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총새의 울음
신 웅 순 *
쓰잇쯔, 지킷쯔 저녁 하늘을 찢으며 우는, 짧고 긴 물총새의 비취빛 울음 소리. 그 울음 소리가 얼마나 애잔하고 애절했던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나는 잊을 수 없다. 만추의 하늘이 이 울음 소리보다도, 만추의 달빛이 이 울음 소리 보다도 더 맑고 깨끗할 수 있을까. 호숫가의 아침 햇살로 단장하고 저녁 늦게 개천가로 나와 노을을 풀어내며 쓰잇쯔, 지킷쯔 우는 그 울음 소리를 나는 잊을 수 없다.
물총새와 내가 무슨 원이 있어 그리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것일까.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올 때면 물총새는 언제나 내 뒤를 따라오곤했다. 갈대밭을 지나서는 언제나 나를 앞질러 갔다. 그리고는 쓰잇쯔, 지킷쯔 허공에 울음을 놓고 노을 속으로 사라져갔다. 저녁 햇살을 물고와 우는 그 금빛 울음 소리는 저녁 넘어 밤하늘의 머나먼 별이 되었을 것이다. 나에게 물총새 울음 소리는 언제나 그렇게 멀어져가거나 떠나가는 아스라한 여인의 뒷모습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가 떠난다는 것은 내 영혼의 일부와 함께 떠나는 것이어서 늘 그늘이 비워진 채로 일생을 살아가기 마련이다. 내 영혼의 한 쪽에서 혼자 울다 떠난 유년의 물총새 울음 소리. 지금 세월 어디쯤으로 옮겨가 뉘 물가에서 쓰잇쯔, 지킷쯔 울고 있는 것일까.
내 인생에서 흘렸던 눈물만큼 물총새도 뉘 굵은 나뭇가지 위에서 이슬 같이 울고 있으리. 젊었을 적 얼음같이 차가운 내 가슴 한켠을 흔들고 떠나간 물총새. 이제 이순의 나이에 홀연 날아와 화선지에 수 많은 먹물을 어지럽게 풀어놓고 있는가. 행 ․ 초서도 아니요 해서, 전서도 아닌 지난날 희로애락들을, 이렇게도 진한 사색들을 붉게도 풀어놓고 있는가.
시멘트의 끝없는 긴 수로를 따라 물총새들은 길을 잃고 물방울이 또옥똑 또옥똑 떨어지는 수로 끝자락에서 해바라기하다 이제와 회색빛 도시의 내게로 와 쓰잇쯔, 지킷쯔 발음을 새삼 익혀가는가. 이젠 실컷 울어도 된다. 내 영혼의 갈대밭에서 실컷 울어도 된다. 높은 음, 거센소리로 울어도 된다.
뜸북이가 먼저 울고, 저녁 달빛이 나중 비치는 날 물총새 울음 소리는 들녘을 건너 몇 십리를 갔다. 저녁 달빛과 비취빛 울음이 섞이는 날에는 더 멀리 어둠 속을 가기도 했다. 물소리와 새소리가 외면하면 그런 소리가 날까. 바람 소리와 빗방울 소리가 헤어지면 그런 소리가 날까. 인간의 때 묻은 목소리보다 티끌 하나 없는 물총새 울음이 더 멀어 아득히도 가는가보다.
물총새가 무엇이길래 반세기 동안 나를 이렇게 붙들고 있는 것인가. 내 유년의 들녘을 굽이굽이 낮게도 흐르는 개천. 거기엔 창포가 있고 갈대가 무성히도 있었다. 장어, 숭어는 물론 참붕어, 버들치, 피라미, 치리, 참게, 메기들이 있었다. 수초 위로는 소금쟁이, 물방개, 장구애비들이 물살을 가르며 저들끼리 숨바꼭질하고 있었다. 수면 위의 물총새는 춤추는 발레였고 물가에 비친 물그림자는 눈부신 신데렐라였다.
