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핑턴포스트코리아 [허핑턴 인터뷰] 2016년 05월 16>일
패션과 예술
세계적인 아티스트 장 - 샤를르 드 카스텔 바작이 말하다
작성자 김태우
레이디 가가가 입은 카스텔바작의 개구리 코트
지난 2009년, ‘개구리 커밋’ 인형이 잔뜩 붙어있는 코트를 입고 인터뷰에 나타난 레이디가가는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영국 마리끌레르는 “레이디 가가의 가장 기묘한 옷”이라고 불렀고, ‘하퍼스 바자’는 ‘가장 충격적인 패션 스타일’으로 꼽기도 했다. 그녀는 같은 해, 버블로만 만들어진 옷, 가슴에서 불꽃이 나오는 원피스, 붉은 레이스로 얼굴을 감싼 독특한 패션 등 이해할 수 없는 스타일을 선보였는데, ‘개구리 커밋’ 코트는 그 중에서도 ‘최악의 룩’으로 선정됐다. 누가 봐도 아름다움에서는 동떨어진 이 코트를 만든 디자이너가 바로 장 샤를르 드 카스텔 바작이다.
지난 2002년 프랑스의 최고 권위 훈장인 코망되르를 수상한 카스텔바작은 1997년 세계 가톨릭 청소년 대회에서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무지개 색 예복을 입혀 바티칸을 위한 의복을 제작한 유일한 디자이너가 되었으며, 지난 3월 세종대왕상 주위에 네온 프레임을 설치한 작품 ‘킹 오브 사인스’를 제작해 한국과도 깊은 관계를 유지 중이다.
인형이 잔뜩 달린 옷을 제작하는 독특한 디자이너라고만 설명하기엔 굉장히 복잡한 예술가, 장- 샤를르 드 카스텔바작을 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직접 만났다. 그는 최근 대산문화재단과 주한 프랑스대사관, 교보문고, 교보생명이 주최한 ‘2016 교보인문학석강- Creative France’ 프랑스 석학 초청 연속 강연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아티스트로서의 시작을 먼저 이야기해보죠.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나요?
= 처음엔 아무도 자신이 아티스트인 줄 모르죠. 10살 때쯤 제가 기숙학교에 다닐 때, 저는 나뭇조각이나 깃털, 쇳조각 등을 모아서 조그만 원이나 성을 만들어 그 속에 불을 피우기 좋아했어요. 아무 의미도 없이 말이죠. 그저 지루함을 쫓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 이후엔 남들과 다르게 옷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참된 아름다움을 좋아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 저는 화려함보다는 흐릿한 것에, 제대로 된 아름다움보다는 이상함에 더 끌리는 듯 합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아름다움을 찾죠.
언제 ‘아티스트가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했나요?
= 어릴 땐 그저 영웅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영웅은 직업이 아닌 걸 알아챘죠.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 군인이 되면 영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사관학교에 가게 됐습니다. 11년간 사관학교에서 시간을 보낸 뒤 반항아가 되고 말았어요. 로큰롤 음악을 즐기고 큰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를 몰며 사고가 날 만큼 빠른 속도로 달리곤 했습니다. 16살에는 용돈을 벌기 위해 쇼윈도에 상품 진열을 하기 시작했고 18살이 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어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좀 더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말콤 맥라렌, 섹스피스톨, 앤디 워홀 같은 유명한 사람들을 만나게 됐는데, 그들은 제 작품을 칭찬해주었고 앞으로 나갈 힘을 줬습니다.
만화 캐릭터를 사용한 스웨터로 유명해졌죠?
카스텔바작이 디자인한 스누피 스웨터
= 저는 항상 컨셉을 중요시했어요. 제가 ‘아이스버그’라는 브랜드에서 일했을 때 빙산을 뜻하는 아이스버그에 어울리는 컨셉을 찾다 만화 캐릭터들을 생각해냈죠. 빙산은 정말 10%만 물 밖에 올라와 물 속에 위대함을 숨기고 있잖아요? 그래서 1981년, 만화 캐릭터를 사용한 스웨터를 만들게 됐고, 정말 크게 히트했어요. 당시 스웨터들은 비유적인 부분이 단 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에요. 제 첫 스웨터는 스누피가 셰익스피어의 ‘죽느냐 사느냐’를 외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는데, 정말 유명했었죠.
