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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무기자 스크랩 `철마는 달리고 싶다.` 철원 안보관광지를 가다.
호박조우옥 추천 0 조회 77 15.03.31 10:0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뚱딴지같이 무슨 소리냐구요?



 

얼마 전 철원군 두루미 평화마을에서 강원 정보화 마을 프로그램관리자 워크숍을 했었습니다.


교육 후 회식시간에 건배를 하는데 대개의 사람들이 하는 건배사와 달리

철원군 위원장님 건배사가 특별히 애국적(!)이어서

저도 모르게 웃었는데

그 다음 날 안보관광을 해보고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강원도 북서쪽에 있는 철원군은 경기도와 접해 있지만, 서쪽으로는 황해도, 북쪽으로는 평강군과 인접하여 북위 38도선에 위치한 평야 지역으로서 임진강의 지류인 한탄강이 군의 동부를 남북으로 흐르는 곳입니다.


구석기시대 유적지가 철원군과 인접한 경기도 연천군 일대에서 발견되어 한탄강을 끼고 구석기, 신석기 시대에 거주했던 곳임을 알 수 있으며, 광복과 함께 38선 이북지역으로 들어갔다가 1950년 6.25전쟁을 겪은 후 휴전이 성립되면서 철원읍, 동송읍, 갈말읍, 연천군은 수복되고 어운면은 비무장 지대로 들어갔으며 북면 묘장면은 일부는 북한으로, 그리고 내문면, 인목면, 마장면은 일부가 비무장 지대로 또 일부는 북한지역으로 되어버린 곳입니다.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 주민분들이 늘 긴장 속에서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구요.




원래의 안보관광은 서울에서 출발한 경원선 열차를 타고 백마고지 역에 내려 백마고지 역에서 제2 땅굴을 거쳐 철원 평화전망대, 월정리역, 두루미관, 백마고지역으로 약 세 시간에 걸쳐 진행되지만, 저희는 두루미평화관에서 일박을 했던 터라 바로 철원 평화 전망대로 향했습니다.




 

철원 평화전망대에서는 우리나라 분단의 현실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북한땅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보이는 평화전망대

창밖으로 보이는 평화로운 경치는 우리나라임에는 분명하나 지금은 갈 수 없는 땅

 

맑은 날에는 북한 주민들이 지붕에 옥수수를 널어 말리는 광경까지 볼 수 있건만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고, 대치하고 있는 가슴 아픈 현실이 더욱 슬프게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북한과의 거리는 약 200km 밖에 되지 않고

평강까지는 하루 거리인지라 예전에 평강의 소 장수들이 철원에 소를 몰고 왔다가 이웃집에 머물러 며칠 밤을 보내고 돌아가려 하니 철책선이 막혀 집에 못 돌아가고

전망대에 올라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하시는데

이산가족의 슬픔이 정말 가슴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갔다가 걸어서 내려오는 길

작은 교회가 평화전망대 뒤편에 있습니다.

 

1971년도에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지은 교회라고 하네요.

 

그때 당시 군인들의 신앙활동도 지원하고,

북한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파한다는 목적으로 지은 교회인데 이름은 '필승교회'라고 합니다.

예전에 크리스마스 때면 점등식 하는 곳도 바로 이 부대라 하네요.



 

전망대 앞 주차장으로 내려오면 이런 표지판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군사분계선까지의 거리는 고작 2800m

김일성이 이 철원평야를 빼앗기고 3일 동안 통곡했다는데,

그만큼 기름지고 군사적 요충지였던지라 그런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워낙 넓은 평야 지대라 이웃집에 가기 위해서는 식구 수 대로 차를 가질 정도로 부유하게 살았으나, 

지금은 쌀값 하락으로 주민들의 생활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만큼 이 넓은 평야에서 기름지고 품질 좋은 쌀이 생산되고 있다고 하니 군사적 요충지의 의미 말고도 철원지역이 갖는 경제적 의미도 크다고 할 수 있겠네요.

 

지금은 농사만으로 살 수 없어 체험객을 유치해서 체험도 많이 하고 있다는데, 

전쟁 전에 10만 명이던 인구수가 지금은 4만 8천 명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인구수도 줄었다는데 거기에는 전쟁으로 인한 죽음과 남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의 수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하네요.

 

 

다음으로 들른 곳은 간이역인 '월정리 역'입니다.

 

 

서울에서 원산까지 원산의 바닷가 해산물과 철원의 농산물을 수송했던 경원선 열차이건만

분단으로 인해 철도가 끊기고 전쟁의 포탄 자국을 그대로 간직한 채

오래되고 녹슨 기차가 민족의 아픔을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통일되어 이 열차가 연결되면 유럽까지 달릴 수 있는 유라시아 열차가 된다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와 유럽 간의 교통도 트이고 교류도 활발해져 국가에 얼마나 큰 이익이 될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월정리 역을 떠나오면서 철원의 넓은 평야 옆 길가에 세워진 건물들

바로 전쟁 전의 건물들이라 하네요.