참붕어 몇 마리 갈대에 꿰고 돌아오는 저녁은 언제나 혼자였다. 갈대밭 사이로 스치는 바람 소리도 혼자였고 창포잎을 두드리며 지나가는 빗방울 소리도 혼자였다. 어디론가 노을을 질러가는 물총새의 끝울음 소리도 혼자였다. 지난 것들은 다 그렇게 혼자서 헤어졌다.
물총새를 보내야겠다. 먹이가 풍부하고 둥지 트는 그들의 고향땅으로 보내야겠다. 갈대밭이 없어졌다. 굽이굽이 흐르는 개천이 없어졌다. 그래도 보내야겠다.
개천은 우리들만이 살아가야할 땅이 아니다. 물고기, 새, 수초, 갈대, 창포들도 같이 살아가야할 땅이다. 몇 십년 동안 한 번도 물총새 울음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가슴이 메말라서일까. 더 이상 울 수 없는 새가 되어서일까. 그렇게도 울어대던 뜸북새는 어디로 갔을까. 이제 물총새는 노을진 개천에서 쓰잇쯔, 지킷쯔 쩌렁쩌렁 원없이 날아다니면서 울어야한다.
* 시조시인 ․ 평론가 ․ 중부대 교수
첫댓글 물총새 소리 다시 들리기를......
뜸북이 소리 들은지는 반백년이 되었다네. 물총새 소리도 들은 지도 오래되었고. 4대강 개발한다는데 시멘트 나 바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물총새 소리 다시 들리기를......
오랫만이네요. 그토록 오랜 세월을 새의 예쁜 소리를 마음에 담아놓고 사니 행복했겠어요. 꾀꼬리 소리는 나의 귀에 항상 저장되어 있는데 다른 새들은 이름을 잘 모르겠더라구요
수련씨 오랜만여요. 냇가에서 여름에 사는 비취색을 가진 예쁜 새 있어요. 그 울음이 참 아름답거든요. 뜸북새도 논에서 쫒겨났고 물총새는 냇가에서 쫒겨났는지, 이제 울음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네요. 고마워요.
뜸~해서 많이 바쁜 모양이구나 생각했는데 '물총새의 울음'으로 가까이에 있음을..... 초등은 신종플루와 싸우느라 체온계를 권총삼아 아침마다 쏘아대는데 대학은 어떤겨? 건강하지?
바쁘지만 글 아니면 이리 만나겠나? 집 사람도 일찍 가서 아이들한테 귀에 대고 쏜다드라. 올해도 낙엽 한 장 남았다. 마저 겨울바람이 주워가면 많은 이들이 6호선으로 갈아타겠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쓰러져간 자연의 모습들... 앞으로는 더 많은 자연의 소리, 자연의 모습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을 텐데...
개발이냐 보존이냐..... 우리만이 사는 땅이 아닌데. 새들과, 물고기들은 우리 보고 뭐라고 할까.
웅순씨글을 읽다 보니 내가 CD하나 보내줘야겠다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한시대에 정말 좋은 곡으로 날렸는데 이상한 고집으로 이 바쁜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는 친구인데 이번에 출시를 한다하니 ...웅순씨가 들음 좋아 할 것 같은데...
영희씨가 보내주고 싶다는 CD. 나, 부적응아. 그 뜻 또한 아름다운 선물이 될 것 같은데...기대가 되네요.
찌잇쯔 치킷쯔,우리동네 실개천 논두렁에도 드물게 오는새 깃털이 패셔너블한 흰색 연화색 진회색깃털색깔,누가 만들어 주지 않아도 날때부터 입고 나오는 은헤로운 순리에 보는이마다 미소짓게 하는 새랍니다,논바닥 쇠기러기 흰왜가리 김포평야에 오는 재색 두루미,여름에 다녀간 몇안되는 제비...지나 가다가볼 때 마다 하는말 "내새끼들 내새끼들" 밤하늘로 날아가는 기러기떼소리는 원시의본능으로 잠깐 들어가 있게 하죠,신교수님 여기 농수로용 개천에 물총새가 와요,이쪽으로 이사 왔나봐요ㅎ
어째 거기까지 이사갔을까. 좇겨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거기서 원없이 울으라지뭐.오랫만이네요. 철새처럼 들르는데도 글을 읽어주어 감사해요. 건강들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