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미투 외 1편
신혜진
그녀는 내 여고시절의 짝꿍, 그때 벌써 유머를 알아 주변에 친구들이 들끓었었지 교문 앞 미루나무처럼 미끈한 다리에 손도 발도 컸었지 엄마 닮았다는 입담은 그야말로 칠성사이다
하교 후 우리는 서호 문구점에 모여 참새 떼처럼 재재거렸지 삼립빵을 먹고 해태브라보콘을 먹고 정류장 긴 줄에 매달려 버스를 기다렸었지
6교시 쇳덩이 같은 책가방을 앞세우고 간신히 만원 버스 한쪽에 설 자리를 잡았지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넘어지지 않으려면 발끝까지 힘을 주고 버텨야한다는 걸 온몸으로 익혔지
이 손 보소!
에잇 씨발, 이 손 안 놔?
시루 속 콩나물처럼 서서 두피까지 비늘이 돋던 그때, 몇 사람 건너에서 그녀 외침소리가 들려왔었지, 동시에 보았었지, 사람들 사이로 그녀 손에 붙들린 손 하나가 번쩍 쳐들리고 있는 것을, 얼굴 벌게진 남자가 힘을 다해 그녀를 밀치는 것을, 출구를 향해 시커먼 쥐새끼 하나 빠져나가는 것을,
그녀는 예뻐서 그때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부당하면 소리쳐야 한다는 걸,
만원 버스 같은 세상을 향해 손 번쩍 쳐들어야한다는 걸
이것 보라고!
이건 아니라고!
모건뷰티
신혜진
창문 때리는 봄 소나기 소리가 소란하다
며칠 전 내놓은
창밖 다육식물들에게로 달려나간다
다급한 손길에 툭,
이제 막 봄볕 눈뜬 모건뷰티 목대가 노랗게 꺾인다
허공이 부러진다
11층이 쿵쿵 굴러내리기 시작한다
소스라치던 내가 부러진 꽃망울을 따라 곤두박질친다
까무르치는 허공을
굴러내리는 나를
창가에 선 내 눈이 멀뚱 내려다보며 서있다
1층 화단
겨우내 어깨 한쪽이 주저앉은 목련나무가
다시 무성해질 잎을 기다리는지
목을 빼어 올려다보고 있다
모두가 혼자인 봄날이었다
2020 애지 등단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이메일 ease1106@hanmail.net