 

얼음창고도 있고, 농산물 검사소도 있고, 금고자리도 있습니다.

 

한때는 경원선으로 얼음을 수송했다고도 하는데 지금은 전쟁의 아픈 상처를 제일 먼저 목격한 건물들로 옛 흔적만을 남긴 채 쓸쓸히 서 있네요.

 

 

다음 여정지는 '노동당사'였습니다.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그 유명한 노동당사

 

 

무너져가고 포탄 자국 가득한 이 건물은 1945년 8.15해방 후 북한이 공산독재 정권 강화와 주민 통제를 목적으로 건립하여 6.25전까지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사용하며

 

 

양민수탈과 애국인사들을 체포, 구금, 고문, 학살 등을 저지른 악명높은 곳으로 이 건물 뒤 방공호에서는 수 많은 사람들의 인골과 만행에 사용된 철사 줄, 실탄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시멘트와 벽돌로 지은 이 건물은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는지 6.25 전란 당시 많은 건물이 폐허가 되었어도 오늘날까지 굳건하게 남아 잔인한 이데올로기의 잔재를 보여주고 있으며

 

2002년 5월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백마고지역입니다.

 

 

6,25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백마고지,

 

 

철원에 위치한 작은 고지를 놓고 국군 제9보병사단과 중공군 제38군 3개 사단이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10일 동안 24번이나 뺏고 뺏기는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는데

 

중공군 13,000여 명이 죽거나 포로가 되었고 국군 제9사단도 총 3,4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발사된 포탄의 수는 아군 219,954발, 적국 55,000발 등 총 274,954발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백마고지는 전쟁 전에는 그저 작은 야산에 불과했으나 전쟁이 고착화되면서 철의 삼각지 좌견부를 감시하는 중요 지형으로 인식되어 불과 395m밖에 되지 않는 고지에 쏟아진 폭탄의 양이 어마어마해서 수목과 산이 하얗게 타버려 그 형상이 하늘에서 보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전쟁이 얼마나 치열하고 참혹했는지를 알려주는 증거물로 이 고지로 인해 제9사단의 부대 명칭도 백마부대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역사 안에는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과

또 이곳에서 근무했던 사람들

그리고 북쪽에 고향을 둔 많은 사람이 찾아와 메모를 남겼는데

 

 

하나하나의 메모가 모두 가슴 아프고 절절해서 한동안 이 메모들을 읽느라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서울에서 철원 백마고지 역까지 운행하는 차를 타고 백마고지에 도착해서 안보관광을 하는데 드는 비용은 점심식사비를 포함 1인당 18,000원입니다.

 

제가 둘러본 곳 외에도 제2땅굴까지 견학하실 수 있으며 적국 3만 명 아군 만오천 명이 죽어 비가 내리면 피처럼 흘렀다 해서 '피의 능선'이라 불리던 곳, 땅굴 뒤쪽으로 평강 공주와 온달 장군이 살았다던 평강산, 붉은 용암이 분출되어 고지를 이루고 평야를 만들면서 폭격으로 산이 녹아내려 한 영국 병사가 붙였던 아이스크림 고지(백설봉) 등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요,

 

 

농부들이 일하는 바로 옆 밭에도 지뢰가 곳곳에 매설되어 있어 돌아보는 곳곳이 위험지역인,

살벌한 현장도 보실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주민들이 지뢰를 잘 몰라 나무를 하다 지뢰를 이고 내려오기도 하고, 또 고물상에라도 넘길까 싶어 한군데 모아놓기도 하며 맷돌이라 부르기도 할 정도로 흔하디흔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길가에 쳐진 지뢰매설지역이 현실일까 싶을 정도로 많네요,.

같은 강원도라 해도 분단 선과 멀리 있는지라 평상시에는 국가안보 등에 관해 거의 생각을 않고 살아왔지요.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이 일어난 지 반백 년이 지나 65년이 되는 올해 우리들은 전쟁의 비극을 너무도 까마득히 잊고 살고 있습니다.

 

겨울철...

찬바람이 뼛속까지 스미는 철원평야의 추위가 이제는 좋다는 철원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서울까지 단돈 천 원이면 갈 수 있는 백마고지 역사에 쓰인 실향민들(이산가족)의 아픔을 접하며

어리석은 전쟁과 이념으로 고착화된 민족분단의 아픔을 절감합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우리의 가슴 아픈 현실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


 

북한과 가까워서 불안하지 않냐고 했더니 북한에서 미사일 날려도 철원은 지나갈거라는 철원군 관리자 언니의 농담에 웃었지만, 하루빨리 이런 민족적 대립없이 화해하며 살 수 있는 시간들이 오면 좋겠습니다.








<취재: 청춘예찬 어머니기자 백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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