그러다 90년대에 접어들자 제 커리어는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밖에 나가면 보이는 브랜드는 프라다뿐이었고 로고가 잔뜩 박힌 옷들뿐이었어요. 그러다 제가 뉴욕에 있던 어느 날 힙합 아티스트들이 하나둘 제 스웨터를 입고 다니는 걸 발견했죠. 그렇게 제이지, 칸예 웨스트, 마크 론슨 등과 친구가 되었어요. 그들이 유명해지기 10년도 전에요.
저는 사실 힙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레드 제플린 같은 밴드의 팬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제 아들들은 힙합을 사랑했죠. 하루는 제 아들이 “아빠, 에미넴이 아빠가 만든 스웨터 입은 거 알아? 제이지도 입었어!”라며 말해줬죠. 어떻게 그들이 제 스웨터를 샀는 줄 알아요? 바로 할인 매장에서 한참 내린 가격에 팔리고 있어서였어요.
어디서 영감을 찾나요?
=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모든 곳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일을 많이 하다 보면, 더 많은 것들이 영감을 주죠. 저는 여성으로부터 항상 영감을 얻습니다. 저는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죠. 그리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아름다움을 찾곤 합니다. 저는 사고를 사랑합니다. 불완전함을 만들어내는 사고들 말이죠.
여성들이 영감을 준다는 건가요?
= 네, 그렇게 제게 두 명의 아름다운 아들들이 생긴걸요.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영감을 주나요?
= 제겐 여러 명의 뮤즈가 있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을 사랑해요. 지금 현재는 특정한 뮤즈가 없습니다. 음, 어쩌면 CL일 수도 있겠네요. CL과는 8~9년째 친분을 유지하고 있어요. 서로를 정말 존경하고 사랑하죠. 저는 그녀가 젊은 세대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는 것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타이기 때문에 멋있는 게 아니에요. 스타이건 아니건 무슨 상관이죠? 어린 친구들이 자신을 믿고 나아가게 응원을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레이디 가가와도 친구가 되었습니다. 레이디 가가는 젊은 세대의 사람들이게 ‘너는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넌 특별해.’라고 말해주기 때문이에요.
전에 단 세 개의 색깔만 사용한다며 ‘나는 파스텔바작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어떤 의미로 말한 건가요?
= 제가 사용하는 색은 많지 않아요. 세 개를 중심으로 사용하죠. 노란색은 제가 태어난 모로코의 따뜻함과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주기 때문에 씁니다. 빨간색은 미키 마우스의 바지 색깔이기 때문에….아, 물론 장난입니다. 빨간색은 열정과 변화를 의미하죠. 섹시하고 관능적인 색입니다. 마지막으로 파란색은 저희 가문의 문장이자 영성을 의미하는 색이죠.
수년 전에 교황을 위해 의상을 제작한 적이 있죠?
= 삶은 정말 신비로워요. 92년이었나요? 아미쉬 카푸어라는 아티스트와 프로젝트를 함께하게 되었는데, 이는 한 추기경님이 계획한 감옥에서의 특별 미사를 위해 의복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엄청난 의복을 디자인했는데, 다양한 색을 사용해 뒤에 빛을 비추면 마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빛이 나는 옷이었죠.
5년 뒤, 바티칸은 제게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파리에서 진행하실 세계 가톨릭 청소년 대회의 의복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어요. 정말 기적과도 같았죠. 역사상 누구에게도 이런 일을 맡긴 적이 없고, 아마 앞으로도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 어떤 디자이너도 바티칸을 위해 일한 적이 없죠. 기업으로서 디자인한 적은 있지만 개인 아티스트으로서는 한 번도 없었던 일입니다.
그러면 바티칸의 가톨릭 교회를 위해 디자인한 유일한 아티스트인건가요?
