 평소에는 벌겋게 녹이 슬도록 팽개쳐두다가도 어느 순간 문득 생각이 미쳐 숫돌에 갈아 쳐들면 그게 또 재미가 쏠쏠하다는 미련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다면 확실히 사건이다.
미제 파일 4 :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쓰레기통을 구경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아예 쓰레기통이 없는 나라는 있다. 그렇지만 그들 나라에서는 애초 쓰레기 투기를 단속할 생각도 없다. 이 사건의 발단도 고매하다. 지구환경과 도시미관을 위해 쓰레기는 반드시 규정된 봉투를 구입해 지정된 시간과 장소에 내놓으라는 것이다. 지당하고, 덕분에 선진국민이 되고 있다. 다만 선진국민의 자긍심을 상시 지켜내려면 언제나 쓰레기봉투를 휴대해야 한다는 점은 실로 난처하다.
정부의 선의로 길거리와 공공장소에 쓰레기통을 비치하면 비선진적 얌체국민이 규정된 봉투를 이용하지 않고 무단투기하는 사례가 있다. 담배소비세는 별개로 하고, 국민건강을 끔찍이도 여기는 정부 입장에서 꽁초 버릴 곳이 적으면 그만큼 흡연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고차적 배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하게 휴지나 군것질거리 지참이 필수인 어린아이를 동반하는 경우만 생각해도 공공쓰레기통 아니면 쓰레기봉투 상시 휴대규정을 제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뭐 언제나 고분고분한 국민은 그렇더라도 사정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은 또 어찌할지, 참 사건이다.
너무 자잘한 일들로 미제사건 운운하자니 면구스러워 지금 자행되고 있는 사건고발이다 : 길을 걷는데 느닷없이 번쩍 조명이 켜지며 귀에 거슬리는 여성음성의 녹음소리가 들려온다. "쓰레기무단투기 감시 CCTV가 작동 중입니다. 이곳에 쓰레기를 무단투기하시면 일백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헐∼ 고개를 들어보니 두 대의 카메라가 촉광 높은 조명을 밝히고 철제상자에서는 녹음소리가 반복되고 있다.
'참 친절도 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손에 쓰레기를 들지도 않았고 그저 지나가던 길이거든요. 제가 그렇게 쓰레기나 무단투기할 치사한 인상으로 보이십니까?' 목구멍까지 고함이 치미는데 예닐곱 여자아이가 쪼르르 달려 지나가니 또 조명이 켜지고 녹음소리가 재잘거린다. 그 덕분에 내 인상 탓은 아니었구나, 마음은 놓았지만 너무 친절하신 공무원님. 당신 눈에는 이 거리에 발 디디는 모두가 치사한 무단투기자로 보이십니까? 이건 명백한 명예훼손입니다!
반상(班常)으로 갈라 위엄을 지키던 왜곡된 성리학 전통에, 일제(日帝)의 교묘한 감시억압 세례를 뒤집어쓰고, 군사문화의 획일적 규제에 시달리다 스스로와 나라의 주인이 되고자 '독재타도'를 외치며 자유와 민주를 쟁취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사람과 국민 모두가 주인인 세상으로 국가와 정부와 공직자는 주인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옳을 것이며 공직자 스스로도 주인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주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반듯한 질서만이 옳다는 굳은 사고는 자유에 대한 배신이다. 규제를 고집하고 사문화된 규정의 개폐를 미적거리는 자세는 민주에 대한 도전이다. 주인인 국민의 편의가 우선임을 존중하는 국가와 정부라면 유연하고 너그러워야 한다. 일회용품으로 자원낭비가 염려되면 수거하여 재생에 노력하면 될 일이다. 실효성 없는 규정이 생활과 경제에 걸림돌이 되면 당장 폐지하고 우려되는 부분은 따로 보완할 일이다. '평'이든 '근'이든 국민에게 익숙하면 미터법의 도량형이 보충수단이 되어야 한다. 환경과 미관이 걱정이면 더 많은 공공쓰레기통을 비치하고 더 자주 수거하고 청소하면 될 일이다. 혹여 얌체투기하는 이가 있더라도 국민을 주인으로 존중하는 정부라면 슬며시 눈감아 주는 아량도 있어야 한다. 하물며 멀쩡히 지나가는 주인에게 다짜고짜 조명을 들이대고 경고하는 공복의 무례함이라니!
혹여 사소한 일로 따지는 내가 쪼잔하다고 생각하는 공직자나 정치인이 있다면 당신은 아직 이번 총선에서 휘두른 국민의 채찍에도 정신 차리지 못한 거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