= 네, 유일한 아티스트죠. 사실 저는 성인을 위해 의복을 디자인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제가 의복을 디자인해드린 교황님이 성인이 되셨기 때문이죠.
많은 한국인들은 당신을 레이디 가가를 위해 제작한 개구리 코트를 통해 익히 알고 있어요.
=영국 사람들은 프랑스인들을 ‘개구리’라고 부르며 무시할 때가 있죠. 그래서 작품을 통해 프랑스인들을 보호해보고자 ‘개구리 커밋’을 사용해 코트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죠. 코트에 커밋 인형을 잔뜩 붙였고, 하나는 머리를 잘라 그녀의 머리 위에 붙였죠. 정말 이상하고 특이했어요. 기이하고 미적인 감각에서 멀리 떨어진 작품이었죠. 그게 바로 그 코트의 요점이었어요.
개구리 코트는 ‘그 해 가장 못생긴 코트’라고 불렸어요.
카스텔바작 레디 투 웨어 F/W 2009년 컬렉션
= 못생겼다고 말하는 것이 작품을 칭송해주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죠. 그런 수식어는 제게 아무 의미 없어요. 아름다운 게 뭔 상관인가요? 중요한 건 제가 패션계에 다르지만 강한 무언가를 내놓았다는 거에요.
세종대왕 동상에 설치미술을 한 ‘킹 오브 사인스’ 작품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어두워지면 세종대왕상이 마치 떠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각 모서리에 왕관을 쓴 눈, 심장, 손, 날개를 형상화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 ‘킹 오브 사인스’ 프로젝트는 저에게 역사와의 연결 고리와도 같았어요.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 시간과 사람에 대한 기억에 이어주는 연결 고리였죠. 저는 세종대왕에 대한 모든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선견지명도 있었고, 모든 사람에게 지식을 전해준 사람이었죠. 어느 날 프랑스 정부는 제게 한국에 대한 프로젝트를 기획해보라고 제안했어요. 저는 이 작품을 통해 세종대왕과 한국의 문화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제다이도 아니고, 오비완 케노비도 아니어서 어린 친구들에게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는 여러분의 현재와 미래를 바꾼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어요.
여태껏 사용해 본 재료 중에 가장 독특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 제가 쓴 가장 특이한 재료요? 저는 사람 피부에 그리는 걸 좋아합니다.
피부요?
= 네, 저는 여성들의 몸에 그리는 것을 사랑하죠. 그게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독특하면서 아름다운 재료입니다.
패션을 어떻게 정의하나요?
= 제가 생각하기에 패션은 한가지로 정의할 수 없어요. 제가 패션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기사처럼 여자를 지키기 위해서였죠. 패션과 저의 관계는 마치 한 여자와 40년동안 결혼 생활을 보낸 것과 같아요. 사랑에 푹 빠져있고, 싸우기도 하고, 또 어떨 땐 떨어져 있기도 하죠. 그리고 다시 사랑에 빠지곤 합니다.
당신이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자신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요?
= ‘너 자신을 믿고 열심히 일하길. 그리고 상황이 좋지 않아도 낙심하지 말길’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66살이 지금까지 저는 제가 원하는 대로,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일했어요. 그게 제 장점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제 생각에 사람들은 오히려 패션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 같아요. 패션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타일이죠. 패션과 달리 스타일은 적은 돈으로도 유지할 수 있죠. 패션을 위해서는 비싼 브랜드에 가야만 해요. 스타일은 그저 자신에게 어울리는 룩을 찾으면 되는 거죠. 어떤 것이 자신한테 아름다워 보이는지, 어울리는 색은 무엇인지 찾는 게 중요하단 뜻입니다.
패션보다 스타일이 더 중요하다 말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각각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죠. 현재 가장 큰 문제는 모두가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려 자신의 매력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히려 완전히 특이하고 조화롭지 않은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와서 취직을 준비하거나 직장을 잃은 청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그들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은, ‘위기는 가끔 자신의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위기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데려다주기도 하죠. 자기성찰을 할 기회를 주기도 하고요. 다른 이들에 조언을 구하지 마세요.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면 답이 나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